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태양뱀 사냥꾼(6).
* * *
‘뭔가 이상한데. 부족하단 말이지.’
생각해보니까, 모두들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흑마술사와 소르톤 마을, 애쉬까지.
나는 애쉬를 불러, 한 가지 오류를 수정해주기로 했다.
“…애쉬.”
“응?”
애쉬의 뒤로, 기뻐하는 소르톤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을 자체가 지워질 뻔 했으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들이었다.
“흑마술사가 분명히 윈윈 이라고 했잖아. 소르톤 마을은 태양뱀 독을 쉽게 얻을 수 있고, 자신은 활력을 통해 마기를 얻을 수 있다고.”
“응. 그랬지.”
“흑마술사 몫으로 떨어지던 활력도 양기로 돌려버리면, 훨씬 더 많은 태양뱀 독이 나오는 거 아니야?”
“……?”
내 말을 들은 애쉬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맞네. 맞는 것 같아.”
흑마술사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았다.
“강아지. 정력에 관심이 많았구나? 이런 건 또 냉큼 캐치해서 알려주네?”
애쉬가 나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입 꼬리에 가득 장난기가 담겼다.
“…내가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좋으면 좋을수록 좋은 거니까.”
나 자신도 내가 웃겼다.
아닌 척 하면서도, 어떻게든 정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애쉬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제 의견에 따라줘서 고맙다는 듯.
“그렇지. 아기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그 손길은 점차 은밀하게 바뀌어갔다.
어깨를 두드리던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내 등허리를 지나고, 바지를 들춰 깊이 파고 들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애쉬가 내 엉덩이를 주물렀다.
“이제야 내 뜻을 알아준 거야? 그러면, 앞으로 삼일 정도는 꾹 참을 수 있는 거겠지?”
“…어차피 못 싸게 할 거잖아. 근데 참기는 뭘 참아.”
“애원도 하지 말라고. 네가 싸게 해달라고 칭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아파.”
지랄하지 마, 즐기고 있잖아.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내가 신음할수록 더 안달 나서 괴롭히려 드는 주제에.
애쉬가 내 바지 속에서 손을 뺐다.
“흑마술사 정리하고 올게. 마을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흑마술사와 애쉬의 거래 내용이 약간 수정될 것이다.
소르톤 마을 사람들에게서 추출하는 활력의 양부터 시작해서, 흑마술사가 활력을 통해 얻게 될 마기의 양까지.
애쉬가 확실하게 통제하는 편이 나았다.
나는 돌아갈 준비를 했다.
소르톤 마을 공용 창고에서 태양뱀 독 원액 배낭을 챙겼다.
이거 때문에 교단의 의뢰를 받았다.
태양뱀 독 원액이 실질적인 보상이었다.
애쉬는 금방 돌아왔다.
창고에서 태양뱀 독 원액 배낭을 챙기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술식을 전개할 마기만 뽑아먹으라 했어.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겠지.”
애쉬가 소르톤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있었다.
겨우 이야기를 끝냈는데, 용사의 변덕으로 몰살이라도 당할까봐 애쉬를 경계했다.
애쉬는 이런저런 변경된 내용들을 알려주고, 공납물의 양을 세 배로 늘렸다.
소르톤 마을의 몫도 늘어나게 되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가, 감사합니다! 용사님!”
목에 천을 둘러 지혈을 끝마친 사내가 소르톤 마을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했다.
그의 목소리는 감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첫 만남에도 떨지 않았던 그인데, 태양뱀 독의 생산량이 늘었다고 말을 떨고 있으니.
아이러니했다.
결국 흑마술사만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애쉬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못된 짓 하던 흑마술사니까, 이 정도 착취는 당연했다.
애쉬는 그런 흑마술사에게 과거를 청산하고 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무사히 돌아가십시오! 다음 달까지 꼭, 물량을 맞추어두겠습니다!”
“용사 언니! 오빠! 살려줘서 고마워요!”
소르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애쉬가 본인들에게 저지른 짓을 새까맣게 잊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애쉬는 대충 인사를 받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히이이이잉!
말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교단 볼텐 지부로 돌아가면 휴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법진에 당하고도 아주 가벼운 발걸음을 선보였다.
“…….”
애쉬의 손이 내 허벅지를 더듬으며 넘어왔다.
바지 속으로 나무 당연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벌렸다.
말은 알아서 달리는데, 무서워서 고삐를 놓을 수가 없다.
애쉬가 장난치는 것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이 말, 교단한테 내놓으라고 할까? 말도 잘 듣고 좋은 거 같은데.”
애쉬는 내 자지를 조물조물 만지면서 속삭였다.
말 하나가 있으면 편할 것 같지만, 그 관리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차라리 필요할 때만 빌리고 하는 게 더 편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쉬가 말을 덧붙였다.
“말 관리할 사람도 따로 뽑으면 돼.”
“…돈은?”
“왕국이나 교단에서 내주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년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자, 기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애쉬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좋은 말 한 마리를 얻어 올까? 어릴 때부터 키우면, 안 무섭고 좋을 것 같지 않아?”
“굳이? 나는 마차타고 다니는 게 더 좋은데. 승마는 조금…. 내 취향에 안 맞네.”
“무서운 게 아니라?”
“…나 상남자 강아진이야. 겨우 말 타는 걸 무서워할 리가 없잖아.”
“그래?”
자동주행 중인 자동차 핸들만 꽉 붙들고 있는 꼴이다.
조수석에 앉은 애쉬에게 자지를 내어주고, 쿠퍼액이나 질질 싸지르는 게 상남자…?
상식개변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천천히 연습하면 혼자서도 탈 수 있을 거야. 시간은 많으니까 느긋하게 연습하자. 알았지?”
“…싫은데….”
“나중에 아들한테 알려주려면, 네가 탈줄 아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애 교육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순 없잖아. 아빠인 네가 해야지.”
“…가불기 쓰네.”
귀족 교양에는 승마도 있다고 한다.
귀족 사내아이라면, 당연히 말을 탈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원작 전반에 깔려 있다.
귀족들에게 자전거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게 말이다.
자전거도 못 타는 애비라니.
내 스스로 병신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애쉬는 여전히 내 자지를 조물조물 만지며 물었다.
“승마 연습할 생각이 좀 들어?”
“조금은?”
“순한 말로 조금씩 연습하면 돼. 별로 안 어려워.”
“…얌전하던 말이 갑자기 발광할 수도 있잖아.”
“그 때가서 죽이면 되지. 몇 마리 죽는 거 보여주면, 다시는 안 설칠 거야. 말들도 의외로 똑똑하거든.”
“…….”
애쉬가 내 바지 속에서 손을 뺐다.
싸기 직전까지 자지를 훑고 괴롭히다가 놓아준 것이다.
싸고 싶은 욕구는 훗날 이루어질 첫 섹스를 떠올리면 참을 수 있었다.
내 아래에서 다리를 벌리고 순결을 내어주는 애쉬….
‘…회귀했으니까, 처음은 아니겠네.’
현재의 육체는 회귀 때문에 순결하다고 해도, 애쉬 본인은 회귀 이전에 많이 해봤을 것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애쉬가 경험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고 해도 시원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소도시 볼텐으로 들어간다.
교단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는 교단 증표를 보여주고 볼텐 검문소를 통과했다.
말을 타고 거리를 이동했다.
저 멀리, 교단 볼텐 지부가 보였다.
성인 남성 키 정도 되는 높이의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볼텐 지부는 볼텐 내에 설치된 교단만의 고유영역이다.
“오셨습니까.”
교단 지부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고가는 도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솔라가 밖으로 나왔다.
출발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임무 시간은 겨우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솔라는 말에서 내리는 애쉬를 보며 물었다.
“흑마술사의 흔적을 발견하셨습니까?”
“별 거 아니었어. 소르톤 마을 사람들을 통해 마기를 보충하던…. 피라미였거든.”
“그렇습니까?”
용사라고 거짓말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인데 어떻게 진실만을 말하고 살아갈까.
애쉬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뱉었다.
어찌나 자연스러운 지, 교단 측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흑마술사를 감싸주기 위해 구라를 치고 있다고, 교단이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하다.
‘따로 또 일이 생기면, 그 때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네.’
애쉬 성격이라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소르톤 마을과 흑마술사를 통째로 지울 것 같다.
아니면 좆 까라는 마인드로 왕국과 교단의 압박을 무시하고 대륙신민들에게 엿을 날리거나.
둘 다 그럴싸한 선택지라서, 하나를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흑마술사에 대한 증거는 들고 오셨습니까?”
“여기.”
애쉬가 품에서 천 조각 하나를 꺼냈다.
흑마술사의 검은 로브 조각인데, ‘헬 체인’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부분이었다.
솔라는 천 조각을 받아들고 확인했다.
고개를 주억였다.
“용사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교단 수도 본부에서 내린 평가가 확실하군요. 서포팅 랭크가 S로 조정된 이유를 똑똑히 느꼈습니다.”
“서포팅 랭크가 S…?”
말에서 내리는 중에,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됐다.
나는 놀란 눈으로 애쉬를 바라봤다.
애쉬가 키득거리며 자랑스레 웃었다.
교단 내에서 측정하는 서포팅 랭크는 용사 개개인의 업적과 레벨을 따져서 매기는 등급이다.
S랭크는 극소수의 용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랭크다.
손에 꼽을 정도, 현 시점에선 드레이크를 포함해 넷 밖에 없다.
그런 랭크에 애쉬가 등록되어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드레이크를 죽인 게 들켰어? 벌써?’
그럴 리가 없다.
애쉬가 드레이크를 죽여 버렸다는 사실이 교단 귀에 들어갔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드레이크의 몫을 언급하며 애쉬가 그 짐을 짊어지도록 만들어 굴렸겠지.
‘그러면 도대체 왜….’
애쉬는 아카데미에서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업적이고 뭐고, 무언가를 이룰 시간이 부족했다.
그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벨리알 토벌 밖에 없는데.
‘악마 하나 잡았다고 S랭크? 말 안 되는 소리지.’
나중에 애쉬에게 물어봐야겠다.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근데 별 거 없던데.”
“용사님이 대단하신 겁니다.”
솔라는 시큰둥하게 말하는 애쉬를 찬양했다.
“두 달 전에 이미 A랭크의 용사를 한 번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용사는 흑마술사를 완벽하게 배제하지 못했죠. 흑마술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최근 교단으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비슷한 위치에서 마기의 흔적을 확인했다는…. B랭크 용사의 보고였습니다.”
많은 용사들이 대륙을 떠돌아다닌다.
성검을 들고 여기저기 들쑤시며, 이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하루하루 애쓴다.
각 길드와 교단 지부들은 용사들의 거점의 역할을 했다.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고 수집하고 보관해서, 흑마술사들의 꼬리를 잡으려 노력했다.
솔라가 말을 이었다.
“볼텐 지부에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성기사와 사제를 파견하여 정보를 모았죠. 근처 마을 사람들도 잘 모르겠다며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알아낸 정보로는 소르톤 마을이라고 특정 하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이 터졌을 겁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니까?”
둘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는다.
애쉬와 솔라는 서로의 눈빛을 살폈다.
둘 다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애쉬의 눈을 살펴보던 솔라가 말했다.
그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서서히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벨리알을 소멸시키셨을 때, 용사님의 실질적인 전투 시간은 10분 남짓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용사님 입장에서, 위업을 부풀리거나 하시진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분보다 짧은 것 같지만. 뭐, 거기서 거기니까.”
애쉬가 실소를 흘렸다.
“애초에 성자는 마계를 살펴볼 수 있잖아. 그걸로 벨리알을 확인해보고, 서포팅 랭크를 매겼을 텐데?”
벨리알을 소멸…?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악마를 소멸시켰다면 충분히…. S랭크 받을 만해.’
소환된 악마를 소멸시켰다.
그 말은 즉, 마계에 있는 악마의 본체까지 없애버렸다는 뜻.
72마리의 악마 중 하나를 아예 조져버리는 용사라니.
교단 입장에선 애쉬에게 무조건 S랭크를 주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솔라가 심각해졌다.
“…용사님을 의심하거나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교단에 투신한 몸. 성자님께서 내린 결정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그러면 뭐.”
“…뭔가, 용사님과 저희의 대화가 어긋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감이 없지는 않네. 내가 잡은 놈은 그냥 좆밥 수준이었으니까.”
애쉬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을 직감한 얼굴이었다.
“A랭크 용사. 흑마술사 괜히 놓친, 그 병신새끼 이름이 뭐야?”
“드레이크입니다. 드레이크 드래고니안. 지금은 S랭크에 등록이 되어 있는 최강의 남자죠. 악마를 소멸시켜버린 용사님이 더 강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아….”
애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라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용사님. 제가 말하는 사건과 용사님께서 사냥한 흑마술사. 둘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아닌 것 같네.”
“…임무를 마저 수행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용사님을 위해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애쉬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치켜 들고, 살벌한 눈으로 노려봤다.
섬광이 한 줄기 피어오른다.
솔라의 목에, 성검을 겨누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용사부터 일단 보내놓고 생각하는 거…. 한 번만 더 그 지랄하면, 그 땐 교단부터 박살낼 거니까. 알아서 해라.”
솔라는 마른침을 격하게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쉬가 물었다.
“드레이크가 흑마술사와 전투한 장소, 어디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