〈 96화 〉 절반(3).
* * *
애쉬는 비앙카를 구속했다.
자신의 마력으로, 텔레포트를 금하는 금제를 새겼다.
이것은 비앙카의 도주를 막기 위한 일이었다.
‘씨발년, 넌 뒈졌다.’
텔레포트의 발동만 막을 수 있다면, 이 버릇없는 흑마술사를 자신의 손 안에 넣을 수 있다.
자만한 흑마술사는 애쉬를 쉽게 봤고, 유일한 도주 수단을 없애버렸다.
애쉬는 비앙카를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철저하게 괴롭혀서, 스스로 영혼공유를 풀게 만들 속셈이었다.
자신의 목숨인 만큼 쉽게 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믿었다.
비앙카가 풀지 않더라도, 영혼공유 술식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지도 모르고.
애쉬 입장에서, 비앙카를 곁에 둬서 손해볼 게 없었다.
‘어차피 자기를 못 죽일 거라는 생각에, 그냥 흔쾌히 허락한 것 같은데….’
사람의 감각은 고통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감각이 존재한다.
비앙카를 고문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강아진을 못살게 군 비앙카, 그녀를 괴롭힐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이제부터 말하면 죽인다.”
“어떻게 죽일 건데요?”
애쉬가 비앙카를 향해 성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비앙카는 애쉬의 겁박에도 쫄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데,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애쉬도 예상하고 있었다.
약아빠진 흑마술사가 고작 텔레포트 막혔다고, 순종적이게 변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죽고 싶도록 만들어준다는 말이야.”
“아하.”
비앙카가 알아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쉬를 쳐다봤다.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이 턱을 까딱거렸다.
갑을이 정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모양새였다.
‘이 년이….’
태연자약한 비앙카의 표정에, 애쉬 머릿속에서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자칫 잘못하면 머리가 터져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입술이 터져라 이를 악 물고, 비앙카에게 살기를 흘렸다.
“앗, 따가. 너무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제 피부 연약하단 말이에요.”
비앙카가 제 팔뚝을 마구 쓰다듬는다.
여린 척, 불쌍한 척, 하지만 목소리는 얄궂게 울렸다.
거칠어지려는 숨을 겨우 가다듬었다.
애쉬는 평정을 되찾고, 비앙카에게 다가갔다.
품에서 개목걸이를 꺼내서 비앙카의 목에 채웠다.
“엥?”
비앙카는 제 목에 채워진 목걸이에 당황하며, 애쉬를 바라봤다.
“이제부터 두 발로 걷지 마라.”
“에이. 사람인데 어떻게 네 발로 걷나요. 용사님도 차암, 농담도 잘하시네.”
“농담 아니고 명령이야.”
“명령이요?”
비앙카가 낄낄거리며 애쉬에게 묻는다.
“안 따르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불복했을 경우, 처벌이 있어야 명령이잖아요. 강제성이 작용하는 거니까요.”
“…….”
“어떻게 저를 벌 하실 생각인데요? 저랑 강아진 씨는 연결되어 있어요. 강아진 씨는 제가 느끼는 고통을 느껴요. 제게 생긴 상처도 함께 생기고요.”
비앙카의 당돌한 말에, 애쉬가 피식 웃었다.
“고통? 고통이 아니면 된다는 말 아닌가?”
애쉬는 본인 나름대로 꿍꿍이를 꾸몄다.
비앙카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강아지를 강간했어.’
섹스란 것은 서로의 애정이 밑바탕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아이를 만드는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비앙카는 강아진을 강제로 취했다.
그의 뒷구멍을 힘으로 범했다.
‘원래 내가 먼저….’
애쉬의 것을 가로채, 가져가서 낼름 먹어치웠다.
애쉬로서는 참을 수 없는 짓이었다.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
애쉬가 입 꼬리를 말아올렸다.
사악하게 올라가는 웃음기에, 비앙카는 공포를 느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무슨 짓을 저지르든 간에 강아진 씨도 피해를 봐요. 그걸 명심하셔야 해요.”
“아니. 이건 강아지에게 전혀 상관없는 거야. 너한테 고통만 안 주면 되는 거잖아.”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여성은 안타까운 존재다.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약하게 태어나는데, 번식에 중요한 자궁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강압적인 태도에 따라 강제로 수태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돼.’
강간 자체가 여성에게는 큰 데미지로 작용한다.
남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스트레스다.
애쉬는 비앙카를 강간당하도록 할 생각이다.
‘네가 강아지에게 한 것처럼!’
강간을 당하도록 하되, 고통은 느끼지 않도록.
쉽고 간단한 일이다.
잘 박는 남자 하나를 고용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비앙카에 대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여럿을 구하면, 쉬지 않고 범할 수 있겠지.’
용사로서 죄책감은 없다.
상대는 헬 체인의 흑마술사, 죄악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좋다.
비앙카를 범하는 이들에게 대의명분을 쥐어줄 수 있다.
이 여자는 흑마술사다.
악마를 소환했고, 못된 짓을 저질렀다.
바리아에서 일어났던 사건.
그 일의 배후다.
광장에서 외치는 거다.
대신 때리거나 죽이지는 말라고.
그저 이 육변기를 즐기고 맛보기만 하라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애쉬는 곁에서, 인간들을 통제하기만 하면 됐다.
바잉카는 애쉬의 욕망을 읽어냈다.
찐득하게 눌러 붙은 욕망은 분명 야한 짓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떤 수를 쓰려는 것인지, 눈치 챘다.
“풉.”
“웃어?”
비앙카가 실소를 터트렸다.
“기껏 떠올린 작전이…. 제 몸을 남자들에게 돌리는 건가요?”
“…….”
애쉬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계획을 들켰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비앙카는 애쉬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고작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 애쉬가 떠올린 역전의 수라는 게 귀여웠다.
“저는 용사님과 달리, 몸이 더럽혀지든 말든 관심이 없어요.”
첫 경험조차 술식을 위한 제물로 사용했다.
자신의 몸뚱어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순결이고 나발이고 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말이죠. 강아진 씨가 제 고통을 전해 받는다는 건요. 제가 고통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의미에요.”
“뭐?”
“영혼이 공유된 상태에요. 저는 강아진 씨의 어떤 것이든 공유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예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오감을 뛰어넘어 감정까지도, 강아진 씨가 헐떡거리고 있는 쾌락도, 다 느낄 수가 있어요.”
비앙카의 단호한 말에, 애쉬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해석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아지에게…. 네가 느끼는 고통만 전하고 있었다는 건가?”
“네. 용사님께 보여드렸을 때, 가장 격하게 반응할 테니까요. 그 이상은 굳이 보여드릴 필요가 없죠. 영혼공유의 술식은…. 용사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거든요.”
영혼공유의 술식을 사용하는데 있어, 다른 의도는 없었다.
성검부터 휘두르는 애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강아진을 이용한 것뿐이었다.
“제 복수를 위해서, 이 세상이 안 무너졌으면 좋겠어요. 적당히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악마를 학살하고 있는 용사님이 괜찮은 상태였죠.”
“…….”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강아진 씨를 납치했어요. 덕분에, 영혼공유의 술식을 걸고 용사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됐죠.”
비앙카는 자신의 개목걸이를 흔들면서 쳐다봤다.
제 목에 채워진 개목걸이가 신기한 듯했다.
“강아진 씨를 해칠 생각은 없어요. 용사님의 남자를 죽였다가는…. 끔찍하게 죽을 텐데, 굳이요? 저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요.”
“…….”
“그 대신 그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죠.”
“뭐?”
애쉬가 눈을 부라렸다.
비앙카는 의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영혼이 공유되어 있으니까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의 머릿속이 느껴져요.”
“…….”
“왜 용사님이 그를 강아지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아요. 그의 감정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달려오는 강아지를 보는 기분이에요.”
애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어떤 순간보다 더 격하게.
비앙카가 그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남자는 처음 봤어요.”
“이, 개씨발좆같은 년이!”
애쉬가 흥분하며 들이박았다.
비앙카의 멱을 잡고 들어올렸다.
“켁, 켁! 용사님, 이러시면 곤란해요. 강아진 씨가 숨을 못 쉰다구요.”
비앙카는 낄낄거리며 애쉬에게 매달렸다.
애쉬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비앙카를 노려봤다.
분하고 억울해서 울먹거리고 있었다.
비앙카의 말에 무어라 반박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해서.
최강의 용사가 되었는데, 고작 흑마술사에게 농락당하는 자신이 창피해서.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회귀하기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동료라곤 하나도 없는 그 때 그 시절.
강아진을 만나기 전, 한심했던 날들로….
비앙카는 애쉬를 빤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용사님, 내려주세요. 이러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말했잖아요. 저는 대화를 하고 싶은 거라고. 용사님과 싸울 생각이 없어요.”
“…….”
애쉬는 비앙카를 믿지 않았다.
저지른 짓이 있는데, 어떻게 저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당장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면 강아지를 왜 괴롭혔지? 영혼공유만 하면 됐잖아.”
“아.”
정상적인 강간까지는 이해할 수가 있다.
강아진도 남자니까, 비앙카의 외관을 보고 상처를 입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애쉬 스스로 상처를 입을지언정.
강아진이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비앙카는 강아진이 거부감을 느낄 뒷구멍을 건드렸다.
애쉬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앙카가 답했다.
“강아진 씨에게 제 순결을 줬잖아요. 그런데 저만 줘야하는 게 억울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래서 강아진 씨의 뒷구멍을 범했어요. 이제 서로의 처음을 나눠가진 거니까, 덜 억울하더라고요.”
“…….”
애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비앙카를 들어 올린 팔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겨우 그런 이유에서 강아진을 못살게 괴롭혔다는 말인가.
비앙카는 땅 위에 서서 당당하게 말했다.
“남자들도 여자의 항문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요. 간혹 실제로 해보는 커플이나 부부들도 있죠. 그렇게 받아들여주는 여자들도 있는데, 남자라고 안 될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제 말은요. 강아진 씨에게 조금 낯선 경험일 뿐, 그리 아프고 힘든 경험은 아니란 거예요.”
“이런 미친년이….”
애쉬는 화를 내면서도 비앙카를 건드리지 못했다.
비앙카의 말대로, 그녀에게 가해지는 감각과 고통이 강아진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분노를 식히며 참아냈다.
원작의 애쉬를 아는 강아진으로서는 감탄만 나오는 참을성이었다.
“일단 돌아갈까요? 딱히 도망칠 생각은 없어서요.”
비앙카가 애쉬를 불렀다.
언제쯤 돌아갈 거냐며 재촉했다.
“어서 데리러 와줬으면 하는데….”
흥얼거리는 콧소리가 짜증나게 들려왔다.
애쉬는 인상을 찡그리며 텔레포트 마법사를 불렀다.
그와 1대1로 연결된 신호석이 있었다.
* * *
“언제쯤 올까요?”
“금방 오실 겁니다. 그나저나….”
텔레포트 마법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교단에 보고하실 거잖아요.”
“…당연한….”
“그러면 말해드릴 수가 없어요. 애쉬가…. 애쉬가 이 파티의 리더라서요.”
“…애쉬 용사님도, 강아진 님께는 아무 말도 못하잖습니까. 그냥 말씀해주세요. 교단도 무언가를 알고 있어야 그에 맞게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원작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교단을 마냥 나쁜 집단으로 몰아세울 수가 없다.
교단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용사들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교단은 뒤에서 꿍꿍이를 꾸미거나 하는 흑막이 아니다.
진심으로 이 대륙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성직자들이었다.
물론 개개인마다 성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텔레포트 마법사에게 적당히 간추려서 얘기해주었다.
애쉬와 비앙카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 비앙카의 노림수도 대충 파악해서….
“그러면, 흑마술사와 동맹을 맺었다는 뜻이잖습니까. 이건 큰일….”
“그런데요. 그 흑마술사와 동맹을 해서 악마의 수를 줄일 수 있다면, 획기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일부러 위기를 불러들인다는 게 불안하지만, 용사님께서 보여주신 무위를 떠올려보면…. 그 효율만큼은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이 됩니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애쉬를 따라다니면서 그녀의 무용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글과 말로 전해들은 다른 교단 인원과 느끼는 바가 달랐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텔레포트 마법사의 품에서 진동이 울렸다.
“용사님께서 부르십니다. 악마 소환을 막고, 그, 얘기가 끝난 것 같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텔레포트 마법사가 애쉬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5초 뒤.
눈앞에서 애쉬가 나타났다.
“강아지!”
애쉬는 돌아오자마자 내 상태를 살폈다.
내 멱을 확인하고 목 주위를 훑어봤다.
마구 더듬으면서,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괜찮아?”
“…뭐가?”
아무 일도 없었다.
악마 잡고 비앙카랑 대화.
10분도 안 걸린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날 틈도 없었다.
멍하니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멀쩡한 것을 확인한 애쉬가 뒤를 돌아봤다.
텔레포트 마법사가 비앙카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흘기고 있었다.
“안녕, 강아진 씨.”
비앙카는 나와 똑같은 개목걸이를 착용한 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애쉬는 그런 비앙카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