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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47화 (47/109)

〈 47화 〉 최강의 용사(12).

* * *

빈센트를 비롯한 린과 소우타는 일주일의 휴식을 받았다.

내가 애쉬와 함께 로브로렌에 다녀오는 개고생을 하는 동안 그들은 아무 방해 없이 푹 쉬었다.

잠깐 불러내서 일을 시킨다고 해도 크게 힘든 티를 내면 안 된다.

‘그건 진짜 양심 없는 거지.’

나는 별채 앞에서 소우타를 기다렸다.

별채를 관리하는 유테론의 하녀들이 소우타를 보내주었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형.”

소우타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성큼성큼 뛰어 내려오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최선을 다해 쉬었다는 게 느껴졌다.

‘시발.’

누구는 용사 노리개로서 역할을 다하고 왔는데.

누구는 용돈 받아서 놀고 먹으면서 휴식 하다니.

“소우타.”

“네, 형.”

“기술을 단련하는데에는 실전이 최고겠지?”

“…‘해제’나 ‘소매치기’ 같은 경우에는 이론보다 실전이기는 하죠. 길바닥에서 먹고 살기 위해 훔치다 보면 실력이 금방 늘거든요.”

소우타의 스킬 랭크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건 주인공 용사 루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루크는 자신과 상대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주인공을 위한 완벽한 어드밴티지 레벨 업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소우타가 될성부른 떡잎이란 건 알았다.

애쉬가 파티에 영입한 것이 그 증거다.

‘린과 다른 케이스야.’

린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에 가깝다.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매달리니까 짐꾼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소우타는 달랐다.

내 가정교사 역할을 위해 콕 찝어서 스카우트 해왔다.

잠재력이 보장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애쉬 없어서 나도 자유 시간이거든? 지금 거리에 나가서 ‘소매치기’ 해보려고 하는데, 좀 봐줄 수 있냐?”

“좋아요. 실전 도와드릴게요. 걸려도 용사님이 계시니까 손목이 날아가거나 하진 않겠죠.”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똑똑하네.”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 이용해 먹어야죠. 용사 파티의 최고 장점은 용사님의 권력 그 자체니까요.”

더욱 생생한 ‘소매치기’ 실습을 위해 후줄근한 옷을 갖추어 입고 거리로 나섰다.

“제가 먼저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소우타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소매치기가 걸리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소우타가 시장 거리를 앞서 걸었다.

나는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소우타를 뒤따랐다.

“이 사과, 얼마에요? 싱싱하네.”

“하나에 1실버. 근데 셋에 2실버.”

“세 개만 주세요.”

아줌마가 가게 앞에서 과일들을 둘러보고 있다.

소우타는 아줌마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소매치기.

내 레벨로는 소우타의 손놀림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한 건을 끝낸 소우타가 물 흐르듯이 걸음을 옮겼다.

아줌마는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웬만한 사람들은 눈 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는 솜씨였다.

소우타를 따라 뒷골목으로 향했다.

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벽에 기댄 채 기다리고 있는 소우타를 만날 수 있었다.

“어때요, 형?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하죠?”

소우타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은화 한 닢을 끼워 보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자랑스레 웃었다.

“라베루스에 있을 때는 계속 이걸 반복해서 돈을 벌었냐?”

“네. 걸리지 않게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죠. 한 곳에서 계속하면 무조건 걸리거든요. 저희는 한 번 걸리면 손목이 날아가서, 절대 잡히면 안 돼요.”

“손목 날아가는 거, 실제로 본 적 있어?”

“경비대에 잡혀간 후에…. 손목 하나 없이 돌아오는 애들은 많이 봤어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오른손이 날아가면 밥 먹기가 힘들고 왼손이 날아가면 딸 치기가 힘들다.

어느 손 하나도 놓칠 수 없다.

‘만약 애쉬가 없었다면 나는….’

노예 상인에 의해 누군가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나를 산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내 몸값을 회수하기 위해 나를 굴렸을 테고.

혹사당하기 시작한 내 몸은 얼마 가지 못해서 망가지고 말겠지.

‘…음….’

예쁜 아가씨가 재워주고 먹여주고.

자지 흔들어주고 불알 주물러주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정 관리 정도는 괴롭힘 축에도 못 들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뒷골목에서 살아본 적 있지?”

“태어난 이후로 쭉 용사님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계속, 뒷골목에서만 살았어요. 교회에서 부모 없는 고아들에게 쪽방을 내어주거든요. 그곳에 모여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다들 그렇게 살아요.”

“거기서 사는 거랑 애쉬 파티를 따라다니는 거, 둘 중에 뭐가 더 나아?”

“당연히 용사님 파티가 훨씬 좋죠.”

소우타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건, 그냥 지옥이에요.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맞아요. 조금 더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반항도 못 해요. 제대로 못 컸거든요. 잘 먹고 잘 쉬면, 그런 놈들 정도는 가뿐하게 이길 수 있을 텐데.”

“뒷골목에 비하면 애쉬의 파티는?”

“천국이죠. 전 지금이 너무 좋아요. 뒷골목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못 갈 것 같아요.”

소우타가 눈을 빛내며 내 손을 붙잡았다.

괜히 불쾌해져서 녀석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소우타는 개의치 않은 듯 나를 향해 말했다.

“아마 쓸모가 다 하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가게 되겠죠. 용사님의 파티는 더욱 강한 사람이 채워질 거고요. 그날이 최대한 늦게 오도록….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제 가치를 증명할 생각이에요. 하루라도 더 파티에 머물고 싶거든요.”

“…성숙하네.”

겉보기와 다르게 엄청 성숙했다.

내가 소우타의 나이일 때는 고작해야 술래잡기나 하고 다녔는데.

소우타는 사람들 뒷주머니를 털면서 진짜 경비와 도둑을 찍었다.

세계가 세계인지라, 어른답게 생각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에겐 아이로서 남아있는 것이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성숙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소우타가 말했다.

“파티에서 저의 가치는 형에게 기술을 알려주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겠죠? 왜 이런 쓸모없는 기술들을 배우시려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클래스가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자신의 클래스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간다.

타고난 클래스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소우타의 경우에는 얼떨결에 도둑 클래스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꼴이었다.

클래스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막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알려드릴게요. 제가 경험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 업계 비밀까지 탈탈 털어서 전수해드리겠습니다.”

“그거 참 고마운 말이네.”

잡담은 여기서 끝이다.

슬슬 실습에 돌입할 타이밍이었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해요. 상대에게 걸리지 않고 빼내야 하는 거라서, 정확성과 속도가 생명이에요. ‘소매치기’는 상대에게 걸리는 순간, ‘소매치기’가 아니게 되거든요.”

‘소매치기’ 당한 상대는 자신이 ‘소매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알아차리더라도 소매치기가 범행장소를 벗어난 뒤에 깨닫도록.

“달리기도 빠르면 좋아요. 그런데 저 같은 애들은 재능에 한계가 있어요.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과 더욱 빠르게 달리는 법. 두 가지 모두를 익힐 순 없어요.”

“뭔 소리야.”

“이 세상에는 ‘마나’라는 게 있다고 해요. 체내에 뚫린 ‘로드’를 타고 흐르는 무형의 기운이라는데, 그 마나를 기술에 응용하는 거예요.”

“아.”

멍청한 소우타가 이상하게 설명할 때는 이해가 어려웠다.

하지만 마력을 들먹인 이후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나’, ‘로드’, 오러를 다루기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기초적인 내용이다.

사칙연산 레벨에 가까운 기본이라는 의미다.

“저도 제가 마나를 써먹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용사님이 알려주시기 전에는….”

“애쉬가 알려줬어?”

“네. 내가 본능적으로 뚫어놓은 로드를 형한테 알려주래요.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같이 연습하다 보면, 얼추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내 수준에 맞는 상대.

F랭크의 ‘소매치기’를 쉽게 당해줄 것 같은 호구.

감각이 둔감한 노인 정도가 적당할 듯싶다.

알맞게 소우타가 대상을 지정했다.

“저기, 할아버지 보이세요?”

“보여.”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걸으신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

스치듯 지나가면 아예 모를 것 같았다.

“가죽 주머니도 허리춤에 달고 있어요. 잽싸게 끊어서 낚아채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알아.”

“장소도 좋아요. 사람도 적지 않고요.”

소우타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도 나 자신과 애쉬의 권력을 믿었다.

‘스킬이니까. 적당히 보정 효과가 붙어, 나를 도와주겠지.’

‘감정’은 내가 모르는 정보를 읽어서 보여주고, ‘해제’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장치를 해제한다.

‘소매치기’도 마찬가지.

직접 움직여서 뜯어내는 소우타와 다르다.

나는 내가 직접 힘겹게 털어낼 필요가 없다.

물론 스킬을 발동하면 내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내 스킬 랭크와 상대 레벨에 따라 성패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인데도 굳이 실습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더욱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

스킬로 등록되어 있어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스킬 성장에 도움이 된다.

티끌이라도.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노인은 내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 신경 쓰지 못했다.

자신의 걸음을 옮기느라 집중하고 있었다.

‘후우.’

긴장되는 순간.

스킬, ‘소매치기’를 발동했다.

탁!

“…어?”

내 손은 F랭크 ‘소매치기’에 걸맞은 손놀림을 보여주었다.

나름 능숙하게 움직이는 손에 맞추어서, 노인이 팔을 들었다.

내 ‘소매치기’를 피한 것이다.

노인은 한쪽 팔을 들고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흐리멍텅하던 눈에 총기가 깃들었다.

보통 할아범이 아니었다.

허공을 가르고 있는 내 손가락들이 애처롭다.

“…뭐하는 놈이냐, 너?”

노인의 목소리는 굵고 묵직했다.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속은 누구보다 단단하고 굳건했다.

잘못 걸렸다.

호구 잡으려다가 내 손목 날아가게 생겼다.

“…에라이, 시발!”

노인을 피해 달아났다.

멀리서 지켜보던 소우타도 36계 줄행랑을 실시했다.

‘일단 유테론 저택으로 돌아가자.’

내 ‘소매치기’를 피할 만큼 나름 잽싼 것 같았지만 다 큰 성인의 달리기를 쫓아올 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주머니를 훔쳐 가려고 했으니, 네 놈 손목을 가져가도 되겠지?”

“히에엑!”

아까 전의 떨림은 연기였다는 듯 노인은 청년 못지않게 날쌘 뜀박질을 보여주었다.

내 뒤를 태연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노인이 팔을 뻗었다.

내 개목걸이를 잡아 당겼다.

내 몸이 뒤로 넘어갔다.

눈 감았다 뜨니까, 노인의 아래에 깔려 있었다.

제압 당한 것이다.

“이익…!”

“이런 목걸이를 차고 따라오는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가?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어. 감정이 담겼잖아.”

“스미마셍…!”

“사과한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남의 것을 탐하려고 한 그 손, 그것으로 죗값을 치러라.”

“좆 까는 소리 하지 마앜…!”

즉결심판은 불가능하다.

노인에겐 그런 자격이 없다.

나는 최대한 발버둥 쳤다.

‘벗어날 수가 없다…!’

힘에서부터 밀린다.

노인은 생각보다 강했다.

노인이 품에서 도끼를 꺼냈다.

왜 저런 흉악한 무기를 숨기고 다니는 건지 의문이었다.

“도끼를 왜 꺼내는 겁니까…!”

“즉결심판이다.”

“…즉결심판할 권한이 어디 있죠? 시발, 경비병도 뭣도 아니면서 지랄 마십쇼!”

“나한테는 즉결심판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왜 그런 줄 아는가?”

유테론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나를 보는 눈빛들이 심상치 않았다.

“마론. 놈이 무슨 죄를 저질렀나요?”

“안 봐도 뻔하지. 못된 손을 가진 쓰레기인 거야.”

“손목을 날려버려요. 다시는 그런 짓 못하도록.”

유테론 사람들은 노인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동네 이웃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더 깊게 아는 사이인 느낌.

노인은 품에서 뱃지 하나를 꺼냈다.

금색 방패와 칼 한 쌍이 교차한 모양의 뱃지.

그리고 그 중앙에는 유테론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경비대장이었다. 10년도 전에 은퇴했지만.”

“뭐…?”

“경비대장이었기 때문에, 즉결심판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네 놈의 손목을 자르고 유테론 남작님께 보고를 올리겠다.”

“잠깐만….”

상황 돌아가는 게 이상하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나와 노인을 둘러쌌다.

군중은 말리지도 않고 관전을 했다.

“저 용사 동료입니다. 시발, 저 건드리면 다 좆 되는 겁니다!”

“용사 동료가 다 늙어 힘 없는 노인을 상대로 소매치기를 하는가? 자네가 생각하기에, 말이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하는가?”

“…제가 생각해도 애미가 없기는 한데요.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5분만 기다려주시죠. 용사를 데리고 올 테니까아아아아아앜…!”

노인이 내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어깨를 힘으로 짓누르며 내 오른 손목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쩌엉­!

“……!”

노인의 도끼가 산산조각 부서졌다.

은빛의 마력 강기가 내 손목을 감싸고 반짝거렸다.

“이, 이게 뭐여…?”

은빛의 마력.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다.

애쉬 그레이필드.

‘어째서, 애쉬의 마력이 내 손목을 보호해주고 있는 거지…?’

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 등이 가벼워졌다.

“…커억!”

콰앙­!

나를 짓누르고 있던 노인, 마론이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어찌 된 영문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애쉬 쨩! 애쉬 쨩………!”

바람에 흩날리는 잿빛 머리카락이 너무 반가웠다.

눈물을 찔끔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애쉬의 등….

보다는 커다란 젖가슴이 너무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강아지 손목을 자르려고 했네…. 그걸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고….”

“…애쉬…?”

“씨발개좆같은년놈들, 목으로 갚아야지.”

애쉬가 성검을 뽑아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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