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태양뱀 사냥꾼(5).
* * *
“태양뱀을 양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코피를 질질 흘리며, 흑마술사가 입을 열었다.
애쉬는 흑마술사 앞에서 성검을 붕붕 휘두르며 물었다.
“네가 이 마을에서, 태양뱀 양식을 돕고 있다는 듯이 말했잖아. 그 방법을 말하라고.”
“여, 영업 비밀인데 말해버리면. 저를 살해하시는 것 아닙니까?”
흑마술사는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딜을 하려고 했다.
애쉬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했다.
애쉬는 흑마술사를 내려다봤다.
그 살기 가득한 시선에, 흑마술사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애쉬가 흑마술사의 목을 내려칠 듯 성검을 휘저었다.
“히익…!”
“…남자 정력 키우는 방법은 많아. 내가 말로 할 때 말해. 쉽게 가자. 거래하려고 할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이 마지막 갱생 기회라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런…!”
흑마술사는 제 목에 겨누어진 성검에 기겁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목을 숨긴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말해, 이 시발. 시간 끌면 죽여 버릴 거다. 태양뱀을 어떻게 양식했는지, 자세하게 말하라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이 성검 좀 제발…! 히에에엑…!”
닿지도 않았다.
소르톤 마을 대표로 나선 사내에 비하면, 닿았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흑마술사 주제에 겁 하나는 더럽게 많았다.
“태양뱀이 왜 태양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내가 알게 뭐야, 병신새끼야. 필요 없는 말 빼고, 태양뱀을 양식하는 방법 말하라니까?”
“태, 태양 아래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태양뱀입니다. 해가 저물고 나면 흙 속으로 들어가 태양을 통해 얻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버티죠. 녀석들은 겨울이 되면 기나긴 동면에 듭니다. 낮의 길이가 현저히 짧아져, 에너지 효율이 극도로 나빠지기 때문이죠.”
“…….”
흑마술사는 말이 많았다.
애쉬에게 처맞고도 겁을 상실한 듯 주절주절 떠들었다.
퍼억!
“커흡…!”
“내가 네 친구야? 태양뱀 정보 필요 없다고.”
차마 화를 참지 못한 애쉬가 흑마술사의 얼굴을 축구공 차듯 후려 갈겨버렸다.
성검을 휘둘러 죽여버리려는 오른팔, 그것을 막기 위해 파르르 떠는 왼손.
아직 태양뱀에 대한 정보를 다 캐내지 못해서 죽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흑마술사가 피를 토하며 말을 이었다.
“태양뱀이 흡수하는 태양 에너지는 결국 양기를 뜻합니다. 그 양기가 남성의 정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상승효과가 일어나는 것이죠.”
“…양식 방법.”
“태양뱀이 밤에, 달빛을 피해 흙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도록 양기를 공급해주는 겁니다. 거기서 제 마법진이 필요해집니다.”
흑마술사의 톤이 이상해졌다.
장사꾼처럼 가늘어진 목소리로 방문판매라도 온 듯 구구절절한 설명을 시작했다.
“소르톤 마을 사람들에게서 활력을 추출해, 마기로 전환…. 그 중 일부를 태양뱀들에게 먹이는 것이지요. 인간의 활력을 양기로 전환하면, 태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에너지가 생성됩니다. 한 사람당 열 마리의 태양뱀을 양식할 수 있습니다. 아주 극소량의 활력…. 약 삼십 분 뛰어다닌 것 같은 피로감 정도로 말이죠.”
“…한 사람에 열 마리?”
“자연 상태의 태양뱀을 열 마리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뛰어난 사냥꾼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안 됩니다.”
“…….”
애쉬가 태양뱀 독 원액이 가득 쌓여있던 창고 쪽을 흘겼다.
뱀 한 마리 당 추출할 수 있는 독의 양을 계산해볼 때, 비정상적으로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쉬는 창고에서 시선을 거두고 흑마술사와 소르톤 마을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서로 계약을 맺었나? 소르톤 마을은 활력을 일부 제공하고…. 넌 태양뱀 양식장을 운영해주고?”
흑마술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소르톤 마을 사람들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황상, 애쉬의 추론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을 것이다.
지그시 압박하자, 흑마술사가 고개를 들었다.
소르톤 마을 사람들과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곤 느리게 입을 열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용사님이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태양뱀 양식장은 어디에 있지?”
“제 아지트 지하에 있습니다. 소르톤 마을과 협약을 맺은 이후, 조금씩 세를 확장하고 있죠.”
“…보러 가자.”
태양뱀 양식장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조금 누그러진 애쉬를 보며, 흑마술사는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흑마술사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목에 성검이 겨눠진 상태라 반항이나 탈출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소르톤 마을 사람들은 필요가 없었다.
애쉬가 원하는 것은 흑마술사의 태양뱀 양식장이었다.
“너희는 마을에 있어.”
“…예, 알겠습니다.”
사내는 목을 지혈하며 대답했다.
애쉬와 흑마술사를 따라 그의 아지트로 향했다.
흑마술사의 아지트는 소르톤 마을 근처에 있었다.
흑마술사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법한 토굴을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수풀 속에 좁은 토굴이 있다.
흑마술사의 결계까지 쳐져 있는 상태다.
숨는데 도가 튼 흑마술사가 펼친 결계.
웬만한 용사는 이 토굴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애쉬가 토굴을 향해 성검을 찔러 넣었다.
성검에서 연둣빛이 은은하게 피어났다.
애쉬 주위로 모여든 바람이 토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애쉬는 바람을 통해 토굴을 수색하고 있었다.
“…오!”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의 흐름에 집중하던 애쉬가 무언가를 찾아낸 듯 환하게 웃었다.
“진짜네! 태양뱀이 잔뜩 있어!”
“맞습니다. 저는 편하게 마기를 얻고 소르톤 마을은 태양뱀 독을 통해 돈을 얻죠. 서로 윈윈하는 공생 관계인 겁니다.”
“이게 몇 마리야? 백 단위인 것 같은데?”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소르톤 사람들이 태양뱀을 잡아 오면, 저는 놈들이 죽지 않도록 관리했죠. 독을 추출하고 번식을 유도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소르톤은 부유한 마을이 될 겁니다. 여자들을 배 아래에 깔아뭉갤 수 있는 정력을 얻을 수 있는데, 거부할 사내는 없을 테니까요.”
흑마술사는 자신이 완성한 태양뱀 양식장을 당당하게 자랑했다.
자랑스러워 하는 꼴이 우스웠다.
어딘가 핀트가 엇나간 것 같았다.
애쉬는 토굴에서 성검을 뽑으며 말했다.
“이 양식장, 이제부터 내 거야.”
“…예?”
“태양뱀 양식장, 내가 가지겠다고. 꼬아? 꼬우면 흑마술사 말고 용사 하든가.”
“…….”
“표정이 불만으로 가득한 것 같은데. 죽고 싶나봐?”
“아닙니다. 아닙니다. 용사님 가지세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흑마술사는 눈앞에서 태양뱀 양식장을 빼앗겼다.
“…그러면 저는, 살려주시는 겁니까?”
“응. 태양뱀 양식장 관리해야지.”
“…제가 말입니까?”
“그러면? 누가 관리하는데?”
애쉬는 왜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흑마술사를 바라봤다.
당황한 흑마술사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쉬의 물음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이미 발각된 아지트에서 머물면, 제 목숨이 너무 위험해지는데요….”
“내가 커버 해줄게.”
“…예?”
다시 한 번 흑마술사가 되물었다.
흑마술사는 애쉬의 제안에 기겁하며 물러났다.
얼굴 표정에서 손절 의사가 선명하게 묻어나왔다.
“저, 저는 흑마술사입니다. 용사님과 함께 동업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저는요, 그냥 이쯤하고 가볼게요. 용사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야. 뒈질래?”
“히익…!”
애쉬의 성검이 흑마술사 목을 겨누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도망치려던 흑마술사의 몸이 바짝 굳으며 얼어버렸다.
그 틈에, 애쉬가 흑마술사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은빛 마력이 찬란하게 빛나며 흑마술사에게 스며들었다.
“아악! 아아악…!”
“도망치려고 하면 다시는 마법 못 쓰는 몸이 되는 거야. 알아들어?”
“아, 안 돼! 이 악마, 용사를 믿는 게 아니었어!”
“뭐래. 흑마술사라는 새끼가 누굴 믿네 마네 지랄이야.”
“아아아악!”
흑마술사가 몸을 펄쩍 뛰며 반항했다.
마나 로드를 꼬아 행동에 제약을 거는 금제를 새기는 듯했다.
금제와 각인의 다른 점은 딱 하나, 무지하게 폭력적인 제재가 가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안 됩니다…! 용사에게 붙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저는…. 다른 흑마술사들에게 사냥당하고 말 겁니다!”
“괜찮아. 내 태양뱀 양식장이 무너지게 두진 않을 거니까.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보여?”
“용사, 용사를 믿을 순 없다아…!”
“넌 그냥 태양뱀 개체수나 늘려. 소르톤 마을에 처박혀 얌전히 있으면, 마왕 바알을 잡기 전까지는 안 죽게 해줄 테니까.”
금제가 내려졌다.
흑마술사는 닭똥 같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훌쩍거렸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 큰 남자가 저러고 있으니 꼴 보기가 싫었다.
“적당히 처리했다고 보고할 거니까. 숨어서 양식장이나 잘 관리해. 한 달에 한 번, 태양뱀 독을 회수하러 올 건데…. 내가 요구한 물량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지 알지? 처신 잘하라고.”
“…악마! 니 년은 악마…! 끄르르르륽…!”
흑마술사는 할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애쉬의 금제가 작동한 것이다.
“알아서 하겠지. 돌아가자, 강아지.”
쓰러진 흑마술사를 방치한 채, 애쉬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소르톤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 작당모의라도 하는 듯 공터에 모여있었다.
“용사님! 용사님!”
우리를 발견한 한 중년 남자가 쏜살같이 달려나왔다.
“왜.”
기분 좋은 듯 애쉬는 흥겨운 목소리로 답했다.
중년 남자는 애쉬에게 굽신거리며 간절하게 말했다.
“젊은 것들은 죄가 없습니다. 제가 저희 마을을, 흑마술사에게 팔아넘긴 겁니다!”
“응?”
중년 남자가 석고대죄를 했다.
그 뒤를 이어, 소르톤 마을 노인들이 순서대로 애쉬 앞에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저 녀석들은 관계없습니다! 저희 늙은이들이 문제입니다!”
“교단에, 교단에…! 저희가 자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진해서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겠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용사님!”
소르톤 마을 노인들이 애쉬 앞에서 기었다.
젊은 청년들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늙은이들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자신들 선에서 일을 끝내려고 했다.
마을의 존속을 위해서.
애쉬는 무덤덤한 얼굴로 노인들을 훑어봤다.
노인 몇이 죽고 사는 것은 애쉬에게 있어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여기, 태양뱀 독 원액 추출 기술자 있나? 내가 처음에 물어봤는데,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된 것 같아.”
“…접니다! 제가 이 마을, 최고령 기술자입니다.”
노인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노인답지 않게 쩍 갈라진 근육을 지닌 할아범이었다.
땡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관리하지 못해 까무잡잡한 얼굴.
애쉬는 노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인류를 배신한 점, 교단 측에 보고되면 즉시 처형감인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용사님, 한 번만 선처를 해주십시오…! 저 어린 것들은 죄가 없습니다. 돈에 눈이 먼, 저희가 문제인 겁니다…!”
“그래, 그래. 내가 지금 당장 너희를 처형해도, 나에게 죄를 물을 사람은 없을 거야. 흑마술사가 마기를 모을 수 있도록 협조했으니까.”
“맞습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는 자에게만 천벌을 내려주십시오. 저희 늙은이들이 죄인입니다….”
노인들은 손이 닳도록 빌었다.
어떻게든 용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최대한 불쌍해 보일수록 마을 청년들을 많이 살릴 수 있으리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왜? 용사님이 할머니를 왜 괴롭히는 거야?”
“쉿…. 어쩔 수 없단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터에 모여있는 소르톤 사람들은 노인들의 희생을 울먹거리며 바라봤다.
보통의 용사라면 이 광경을 보고, 노인들을 모르는 척 봐주었을 것이다.
더 나은 생계를 위해 인류를 배반한 배신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선에서 묻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쉬는 보통의 용사가 아니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용사.
좆같은 용사, 개씨발 용사, 그냥 온갖 욕설을 수식어로 붙이면 어울리는 용사.
“태양뱀 한 마리에 독을 얼마나 추출할 수 있지?”
“…….”
갑자기 튀어나온 질문에, 노인이 잠깐 머뭇거렸다.
“저희 마을이 취급하는 병. 그 한 병을 채우는데 스무 마리가 필요합니다.”
“하루에 몇 병 만들 수 있어?”
“…양식장 쪽에서 내어주는 태양뱀의 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평균적으로는 하루에 반 병….”
“양식장이 커지면 더 많이 만들 수 있겠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노인은 살짝 고개를 들고 애쉬를 올려다봤다.
애쉬는 대강 계산을 끝마친 후에 입을 열었다.
“한 달에 태양뱀 독 열 병. 그게 너희 할당량이다.”
“예?”
“다 살려줄게. 흑마술사도 안 죽였어. 대신 한 달에 한 번 들를 테니까. 그 때마다 태양뱀 독을 열 병 만들어서 내놓으라고.”
애쉬의 요구에, 노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힘든 듯 섣불리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그 때, 젊은이들 중 하나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아까 애쉬에게 사소하게 베였던 사내였다.
“용사님, 알겠습니다. 한 달에 열 병. 용사님과 남자친구분을 위해 만들어두겠습니다! 저희 소르톤 마을의 특산품, 용사님이 원하시는 만큼 지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용사님!”
“그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용사님의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사내의 눈빛이 빛났다.
그의 입장에서 회심의 카드를 날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너를 믿을 수 있는 확신을 달라.
사내는 나와 애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내 개목걸이를 향하고 있었다.
애쉬는 사내의 꿍꿍이를 알아차렸다.
모를 리가 없었다.
“애쉬. 애쉬 그레이필드.”
가소로운 듯 비웃은 애쉬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애쉬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노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살았구나, 얼굴에 근심 걱정이 화악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