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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64화 (64/109)

〈 64화 〉 단련(3).

* * *

“강아지, 뭐해?”

애쉬가 나를 불렀다.

점심시간에 느껴졌던 어색함이 사라진 듯 다정한 목소리였다.

애쉬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른 듯했다.

싸늘한 모습으로 사라졌었는데, 평소의 애쉬를 보니 마음이 붕 뜨고 간질거렸다.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사실은 혼자 남은 것이 불안했던 것 같다.

나는 목검을 대강 던져버리고 애쉬에게로 뛰어갔다.

“어디 갔다 왔어?”

“…잠깐 일이 있어서. 그런데….”

애쉬는 내 꼴을 살피며 얼굴을 붉혔다.

방금 전까지 뜀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조금 보기가 민망하네.”

애쉬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눈을 둘 곳이 없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남정네들의 땀냄새 풍기는 근육 덩어리들만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

“단련.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가 조금 그래서.”

“단련…. 아침에도 뛰었었지?”

“엉.”

애쉬는 자기 팔짱을 끼고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구석구석 스치는 시선에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갑자기 단련을 왜 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 강해지려 안 해도 되는데.”

“…그냥. 체력이 좋으면 여러모로 좋잖아. 시간도 남으니까, 아껴서 쓰는 거지.”

애쉬가 미심쩍은 눈빛을 보였다.

내 목적을 의심하는 듯했다.

선량한 의도가 해롭게 해석되는 순간이었다.

애쉬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할 필요 없어.”

“어?”

“단련 할 필요 없다고.”

“왜?”

내가 강해지면 애쉬도 활동하기 편하고 좋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군장이 가벼워질수록 행군속도가 빨라질 테니, 손해 보지 않는 장사였다.

그런데 애쉬는 장사 자체를 접으라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네가 강해지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해. 마왕 바알은 내 손으로 죽일 거야. 때가 되면, 넌 그냥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그래도.”

“재능 없잖아. 검 쥐고 휘두르는 거, 생각보다 힘들고 무서워. 난 너, 마음고생 시킬 생각 없어.”

“어, 음….”

애쉬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따위의 허무맹랑한 고백 같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냥 조금씩 해볼게. 체력이 국력이란 말도 있잖아.”

“…힘들게 검술 같은 건 하지마. 안 다치게 좋은 장비들 구해서 줄 테니까.”

착용자를 보호해주는 장비들이 많다.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도, ‘감정’이 안 되었을 뿐, 분명히 특별한 효과가 있다.

최강의 용사, 드레이크가 착용하고 있던 것이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알았어. 고마워.”

내 미천한 한계 때문에 레벨빨이나 클래스빨을 새울 순 없다.

그 대신 대안으로 가져온 것이 장비빨과 아이템빨.

애쉬가 직접 구해와서 내 몸에 둘러주겠다고 한다.

얌전히 앉아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면 됐다.

‘체력 관리는 빡세게 해야지.’

전투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애쉬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

침대 위에서의 가능성.

해가 떠있을 때에는 애쉬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달빛 아래에선 승리의 길이 보였다.

내 자지가 대단한 것인지 애쉬 보지가 허접한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기운을 끌고 가기 위해서 체력을 꾸준히 가꾸어 갈 생각이다.

좋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용사님.”

볼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애쉬를 맞이하기 위해 웃옷을 찾아서 입은 상태였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

애쉬가 나와 대화하는 동안 훤히 드러냈던 상체를 알아서 가렸다.

“왜.”

애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볼트에게 썩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용사님께 여쭙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을 좀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싫어.”

애쉬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볼트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물러나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프레소 백작령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 오라 하셨습니다. 어제 있었던 흑마술사 토벌 관련해서, 조금만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

“귀찮으니까, 좀 꺼져. 교단 측에 물어보던가 해.”

“교단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용사님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협조하지 않는 건지….”

“…쯥.”

애쉬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씨…. 교단 쓰레기 새끼들, 또 지랄 하나 보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백작님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보고하기에는…. 저희나 용사님이나 어색해서 말이죠. 유테론 아가씨를 뵈러 가시잖습니까. 그 전에 짧게라도….”

애쉬는 그날 일어난 일을 말하게 될 것이다.

프레소 백작이 물어볼 테니까.

평판을 신경 쓰기 시작한 이상, 말 안 하고 버틸 수 없다.

어차피 말하게 될 거, 미리 알려달라는 말이었다.

자기 체면 좀 살려 달라.

말에 담긴 속뜻은 기사답지 않게 속물에 가까웠다.

애쉬가 잠깐 고민을 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답을 내놓았다.

“흑마술사를 잡았어. 마족이나 악마를 소환하려는 놈은 아니었어. 마계 침식을 진행하기 위한 마기를 모으고 있더라고. 일찍 알아내서 다행이지.”

“…마계 침식 준비를 벌써?”

지금 하는 말들이 진실이냐고, 애쉬의 눈을 마주했다.

애쉬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내 의문에 긍정해주었다.

‘…원작과 같은 흐름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해.’

애쉬가 회귀했다.

그 순간부터 원작의 전개는 쓸모 없는 쓰레기에 가까웠다.

변하지 않는 설정 정보 등을 제외하면, 원작에 기댈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변수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왜 프레소 백작령에서 마기를 추출하고 있는 거지?’

메인 이벤트가 벌어지는 몇몇 지역들이 있다.

자잘한 지역명까지 다 외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흑마술사 집단인 ‘헬 체인’이 대충 어떤 흐름으로 세력을 확장하는지는 안다.

‘루크를 따라가.’

루크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헬 체인’도 뜬금없는 용사의 등장으로 거사가 그르치기를 원하지 않았다.

작가의 농간에 의해, 주인공 용사 루크는 가는 곳마다 흑마술사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쩔 때는 강자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해치우고, 어쩔 때는 행운의 여신이 웃어주어 살아남는다.

사건사고를 겪으며 강해지는 용사 루크의 파티….

애쉬도 가끔 그들과 마주친다.

루크의 파티는 항상 화기애애한 반면, 애쉬는 홀로 다니거나 우중충한 경우가 많다.

볼트는 애쉬의 말을 듣고 감사를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볼트가 원한 것은 용사 애쉬의 증언.

대충 던져준 한 마디로도 신빙성이 생긴다.

기사들이 조사하고 끼워맞춘 가설에, 마지막 퍼즐 한 조각.

그것을 챙긴 볼트는 미련없이 애쉬 곁을 물러났다.

프레소 백작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러 가는 것이리라.

기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애쉬 눈치를 보며, 단련을 이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애쉬. 잠깐 옷 좀 챙겨올게.”

구석에 던져둔 상의 셔츠를 챙기러 갔다.

애쉬가 한 손에 목줄을 꼬옥 쥐고서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누가 주인인지 헷갈리는 장면이었다.

“강아지.”

애쉬는 내 뒤에 우두커니 서서 말을 걸었다.

셔츠를 주워입으면서 애쉬를 빤히 바라봤다.

“…바지 내려.”

“?”

뭔 개소리란 말인가.

다른 기사들 다 있는 앞에서, 바지를 내리라니?

“뭐라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애쉬가 잘못 말했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물었다.

애쉬는 내 기대를 산산히 부수면서 명령했다.

“바지 벗으라고.”

“왜…? 왜, 여기서? 여기서 벗으라고? 방에 가서 벗으면 안 돼?”

“…말 안 들어?”

애쉬가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뜬금없었다.

주변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기사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단번에 읽었다.

정확히는 애쉬의 살기를 느낀 것이다.

“…….”

셔츠 입던 것을 멈추었다.

벗을 때까지 수련장을 못 벗어날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애쉬는 그런 나를 봐주지 않았다.

‘…보복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보복이다.

아침 때에 있었던 격한 섹스에 대한 복수.

어떻게든 내게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다.

‘오냐, 이겨내주마.’

목욕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남정네들 앞에서 바지 벗는 거?

전혀, 아무렇지 않다.

나는 천천히 바지를 벗었다.

기사들이 격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시선을 돌렸다.

그 작은 배려에 감동하는 나….

기사들은 애쉬의 취향에 새삼 놀라며 수련장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는 듯 아주 빠르게 탈출이 이루어졌다.

조용한 수련장.

나는 속옷까지 끌어내렸다.

축 늘어진 아기 고추, 내 자지지만 너무 귀엽다.

애쉬가 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발기 통제가 있어서 정조대를 안 채우려고 했어.”

“…어?”

애쉬의 손에 들려있는 분홍색 케이스.

남성성을 옥죄는 작은 감옥.

은색 정조대에서 색상이 아기자기하게 바뀌었다.

더 쪽팔리는 빛깔이었다.

“그런데 오늘 하는 것 보니까, 채우는 편이 낫겠더라고.”

“아니….”

어처구니가 없다.

뜀걸음 하고 땀을 흘렸다.

그 찐한 냄새에 흥분한 애쉬가 먼저 달려들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애쉬의 자궁을 임신시키기 위해 사정한 것 밖에 없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이런 취급이라니….’

애쉬를 향해 처량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동정심을 자극하는 편이 가장 효과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지금의 애쉬는 작정을 한 듯했다.

“앞으로, 고추랑 관련된 행동을 할 때, 무조건 나한테 말하고 허락받아.”

“뭐?”

애쉬가 내 자지를 손으로 잡았다.

발기하지 않은 자지가 애쉬 손에 쏙 들어갔다.

조물조물, 만지면서 정조대를 채웠다.

링 부분에 불알과 자지를 통과시키고, 연결된 케이스를 자지에 씌우고 잠갔다.

사전합의 없이 내 자지의 통제권한을 빼앗겼다.

‘열쇠가 없어?’

따로 열쇠 넣는 구멍이 안 보인다.

이러면 ‘해제’할 수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구조로 만든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쇠도 아닌 것 같고….’

은색 정조대는 차갑고 서늘한 감촉 때문에 오싹오싹했다.

분홍색 정조대는 그것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남성 친화적인 재료로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조금 더 말랑한 재질이라서 자지가 덜 피로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못 풀어주니까.”

애쉬가 손가락을 뻗었다.

정조대에 손을 얹고, 은빛 마력을 일으켰다.

정조대가 ‘해제’됐다.

케이스가 열렸다.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애쉬는 히죽 웃으면서 설명했다.

“내 마력에만 반응하는 정조대야. 나만이 이 정조대를 풀어줄 수 있어.”

“…….”

“그리고 절대 부서지지 않아. 내 마력이 깃들어 있어서, 나보다 강한 놈만 ‘파괴’가 가능해.”

“그 말은…?”

끔찍하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탈옥률 0%로 악명 높기로 소문난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애쉬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소악마처럼 곱게 휘어진 입가에 조소가 가득 걸렸다.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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