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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72화 (72/109)

〈 72화 〉 악마들의 밤(5).

* * *

본격적으로 마계침식이 시작된다.

대륙을 마계가 좀먹고, 악마들이 스스로 강림한다.

강력한 힘을 지닌 악마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욕망대로 발산했다.

수많은 생명이 덧없이 사그라졌다.

그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강림한 악마를 소멸시키는 것.

악마의 개체수를 줄여야 마계침식을 늦출 수 있다.

궤도에 오른 마계침식은 더 이상 흑마술사들의 관할이 아니었다.

물고 늘어지는 흑마술사들은 그저 방해꾼에 불과했다.

용사들은 악마들을 사냥했다.

소단위의 용사 파티가 모이니 대규모 토벌대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살벌한 마계를 향해 발을 내디뎠고 악마들을 하나씩 소멸시켰다.

용사가 죽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용사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용사를 위한 희생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강아진은 한 여인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미 뒤틀린 이야기.

원작처럼 진행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또 엉켜버릴 줄은 몰랐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용사 루크가 여인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도저히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대신해 마물들에게 납치당해서 생긴 일이다.

부족하고 모자라서, 지키지 못했다.

싸늘한 시신을 앞에 두고 후회만이 남았다.

강아진은 피눈물을 흘리는 루크를 바라보며, 뼈아픈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이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고 루크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 여인.

탈락한 히로인인 애쉬와 다르게 모든 독자의 지지를 받고 있던 히로인의 죽음에, 이 여정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루크는 여인의 시신을 아공간에 보관했다.

이 전쟁이 끝나는 날, 장례와 함께 화장을 하겠다고 말했다.

무언가 의지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이었다.

“…뭘 봐?”

강아진은 애쉬를 바라봤다.

애쉬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존나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 토할 것 같으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애쉬는 여전했다.

괜히 강아진은 불안해졌다.

둘 사이의 유대감이 제법 깊어졌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반쪽짜리 천사의 피를 깨울 만큼 강렬한가, 라고 물으면 확신할 수가 없었다.

강아진은 나름 그 관계를 못 박아두고 싶어서 구애를 펼쳤다.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같았다.

“뭔가 안타까운 분위기랑 상황이어도, 너한텐 안 대준다니까? 자꾸 지랄하면 좆이랑 불알 터트려 버린다?”

“…알았어. 안 할게.”

애쉬는 철저하게 철벽을 세웠다.

얼굴이 붉어진 것으로 보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마지막 한 걸음을 다가가지 못했다.

애쉬가 끝까지 밀어내고 있었다.

“…쯧.”

루크를 두고, 강아진은 텐트로 돌아갔다.

마계침식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 곳에서 불안하게나마 휴식을 가졌다.

다음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서 힘을 비축해둬야 했다.

이름 『강아진』

클래스 『도둑EX』

레벨 『88』

스킬 『감정EX』 『해제EX』 『소매치기S』

『맹독SS』 『단검술S』 『고통면역A』

루크와 강아진만이 가지고 있는 레벨 업 시스템.

클래스가 용사인 루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단점이 하나 있었다.

용사는 모든 무구와 기술에 플러스 보정이 들어간다.

무기술, 격투기, 마법, 신성 마법 등등 모든 영역에서 활약할 수 있다.

그렇기에, 루크의 시선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단점이었다.

‘클래스가 배울 수 있는 스킬 외에는 얻을 수 없다….’

도둑 클래스가 어떤 스킬을 배울 수 있는지 모른다.

소설을 읽었어도 도둑 클래스에 대한 설정을 알 순 없다.

클래스 스킬인 감정, 소매치기, 해제를 제외하고, 정말 우연에 우연들이 겹쳐 얻게 된 스킬이었다.

그 과정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정신적인 고통을 내가 어찌 할 순 없었고, 지금은 꾸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서 생생하게 남아있다.

강아진은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며 몸을 뉘였다.

‘언제 어디서 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애쉬 또한 충격을 조금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애쉬가 천막 입구를 들추고 들어왔다.

볼 일 보러 간다더니, 일을 끝마친 듯했다.

강아진은 애써 등을 돌렸다.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고 싶었다.

“안 대준다고 하니까 삐졌어?”

“…….”

“내가 시발, 너 같은 새끼한테 몸을 왜 줘야 해? 용사인 내가, 너 같은 도둑 새끼한테 말이야.”

“이잌…!”

딱­!

애쉬가 손가락을 튕겼다.

의지에 따라 각인이 발동되고, 자지가 꿀럭꿀럭 정액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바지가 축축해졌다.

뷰륵­. 뷰륵­!

“넌 그냥 나한테 좆 사정 관리나 받으면서 살면 돼.”

“그만…!”

“너 같은 팔다리 병신, 데리고 살아줄 여자도 없을 테니까. 내가 데리고 살아줄게. 그 정도로 만족하라고.”

약 올리듯 말하는 애쉬 때문에 휴식은 글러 먹은 것 같았다.

* * *

프레소 백작 저택 하늘이 까맣게 물들었다.

검은 안개가 모여들고 보랏빛 번개가 내려쳤다.

공중에 선명하게 빛나는 술식, 마법진이 격하게 진동했다.

“악마 소환이다. 제물을 쓰지 않는 고급 술식…!”

저택과 외부가 격리되어 있다.

결계를 통해 출입을 통제하고, 내부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단 프레소 지부장은 다급하게 결계를 향해 손짓했다.

“결계를 뚫어라. 해제는 하면 안 돼.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

강압적이고 난폭하지만, 프레소 지부장도 교단의 사람이다.

악마를 배제하려는 이유에는 대륙의 평화와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

교단 마법사들이 결계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결계가 깨지지 않도록 조절하며, 교단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통로를 구축했다.

“결계 자체의 질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급하게 펼친 결계, 하지만 꽤 강한 흑마술사가 개입한…. 그런 수준입니다.”

사제 하나가 지부장에게 보고했다.

지부장은 굳건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백작령 근처에서 흑마술사가 자주 발견되는 이유가 있었군.’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용사 애쉬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어떤 피해가 생겼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열렸습니다!”

교단 마법사들이 소리쳤다.

지부장은 팔을 앞으로 뻗었다.

“성기사단부터 진입해라! 결계 내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성악단은 찬송가를 시작하라!”

“♪”

찬송가는 성기사단에게 용기와 투지를 불어넣었다.

악마를 눈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성기사단은 차례대로 결계 안으로 진입했다.

무겁고 음습한 공기가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무언가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크흡. 묵직하군. 악마 소환이다. 소환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흑마술사들의 계략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악마를 소환하지 못하게 하는 것.

‘악마가 소환되면, 교단의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마족이나 악마와의 전투는 곧 피해를 야기한다.

용사가 아닌 교단의 입장에서는 싸움 자체를 피하는 게 옳았다.

성검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용사 애쉬 혼자서는 무리다. 벨리알을 소멸시켰다고 해도,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안 돼.’

성기사단과 프레소 지부장이 저택을 돌파했다.

흑마술사와 결탁한 흔적을 발견한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조리 부수며, 결계 중심부로 나아갔다.

그리고 애쉬와 프레소 백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택 정원, 마법진 중심에 흑마술사들이 떼로 몰려 있다.

프레소 백작은 그들과 함께 마법진을 향해 마기를 쏟아 부었다.

당장 가서 막아야 할 상황.

“……?”

애쉬의 주위에 수많은 검이 널브러져 있다.

그 중 가장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것은 당연 성검.

애쉬는 성검을 붕붕 휘두르며 여유를 부렸다.

사방에 포진해 있는 흑마술사를 상대로 자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뭐지?’

지부장이 보기에, 애쉬는 악마소환을 기다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나마 용사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용사님!”

“…….”

프레소 지부장은 수많은 흑마술사들을 확인한 후, 애쉬의 곁으로 다가갔다.

절그럭거리는 갑옷 소음이 울려 퍼졌다.

애쉬는 지부장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이 새끼가 왜 여기에 있냐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지금 공격하셔야 합니다.”

지부장은 애쉬를 재촉했다.

용사도 인류의 배신자냐고 할 뻔했는데, 겨우 말을 순화해서 뱉을 수 있었다.

애쉬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

지부장은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입에서 고운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괜히 용사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 것이다.

잠깐 물러났다.

‘본부의 말이 아니었다면….’

불안하게 진동한다.

프레소 백작을 비롯한 흑마술사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만찬을 펼치고 있었다.

악마들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느낌.

프레소 지부장과 성기사단은 이유를 알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지부장님, 이대로 간다면…. 악마가 소환될 겁니다. 저희로는 감당이….”

“알고 있네. 조금 기다려.”

성기사 중 하나가 지부장을 닦달했다.

저 미친 용사를 설득해보라는 의미였다.

지부장도 그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성기사를 물리고, 애쉬에게 다가갔다.

그 발걸음은 경건하기 짝이 없다.

“용사님. 놈들이 악마를 소환하기 전에 치셔야 합니다. 왜 서로 노려만 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아…. 시발, 이래서 말 전할 때 지원 필요 없다고 한 건데.”

지부장은 나름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허나 돌아온 반응은 까칠하기 짝이 없는 욕설.

‘어린년이!’

신실한 지부장조차 속으로 화를 내게 할 만큼.

애쉬는 개념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울화를 터트릴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고.

“용사님!”

지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여러 겹의 마법진이 공명하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악마를 토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기다려.”

광풍이 몰아친다.

애쉬의 잿빛 머리칼이 파락파락 흩날렸다.

애쉬는 제 뺨과 눈을 찔러대는 머리카락이 짜증났다.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씨.”

애쉬가 여사제에게로 다가갔다.

지부장은 그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악마소환에 압도당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머리끈 하나 줘봐.”

“…….”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는 여사제.

애쉬는 그녀를 향해 윽박을 질렀다.

“머리 끈 하나 내놓으라고.”

“예, 옛!”

여사제가 머리끈을 내어주었다.

애쉬는 회색 머리칼을 틀어 묶으며 지부장을 향해 손짓했다.

“결계 밖으로 나가, 그냥. 나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애쉬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답답한 행동들을 보며, 겨우 욕을 참고 있었다.

“그럼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도대체 무얼 기다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이 상황에, 기다려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물었다.

쉰에 가까운 흑마술사들 앞에서 당찰 수 있는 것은….

현재로써는 애쉬 밖에 없었다.

애쉬는 지원을 온 주위 교단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훑어봤다.

약 쉰에 이르는 물량.

흑마술사와 비등비등한 숫자였다.

여기에 악마가 가세한다면, 이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리라.

쓸모없다.

하지만, 밖으로 나간 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무력과 위업에 대해 떠들고 다닐 관객.

환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악마가 소환되기를 기다려.”

애쉬가 중얼거렸다.

“예?”

지부장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애쉬를 보았다.

그 뒤에 있는 성기사단과 사제들도 마찬가지.

얼빠진 눈빛으로 애쉬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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