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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88화 (88/109)

〈 88화 〉 실전(6).

* * *

“…무사해서 다행이야…!”

애쉬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를 꽉 끌어안았다.

절벽에서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구명줄을 붙잡듯 내 몸에 매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좆 됐다!’

생각해보면, 내기는 명분에 불과하다.

애쉬의 입장에서, 애쉬는 언제든 내 뒤를 따먹을 수 있었다.

비앙카에게 당한 경험이 있으니까, 나름 말을 덧붙이면서 합리화해 망설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배려 아닌 배려를 의미 없게 만들었다.

내가 내기에서 승리했지만, 애쉬가 결과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애쉬는 내 뺨에 볼을 비비며 울먹거렸다.

찰나의 순간에 무슨 망상을 한 것인지, 닭똥 같은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내 장난이었음을 알아차렸을 텐데, 일이 커지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내가 완전 쓰레기 새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정산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슬쩍 말을 꺼냈다.

“…내가 이긴 거지? 제자리에서 움직였으니까….”

“…….”

내 말을 들은 애쉬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살기는 없지만 원망이 가득했다.

“그깟 내기에서 이기려고 이런 못된 짓을 꾸민 거야? 내가,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데, 나 때문에 잘못된 줄 알고 무서워서,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고! 그런데…. 웃음이 나와?”

“…….”

입을 합, 다물었다.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해도 감점요소가 될 것 같아, 숨을 죽였다.

애쉬가 팔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물기를 닦으면서 욕지거릴 내뱉었다.

“이 개새끼, 씨발새끼. 너, 넌 진짜 쓰레기새끼야.”

“…….”

할 말이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말들 중, 썩 괜찮은 문장을 고르지 못했다.

애쉬는 내 몸을 받치고 있던 팔을 빼냈다.

나를 조심스레 눕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큼성큼 뛰쳐나갔다.

수련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만 봤다.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내 스스로도 쓰레기 같은 방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련장 바닥에 누워서, 이후에 어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기에서는 이겼지만 기분 좋은 승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애쉬를 달래줄 방법을 구상해야 했다.

‘…도게자라도 박아야 하나.’

애쉬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지만, 내 실책이었다.

회귀 전부터 나의 안전에 대해 후회를 많이 한 듯했다.

각인에 따로 생명력과 마력 공유를 해놓을 정도니까,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비앙카에게 납치당했을 때도, 속으로 끙끙 앓으며 온갖 불안한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범해진다거나 하는 것들이 부가적이었다.

내가 살아있으리란 만일의 가능성에, 애쉬는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듯 매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했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선을 넘어버렸다.

‘애초에 내기란 것 자체가, 애쉬가 봐줘야만 성립하는 건데 말이지.’

애쉬와 작정하고 다투게 되면, 내 승률은 제로에 가깝다.

사실 가까운 수준도 아니다.

그냥 0이다.

애쉬도 자기가 이기기 위한 내기를 짠 것이지만, 나름대로 선을 지켰다.

작정하고 나를 날려버리거나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검을 맞대고 흘리는 수준에서 멈췄다.

안 그랬다면, 내기는 진즉에 애쉬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곳에 있어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 정리를 마쳤다.

1분이라도 빨리 애쉬를 찾아가자.

그게 옳은 판단이었다.

목각인형에 대충 걸어둔 셔츠를 챙겨서 입고, 수련장 밖으로 나왔다.

교단 코렌 지부의 정원이 나를 반겼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쬐고, 소박하게 갖추어진 연못과 분수가 공기를 시원하게 적셔준다.

애쉬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정원 벤치에 앉아서, 수련장 입구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흥.”

각자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여자니까,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을 끝마쳤을 것이다.

그런 애쉬가 고개를 돌렸다.

토라진 얼굴로, 내 눈을 피했다.

일종의 시위였다.

나는 애쉬에게로 다가갔다.

내 죄를 알고 있어, 일단은 빌어볼 생각이었다.

“애쉬.”

“…그래도 뚫린 입이라고, 할 말이 있나보네?”

애쉬는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자기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까딱거렸다.

도도한 얼굴 표정에 묘한 기대감이 일렁거렸다.

두 손 두 발, 싹싹 빌면 봐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면 내가 따먹힌다는 미래는 바뀌지 않아.’

애쉬 아래에 깔려, 슬라임 딜도에 박히는 것.

거의 100% 확정된 결과였다.

‘결국 데드엔딩을 맞이할 것이라면, 챙길 수 있는 걸 챙기는 게 맞지 않을까?’

내 뒷구멍과 애쉬의 애널버진을 교환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내던질 수 있는 한 수, 내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익.

나는 내기에서 승리했다.

패배한 것은 애쉬다.

내게는 소원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안 움직이겠다고 했는데 자리에서 벗어났으니까, 내가 이긴 거 맞지?”

“…뭐…?”

애쉬가 실소를 흘렸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눈빛에 살기가 깃들었다.

네가 할 말은 그 말이 아닐 텐데.

애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텔레파시인가? 복화술도 쓸 줄 알았나?’

애쉬는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되물었다.

“진심이야?”

“…내가 이겼잖아.”

“크흐흫.”

애쉬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제껏 봐온 웃음 중에 가장 살벌한 웃음이었다.

“진짜 강아진 이거 미친 새끼네.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과거 경험 일부를 넘겨서 그런가, 날것 그대로야. 어이가 없어.”

애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 지었다.

나는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애쉬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난 발걸음으로, 내 앞까지 쏜살같이 다가왔다.

“그래, 네가 이겼다. 내기에서 이겼다고. 이 시발개새끼야. 그렇게 이겨서 좋아? 응? 사람 마음고생 시키고, 더럽게 이겨서 좋으냐고.”

“…미안.”

애쉬에게서 확답을 들었다.

이제 두 손 두 발, 먼지가 되도록 빌 차례였다.

“그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기고 나발이고….”

“…….”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네 똥구멍을 따먹고 싶었다고, 지금 이 상황에 담을 말이 아니었다.

“하아.”

애쉬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싸워서 뭐하는 짓이냐, 애새끼랑 다투던 누나 같은 한숨이었다.

“너도 나름,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 이 지랄을 한 거겠지?”

나는 간절함을 담아 고개를 주억였다.

“아오, 콱 씨!”

“히잌…!”

애쉬가 팔을 확 들어올렸다.

당장이라도 내려칠 기세로, 내게 주먹을 겨누었다.

나는 기겁하며 가드를 올렸다.

진짜 치지는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

눈을 찔끔 뜨고, 애쉬를 바라봤다.

애쉬의 팔은 이미 내려간 상태였다.

애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화는 이미 진즉에 풀렸고, 걱정으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진짜, 다친 곳은 없는 거지?”

나는 가드를 풀었다.

애쉬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다툼이다.

그것을 애쉬 스스로도 알고 있다.

깨달았다.

과거의 인연을 되찾기 위해 회귀한 애쉬가 나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이런 짓을 저질렀다.

어쩔 수 없는 용서가 내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네가 잘 조절해서 상대해줬을 텐데, 설마 다친 곳이 있을까.”

“그런데도 속을 수밖에 없어, 이 시발놈아. 네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알긴 알아?”

알고 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고멘….”

“그 좆같은 일본어, 그만 좀 하라고.”

“…….”

애쉬가 으르렁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이게 일본어인 건 어떻게 알아?”

“…네가 툭하면 쓰니까, 물어봤지. 동쪽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이란 나라의 언어라며.”

“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좆같아. 짜증난다고.”

애쉬는 내 턱을 붙잡았다.

뺨이 손가락에 밀려올라갔다.

“그래도 고멘, 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미안하긴 한가봐?”

“…….”

“스미마셍이라고 했으면, 패죽여 버렸을 텐데.”

“뎨, 뎨송함미다아….”

나는 애쉬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애쉬는 내 얼굴을 놓아주며 물었다.

“그래서, 소원이 뭐야.”

“…….”

애쉬의 애널버진.

애쉬의 똥구멍 처녀막을 가지고 싶다.

앞 보지도 뒤 항문도,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소유욕의 일종이 발현된 것이다.

그러나 당장 부탁할 생황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밤에 애쉬 뒷보지를 따먹고 싶어, 라고 말했다간….

오히려 내가 강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생각을 좀 해보고.”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찌 해볼 생각 자체를 포기한 듯 애쉬가 등을 돌렸다.

은근히 긴장한 얼굴이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어떤 소원을 빌지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후우.”

끝났다.

나흘 동안 이어진 수련이 드디어 끝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뜬금없이 레벨이 올랐다.

애쉬와의 수련을 무사히 마친 보상일까.

내 레벨은 7이 되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확실히 상대가 용사여서 그런가, 성장이 빨라.’

주인공 용사 루크의 동료들이 다른 사람들들보다 빠르게 성장한 이유.

왜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교단 정원에서 나가, 애쉬를 뒤쫓았다.

애쉬는 은근슬쩍 뒤를 흘기며, 발걸음 속도를 늦추었다.

덕분에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분명히 뒈졌다고 했지, 내가?”

애쉬는 텔레포트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태양뱀 독을 잔뜩 가져왔다.

거의 1대1의 비율로 태양뱀 독 원액을 희석한 후, 욕조를 가득 채웠다.

“다, 다스케테…!”

“닥쳐, 병신아.”

애쉬가 나를 억지로 담갔다.

태양뱀 독이 전신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반짝였다.

당장 어디에든 자지를 쑤셔 박고 싶다.

축축하고 따뜻한 고깃살로 감싸고, 힘차게 훑고 싶다.

애쉬는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봐줄 테니까,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반성해.”

“싫어!”

“알아서 반성하게 될 거야. 반항하든 말든, 네 알아서 하고.”

싸지 못했다.

단 한 발도, 사정할 수 없었다.

애쉬가 성욕을 참았다.

내 자지를 방치하기 위해서, 관계를 다음으로 미루었다.

임신 섹스를 하지 않은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애쉬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발정을 해소하기 위한 사정만 했다.

불알이 터지도록 둘 수는 없으니까.

속에서 끓은 욕구는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이제 가시는 겁니까?”

“그래.”

코렌 지부장과 마지막 면담 시간을 가졌다.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코렌 지부장은 요상한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허리가 파르르 떨리고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오줌이라도 지린 것 같은 꼴인데, 곱게 봐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애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방치해두고 있었다.

“텔레포트.”

“예.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애쉬가 텔레포트 마법사를 불렀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애쉬를 향해 공손하게 물었다.

“아스페르톤.”

“아스페르톤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교단으로 가면, 너 죽인다.”

“예, 옙…. 알겠습니다.”

시야가 바뀌었다.

아스페르톤, 대륙 서쪽의 대도시….

그 거리 한복판에 이동했다.

‘익숙한 도시인데….’

머리가 안 굴러간다.

도통 떠올릴 수가 없다.

“애쉬, 애쉬….”

“그래.”

애쉬에게 매달려서 자지를 비비는 것 말고는….

이성적인 사고가 전혀 되질 않았다.

밤새 방치된 탓이었다.

애쉬는 낄낄거리며 내 바지 앞섶을 주물럭거렸다.

대도시 거리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나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애쉬에게 몸을 문질렀다.

“발정한 개새끼답네. 나를 웃겨줬으니까, 상을 줄게.”

애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키스를 해주었다.

“하웁, 훔…!”

츕­. 츄릇­!

간지럼이 조금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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