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악마들의 밤(10).
* * *
“엉덩이 내밀고 엎드리렴.”
비앙카는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분명 강압적인 명령이었다.
애쉬의 톤과는 사뭇 다른 강제성을 띄고 있었다.
따르지 않으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얌전히 고양이처럼 엎드렸다.
서큐버스 에르윈에게 이미 당해봤던 치욕이기에, 어색하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자세가 생각보다 요염하네.”
“…….”
비앙카가 내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내 하반신을 찐득하게 훑는 시선에 오금이 저렸다.
허벅지와 엉덩이를 번갈아 어루만지던 비앙카의 손길이 내 뒷구멍으로 넘어왔다.
얄미운 손가락은 뱀처럼 꾸물거리며 깊은 곳까지 파고 들었다.
허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음음, 여자친구가 여기는 아예 건드지도 않았네. 수컷들은 이 부분에 민감하긴 하지? 남성성을 완전히 짓밟히는 부위니까.”
“읏….”
비앙카의 손가락이 뒷구멍을 꾸욱꾸욱 누른다.
언제라도 밀어 넣을 수 있다는 듯 여유를 가득 품고, 간을 보고 있다.
“일단 각인부터 지워야겠지.”
비앙카는 제 손에 찐득한 액체를 발랐다.
윤활제가 치덕치덕하게 묻은 손가락에 보랏빛이 반사되어 번들거렸다.
비앙카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기대감에 부풀어 씰룩거리는 입 꼬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꼴이다.
토닥토닥.
“거부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아. 힘 빼렴.”
비앙카는 내 엉덩이를 두드리며, 뒷구멍에 스리슬쩍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자연스럽게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 때문에 등골이 오싹했다.
“끕…!”
낯선 감각이 아랫도리를 덮쳤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앞뒤를 천천히 왕복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찌극. 찌극.
“여자친구 애쉬의 손가락도 아니고, 증오해야 할 흑마술사의 손가락이야. 앙증맞게 닫혀 있는 똥구멍을 길들이고 있는 건, 애쉬가 아닌 나란다. 꾹 참아야지?”
내 뒤에서 야릇한 마찰 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 자지에는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나를 비웃는 비앙카.
뒷구멍을 찌르는 손가락이 노골적으로 들썩였다.
속, 장벽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꾸욱꾸욱 눌러댔다.
“흡…!”
“여기에, 각인이 새겨져있네.”
비앙카가 웃는다.
보물찾기에 성공한 아이처럼 싱글벙글.
각인이 새겨진 포인트를 압박했다.
“흐읏, 흑…!”
내 목에서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닫아도, 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지가 요도를 통해 무언가를 꿀럭꿀럭 토해낸다.
고개를 숙여 귀두를 살펴보니, 그 끝에 투명한 액체가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앙카는 내 각인을 살펴보며 조잘거렸다.
“발기 통제, 회복력 강화, 감각 공유…. 더 재밌는 거, 넣을 수 있는 게 많은데. 우리 용사님은 겨우 이런 것들 새겨놓고 좋아했던 거야? 너무 소박하잖니.”
“…애쉬는 너 같은 년이랑 달라.”
나도 모르게 비앙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두 손, 두 발.
모두 바닥에 붙이고 엉덩이를 내어준 상태지만….
뱉지 않고서는 분을 식힐 수가 없었다.
비앙카가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뭘 했다고 그러니. 각인 내용 조금 바꾼 것 말고는….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그렇게 성내는 건 조금 너무한 게 아닐까?”
“…….”
“자아, 일단 발기 통제부터 해제해야겠지. 이런 내용으로 뭔가 해보려고 했다는 게 귀엽네. 용사님이 생긴 거랑 다르게 수줍음이 많은가?”
발기 통제가 해제됐다.
약간 딱딱해지려는 자지 때문에, 정조대로 인한 억제력이 전보다 선명해졌다.
“발기는 자유롭게. 그래야 길들이는 맛이 있거든. 용사님을 위한 선물이니까, 완벽하게 조교 해놓고 보내야겠지? 내가 아니면 발기조차 안 되도록….”
“흐윽….”
찔걱. 찔걱.
뒷구멍을 통해 들낙거리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꿈틀거리는 율동이 안쪽에 새겨지고 있어, 하반신이 바짝 긴장했다.
비앙카는 나를 가지고 놀 듯이, 속살을 긁어댔다.
“강아지야. 그렇게 기분이 좋아? 즙을 질질 싸지를 정도로?”
“닥쳐라, 시발년아…!”
“내가 조용히 해도, 네 똥구멍은 계속 벌렁거리는데. 더 깊게 쑤셔달라고….”
찔걱. 찔걱.
“훕…. 하악…!”
비앙카의 중지가 갈고리처럼 장벽에 걸려, 속을 진창 휘저었다.
전립샘인지 뭔지, 각인이 새겨진 포인트가 문질러질 때에는 오줌이라도 싸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문에, 정조대가 질척해질 만큼 한가득 지려버렸다.
“이거 보렴. 끈적끈적한 네 똥구멍 즙이 내 손가락에….”
비앙카가 손가락을 빼냈다.
왕복하며 찐득해진 것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제 손가락을 적시고 있던 액을 깨끗하게 빨아먹었다.
“덜 길들여진 맛이네. 그래도 괜찮아. 금방 달달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좆 까는 소리.”
“나중에 용사님이…. 악마 토벌도 내팽개치고 온종일 네 엉덩이만 따먹으려고 하면…. 그거, 내가 만들어준 거라고 말 좀 전해줘. 알았니?”
“…큽….”
비앙카의 손가락이 다시 파고 들어왔다.
쯔북, 쯔북.
조금 거부감이 있었으나, 내 뒷구멍은 낯선 여인의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아프지 않고 달갑지 않은 감각이 아랫도리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각인은….”
찔걱. 찔걱.
비앙카는 각인 내용을 고민하면서도,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왕복하며 스치는 손가락에, 자지가 껄떡거리며 반응했다.
꿀럭꿀럭.
마르지도 않고 흘러내렸다.
“음음, 이게 가장 좋겠다. 네 스스로 복종할 수 있도록…. 내가 명분을 만들어서 줄게. 넌 그냥 주인님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으면 된단다.”
마기가 뒤를 통해 스며들었다.
내 몸 속에 흡수된 이질적인 기운은 심장 부근에 자리를 잡고 똬리를 틀었다.
“네 몸에 이식된 슬라임이랑 비슷한 기능을 하는 술식이야. 각인과 연동되어, 네가 쾌락에 굴복하고 진심으로 복종할 때마다 몸에 마기가 쌓여.”
“뭐…?”
“순응하면 편해진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해도 오해는 하지 말아줘. 마기라고는 해서 다 나쁜 건 아니니까. 순하디순한 기운이니까.”
“…….”
“신체 능력을 강화해주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줄 뿐! 네 몸에 유익하기만 한, 나쁘지 않은 착한 마기란다.”
나는 비앙카의 말을 외면하고, 레벨 업 시스템을 열었다.
말로 들어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시스템을 통해 확인하면 금방이니까.
[심장에 ‘맹약(SSS)’이 새겨졌습니다.]
[일방적인 맹약입니다. 효력이 반감됩니다.]
[‘각인(SS)’이 ‘맹약(SSS)’을 뒷받침합니다.]
[맹약이 성립됩니다.]
‘뭔….’
[맹약(SSS)]
마기(??)로 이어진 결속.
위치 『심장』
비앙카가 내 심장에 건 ‘맹약’은 조건에 따라 발동된다.
비앙카의 조건은 단 하나, 자신에게 복종할 것.
상호계약인 맹약이 성립되기 위해선 내 쪽에서도 조건을 걸 필요가 있다.
그것이 마기를 통한 내 신체 능력의 강화.
비앙카 쪽에서 일방적으로 조건을 걸었지만, 각인 탓에 멀쩡하게 이루어졌다.
전립샘에 새겨진 각인이 사라지면서 맹약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내게 불합리한 각인을 없애는 조건으로 다소 불합리한 맹약을 새기는….
때문에, 쾌락에 굴복하여 ‘진심’으로 비앙카를 따를 때마다 내 신체 능력이 성장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결과물이었다.
비앙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찔걱, 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배뇨감이 훅 밀려왔다.
덕분에 내 시선이 지하실로 돌아왔다.
“네 신체 내부를 관조해봤니? 어딘가 달라진 느낌이 들어?”
심장 부근에 위치한 껄끄러운 마기 덩어리.
마나와 달리 불쾌한 기분만 든다.
“심장에 자리 잡은 마기가 너를 강하게 해줄 거야. 내 말을 잘 따랐을 때의 이야기지만, 보통 수련으론 얻을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지. 그러니까 웬만하면 반항하지 않는 편이 좋단다.”
“…….”
비앙카는 반항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비아냥거렸다.
반항할 마음도 의지도 없다.
심력을 분산시켰다간 나만 손해다.
‘버틴다.’
애쉬가 구하러 와줄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틴다.
그것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찐하게 놀아볼까, 강아지야?”
“흡…!”
비앙카가 손가락을 빼냈다.
뒷구멍을 긁고 지나가는 손놀림에, 요도에선 질척한 액이 뿜어졌다.
“강아지니까. 대답은 ‘멍’으로 하는 거야. 알겠니?”
비앙카는 벽에 세워둔 해골 지팡이를 쥐고서 내게 겨누었다.
텅 빈 동공 보랏빛 안광이 번쩍거렸다.
마기가 얽히고 섥혀, 내 목을 옥죄었다.
철컥.
검보라색 개목걸이가 새로이 채워졌다.
“대답.”
“끄윽, 아악…!”
숨이 안 쉬어진다.
비앙카의 명령을 무시하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멍! 멍멍, 멍…!”
공기가 폐부 깊이 스며든다.
호흡의 소중함을 짧은 시간에 깨달았다.
비앙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나를 내려다봤다.
안대 너머의 눈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 *
애쉬는 초조한 감각을 감추지 못했다.
감정을 웬만해서는 숨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애쉬를 데리고 움직였다.
유테론 남작 저택에서 느껴졌던 파동, 그 방향으로 텔레포트를 발동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불가능에 가까웠다.
텔레포트 마법사가 알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비앙카가 움직인 방향.
유테론을 기준으로 동쪽.
다음은 모른다.
어디까지 간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애쉬가 머리를 굴렸다.
강아진을 납치할 만한 사람이 있었나?
과거 기억을 더듬어, 꺼림직한 인물들을 뒤적였다.
아무리 궁리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강아진은 이 세계에서 딱히 일을 벌이고 다니지 않았다.
자신이 저지르고 다녔으면 다녔지.
‘…나 때문이다.’
애쉬의 사고는 금방 정답에 도달했다.
용사들은 대부분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악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성검에게 선택받은 존재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쉽게 데미지를 입는 부분이 있었다.
용사들이라고 해서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니었다.
‘…아, 아….’
동료나 연인이 납치당했다.
실종된 사람과 인연이 깊을수록 큰 타격을 입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치명상에도 꿋꿋하게 일어나던 용사들이, 주변인들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망가지거나 폭주하거나.
동료나 연인이 죽었을 때, 용사들은 양극단을 달리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애쉬에게는 동료라고 할 것이 없었다.
꽤 많은 파티를 꾸렸지만, 대부분 얼마 못가서 나가 떨어졌다.
파티가 해산하지 않도록 길게 매달려준 것은 강아진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회귀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료, 라고 불러도 될 남자가 처음으로 납치되었다.
애쉬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 때문에, 당장에라도 흑마술사들을 뒤집고 싶었다.
강아진을 데리고 간 놈만 찾아내면….
‘죽여 달라고 빌게 해주마.’
텔레포트 마법사를 혹사했다.
텔레포트를 연사하며 동쪽으로 이동, 그러면서 각인으로 위치를 찾았다.
아무리 집중해봐도 감각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진아….’
애쉬는 발을 동동 구르며 텔레포트에 몸을 실었다.
배경이 순식간에 바뀌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 때, 애쉬가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스치듯 지나가던 기억들 중 하나, ‘헬 체인’의 본거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동쪽 끝에, 섬 하나 있어. 그쪽으로 가보자.”
“동쪽 끝, 말입니까?”
텔레포트 마법사는 피를 토하며, 애쉬를 바라봤다.
다음에 하면 안 되겠냐는 눈빛을 보냈다.
애쉬는 단호했다.
텔레포트 마법사가 지금 죽든 말든, 관심없었다.
“이, 이동하겠습니다.”
텔레포트가 발동됐다.
동쪽 끝, 버려진 섬.
마계침식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흑마술사 새끼들의 본진.’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이곳을 들쑤시면, 강아진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애쉬는 무너진 마을 위에서 성검을 휘둘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