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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75화 (75/109)

〈 75화 〉 악마들의 밤(8).

* * *

유테론 남작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유테론 남작은 자신의 딸이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아직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열변을 토해내는 베넬로아 때문에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프레소 백작이 흑마술사에게 붙었고, 용사가 너를 먼저 보낸 것이라….”

유테론 남작은 약간 불안을 느끼는 듯했다.

애쉬가 미리 경고했던 베넬로아에 대한 낙인.

프레소 백작가의 며느리라는 그 낙인이, 베넬로아를 죽음으로 몰고 갈지도 몰랐다.

베넬로아가 말했다.

“용사님이 말씀해주시기로 했어요. 저는 관계가 없다고.”

“…….”

희망으로 가득한 베넬로아.

하지만 유테론은 근심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쉬에게 한 짓이 있으니,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

유테론이 나를 바라본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침만 먹었죠.”

볼텐 기사 저택에서 나오기 전, 그 때 아침을 먹고 나왔다.

나체 산책을 하고 애쉬의 장난감으로서 괴롭힘을 당하느라 밥 먹을 타이밍을 놓쳤다.

“그럼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굶주린 배를 채우고 이야기해도 된다.

절대 늦지 않는다.

유테론은 나를 재촉할 생각이 없다.

다시 한 번, 절대적인 갑의 위치가 바뀌었다.

애쉬가 베넬로아를 살려 보내면서, 유테론 남작은 철저히 을이 되었다.

나는 점심 겸 저녁에 가까운 식사를 했다.

점심이나 저녁이라고 말하기엔 약간 애매한 시간대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애쉬에 대한 내용이었다.

애쉬를 찬양하고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유테론은 내게 아부를 떨었다.

끊어진 동아줄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쁘지는 않았다.

대접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도 지은 죄가 있으니까.’

베넬로아와 마주보고 식사를 하고 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오줌을 싼 전적이 있다.

얼굴에 뿌리고 온몸을 적실 정도로, 노골적인 방뇨….

색다른 쾌감과 지독한 죄책감이 내 안에서 뒤섞였다.

반인륜적인 행동에서 느끼는 배덕감이 어마어마했다.

이것에 중독되어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간이든 불륜이든, 동기부여로 충분했다.

“잘 먹었습니다. 배부르네요.”

“씻고 푹 쉬시길 바랍니다. 용사님께서 아진 씨를 돌려보낸 것은 그런 의미에서일 테니까요.”

“예, 뭐….”

내게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와서 그런가, 살짝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후….”

목욕탕에 들러 씻고, 방문을 열었다.

서늘한 바람이 고간 사이의 축축한 감각을 시원하게 말려준다.

끼익­.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섬뜩한 손길이 목 언저리에 닿았다.

“쉬이이이잇….”

“……?”

방 안의 창문이 열려있다.

누군가 침입이라도 한 듯이 활짝 열린 꼴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내가 느낀 서늘한 바람은 정말 밖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공기의 흐름이었다.

누군가 내 뒤를 잡았다.

움직일 수가 없다.

속삭인다.

“조용히 하렴. 네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면, 프레소에서 보는 손해를 감수하고 너를 그냥 죽여야 하니까…. 웬만하면 말을 잘 듣는 게 좋단다.”

“…애미 시발.”

“이런 상황에, 그런 상스러운 말을 뱉어야겠니? 겁이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나긋나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적대심이 잔뜩 묻어 나왔다.

뚝뚝 떨어지는 살기는 애쉬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누, 누구….”

“이름을 말해주면 네가 알 수는 있으려나? 왕국 단위로도 잘 모르는데, 내 이름은.”

“…….”

머릿속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바짝 긴장한 팔다리와 달리, 머리는 이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지는 않는다.’

이미 한 번 겪어봤다.

내 손목이 날아갈 뻔했다.

그 짜릿한 경험은 내 피와 살이 되었고, 내게 이성을 되찾아주었다.

애쉬가 새겨준 각인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용사의 생명력과 마력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으니, 끔찍한 꼴은 안 당할 터.

‘프레소? 프레소에서 보는 손해라고 했지.’

프레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하나.

흑마술사와 애쉬의 전투 밖에 없다.

내 뒤에 있는 것이 흑마술사, 헬 체인의 일원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챘다.

“…헬 체인.”

“음음, 거기까진 눈치채주는 거야? 단서를 던져줬으니까, 알아봐줘야지. 안 그러면 서러워.”

여자는 내 목을 움켜쥐고 나를 천천히 밀어냈다.

한 발씩 앞으로, 느릿하게 내디뎠다.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어떻게 온 거야.”

“물어보면 내가 답을 해줘야 하는 거니? 아하하. 다른 의미로 순수해서 보기 좋네. 용사 동료다운 정직함이라고 해야 하나?”

“…….”

여자의 입에서 용사라는 단어가 거론된 순간, 나는 최악의 가정을 하나 떠올렸다.

이는 원작에서도 나오는 전개….

어쩌면 왕도라고 봐도 무방했다.

‘납치라니, 시발…. 말이 돼? 왜 나를 납치하려는 건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테론에는 나 말고, 빈센트나 린과 소우타도 있다.

나를 콕 찍어서 낚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자가 내 목걸이를 꽉 잡아당겼다.

순간 숨이 막혀왔다.

“너를 데리고 가려는 이유.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니. 그걸 설명해주길 원하는 거야? 듣고 싶어?”

여자의 숨결이 훅 풍겨왔다.

향기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했다.

“…….”

나를 납치하려는 이유.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모를 수가 없다.

내 몸값의 99%는 용사 애쉬 때문에 높아진 것이니.

흑마술사 ‘헬 체인’에서 나를 납치한다면.

그것은 전부 애쉬를 견제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속삭인다.

“반항은 하지 않는 편이…. 네 몸이나 정신건강에 좋아. 우리 쪽에는 제법 거친 친구들이 많거든.”

“…….”

누군지 모르겠다.

헬 체인의 간부 대부분을 알고 있는데, 이 여자는 도통 감 잡을 수가 없다.

나비효과 덕분에 잔뜩 뒤틀렸으니까.

내가 모르는 헬 체인 일원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썩 달갑지 않았다.

“기껏 안배해둔 것들이 용사. 애쉬 그레이필드 때문에 많이 망가져서 말이야. 널 보자마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얌전히 따라오렴.”

마기가 내 몸을 감싼다.

새까만 기운이 넘실거리며 나를 옥죄는데, 긴장감에 몸이 절로 굳었다.

지이잉­.

순간적으로 애쉬의 마력이 반응했지만, 공간이동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흑마술사가 나를 해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포근한 방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운만 걸친 상태로, ‘헬 체인’의 아지트에 이동했다.

헬 체인의 아지트는 생각보다 밝았다.

사방에 마석을 박아두어, 시각적으로 밝기만 했다.

분위기는 그저 음침했다.

‘아마도 지하겠지.’

서쪽에 위치한 섬, 그곳에 버려진 마을.

이미 멸망한 부족의 고적을 아지트로 삼았다.

왕국도 교단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위치.

애쉬와 함께 천천히 나아가면, 결국에는 도달하게 될 목적지.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자가 내 목줄을 쥐고 나를 질질 끌었다.

자기 무리에게로 향했다.

“모두들, 오래 걸렸지?”

네 명이 모여 있다.

모두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아마도 이들이 ‘헬 체인’의 간부.

이 대륙에서 암중비약하는 악당, 원작에서 루크를 괴롭히고 루크에 의해 무너지는 빌런 놈들인 것이다.

헬 체인의 간부는 총 열 명.

자리가 비는 순간마다 어떻게든 채워 넣는 구조다.

달리 말하면, 간부가 죽을 때마다 체계가 개편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 뒤에 있는 여자까지 총 다섯…. 그레이프. 그레이프는 어디에 있지?’

항상 이 자리에 있을 순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헬 체인 밀담에 응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다.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그 놈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가? 프레소에서 준비하던 것을 미끼로 써버릴 정도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날려먹은 마기가 어느 정도인지 아느냐?”

“완전히 끝냈어야 했어. 적어도 간부가 가서, 프레소 백작을 이용해 그 부근을 날려버렸어야 한단 말이다.”

“…….”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가 시끄럽게 떠들었다.

대부분 불평불만이었다.

여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여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뒤에서 막내들만 부리고, 뒤에서 사리기만 하는…. 너희 늙은이들은 전혀 모르겠지. 당장 프레소에서 실패한 것, 거기서 날려먹은 것들 때문에 징징거리기만 할 뿐이니.”

“뭐라…?!”

셋이 발끈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레이프가 간부에 오른 이후,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헬 체인’의 썩은 물들일 것이다.

여자도 늙은 흑마술사들에게 질린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요즘 헬 체인이 어떻게 망해가고 있는지, 그 꼴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여자의 손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이 남자의 가치를 모를 수가 없단다. 병신머저리들아.”

“…네 년의 수확이 좋다고는 해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조용히 할까?”

“…하던 말은 다 하고 꺼져라.”

“음음, 움직임이 둔하고 겁이 많아졌으면 후대를 믿어주기라도 해야지. 계속 피만 빨아먹지 말고.”

여자는 계속해서 헬 체인 간부들을 매도했다.

순하게 말하고 있지만, 확실하게 모욕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궁지에 몰렸어. 아마 반박이 불가능할 거야. 용사 애쉬가 악마 벨리알을 단칼에 죽이고, 푸르푸르도 한 합에 보내버렸으니….”

“벨리알을 단칼에? 72마리의 악마인 벨리알을…?”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용사가?”

여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것 봐. 전혀 모르고 있잖아.”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아마도 그레이프 때문일 것이다.

그레이프는 헬 체인에 가입하자마자 스스로 성장하고 자기 세력의 가치를 높이려 애썼으니까.

말단에서부터 모이는 정보가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이는 간부의 고립을 뜻했다.

자칫 잘못하면, 숙청당할 수도 있으나….

‘그레이프는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이지.’

그레이프가 중간에서 잘라먹는다.

의사소통과 정보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뒤에서 웅크리고 있기만 한 썩은 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가 된다.

여자는 그것에 한탄하며 말을 이었다.

“푸르푸르까지 쉽게 죽여 버릴 줄은 몰랐어. 아무리 강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거겠지.”

“…….”

“덕분에 나는 결론을 내렸어. 악마를 소환하는 것으로는 애쉬를 막을 수 없다, 라고.”

“그러면 그 용사를 어떻게 막는가? 악마로 안 되면, 다음 단계인 마계 침식을….”

“쯥.”

여자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지금 마계침식을 일으키면? 그 뒤는? 금방 진압될 텐데, 그 뒤는? 답답하다, 답답해. 하루 종일 마기에 뇌를 적시고 사니까, 이제는 사고가 아예 안 돌아가잖아. 진짜 병신머저리가 다 됐어. 쯧쯧.”

여자는 썩은 물 늙은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곳에 남은 간부는 하나.

놈이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놈, 용사와 관계가 있는 남자인가.”

“맞아. 최강의 용사 애쉬의 남자친구야.”

“…고작 남자친구가 쓸 만한 미끼가 될 수 있나?”

“어째서인지, 용사 애쉬는 이 남자 없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보이던데?”

여자가 품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마력을 공급하니, 여러 영상이 재생됐다.

‘이걸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 모를 영상들.

전부 나와 애쉬를 비추고 있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겠어. 놈은 나한테 줄 생각인가? 그러면 제대로 고문해서, 용사에게 최악을 맛보여주도록 하지.”

“음음,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절대 안 돼. 이 남자를 망가뜨리는 건 최악의 선택이란다.”

“그러면 뭐. 어쩔 생각이지?”

여자가 나를 흘기며 씨익 웃었다.

나는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교할 거야. 용사 애쉬가 철저하게 좌절하도록. 그 순간, 엄청난 마기를 뽑아낼 수 있겠지? 끄흐흐흣, 상상만 해도 가버릴 것 같아….”

“…….”

은은하게 검은빛이 감도는 보라색 머리칼.

새까만 안대로 눈을 가린….

‘비앙카 바이올렛…!’

주인공 용사 루크의 조력자가 되는 흑마술사.

히로인까지는 아닌 여자 조연 캐릭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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