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실전(8).
* * *
세상에는 마물들이 많다.
모험가와 용병들, 각 가문들의 기사들까지.
계속해서 토벌하고 다니는데도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그만큼 번식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그 중 고블린은 인간에게 있어 아주 큰 골칫덩이다.
아녀자들을 납치해 부락에서 윤간하고, 새끼를 까기 때문이다.
고블린의 새끼를 낳은 여자들은 정신적으로 크게 망가진다.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는 그런 고블린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모험가 길드에 가서 의뢰도 받아놓자.”
마족이나 악마는 성검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마물들은 성검이 없어도 가능하다.
모험가와 용병들은 주로 마물들을 퇴치하면서 명성을 쌓고 부를 축적한다.
마물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모험가와 용병들의 일거리가 줄지를 않았다.
용사가 아닌 모험가로서의 명성도 쌓기로 했다.
정확히는 내 이름을 모험가 길드에 등록하고, 의뢰를 완수하는 것이다.
“동(?)급….”
브론즈 모험가.
모험가는 용병과 뉘앙스가 다르다.
용병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심부름꾼, 그래서 자잘한 의뢰가 굉장히 많았다.
그에 비해 모험가는 낭만을 쫓는 직업군이다.
낭만이라고 포장은 했지만, 어쩌면 용병보다 미친놈들일지도 모른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보물, 신화나 전설 따위를 쫓고 있으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모험가 길드에 등록했다.
전부 애쉬의 의견이었다.
나에게는 발언권이 없었다.
“가자.”
애쉬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애쉬는 목줄을 쥐고 나를 이끌었다.
누군가 나를 당기지 않고 걷는다.
그 감각이,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스페라톤 밖으로 나섰다.
도시 특유의 정경이 사라지고, 서늘한 한기가 감돈다.
마차 없이 숲을 거니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노예 상인에게서 탈출하고, 그 뒤로는 마차나 순간이동을 이용했지.’
빈센트, 린과 소우타.
헤어진 지 꽤 됐다.
용사의 동료로서 낙오되었으니, 누구도 그 아이들을 험하게 다룰 순 없다.
유테론 저택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나저나, 애쉬는 유테론 저택에 내 소식을 전했나?
유테론 남작의 영역에서 내가 납치되었다.
고라 유테론도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명예가 걸려 있으니까.
‘…알아서 잘 했겠지.’
대충 하는 것 같아도, 애쉬는 나름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모든 것에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고 있었다.
마왕 바알을 잡기 위해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가는 것이다.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여기야.”
고블린 부락은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다.
놈들은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고 세를 키운다.
우리가 발견한 고블린 부락은 낮은 절벽 아래에 위치했다.
여기서 내려가기에는 약간 높아서 애매하고, 길을 따라 침투하자니 길목이 좁아 발견하기도, 침투하기가 힘든 자리였다.
나름 요충지라고 해야 할까.
고블린 주제에 터를 잘 잡았다.
“규모는 작아.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겠지.”
애쉬가 내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내 수준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애쉬에게 듣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어렴풋이 아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내 감각에는…. 서른 정도가 잡혀. 그 중 성체는 스물. 열 마리 정도가 새끼. 초보 모험가 셋이 실종되었다는 정보가 있더라고. 그 중 여자가 둘이야.”
“…실종된 타이밍은?”
“일주일.”
“…열 마리를 낳을 수 있는 시점이구나.”
고블린은 마물이다.
때문에, 번식 시스템이 인간과 궤를 달리한다.
여성의 자궁에 씨를 뿌리면, 100% 확률로 임신과 착상이 이루어진다.
배란기와는 관계없이 아기가 생긴다.
자라는 속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10개월을 품고 있어야 하는데, 고블린의 새끼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출산하게 된다.
“절벽 아래쪽에는 동굴도 하나 있어. 바람이 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쪽까지 이어지는 길이 하나 있는 것 같거든?”
“가보자.”
성검이 연둣빛을 뿜어낸다.
바람의 룬은 효용성이 뛰어난 룬이었다.
공격력이면 공격력, 방어력이면 방어력, 유틸리티도 상상을 초월했다.
이 룬을 얻은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드레이크….’
애쉬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로브로렌 마을에서 애쉬를 범하기 위해서인지.
정확한 목적은 잘 모르겠다.
드레이크는 우리에게 좋은 정보를 넘기고 뒈져버렸다.
좋은 장비도 하나 주고 갔다.
애쉬가 죽였지만, 아직까지는 들키지 않았다.
‘팔찌, 소망이라는 스킬을 쓸 수 있지.’
애쉬와의 내기에서 그 힘이 발동됐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을 쥐어주었다.
‘소망’이란 그런 의미였다.
애쉬를 확실하게 낚기 위해서, ‘소망’ 스킬이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나를 더 강하게 후려치고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애쉬가 속았다.
내기를 승리할 수 있었다.
소원은 아직 빌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쓸 때가 오리라 믿는다.
애쉬의 애널버진은 소중히 간직한 다음 여유 있을 때 야무지게 먹을 것이다….
애쉬는 길을 찾아서 헤맸다.
절벽 옆길이 아니라 동굴 쪽으로 이어진 통로를 탐색했다.
날카로운 감각은 애쉬에게 확실한 정보만을 안겨주었다.
“여기야.”
나무 아래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아주 작은 통로.
동굴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통로 너머에, 고블린들의 부락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토벌이 불가능할 정도인데?”
“고블린 샤먼이 태어나고 주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결계를 펼쳐. 때문에 더 어려워질 거야.”
고블린 부락은 그렇게 될 미래였다.
결계를 바탕으로 더 견고하게 성장할 예정이었다.
용사 애쉬에게 걸리기 전까지는 그런 행복한 꿈을 꾸어도 되었다.
안타깝게도, 박살나고 말았다.
애쉬는 고블린들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나를 향한 테스트니까.
놈들은 나를 위한 실험용 몬스터였다.
‘후우.’
긴장된다.
고블린들을 상대로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고작 저학년 초등생 수준의 덩치에 비루먹은 몸뚱어리를 하고 있다지만.
싸움과 혈전은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각오를 한다고 해도, 마물과 인간의 관념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애쉬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죽이는 것을 망설이면 안 돼. 지금은 머뭇거려도 되지만,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중요할 때를 위해 연습하는 거니까.”
“…….”
“물론 힘들 거야. 살생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 상대가 마물이라고 해도, 처음이라면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하지.”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물에 대한 적대심을 갖게 된다.
마물에 의해 이웃이 죽고 가족이 죽는다.
놈들을 잡아 죽이는데 있어, 망설임이 있을 수 없다.
그에 비해 나는 아니다.
이 세계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나만의 동기부여가 있어야 했다.
나는 애쉬를 바라봤다.
태양뱀 독 때문에 몸이 근질거렸다.
자지를 가두고 있는 정조대 케이스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진짜, 고블린 죽이면…. 섹스해줄 거지?”
“응. 몇 번이고 하게 해줄게.”
“…내가 내기에서 속인 것도, 넘어가주는 거고?”
애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봐주지.”
“…….”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하네? 미쳤어?”
섹스 약속을 받아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과거의 죄를 완전히 씻어내진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애쉬가 말했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따라와.”
고블린들을 위한 통로다.
사람이 들어가기 위해선 낮은 포복으로 기어야 한다.
엎드리고 기어갈 준비를 하는 애쉬의 뒤태를 감상하는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입구를 넓히면 안 되나?”
“응?”
“애쉬, 너 정도 되면 그냥….”
성검으로 다 베어내면, 강제로 입구가 개방될 것이다.
다른 모험가나 용병들처럼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이왕 하는 김에, 너한테 모험가와 용병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주려고 하는 건데.”
“…굳이 그런 체험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저 좁은 구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학년 초등생 수준의 몸집을 가진 고블린들이나 드나들 수 있을 듯한데.
“그래야 혼자 떨어졌을 때, 얼 안 타고 버틸 수 있잖아. 내 품에서 아기처럼 있어봤자, 실전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애쉬는 단호했다.
내게 주어지던 편의를 전부 배제하고 진행할 생각이었다.
비앙카의 납치를 이유로 들며 혹독한 일들을 시켰다.
“따라와.”
애쉬가 굴 안으로 기었다.
포복 자세가 제법 익숙해보였다.
애쉬에게도 밑바닥 시절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 세상 여자니까.
어쩌면 당연했다.
“…애쉬? 왜 안 가?”
열심히 기어가던 애쉬가 멈췄다.
상체만 기어들어간 상태로 꿈틀거렸다.
“애쉬?”
─ 성검. 내 허리춤에 성검 좀 빼줘.
구멍에 끼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고블린들이 겨우 지나다닐 법한 구멍으로 몸을 우겨넣은 결과, 애쉬의 엉덩이가 통로에 끼고 말았다.
애쉬는 자신의 성검이 걸린 줄 알고 성검을 빼달라고 말했다.
능숙한 척 했지만, 애쉬도 그다지 모험가나 용병들의 일을 겪어보지 못한 듯했다.
용사로서 대접받으면서 지냈는데, 이런 개고생을 해본 적이 있을까.
없는 게 당연했다.
“…….”
나는 애쉬의 부탁을 들었다.
허리춤 혁대를 풀고 성검을 빼냈다.
그럼에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쩍 벌어진 골반과 커다란 엉덩이가 문제였다.
꿀꺽.
사람이란 게 말이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상상을 하면 안 되는 건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내 자지는 태양뱀 독에 의해 부풀었다.
불알에는 싸지 못해 숙성된 정자가 잔뜩 쌓여 있다.
어디에든 쌀 수만 있다면, 나무에라도 박고 흔들 정도였다.
그런 상태에서 무방비한 애쉬의 하체를 보게 됐다.
흥미가 동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애쉬.”
나는 구멍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애쉬의 허벅지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애쉬가 화들짝 놀라며 움찔거렸다.
─ 강아지, 만지지 마!
“몸이 안 빼져?”
─ 구멍을 넓혀야 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
“…싫어.”
애쉬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허락도 없이 만지니까, 그 감촉이 배는 더 부드러운 것 같다.
─ …강아지…. 끄흣…!
토실토실한 살덩이 사이, 애쉬의 회음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바지 위로 만질 뿐이지만, 그 느낌이 새삼 남달랐다.
자지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 …너, 진짜아…. 여기서 나가면 죽을 줄 알엇…!
“그건 그 때의 내가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애쉬에게 죽는 것은 현재의 내가 아니다.
미래의 나….
잘 부탁한다!
케륵, 케륵!
그 때였다.
어딘가 익숙한 짐승소리가 들려왔다.
내 뒤에서 심하게 불쾌한 냄새가 풍겼다.
“애쉬, 빨리 나와.”
─ 네가 멀리 떨어져야 해. 안 그러면 너도 다쳐.
힘을 폭발시켜 구멍을 넓힌다.
그 폭발에 내가 휩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블린들이 있어. 일곱이나 되는데?”
─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이야. 침착하게 상대하면 이길 수 있으니까, 당황하지 마.
나는 단검을 꽉 쥐고 고블린을 노려봤다.
괜한 짓거리를 하는 바람에, 혼자서 고블린을 상대하게 생겼다.
‘과거의 나, 이 시발놈이…!’
1분 전의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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