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악마들의 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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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카 바이올렛.
그레이프이 헬 체인을 장악하면서 전체적인 구조가 개편되고, 그 체재에 순응하지 않고 반하던 비앙카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이 세상을 파멸로 물들이려는 그레이프와 맞지 않아서 버려지다시피 해, 말단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비앙카의 목적이 복수였던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 헬 체인을 이용했다.
주인공 용사 루크를 돕는 것도, 헬 체인에서 빠져나온 뒤 복수를 겸하는 중에 대륙이 망하지 않도록 조절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비앙카가 나를 납치한 이유는 그 복수의 길목을 애쉬가 대놓고 가로막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리라.
남자가 물었다.
“조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조교가 맞는 건가? 네 성격을 생각해보면, 음탕하기 짝이 없는 그런….”
“맞아. 나는 이 남자를,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조교할 생각이야. 그 편이 확실한 방법이거든.”
비앙카는 내 목줄을 콱 틀어쥐었다.
이미 나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듯 당돌했다.
나는 비앙카를 노려봤다.
비앙카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마치 보고 있다는 듯 입 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애쉬가 찾으러 올 거다.’
쪽팔리지만, 내 뒤에는 각인이 새겨져있다.
위치추적 각인이 애쉬에게 내 위치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니까, 헬 체인의 아지트인 이곳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쾌락 조교가 통할 것 같은가? 고통보다 확실한 감각은 없다. 아무리 잘난 녀석들도, 고통 앞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두고 토해낸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그 놈도 고통으로 부수어두는 것이….”
“부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이 남자에게서 뽑아내는 마기보다 용사 애쉬에게서 먹을 수 있는 마기가 더 탐나니까. 이 남자는 마기 자체가 아닌…. 완성된 요리를 위한 재료인 거란다.”
남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검은 장막이 놈을 삼켰다.
“…비앙카, 너도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내 발목을 잡지 않으리라 믿는다.”
“나중에 용사님에게서 증류해낸 마기, 한 입 먹게 해줄게.”
“필요 없다.”
남자가 사라졌다.
공간이동 비슷한 힘을 사용해, 이곳에서 벗어난 듯했다.
내가 모르는 간부.
뒤틀린 이야기의 수혜자인가.
“늙은이들에겐 통보하려고 온 거니….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네. 내 아지트로 가자.”
마기가 내 몸을 감싼다.
이곳에 올 때처럼 위치좌표가 내게 새겨지고, 그곳으로 이동된다.
비앙카의 아지트.
은신처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나는 2층 건물 앞에 섰다.
외진 시골 마을.
듬성듬성 지어진 주택에선 은은하게 불빛이 피어난다.
가끔 엿보이는 인기척이 평범한 마을이라 알려주었다.
“흑마술사가…. 마을 안에 아지트를 만들어둔 건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 아니? 이렇게 평범한 마을 속에 숨는 게 생각보다 엄청 안전하거든. 내 마기만 가리고 있으면 용사한테 들키기가 더 힘들어.”
비앙카가 건물로, 나를 이끌고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로브로렌에서 지냈던 촌장의 집보다 약간 더 좋은 수준이었다.
혼자 지내기엔 넓고 쾌적한 느낌.
“마을 아가씨를 열심히 연기하고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내 방패가 되어주기도 하지. 흑마술사라는 의심 자체를 받을 수가 없단다.”
허술해보여도 헬 체인 간부의 아지트다.
작정하고 숨기 위한 공간이다.
웬만한 수단으론 탐색이 불가능했다.
“일단 용사 애쉬가 너한테 새긴 것들부터 천천히 지워나갈까? 이쪽으로 따라오렴. 강아지야.”
“…….”
비앙카의 집에는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
흑마술사니까, 이런 공간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항상 이곳을 쓰는 것은 아닐 테지만, 필요할 때 쓰기엔 딱 적당한 규모의 지하실이 펼쳐졌다.
“……?”
창고였다.
겉보기에 창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공간이었다.
“이쪽이야.”
비앙카는 창고 구석에 숨겨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오묘한 냄새가 훅 풍겨왔다.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방.
마법시약, 도료가 유리병에 담겨 진열되어 있다.
대충 지워둔 술식 전개 마법진은 당장에라도 작동될 듯 선명했다.
구석에 놓인 허름한 침대, 굴러다니는 깨진 유리병, 벽에 기대둔 해골 지팡이.
음침한 기운이 풍기는 솥단지에서 내용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오묘한 냄새는 저 액체에서 풍기는 것이었다.
“더 안쪽이란다.”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하나 더 있었다.
“…공간이동을 쓰지 않고, 이렇게 귀찮은 방식으로 걸어가는 이유가 뭐야.”
공간이동으로 가지 않고 직접 걸어가는 이유.
위치좌표를 흐리는 술식이 지상보다 더 선명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알고 있지만, 물어보았다.
긴장한 몸뚱어리를 어떻게든 풀어주고 싶었다.
비앙카는 예상한 답변을 내놓았다.
“술식이 진해서 말이야. 내가 설치해둔 거지만…. 이곳은 나도 감당이 안 돼. 그래서 텔레포트를 안 써. 답변이 됐니?”
“…….”
비앙카에겐 여유가 있었다.
용사 애쉬가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 태도가 나를 쫄리게 만들었다.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데.
애쉬는 나를 구하러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눈앞을 가렸다.
지하2층은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상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지하실.
회색빛 벽으로 사방을 채운….
내가 지하실로 들어가자, 문이 굳게 닫혔다.
저절로 닫히는 소리에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강아지야, 안 잡아먹으니까 떨지 마. 괜히 너 다치게 했다가 애쉬가 폭주하면 어떻게 하니.”
“…애초부터 납치를 안 하면 되지 않나? 애쉬는 이미 눈알 돌아갔을 텐데.”
애쉬는 귀찮은 일을 싫어한다.
의뢰고 나발이고 법규를 먼저 날리는 편이다.
그런 성격을 지닌 애쉬가 나 때문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무마시키기 위해 귀족의 심부름을 나섰다.
프레소를 정리하고 돌아온 애쉬.
유테론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감이 안 잡힌다.
비앙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눈깔 돌아가면 뭐, 걔가 할 수 있는 게 있어?”
“…….”
할 수 있는 게 없다.
텔레포트 마법사도 있을 텐데, 아직까지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비앙카의 위치교란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비앙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찾아오기 전에 내가 새 각인 새겨둘 건데, 그 때 되면 애쉬는 나를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이게 된단다.”
“뭐…?”
“애초에 걔랑 싸우고 싶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아니야. 나는 애쉬 감당 못해. 애초에, 이 대륙에서 그 년을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있으려나?”
비앙카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최소한의 보험이라 이거야.”
비앙카가 내 목에 손을 얹었다.
“윽…!”
“마기에 면역이 없어서 살짝 따끔해. 조금만 참으렴.”
비앙카의 손끝에서 검은색 마기가 흐물흐물 솟았다.
유형의 힘을 품은 마기는 내 목에 채워진 개목걸이에 닿았다.
애쉬가 채워준 개목걸이가 가루로 변하며, 너무도 간단하게 부서졌다.
“여기에는 애쉬의 마력이 안 담겨있더라고.”
항상 목에 차고 있었다.
가끔 걸리적거릴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졌다.
비앙카에 의해 애쉬에게 받은 것을 잃어버렸다.
“허전하니? 괜찮아. 곧 내가 좋은 거 채워줄 테니까.”
비앙카는 입맛을 다셨다.
홍조가 깃든 뺨이 거칠게 들썩였다.
이 상황이 즐거운 모양이다.
“그러려면 옷도 다 벗겨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내 옷을 벗겼다.
두 손, 두 발.
멀쩡하게 움직이는데 반항할 수가 없었다.
‘괜히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납치범, 인질범, 테러리스트.
절대 놈들의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
작게 끝낼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도 모른다.
비앙카는 분명, 고통이 아닌 쾌락으로 조교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애쉬가 구하러 와줄 때까지 버틴다.
아프지만 않으면 버티기가 훨씬 수월하다.
게다가 나는 애쉬의 괴롭힘조차 이겨냈지 않은가.
지금을 위한 수련이었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애쉬에게 고맙다.
비앙카가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속옷차림으로 비앙카의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몸은 나쁘지 않네. 이미 확인해서 알고 있지만.”
비앙카는 모종의 기술을 통해 애쉬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
어떻게 애쉬의 눈을 속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앙카의 손이 내 고간에 닿았다.
“음음, 여기에…. 애쉬 전용 자지가 있는 거지?”
“…….”
정조대가 내 자지를 보호해주고 있다.
왜인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비앙카가 내 속옷을 끌어내렸다.
발기하지 못하는 자지가 분홍빛 정조대에 앙증맞게 갇혀 있다.
비앙카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조소를 흘렸다.
“진짜…. 사내로 태어나서 꼴이 이게 뭐야? 암컷을 제압해서 임신시키지는 못할망정, 암컷에게 농락당하며 사정관리 당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니?”
“큿….”
비앙카의 손이 내 불알을 쥐었다.
자지는 케이스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불알은 완전히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다.
낭패였다.
비앙카가 내 불알을 톡톡 두드린다.
아프지는 않은데, 토닥거리는 손길에 피가 쏠렸다.
“넌 글러먹은 남자니까. 내가 귀여워해줄게. 애쉬가 아니어도 주인님으로 잘 따를 수 있지, 강아지야?”
“…….”
“대답해야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탈출을 시도하진 못해도, 최소한의 반항심을 보였다.
“다른 년 손을 타서 그런가.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네. 뭐…. 천천히 길들이면 되는 거니까. 이번 한 번만 봐줄게.”
비앙카가 한쪽을 가리켰다.
침대 비슷한 제단이 있다.
“저기에 가서 누워.”
엎드리란 말이 차갑게 들려왔다.
에르윈의 창관에 갔을 때, 비슷한 감각을 느꼈었다.
수컷으로서 가지고 있는 본능, 그것이 내려주는 경고.
비앙카는 손에 낀 장갑을 벗고 맨살을 드러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유려하게 흔들렸다.
“에르윈? 서큐버스의 피를 물려받은 혼혈…. 그 아이가 새긴 각인을, 내가 좀 더 고급스러운 걸로 바꿔줄게.”
비앙카가 나를 제단에 눕혔다.
제물이라도 된 느낌이라 소름끼쳤다.
비앙카의 손이 내 아랫배에 닿았다.
“아랫배에 꽤 중요한 것들을 새겼네. 이건 건드리면 안 되겠어.”
아랫베에 새겨진 각인은 위치추적, 생명력 공유, 마력 공유 세 가지다.
“괜히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도 있고…. 애쉬의 생명력과 마력을 공유 받는 편이 너한테도 훨씬 안정감 느껴지고 좋을 테니까. 그치, 강아지야?”
“…….”
“그렇게 버티면, 나중에 꺾었을 때의 기대감만 키워줄 뿐이란다.”
안다.
알고 있다.
절대적인 갑의 앞에서 객기를 부려봤자, 갑에게는 찰나의 즐거움 따위에 불과하다는 걸.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얌전히 따르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애쉬를 배신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비앙카의 손이 아래로 향했다.
고환을 움켜쥐고 마기를 흘려보냈다.
“큭…!”
따끔따끔하다.
“여기에는 전부 성감 증폭이네. 쓰는 걸 못 봤는데.”
비앙카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건드릴 필요는 없겠네. 오히려 효과를 증가시키는 편이….”
마기가 불알 깊숙하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 감각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마기 주입이 짧게 끝나고.
비앙카는 얄밉게 웃으면서 내 불알을 놓아주었다.
“음음, 주기적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발정하도록 만들었어.”
“뭐…?”
“이어서 할게. 엉덩이 내밀고, 저쪽 바라보며 엎드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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