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실전(7).
* * *
애쉬가 몽롱한 얼굴로 입술을 뗐다.
투명한 실이 빛에 반짝이며, 쭈욱 늘어졌다.
“애쉬, 나 조금만 더….”
내 목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태양뱀 독에 얼마나 절었는지, 새삼 체감될 정도로 낮게 깔렸다.
애쉬의 눈빛이 야릇해졌다.
파르르 떨리는 눈매를 보니, 애쉬도 섹스가 동한 모양이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참고 있을 뿐.
인내심으로 승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멀어지는 애쉬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숨을 더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옆에 교단의 마법사가 있어도, 거리에 수많은 시선이 주목하고 있다 해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자위를 허락해준다면, 공개 자위라도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자지가 간지러웠다.
애쉬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싫어. 내 마음고생 시킨 만큼 네 몸을 고생 시킬 거니까. 아직 멀었어.”
애쉬가 허벅지를 비비적거린다.
분명, 보지가 가려운 것이리라.
자신의 성욕을 억누르면서까지 나를 괴롭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어제 내가 저지른 일이 이렇게 큰 잘못이었는가.
의문이다.
어정쩡하게 서있던 텔레포트 마법사가 말했다.
“저, 저는 교단 지부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텔레포트가 필요하시면, 저를 찾아와주세요.”
“당장은 필요 없으니까, 꺼져.”
“예.”
텔레포트 마법사는 긴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더 있어봤자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을, 지난 경험들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애쉬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스페르톤 거리에 우두커니, 서있게 됐다.
“뭐야? 엄마, 저 언니오빠 왜 저래? 뽀뽀가 더러워!”
“거리에서 키스라니…. 게다가 남자가 개목걸이를 차고 있어? 꽤 도전적인 커플이잖아?”
“쯧쯧쯧, 세상이 말세다. 아무리 마물들이 설치는 세상이라지만, 젊은 년놈들이 대낮 거리에서 저런 짓거리를 하다니….”
도시 시민들이 우리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본다.
뜬금없이 나타나서 하는 짓이
찐득한 키스였으니, 정상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저거, 성검 아니야?”
“검집이랑 폼멜 밖에 안 보이는데, 성검인 걸 어떻게 알아.”
“에이, 용사님이 저런 짓을 한다고? 말도 안 돼.”
용사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성검은 그만큼 특징 있는 무기였다.
애쉬는 시민들을 둘러본 후, 자리에서 뜨는 것을 선택했다.
미친 사람 보듯 흘기는 시민들 사이로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당장 화를 내도 안 이상한데, 대견하게도 참아냈다.
물론 나는 못 참겠다.
당장 사정하고 싶어서 시야가 부르르 떨렸다.
‘…다른 의미로 부탁을 하면….’
나는 애쉬의 팔에 매달리며 중얼거렸다.
“발정, 발정이 왔어.”
“지금? 갑자기?”
발정에도 주기가 있다.
불확실하지만, 사이클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흘 동안 교단 코렌 지부에서 머물렀으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저녁에 씻고 나서 한 번.’
그 부근에서 주로 발정 증상이 나타난다.
주기는 열두 시간 간격으로, 불알이 부풀고 터지려 한다.
나는 일부러 발정이 시작되었다고 블러핑을 쳤다.
자지를 만져달라고 부탁했다.
애쉬가 미심쩍은 듯 나를 흘겼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에서 의심이 잔뜩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눈매가 곱게 휘어졌다.
구라쳤는데, 단박에 들키고 말았다.
애쉬는 방긋 웃으면서 내 목줄을 잡아당겼다.
“거짓말.”
내 간절한 부탁을 거부하고, 애쉬가 앞장서서 걸었다.
비앙카가 예고한 시간까지 머무를 숙소가 필요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애쉬의 뒤를 따랐다.
시원하게 싸고 싶은데 싸지를 못하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내 죄를 잊어버리고 애쉬를 탓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정도였다.
딸랑, 딸랑.
애쉬는 주변 거리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귀족에게 가지 않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왜 굳이 도시 여관으로 가냐고.
애쉬가 말했다.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기대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여관에 자리 잡았다.
지금 하고자 하는 짓이, 고급스러운 귀족 저택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일부러 숙소를 다운그레이드 한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승부에 냉정했을 뿐이고, 승리를 위해 몸부림쳤을 뿐인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도 토를 달지는 않았다.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쇼!”
여관주인은 턱수염을 수북하게 기른 아저씨였다.
두꺼운 뱃살은 인품의 상징이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다닌다는 증거.
돈주머니가 제법 두둑하다는 의미였다.
여관 시설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귀족들이 머무는 저택에 비해 안 좋을 뿐, 아스페르톤 도시 내에서는 수준급에 가까웠다.
애쉬가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여관에서 하는 게 아니로군.’
나에 대한 체벌은 여관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바깥에, 애쉬는 나를 데리고 거리로 나갈 생각이었다.
‘당장 예상할 수 있는 건…. 야외노출….’
이미 경험이 있다.
프레소 백작가에서 사용인들 앞에서, 하반신을 훤히 드러낸 채 산책을 했다.
그것의 연장선이라 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벌이었다.
‘그 이상이 있나?’
내 머리로는 다른 체벌을 떠올릴 수가 없다.
상상력이 부족했다.
애쉬가 여관주인에게 말했다.
“방 하나.”
“방 하나 말씀이십니까?”
여관주인은 애쉬의 하대에도 개의치 않아 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듯 익숙하게 응대했다.
“제일 큰 방으로 줘.”
“알겠습니다.”
여관주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여관에서 가장 큰 방이라 함은 가장 비싼 것을 의미한다.
“얼마나 머무를 생각이신지요?”
“…사흘.”
비앙카가 꾸미는 짓을 막고, 곧바로 다른 도시로 넘어갈 생각이다.
아마 다음 행선지는 유테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룬’이 있는 곳을 찾아갈 것 같았다.
애쉬의 성검은 아직까지 3레벨, 룬은 고작 두 개 밖에 흡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최강의 용사라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여기, 방 열쇠입니다. 식사와 목욕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도시에도 목욕탕이 있지만, 저희 여관도 그리 시설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식사는 알아서 해결할 생각인데, 목욕은….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하네.”
“알겠습니다.”
여관 가격이 올라갔다.
언제든 탕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해서, 제법 비싸졌다.
애쉬는 아무렇지 않게 대금을 치렀다.
흥정 하나 없이 돈을 지불했다.
여관주인의 표정이 곱게 펴졌다.
봉 잡았다는 듯 웃음꽃이 피었다.
애쉬가 열쇠를받아들었다.
독수리가 소동물을 낚아채듯 날쌨다.
우리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에 짐 내려두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러 가자.”
“이 상태로?”
“응.”
애쉬는 해맑게 다음 계획을 말했다.
내가 되물으니, 당연하지 않냐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자지가 불끈거리는 상태로, 마물 사냥을 나서자고 한다.
“컨디션이 좋아도 될까 말까 인데, 이 꼴로 어떻게 해.”
“나한테 맞으면서 몸에 새겼잖아. 고블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
애쉬의 목검에 비하면, 모든 상대가 나약하게 느껴졌다.
하물며 고블린의 몽둥이?
수십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실력이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놈들을 얕보게 된다.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애쉬는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잘할 수 있을 거라며 다독여주었다.
“적응하기 힘들어도 해야 해.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면…. 그대로 끝. 더 크게 다칠 수도 있단 말이야.”
“아는데. 말처럼 쉽냐 이거지.”
“무사히 이겨내면 싸게 해줄게.”
갑자기 고블린 새끼들을 처죽이고 싶어졌다.
모조리 도륙을 내버릴 수도 있다….
그런 자신감이 샘솟았다.
“크흫, 병신.”
애쉬가 낄낄거리며 웃는다.
내 표정이 우스운 모양이다.
“가자.”
나는 내 단검을 챙겨서 애쉬를 따랐다.
애쉬의 발걸음은 산뜻하기 그지 없었다.
사뿐사뿐,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내 눈을 흔들었다.
내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애쉬가 실소를 흘리며 엉덩이를 내밀었다.
“만지는 건 허락해줄게. 닳는 것도 아니고. 만지기만 해서는 싸지도 못하는데, 뭐.”
“하아아….”
“자, 마음껏 만져.”
토실토실한 애쉬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어찌나 커다란지, 손에 담기가 힘들었다.
당장 코를 박고 싶다.
발기한 자지를 비비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힐링 타임을 가져야겠어.”
애쉬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내 가슴팍에 고개를 파묻고, 내 엉덩이를 조물거렸다.
서로 안고, 서로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자지에 피가 쏠렸다.
나는 애쉬에게 물었다.
“고블린 잡으면, 하게 해줄 거야?”
“응.”
애쉬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대신 확실하게 네 손으로, 고블린 숨통을 끊어야 해. 할 수 있어?”
“…지금 기세로는, 마왕도 내가 이겨.”
“크흐흫, 지랄을 한다. 마왕이 얼마나 센지 모르지?”
애쉬가 되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다리를 치켜 올렸다.
무릎을 세워 내 불알을 꾸욱 들어 눌렀다.
마왕이 얼마나 강한지 안다.
원작으로 마주했을 뿐이지만, 활자로도 그의 강함을 충분히 느꼈다.
주인공 용사 루크가 무너졌다.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주인공이 압도적인 힘 앞에서 절망했다.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 자신에 대한 패배감으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
그 때, 애쉬가 각성한다.
주인공 용사 루크에 의해 구원받은….
버려진 히로인이 루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각오를 다진 루크는 누구보다 강해진다.
각성을 거친 후, 루크의 성검은 마왕의 강기를 베어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히로인들과 알콩달콩, 에필로그까지.
물론 내가 읽은 내용과 애쉬가 겪은 현실은 지극히 다르다.
애쉬의 현실에는 예언자랍시고 나대던 강아진이 포함되어 있다.
버려진 히로인 애쉬는 그 강아진 때문에 회귀를 결심했다.
새롭게 쓰여지는 이야기는 원작이나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눈앞에 있는 애쉬가 원하는 엔딩을 선택할 테니까.
세상은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뭘 봐?”
애쉬는 눈을 치켜 뜨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보고 눈을 깔으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나는 애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엉덩이나 주무를 뿐이었다.
“이제 됐어. 슬슬 출발하자.”
우리는 아스페르톤 근처 고블린 부락으로 향했다.
모험가 길드에 들러, 의뢰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케륵, 케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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