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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55화 (55/109)

〈 55화 〉 처음(1).

* * *

솔라는 애쉬에게 정보를 넘겼다.

소르톤 마을은 해당 포인트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일 뿐, 정확한 위치가 아니었다.

애쉬는 인상을 팍 찡그리곤 솔라의 말을 경청했다.

얌전히 듣고 있는데, 그 폼이 의외로 진지해서 놀랐다.

“드레이크의 보고에 따르면 격전을 치렀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드레이크는 8레벨 성검을 지니고 있었죠. 드레이크의 성격상, 자신의 위업을 부풀리고 피해를 줄여서 보고하는 경향이 있어, 드레이크가 흑마술사와의 전투에서 밀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S랭크로 평가되는 용사를….”

“그런데 2레벨 용사를 덜컥 보내려 했다?”

“…그 벨리알조차 소멸시키고 S랭크를 부여 받으셨습니다. 순수하게 용사님의 힘을 믿었습니다.”

솔라가 열심히 변론을 해봤지만 애쉬의 화를 누르기엔 한참 부족해보였다.

애쉬나 내 입장에선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당연했다.

생각해보라.

기껏 설거지랑 빨래를 마치고 왔더니, 슈퍼 가서 장 봐오라며 심부름을 시킨다?

부처 얼굴도 붉으락푸르락 해질 것이다.

애쉬가 솔라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질렀다.

교단의 운영행태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지랄 좆 까네. 그냥 역량이 안 되는 거잖아. 임무가 얼마나 위험하고,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용사를 갈아 넣어서 유지하는 주제에 무슨.”

“…교단도, 대륙을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겠지. 죽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애쉬는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S랭크 용사 관리도 이따위로 하는데, 아랫놈들은 오죽할까.”

“…….”

“이제 그만 꺼져. 시발, 니들 면상 보기 싫으니까.”

“…알겠습니다.”

솔라와 사제들이 애쉬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애쉬가 쒸익쒸익거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교단 사람들이 멀어졌다.

그들은 애쉬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았다.

이곳에 더 머물러봐야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애쉬는 금방 흥분을 식히고 내게 배낭을 건네주었다.

“강아지. 이거 들고 아무 여관에서 쉬고 있어.”

애쉬가 나를 두고 가겠다고 결정했다.

나라는 존재가 방해만 될 거라고, 계산을 끝마쳤다는 의미였다.

“…알았어.”

무책임하게 따라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두렵다.

말에 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유혈 낭자한 전투는 더욱 무섭다.

웬만해선 실전을 피하고 싶다.

애쉬 뒤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마도, 불가능한 꿈이리라 생각한다.

애쉬는 대강 몸을 가볍게 한 후, 발을 통통 굴렀다.

발목을 풀어주듯이 바닥을 디디며 살짝 뛰었다.

그러다가 성검을 콱, 바닥을 향해 찍어 내렸다.

“시발, 아진아. 교단 새끼들 때문에 화나서 못 참겠다.”

“뭐?”

애쉬가 뒤로 돌아,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키스하게 입술 가져와.”

애쉬가 팔을 쭉 뻗었다.

두 손으로, 내 뺨을 부여잡고 자신에게로 당겼다.

나는 다급하게 배낭을 내려두었다.

몇 병, 깨졌을 지도 모르겠다.

쭈읍, 쮸으읍­.

“하움, 츄릇….”

입술이 맞닿았다.

애쉬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끌어안았다.

뒤통수를 감싸는 야릇한 손길이 느껴졌다.

쪼옵­. 쪽­.

츄릅­.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키스를 받아주며, 은근슬쩍 애쉬의 엉덩이에 손을 얹었다.

애쉬가 눈을 살짝 치켜떴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쪼옥­. 츄릅­.

애쉬는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굳게 다물고 있는 이를 꾹꾹 두드렸다.

키스라고 했을 때, 설마 했다.

어디까지 하려는 것인지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에 대한 권리는 애쉬에게 있었다.

치욕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읏, 후움…! 츕.”

나는 애쉬가 원하는 대로 입을 벌렸다.

열리자마자, 애쉬의 혀가 능숙하게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 혀를 이끌고 서로 뒤엉켜, 뒤섞였다.

정신이 없다.

애쉬의 체취가 폐부를 가득 채우고, 거칠어진 숨결이 내 눈앞에서 비산한다.

숨 쉬는 것도 힘들다.

애쉬는 내 입술을 풀어주지 않았다.

입술이 성감대였나?

잘 모르겠다.

키스라곤 애쉬와 해본 게 전부라서, 알아차릴 방법도 없었다.

츕, 츄룹­. 츄룻­.

발정한 개새끼도 아닌데, 애쉬의 하복부에 고간을 밀착했다.

엉덩이를 움켜쥐고 발기하지 못한 자지를 애타게 문질렀다.

허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서로의 침이 늘어져,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애쉬가 만족할 때까지 키스를 했다.

애쉬는 교단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풀었다.

“프하…!”

애쉬의 입술이 떨어졌다.

입 주변이 애쉬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진짜 시발새끼들. 하아…. 패죽여 버릴 수도 없고….”

애쉬는 옷소매로 입술을 훔쳤다.

침으로 범벅인 얼굴을 닦아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었다.

“강아지.”

“어, 어?”

고개를 들어 애쉬를 바라봤다.

아까 전에 비해 안색이 밝아보였다.

“빨리 끝내고 갈 테니까. 자지 깨끗하게 닦고 방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

“대답.”

“…알았어.”

멍하니 앉아있자, 애쉬가 피식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커다란 젖가슴이 셔츠를 밀어내며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들었다.

“그렇게 좋았어?”

애쉬가 옷소매로 내 입 주변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입을 내어주었다.

“대답.”

“자, 잘 모르겠는데.”

“한 번으로는 잘 모르겠어? 강아지, 존나 앙큼하네?”

“…뭐?”

애쉬는 제 할 말만 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바닥에 박아둔 성검을 향해 다가가, 가볍게 뽑아들었다.

“1시간 안 걸릴 거야.”

애쉬가 포탄처럼 튀어나갔다.

말도 타지 않았다.

진심을 다하면, 말보다 빠르게 움직일 자신이 있다는 것일까.

‘벨리알. 벨리알을 소멸 시킬 정도라면….’

말은 물론이요, 와이번보다 빠를 것이다.

나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주위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꽤 긴 시간을 키스하고 있었으니, 우리에게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했다.

잽싸게 배낭을 들어 메고 교단 지부 밖으로 나갔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적당한 방을 구했다.

어차피 하루 묵고 갈 것 같아, 비싼 방을 구하진 않았다.

사치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나는 매우 검소한 편이다.

태양뱀 독 원액 개수를 헤아렸다.

얼핏 보기에 백 이상의 물량을 자랑했다.

소르톤 마을에서 쌓아둔 것을 전부 챙겨온 결과였다.

“둘, 넷, 여섯, 여덟, 열….”

총 개수는 152병, 하루에 한 병씩 쓴다고 가정하면 약 다섯 달을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엄청 많네.’

앞으로 공급될 것들까지 계산에 추가했다.

마르지 않는 샘물에 가까웠다.

정력에 좋은 태양뱀 독이 유전 터진 것 마냥 뿜어지는 것이다.

병들을 다시 배낭 안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방구석에 두었다.

방문을 잠그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좋은 여관에는 방마다 욕실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구한 방은 그 정도로 좋은 곳이 아니었다.

잠깐 머물기 위해 싼값에 구한 방이니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애쉬 없이 거리를 거닐었다.

느긋하게 주위를 감상하는 건 처음이었다.

남쪽 관문까지 쭉 이어진 큰 도로에선 말이나 마차들이 오고갔다.

흑마술사나 악마로 떠들썩해도, 사람들의 일상은 한결같이 흘렀다.

쿠구구궁­!

도시까지 작은 진동이 전달됐다.

사람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떨림이 공기를 통해 넘어왔다.

사람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원작에서는 볼텐 근처에서 사건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큰 전투가 벌어지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

애쉬가 큰 전투를 치르고 있다.

용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숭고한 사명이라고 말들 한다.

용사마다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대부분은 그 사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소수만 가질 수 있는 성검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애쉬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미루지 않고 나섰다.

용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다.

원작의 애쉬였다면 단호하게 외면했을 것이다.

회귀 전의 애쉬는 자신의 코앞에 일이 닥치지 않는 이상, 먼저 나서는 경우가 없었으니까.

‘각성을 한 것 같지, 아마…?’

자신의 힘을 타인을 위해 쓰기로 결심한 순간, 애쉬가 각성한다.

몸에 흐르고 있는 천사의 피가 용사의 힘과 공명하며, 마왕 바알조차 단숨에 무찌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물론 바알을 처치하는 것은 주인공 용사 루크의 몫이다.

게으른 애쉬는 성검의 레벨이 부족해, 마왕 바알을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뭐지?’

회귀한 애쉬는 이미 각성을 이루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흑마술사들을 사냥하고 악마들을 세상에서 지우며, 천천히 마왕 바알의 목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이야기의 끝은 루크와 애쉬가 마왕을 베어내면서, 훈훈하게 끝을 맺게 되겠지.

내 도움은 필요 없다.

자잘한 정보들은 굳이 알고 있을 가치가 없고, 중요한 정보들은 경험을 통해 몸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애쉬가 회귀하지 않았다면, 부족한 정보의 갭이라도 메워줄 수 있었을 텐데.

내 역할은 대체 무엇일까.

처음 이 세상에서 눈을 떴을 때는 아무 용사 파티에 합류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그를 도울 생각이었다.

용사 파티의 일행으로서 명성을 떨칠 생각이었다.

애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모든 행동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마법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도시 밖에서 엄청 큰 지진이….”

“백작령 내에서 마법 실험? 그럼 오히려 좋군. 백작님의 허가가 있었을 테니까.”

“별 거 아니겠네요. 갈 길 가죠.”

사람들의 관심이 흩어졌다.

지독하게 평화로운 모습이다.

용사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작 초반부여서 그랬다.

본격적으로 악마들이 깽판치기 시작하면, 이런 느긋한 광경도 끝이다.

애쉬가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목욕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 안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자지 닦고 기다리기.

깨끗하게 씻고, 방 안에서 쉴 생각이었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중, 애쉬를 마주했다.

애쉬는 꾀죄죄한 꼴을 하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왔어?”

애쉬가 하품을 크게 하며 개목걸이 목줄을 쥐었다.

“별 거 아니었어. 확실하게 끝내느라 좀 늦은 거지.”

애쉬는 내 목줄을 잡아당기고,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킁킁.

슬며시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자지도 깨끗하게 씻었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여기서 맡아볼 수가 없네.”

“난 안 쫄린데. 맡아보든가.”

당차게 말하니까, 오히려 애쉬가 얼굴을 붉힌다.

애쉬는 내 시선을 수줍게 피했다.

“…볼텐 도시에 백작가 기사들이 머물고 있을 거야. 그쪽으로 가자.”

백작령의 도시 같은 경우, 백작가의 기사들이 자작의 지위를 가지고 관리하게 된다.

그들이 머무는 저택은 도시 평균보다 훨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굳이 불편한 여관에서 지낼 이유가 없다.

1박을 묵기로 한 여관방에 들러 짐을 챙겼다.

볼텐에서 가장 근사한 저택을 향해 나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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