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악마들의 밤(7).
* * *
애쉬는 푸르푸르를 참살했다.
천사의 힘을 사용해, 푸르푸르의 본체까지 소멸시키는데 성공했다.
불과 3초도 걸리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살아남은 흑마술사들도, 관전하던 교단 사람들도.
애쉬의 무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S랭크. 최강의 용사인가…?!’
프레소 지부장은 현재 등록된 S랭크 용사들의 순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최강의 자리에 올라 있는 드레이크도 이 정도로 강하진 않으니까.
애쉬를 그 자리에 올려야 했다.
그게 타당한 평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알아서 정리해.”
애쉬는 성검을 거두고 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펼쳐져 있는 결계 아래, 흑마술사들이 남아 있다.
악마를 처리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부장은 그것을 단박에 눈치 챘다.
흑마술사들도, 변한 기류를 알아차렸다.
도망치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
용사와 악마 간의 1차전이 끝나고 2차전이 시작되었다.
“잡아라! 죽여라!”
성기사단이 흑마술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푸르푸르에 의해 절반 정도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절반은 티끌만큼의 마기도 남지 않았다.
죽여 달라고 서있는 수준이었다.
“도망, 쳐어어! 끄아아아아악!”
“안 돼!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이, 이 용사 좆같은 년아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어, 어쩔 수 없이 흑마술사가 됐다고요!”
악에 받친 교단 인원들에 의해 학살이 벌어졌다.
성기사들은 흑마술사를 앞에 두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눈앞에서 여리고 불상한 척 해도, 이들은 수십 수백의 목숨을 앗아간 악당.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지부장이 소리쳤다.
“이들은 악마다. 악마와 다름이 없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악마가 되고자 한 자들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곧 수십 수백의 죽음으로 찾아올 것이다. 이곳에서 놈들을 죽이는 것! 그것이 곧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우오오오오오!”
흑마술사들은 반항조차 못하고 죽어나갔다.
신성력이 깃든 검에 목이 날아났다.
기껏 소환한 악마가 애쉬에 의해 죽으면서, 그들이 쥔 패는 제로가 되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흑마술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흑마술사에 대한 증오는 이까짓 불쌍한 모습으로 뒤흔들릴 것이 아니었다.
애쉬는 학살의 현장을 멍하니 지켜봤다.
원래라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
교단 측에서 오지랖을 부리는 바람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감사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돌아가서 강아지랑 놀고 싶은데.’
악마 하나를 잡았다.
72마리 중 2마리를 해치웠으니, 이전에 비하면 월등히 나았다.
진도가 아주 빨랐다.
그만큼 흑마술사들의 반응도 이상해졌지만.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흑마술사를 싹 죽이는 것.
마계를 조지고 악마들을 멸종시키는 것.
훗날 평화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방해하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임신을 하면 10개월 동안 못 움직여. 임신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마왕 바알 사냥도 준비해야 돼. 성검에 룬을 먹이고 자잘한 놈들을 처리해줄 용사들도 있으면 좋겠지. 내 성검도 얼른 10레벨로 만들어야 하는데….’
애쉬는 나름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검을 10레벨로 만드는 것.
마왕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레벨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룬을 일곱 개나 더 얻어야 했다.
회귀했어도 너무 오래 전에 회귀했다.
이전 삶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서, 룬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성검을 빼앗아서 흡수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왜 용사가 죽으면 성검도 소멸하도록 만들어진 건지.
아쉬울 따름이다.
“됐다! 흑마술사들을 다 죽였다!”
“우어어어어어어어!”
“놈들의 시체를 싹 불태워라! 성스러운 빛으로, 정화하라!”
태양신에 미친 교단 놈들은 애쉬가 보는 앞에서 정화의식을 개시했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라서, 애쉬는 그 장관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새하얀 불꽃이 타오르고 흑마술사들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린다.
영혼까지 소멸시킨다고 하는데, 애쉬도 잘은 몰랐다.
애쉬에게 있어 교단은, 죽은 자도 못 살리는 머저리 교단에 불과하니까.
결계가 무너졌다.
흑마술사들의 마기가 대기에 흩어지며, 결계를 구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둡던 하늘이 새파랗게 펼쳐진다.
남색의 하늘.
바깥의 시간은 해가 저물고 사라진지 오래였다.
“쯥.”
생각보다 오래 있었다.
악마 소환이 오래 걸렸고, 흑마술사 소탕이 오래 걸렸다.
여러 가지로 짜증나는 상황이었다.
“허억, 허억. 용사님.”
일을 끝마친 지부장이 애쉬에게로 다가왔다.
그 발걸음은 산뜻하기 그지없었다.
인류를 배신하고 태양신을 져버린 흑마술사, 놈들을 죽임으로서 하늘에 봉사하게 되었으니.
지부장은 지금 기분이 매우 좋았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뭐, 괜찮은데.”
“다행입니다.”
지부장이 숨을 헐떡거렸다.
어찌나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사제복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애쉬가 눈살을 찌푸렸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프레소 지부에 있을 겁니다.”
“그 새낀 왜 여기로 안 왔어. 지원 필요 없다고 했는데. 사람 보내놓고 자기는 교단 지부에 있다? 일을 대체 왜 이딴 식으로 처리하는 거야.”
“…….”
살벌한 말들에, 지부장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고집을 부려 이곳에 왔다고는 자수하지 못했다.
“…지부로 가시겠습니까?”
“가야지, 그럼 안 가냐?”
“알겠습니다.”
피 범벅인 성기사들과 사제들.
지부장은 그들을 이끌고 교단 프레소 지부로 향했다.
“뭐야? 뭔데?”
“사제님들이 피를 묻히고…. 어디서 싸움이라도 났던 건가?”
“악마라도 잡은 거예요? 단순한 싸움만으로, 저렇게 피를 흘릴 수가 있어?”
가는 길에 몇몇 시민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들의 시선에는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성기사들의 어깨가 절로 으쓱였다.
사라질 뻔했던 프레소 백작령을 위해 싸웠다고, 이겼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교단 프레소 지부.
텔레포트 마법사가 초조하게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쉬는 그를 발견하곤 성검을 휘둘렀다.
쩌적!
“히익…!”
텔레포트 마법사 주위로 칼집이 새겨졌다.
쩍 갈라진 바닥을 보며, 성기사들이 기겁을 했다.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공포를 느꼈다.
“내가 한 말, 하나도 안 지켜줬네.”
“…그게, 그게 말입니다! 저는 가지마라고 했는데, 용사님의 명령이라고 단호하게 전달했는데, 프레소 지부장이…!”
“…….”
텔레포트 마법사는 프레소 지부장을 팔아넘겼다.
그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애쉬의 고개가 프레소 지부장을 향해 돌아갔다.
끼긱, 끼긱.
프레소 지부장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께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
프레소 지부장이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애쉬는 한숨을 푹 내쉬며 경고했다.
“교단 본부 쪽에 보고 올려. 용사 애쉬는 지원군 필요 없으니까 각 지부에서 지랄하지 말라고.”
“예, 예!”
“빨리 악마를 처리하고 싶고 나를 돕고 싶으면, 차라리 룬의 위치나 내놔. 되도 않은 성기사단 지원하려 하지 말고.”
“옙!”
프레소 지부장이 후다닥 도망쳤다.
애쉬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절대 겁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애쉬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텔레포트 마법사를 부르는 것이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죄인이라도 된 양 느릿하게 애쉬에게 다가갔다.
“유테론으로.”
“옙!”
텔레포트 마법사가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공간을 순식간에 넘나들었다.
“……?”
텔레포트 마법사는 순간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유테론 남작의 저택에서, 자신 말고 또 다른 존재가 공간을 비틀고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안하고 불쾌한, 새까만 기운을 품고 있었다.
‘뭐지?’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애쉬가 유테론 남작의 저택에 서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
무언가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전전긍긍한다.
정신을 집중해서 느껴보려고 하고, 기감을 날카롭게 세워 기척을 읽어보려 한다.
하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텔레포트 마법사가 물었다.
“용사님…?”
“…….”
“윽…!”
유테론 저택이 진동한다.
애쉬의 기세에 복도 공기가 짓눌리고, 뭉개진다.
악마가 소환되었다 해도 믿을 만큼 압도적인 살기.
텔레포트 마법사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애쉬를 살폈다.
애쉬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강아진!”
애쉬가 쏜살같이 뛰었다.
유테론 남작의 저택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강아진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위치추적 각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강아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베넬로아!”
“네, 넷!”
애쉬는 베넬로아를 찾았다.
베넬로아가 다급하게 방에서 뛰쳐나왔다.
긴장감에 땀으로 범벅이었다.
“강아진은? 강아진은 어디에 있어!”
“…예? 아, 아진 씨는 방에….”
“없어. 없다고. 이 저택에, 유테론 도시에, 안 느껴진다고…. 이 시발아!”
“히익…!”
베넬로아는 바들바들 떨면서, 애쉬를 마주 볼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을 해코지 못하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진 씨가 말해줬어.’
지랄 맞을 때가 가끔 있어도 애는 착하다고.
악마 잡고 다니는 거 보면 모르겠냐고.
베넬로아는 강아진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 여자친구니까 하는 말이라고, 빈정거리며 되받아쳤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먹거리는 하늘빛 눈동자, 겁에 질린 듯 파르르 떨리는 손, 정말 악마를 베고 온 용사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유약한 모습이었다.
그 때, 애쉬의 뒤를 힘겹게 따라온 텔레포트 마법사가 애쉬를 불렀다.
“저…. 용사님.”
“…….”
애쉬는 무언가 실마리라도 찾은 듯 간절한 얼굴로 텔레포트 마법사를 노려봤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그 눈빛에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텔레포트 할 때, 그 순간에, 유테론 저택을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꼈습니다.”
“뭐…?”
“좌표라는 게 결국은 세계에 하나 뿐인 값이라서, 공유가 되고 있거든요. 텔레포트를 하는 중에는 다른 텔레포트를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
애쉬가 귀를 기울였다.
텔레포트 마법사는 애쉬의 반응에 요상한 희열을 느꼈다.
이 미친년이 내 말을 들어주고 있다.
감동에 벅차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희가 이쪽으로 넘어올 때, 여기서 빠져나가는 파동이 있었습니다. 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치추적 각인…. 언제 사라졌는지 아십니까?”
“…….”
애쉬는 이제까지 흐른 시간을 곰곰이 되짚었다.
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
프레소에 있을 때는 분명, 유테론 쪽에서 강아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근데 유테론으로 넘어오니, 강아진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유테론에 도착하자마자….”
“그렇다면, 제가 느낀 그 기운. 강아진 씨의 텔레포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마기에 가까운 힘이었는데.”
“…….”
텔레포트 마법사의 사족에, 애쉬는 불안감을 느꼈다.
용사로서 활동하며….
이런 상황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흑마술사에게 납치된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해…. 구할 수 없는 게…. 왜냐하면, 놈들은 숨는 것을 기가 막히게 하거든….”
“…그 주위로는 갈 수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기운이 향한 방향을 읽었거든요.”
“…….”
간다고 해서 찾을 수 있을까?
애쉬에게 선택지는 없지만, 어떻게든 그 가능성, 확률을 끌어올려야 했다.
이번에도 강아진이 죽게 된다면, 애쉬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원래의 역사에 이런 일을 겪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이 벌리고 다닌 일들이 이렇게 돌아온 걸까?
애쉬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가서 생각해야겠어.”
애쉬는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며 으르렁거렸다.
어떻게든 찾아낸다.
그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