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최강의 용사(7).
* * *
애쉬가 드레이크를 죽였다.
세간에는 절대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낼 테니까.
에르윈도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다.
둘이서 무슨 꿍꿍이를 꾸몄다는 게 느껴졌다.
‘애쉬, 존나 강하구나.’
회귀 시점이 내 예상보다 빠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애쉬는 원작이 시작되는 시간대보다 훨씬 이른 시간대에서부터 시작했다.
보통 용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최강의 용사 드레이크를 참살할 정도라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드레이크 이 시발새끼.
괜히 애쉬한테 껄떡거리고 하더니 꼴이 좋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나저나 아쉽게 됐네.’
최강의 용사라는 칭호는 엿 까먹는 것 마냥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재능과 노력과 행운이 받쳐줘야 최강의 용사가 될 수 있다.
강한 용사 하나를 어처구니없게 잃었으니 향후 전개에 있어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상관없나?’
애쉬에게 의욕이 없다면 위험한 변화다.
하지만 애쉬는 최선을 다해 용사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고 있었다.
입이 험하고 손버릇이 굉장히 나빴지만.
오히려 좋은 흐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기회였다.
애쉬가 말했다.
“바람의 룬 찾으러 가자.”
드레이크가 실종되었다.
드레이크의 여자들은 그를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부산한 움직임에도 애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때, 드레이크의 하렘 멤버들이 애쉬에게 다가왔다.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드레이크님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드레이크님이랑 마지막에 같이 있었을 텐데요?”
“애쉬님도 드레이크님 수색을 도와주셔야죠.”
쏘아대는 여자들의 모습에 애쉬가 인상을 구겼다.
드레이크를 죽인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모른다고. 시발걸레년들아.”
애쉬는 드레이크의 여자들에게 걸쭉한 욕설을 뱉은 후 등을 돌렸다.
여자들은 애쉬를 향해 부들거리고 있었다.
“가자, 강아지.”
“…그래.”
나는 얌전히 애쉬를 따랐다.
목줄을 잡아당기는 애쉬의 힘을 거부하지 않았다.
반항한다고 이길 수 있을 리도 없다.
순응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
마차에 가까이 갔다.
마부가 헐레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용사님!”
마부를 깜빡하고 있었다.
그는 말들을 관리하며 마차에서 쪽잠을 잔 듯했다.
끼니는 대충 가지고 있던 것으로 때우고서 말이다.
“…….”
꼴이 말이 아니었다.
히이이이잉!
마차가 출발했다.
촌장에게 인사도 안 하고 런 때렸다.
상대가 용사니까 그러려니 해주리라 믿는다.
마차에 출발하자마자 애쉬가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자, 이거.”
“…이게 뭔데?”
“알아서 ‘감정’ 해봐. 아마 안 될걸?”
투박한 은색 팔찌인데 오색찬란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다.
내 주제에 가져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반짝반짝한 팔찌였다.
“드레이크 죽이고 가져온 거지?”
“웅? 드레이크? 내가 안 죽였는데?”
애쉬는 모르는 체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도 않게 귀여운 척을 해대면서.
‘…예쁘긴 더럽게 예쁘네.’
나는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어째선지 자지가 발기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발기조차 통제되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정상….
“흐흫.”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애쉬를 바라봤다.
애쉬가 히죽 웃고 있다.
“빨리 착용해봐.”
애쉬는 내 자지 상태를 모르는 척 했다.
두 눈동자가 내 가랑이 사이로 굴러가는 게 훤히 보이는데도.
‘이 년이 일부러….’
각인에 의해 발기를 통제 당하고 있다.
자지가 섰다는 것은 애쉬가 발기 제한을 해제했다는 의미다.
나도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감정’에 실패하였습니다.]
‘감정’을 사용해도 성능을 읽을 순 없었다.
무려 용사의 장비니까.
나는 드레이크의 것이었던 팔찌를 착용했다.
따스한 힘이 내 몸을 감싸 안아주었다.
무슨 효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을지 기대된다.
‘감정’ 랭크가 높아지면 자세한 정보를 확인해볼 수 있겠지.
아니면 실전 속에서 몸으로 직접 체감을 하든가.
‘그건 좀.’
웬만하면 실전을 피하고 싶다.
피할 수 없는 실전은 어쩔 수 없겠지만.
유혈이 낭자하는 전투에 내 스스로 기어들어가긴 싫다.
평안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즐기는 게 꿈이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지.’
이 세상에서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모든 시대가 마찬가지이기는 한데 이런 세상은 특히 심했다.
판돈이 내 목숨이라서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마차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잠깐 졸았다가 깼다.
애쉬가 내 자지를 건드리지 않아서 오랜만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똑똑.
─ 용사님,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마차를 세웠다.
말들이 푸닥거리며 제자리에 섰다.
“흐그으윽…!”
힘차게 기지개를 켜며 마차에서 내렸다.
앞서 내린 애쉬가 주변을 둘러봤다.
울창한 숲속에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쭉 이어져 있다.
우리가 달려온 길이었다.
“더 이상 마차로는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걸어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마부는 이 자리에서 멈춘 이유를 애쉬에게 설명했다.
가는 길이 이질적으로 막혀 있다.
바람의 룬을 지키고 있는 가디언이 벽을 세워둔 것이다.
잔가지들로 막혀있는 것을 보며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 다 잠깐 대기하고 있어.”
애쉬는 바람의 룬이 잠들어 있는 장소로 혼자 들어가기로 했다.
시련을 겪는 것은 용사 하나.
우리가 따라 들어가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드레이크가 따로 표시해준 지도에는 고요한 바람의 성지라고 적혀 있다.
수많은 모험가 중 누군가에게서 룬에 대한 정보를 산 게 틀림없다.
이런 유치찬란한 지역명칭은 죄다 모험가들의 짓이니까.
‘참 신기하단 말이야….’
원작 설정이 그렇다, 라고 생각하면 금방 납득할 수 있다.
납득했다고 해서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용사가 죽으면 또 다른 용사가 탄생한다.
성검은 용사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용사가 죽으면 해당 용사의 성검도 소멸된다.
흡수한 룬도 용사와 성검을 따라 사라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일정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무한정 공급되는 용사나 성검과 달리 룬의 개수는 한정적이다.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계속 줄어들기만 하는 구조다.
주인공 용사 루크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대륙에 분포되어 있는 룬이 바닥을 보인다.
루크의 세대가 마왕 바알을 끝장내야 하는 마지막 용사가 되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마왕이 알아서 넘어온다는 거지.’
적당한 타이밍에 대륙 곳곳에서 마계침식이 진행된다.
원작 전개대로라면 아카데미 졸업 후 용사 4년차.
주인공 루크가 21살이 되는 시점이다.
흑마술사들의 술수가 빛을 발해 악마들이 차례로 넘어온다.
소환이 아닌 강림.
서로 목숨을 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우리는 멍하니 마차에 기대 애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나와 에르윈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에르윈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내 몸으로 들어온 슬라임이 떠올랐다.
‘…시발.’
그 날부터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소변 눌 때를 제외하면 갈 이유가 없었다.
나는 슬쩍 에르윈에게 말을 걸었다.
“애쉬가 왜 에르윈 씨를 데리고 온 걸까요? 혹시 이유를 아세요?”
“6천 루나를 지불하겠다며, 따라오라고 했어요.”
에르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동행하기 싫어하던 에르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협박을 곁들였을 것이다.
면전에서 죽여 버리겠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안 가고는 못 배기니까.
“6천 루나, 아마 이거겠죠?”
에르윈을 향해 손목을 흔들어보였다.
마부가 말을 돌보고 있어서 직접 말할 수 없었다.
의미는 통했다.
에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
드레이크를 죽여서 에르윈에게 돈을 갚는다.
드레이크의 행적을 알아야 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애쉬는 드레이크가 자신을 쫓아올 것이란 걸 대강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다.
‘불쌍한 드레이크.’
처음부터 애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애쉬를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경계했다면.
죽지 않고 살아서 하렘들과 쿵떡쿵떡 잘 지냈을 텐데.
드레이크를 따라다니던 여자들만 불쌍하게 됐다.
‘대놓고 좆집 취급 받겠네, 이제.’
실력이라도 있는 여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내세울 만한 실력조차 없는 여자들은 드레이크의 노리개였다는 평가를 평생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러한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돈 받았다니까 다행이네요.”
“…….”
에르윈은 말이 없었다.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느낌도 조금 있고.
이유가 궁금해졌지만 묻지는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이젠 이 적막을 어떻게 깨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대꾸도 안 해주는 여자를 데리고….
‘쯥, 나도 몰라. 시발.’
빨리 애쉬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 때였다.
에르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은 경험이 있나요?”
“…경험이요?”
“섹스요, 섹스. 해본 적 있냐구요.”
“…….”
이런 시발.
무례한 년을 봤나.
당장에 욕을 때려 박아야 하는데.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대답을 뱉고 말았다.
“해봤는데요?”
“경험이 얼마나 되나요?”
“…한….”
몇 번 정도가 괜찮을까.
“…그걸 일일이 세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정확한 숫자로 말하기가 힘들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에르윈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내 표정에서 진실을 알아내려는 듯했다.
‘시바알….’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자존심이 팍 상해버렸다.
“제대로 말씀해주셔야 조절할 수 있어요.”
“…아, 모릅니다. 저한테 묻지 마세요.”
에르윈을 뒤로 하고 거리를 벌렸다.
몇 번 해봤냐는 질문에서 도망쳤다.
에르윈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혔지만 가뿐하게 무시했다.
‘도대체 왜 물어본 거지?’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차에서 애쉬가 말하던 제안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10분 정도가 흘렀다.
고요한 바람의 성지를 가로막고 있던 잔가지들이 물러났다.
벽이 사라졌다.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서 애쉬를 기다리기로 했다.
5분 정도가 더 흘렀다.
애쉬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3레벨이 된 성검을 손에 쥐고서 당당하게.
“돌아가자, 유테론으로.”
시간이 애매해서 한 번에 유테론으로 가진 못할 것 같다.
촌장 집에서 자고 가든가 아니면 가는 중에 노숙을 하던가.
애쉬는 촌장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야영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우리는 로브로렌으로 복귀했다.
촌장은 다시 우리를 반겨주었다.
“용사님! 벌써 의뢰를 처리하신 겁니까? 역시 용사님입니다!”
“…의뢰?”
“예! 유테론 남작님께 도움을 청한 마을 의뢰!”
들어본 적도 없다.
애쉬가 보인 반응은 아무것도 모르는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전혀 모르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촌장의 안색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애쉬는 그런 촌장의 변화에도 아랑곳 않고 태연하게 방을 요구했다.
“하루만 더 쉬고 돌아갈게. 그래도 되지?”
“…예, 상관은 없습니다만…. 저희 마을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야지.”
“그런…!”
애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촌장을 쳐다봤다.
의뢰에 대해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안 돼…!’
애쉬는 최강의 용사가 되었다.
당장은 드러나지 않겠지만 대륙을 떠돌면서 일들을 처리하다보면 결국에는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 때를 위한 명성 관리가 중요해졌다.
원작에선 제 멋대로 좆같이 행동하는 바람에 평판이 바닥을 쳤다.
때문에 양자택일의 순간에서 애쉬를 버리는 패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주인공 루크를 구할 것인가.
모든 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미친개 애쉬를 구할 것인가.
만인의 선택은 하나였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모두가 애쉬를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가질 수 있게 애쉬의 명성을 관리해야 한다.
조금이나마 이미지를 챙겨두자는 의미다.
“뭐가 문제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촌장님?”
그래서 내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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