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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69화 (69/109)

〈 69화 〉 악마들의 밤(2).

* * *

꼬리가 잡혔을 때, 그만둘 줄 알았단다.

용사에게 걸렸는데 하던 짓을 끝까지 진행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나야 고맙지."

그들은 애쉬가 던진 미끼를 놓지 않고 물었다.

그 말은 즉, 애쉬 정도의 용사는 처리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벨리알을 족친 용사가 애쉬라는 사실이, 아직 헬 체인 내부에 안 알려진 건가?'

인류멸망을 원하면서, 그 안에서 파벌을 나누었다.

최종목표가 같아서 안 싸울 것 같지만, 오히려 치졸하게 이권 다툼을 한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장관을 보기 위해서.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자잘한 마기 추출이나 안배 준비 따위를 좋아하는 흑마술사는 없었다.

헬 체인 내에서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막내가 할 법한 잡일에서 벗어나, 근사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마을 하나를 터는 것보다 도시 하나를 박살 내는 것에서.

도시 하나를 박살 내는 것보다 왕국 하나를 무너뜨리는 것에서.

놈들은 더 큰 쾌감을 느낀다.

최악의 흑마술사, 그레이프가 등장하면서 헬 체인에 변화가 생긴다.

말단으로 들어온 그레이프는 헬 체인을 천천히 장악해나가고, 결국에는 자신의 손아래에 넣는다.

그레이프 휘하에 놓인 헬 체인은 점차 악랄한 악행들을 벌이고 용사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아마 이 상황도 그레이프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의 경우지.'

시기가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애쉬라는 변수를 생각하면, 불가능하진 않았다.

무모하고도 위협적인 계획.

평범한 흑마술사는 떠올리지 못할 판단.

그레이프라면 가능했다.

나는 애쉬를 향해 물었다.

"막을 수 있어?"

"못 막을 것 같으면 그 때 물고 늘어졌겠지. 어떻게든."

애쉬는 천하 태평한 태도를 일관하며 백작가를 거닐었다.

넓은 저택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왜인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든든한 남성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마음이 이런 느낌일까.

불알이 부르르 떨렸다.

원작의 해피 엔딩을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이 너무 좋았다.

"용사님, 용사님.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진짜로요."

베넬로아는 전전긍긍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애쉬에게 매달리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런다고 연좌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인류배반죄가 워낙 빡세야 말이지."

"용사님이 한 마디 해주시면, 그래도 가능성이 생기겠죠. 장애가 생겨도 좋으니까, 저는 살고 싶어요.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몸이 불편해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베넬로아가 구차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삶에 대한 의지가 저리도 강한 여자인데, 시댁을 잘못 만난 탓에 좆되게 생겼다.

'그나저나 프레소 백작이 왜, 흑마술사에게 가담한 거지?'

원작과 전개가 달라졌다.

그러려면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내가 이 세계에 넘어온 건 고작 3주 정도. 애쉬가 원인이다.'

애쉬는 회귀를 했다.

몇 살의 나이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원작이 시작되는 아카데미 졸업 시점은 아니란 것이다.

일찍 넘어왔다고 가정한다면, 그 과거는 모두 원작의 애쉬와 달리 행동하는 시간이 된다.

그것이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

애쉬는 베넬로아를 흘기며 중얼거렸다.

"뭐, 완전 틀린 말은 아니네. 프레소 백작가에 있는 용사는 나 하나고, 나 혼자서 이 참사를 막는다고 치면, 왕국과 교단은 내 말에 협조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죠! 그런 말이에요!"

베넬로아가 잠깐 머뭇거렸다.

애쉬 혼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불안한 듯했다.

애쉬의 실력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저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씀해주세요. 용사님이 증언해주시면, 저는 유테론 아가씨라는 신분으로 풀려날 수 있을 거예요. 네?"

"…근데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네?"

애원하는 베넬로아에게 애쉬가 조소를 터트렸다.

"널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냐고."

"……."

애쉬는 베넬로아가 죽기를 바라는 듯했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대충 알고 있잖아."

"아버지와의 거래 때문이라고…."

"그 거래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 그래도 대충 눈치가 있으면 알아차렸을 거야. 네 애비가 내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거라고."

"……."

용사는 선하다, 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물론 모든 용사가 선한 것은 아니지만.

애쉬처럼 입이 험하고 살생에 거리낌 없는 용사가 있고, 드레이크처럼 여자를 가까이하며 그 색을 즐기는데 힘쓰는 용사도 있다.

악을 멸한다는 기준으로만 놓고 본다면, 모든 용사는 선하다.

도덕적인 기준으로 선을 바라본다면, 선하지 않은 용사도 있었다.

애쉬는 선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용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베넬로아는 애쉬를 보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죽고 싶지 않아요. 뭐든, 할 테니까…."

"뭐든 하겠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할게요."

빈정거리듯 말하는 애쉬에게, 베넬로아가 매달렸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나였어도 저렇게 했을 것이다.

애쉬는 잠깐 고민을 한 뒤, 조건을 꺼냈다.

"프레소 백작도 귀족이니까, 제법 괜찮은 것들을 보관하고 있겠지?"

"보물창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위치를 알아요."

베넬로아는 잽싸게 프레소 백작의 재물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아직 확정된 사실도 없는데, 결단이 빨랐다.

"열쇠는?"

"…시아버지가 가지고 계셔서, 그것까지는…."

"그럼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의미 없는 도움이네."

"다른! 다른 거, 필요한 게 없을까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쓴다.

그 모습이 참 불쌍하게 보였다.

나는 애쉬의 힘을 졸졸 따라갔다.

애쉬는 내 목줄을 쥐고 저택 곳곳을 돌아다녔다.

"프레소 백작 동상 같은 거 없어?"

"있어요."

베넬로아는 그걸 왜 찾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살기 싫어?"

"…살고 싶어요."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안내해드릴게요."

개인적인 의문은 뒤로 접어 두고, 베넬로아가 움직였다.

부랴부랴 앞장서서 걸어갔다.

처량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약간 펴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따르는 애쉬를 보면서 약간 희망을 느낀 듯했다.

'동상은 왜?'

베넬로아는 의문을 힘겹게 끊어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의문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여기에요."

베넬로아가 프레소 백작의 동상 앞으로 이동했다.

도움 1스택.

그런 느낌으로, 발걸음이 약간 가벼워 보였다.

애쉬는 베넬로아를 향해 물었다.

"이 동상, 언제쯤 만들었는지 알아?"

"…제가 시집오기 전부터 있었어요."

"그래? 그럼 꽤 오래부터 흑마술사를 지원하고 있었다는 말이네."

동상은 상징적인 의미다.

귀족 저택에 지어져 있는 동상의 경우, 해당 귀족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헬 체인과 엮이면 다른 이유가 추가 돼.'

동상에 흑마술사의 표식이 새겨져 있다.

보통의 방법으론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흔적이지만, 마력을 두르고 확인하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가 흑마술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근거가.

"저건…?"

프레소 백작 동상 이마에 자색 마법진이 떠올랐다.

베넬로아는 전혀 몰랐다는 듯 놀란 눈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원작 중반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

어느 누가 마나를 안력에 집중하고 동상 따위를 훑어볼까.

찾아낼 수도, 들킬 일도 없는….

흑마술사들끼리 주고 받는 신호에 불과했다.

애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귀자라는 근거였다.

"강아지. 이리 와."

애쉬가 나를 불렀다.

애쉬 곁에 다가가니, 프레소 백작의 동상 앞에 서도록 만들었다.

"바지 내리고."

"……?"

뜬금없는 말에, 애쉬를 바라봤다.

이곳에는 나와 너만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옆에 유테론 아가씨인 베넬로아도 있다.

"알 것 다 아는 나이잖아. 프레소 백작가에 시집 왔으니까, 애 가지려고 관계도 맺었을 거고."

"……."

베넬로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성적인 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기서 왜 벗으라는 거야? 이유가 뭔데."

"벗으라고는 안 했어. 그냥 조금 내리라는 거지."

"그러니까 대체 왜?"

애쉬에게 물었다.

이런 짓을 시키는 이유가 뭐냐고.

"프레소 백작은 흑마술사를 지원하는 배신자, 쓰레기잖아. 그 동상에 시원하게 싸줘야지. 그 정도 모욕은 할 수 있잖아. 더 이상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인데."

"……."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애쉬는 베넬로아를 향해 말했다.

"유테론 아가씨도. 순수를 증명해야지? 이 흑마술사들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피해자에요. 나한테 보여주려면, 이 시점에서 뭘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답을 정해두었다.

묻고 있지만, 원하는 대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살고 싶은 베넬로아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진짜 제정신이야?"

"응."

나는 애쉬에게 물었고, 당당한 대답을 들었다.

"빨리 벗어. 시간 끌면 사람들 더 데리고 올 거니까, 알아서 해."

애쉬가 내 바지를 냉큼 벗겨버렸다.

속옷까지 원 터치로 끌어내렸다.

그 손길이 아주 수준급이었다.

분홍색 정조대.

애쉬의 마나에 반응하며, 발기하지 못하는 자지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렇게 조준도 해줘야 해? 우리 강아지, 귀엽네."

애쉬는 나를 뒤에서 끌어 안고, 자지를 손에 감싸 쥐었다.

은은한 바람이 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동상의 머리 부분이 정확하게 조준된다.

"강아지. 빨리 싸고 가야지, 응? 사람들 몰려 오면, 감당 가능해?"

애쉬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베넬로아를 향해 경고했다.

프레소 백작의 동상을 앞에 두고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 알겠어요! 할게요! 용사님 말씀대로 하면, 사, 살려주시는 거죠?"

"앞으로 어떻게 하는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네."

"…그런…."

베넬로아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잠깐 주저하더니 걸음을 옮겼다.

드레스 자락을 들어올리고, 프레소 백작 동상에 다가가 주저 앉았다.

"잠깐만…. 이렇게 되면 내가 참아야 되잖아."

"쌀 마음은 있었구나? 장하네, 강아지."

"……."

안 싸면 안 풀어줄 거잖아.

어차피 싸야 하는데, 끝까지 버티는 게 병신이다.

"…그냥 싸버려. 악마나 숭배하는 저 년을, 네 성수로 정화하는 거야."

쪼르르르­.

속옷을 풀어헤치고, 베넬로아가 소변을 누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내팽겨쳤다.

나는 그 위에서 동상 머리를 조준하고 있다.

오줌을 누는 순간, 베넬로아도 젖어버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네가 저 여자 머리 위에 싸면, 살려줄게."

"뭐?"

애쉬가 크게 베풀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오줌 싸면, 오늘 흑마술사들 정리하고 유테론 아가씨 살려준다고."

"…저, 저기! 용사님 동료분!"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베넬로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소변을 누고 있는 중에도, 희망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는 괜찮아요! 동료분의 소변이 저한테 튀어도 괜찮으니까요!"

"개소리 하지 마세요.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는데…."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 하고 싶은 게 많단 말이에요!"

애쉬의 손이 은근슬쩍표적을 바꾼다.

동상 머리에서 베넬로아에게로.

자지가 옮겨진다.

"애쉬, 진짜 미친…."

"내가 자지로 하는 건 전부 보고 하라고 했지? 왜 말도 안 하고 오줌 누러 가? 그거 벌이니까, 절대 안 봐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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