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최강의 용사(6).
* * *
별빛이 수놓은 밤하늘.
애쉬와 강아진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섹스와 관련된 내용이 나왔다.
“…맨날 섹스섹스 노래를 부르는데…. 솔직히 말해봐. 너, 해본 적 없지?”
애쉬는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강아진을 향한 화살은 피할 수 없도록 정직한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강아진은 애쉬를 어색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 존나 많이 해봤지.”
“에이, 지랄하지 마.”
애쉬가 낄낄거리며 강아진을 비웃었다.
이제까지 함께한 시간만 2년이다.
누구보다 오래 지켜보고 많이 알게 됐다.
그런 시간 끝에 애쉬가 내린 결론이었다.
강아진은 모태솔로에 동정이다.
입으로는 자신이 남자다 뭐다 막 주절거리지만.
애쉬의 눈에는 다칠까봐 무서워 가시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너 모솔아다잖아, 병신아.”
“아니라니까!?”
강아진은 버럭 화를 내지르며 부정했다.
진심으로 화를 냈다.
살벌한 강아진의 눈빛에 애쉬가 흠칫 머뭇거렸다.
머릿속에 한 마디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진짜로 아니야?’
강아진이 모태솔로 동정이 아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한 가능성은 한 줄기의 불안감을 만들어냈다.
애쉬의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지랄하지 말라니까?”
애쉬도 정색을 했다.
처음이 아니야?
‘…진짜?’
애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당당한 강아진의 태도를 보면서 왜 분하고 서러운 마음이 드는 건지 그 이유를 몰랐다.
“…….”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숨 막힐 듯 어색한 분위기에 애꿎은 불꽃만 크게 들썩였다.
애쉬는 멍한 얼굴로 모닥불만 쳐다보고 있었다.
강아진은 그런 애쉬를 힐끔 쳐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거짓말 할 순 없잖아.’
첫 경험에 대해 환상을 가진 적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강아진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
소년소녀가 서로를 통해 남자여자가 되는 그런 소박한 바람을 꿈꾸었었다.
이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처음을 잃었다.
“마, 말해봐. 네가 동정이 아니라는 근거를 대보라고.”
이 상황이 못내 억울한 애쉬는 손발을 부들거리면서 노발대발 소리쳤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쉬와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각성에 도달할 확률이 높아진다.
자지털 개수나 똥꼬털 개수는 못 알려주겠지만.
정말 사소한 인생굴곡 정도는 공유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
강아진은 잠깐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애쉬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참혹한 경험담이 강아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힘을 가지고 있는 애쉬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빼앗겨본 경험이 극히 드물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빼앗기더라도 어떻게든 복수를 했고 다시 되찾아왔다.
용사인 애쉬와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빼앗긴 것을 다시 돌려받지 못했다.
기회가 생기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을 빼앗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유 모를 안도감과 동정심이 애쉬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애쉬는 씁쓸한 눈으로 강아진을 흘겼다.
축 늘어진 꼴이 꼭 비에 흠뻑 젖은 강아지 같았다.
달래주고 싶었다.
입에서 멋대로 말이 튀어나갔다.
“…그럼 네가 스스로 한 건 없는 거네.”
“뭐?”
“네가 직접 여자를 침대에 자빠뜨리고 박아본 경험은 없는 거잖아. 안 그래?”
“…….”
강아진은 곰곰이 생각을 되짚어갔다.
좆같은 첫 경험 때문에 웬만큼 예쁜 년들이 아니면 발기가 안 된다.
강아진의 좆이 반응할 정도로 예쁘장한 여자들은 강아진에게 관심도 없다.
수컷의 사냥본능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사냥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풋내기였다.
애쉬가 있는 힘껏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동정이네. 병신.”
“…지랄 마.”
“시발, 누구한테 따먹히기만 한 새끼가 무슨.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내 말대로 모태솔로도 맞는 말이잖아.”
“…아니라고.”
강아진이 이를 빠득 물었다.
강간당한 경험을 횟수에서 제외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의문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지우고 싶은데 지우기 싫다.
모순적인 감정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강아진은 눈을 좁게 뜨고 애쉬를 노려봤다.
“…지는.”
“여성의 처녀성은 남성의 동정과 달라. 그 가치에서 완전 차이가 나지.”
애쉬는 입 꼬리를 비열하게 말아 올렸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강아진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교환이라고 생각했다.
“…….”
모닥불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하면 좋을 것 같은 분위기네.”
“아가리 닥쳐, 병신아.”
애쉬는 혼자 중얼거리는 강아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적어도 이 모든 여정이 끝난 다음에.
그 때 조용한 동네에서.
‘이 새끼 오두막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오붓하게.
* * *
드레이크를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짜증나네.’
검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검 때문에 괜히 번거로운 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냥 죽여 버릴 수 있는데.’
애쉬는 회귀를 했다.
어린 시절로 회귀를 해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용사 클래스를 각성하고 성검의 주인이 되기 전에 경지를 올려두었다.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산속에서 끊임없이 육체를 단련했다.
그 끝에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새벽 밤늦은 시간.
드레이크가 촌장의 집에서 나왔다.
그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다.
“애쉬도 결국은 여자구나?”
그의 가랑이가 불룩하게 부풀어 있다.
노골적으로 흥분한 모습이 불쾌했다.
애쉬는 드레이크를 불러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부질없는 내용이었다.
“성검에 어떤 힘이 있는지 보여줄 수 있어?”
“궁금해? 흠, 아카데미에서 막 졸업했으면 궁금할 만도 해.”
모든 것은 드레이크의 성검으로 이어지기 위한 빌드 업.
드레이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성검을 소환했다.
‘부끄러울 수 있지, 음.’
만나자마자 물고 빨고 쑤셔 박는 것이 쑥스러운 듯했다.
애쉬가 원하는 것을 대강 들어주다가 슬쩍 바지를 벗기고 박으면 될 것이다.
애쉬는 드레이크의 성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성검을 뒤로 뺐다.
그리고 경고했다.
“용사끼리도 성검은 공유가 안 돼. 다른 용사의 성검을 만졌다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웬만하면 조심해.”
“한 번 잡아보는 것도 안 되나? 힘만 안 쓰면 되잖아.”
“…….”
드레이크는 잠깐 고민했다.
결정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잡고 휘두르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따로 힘을 써보려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마.”
“알았어.”
드레이크가 애쉬에게 성검을 건넸다.
애쉬는 15레벨의 성검을 손에 쥐었다.
‘…음?’
아무런 반응도 없다.
제 주인을 만나기라도 한 듯 애쉬의 손에서 얌전하게 있었다.
“어떻게 된….”
서걱.
드레이크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끝맺어지지 못했다.
시각과 청각 신호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의식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애쉬는 15레벨인 드레이크의 성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어냈다.
은빛의 강기가 찬란한 빛을 뿌렸다.
드레이크가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인을 잃은 성검이 소멸했다.
줄어든 용사의 수만큼 새로운 용사가 나타날 것이다.
이미 용사인 애쉬에겐 딴 나라의 이야기였다.
“에르윈, 이제 와도 돼.”
애쉬는 에르윈을 불렀다.
“…….”
에르윈은 자기 방 안에 누워있었다.
애쉬가 부르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인상을 찡그리며 밖을 내다봤다.
“……!”
대놓고 널브러진 시체가 보였다.
애쉬를 향해 노골적으로 찝쩍거리던 드레이크였다.
에르윈은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일을 저질러버린 애쉬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6천 루나. 여기 6천 루나짜리 시체 있어. 우와, 용사라서 그런지 장비가 최고 수준이네. 다 팔면 6천 루나는 기본이겠는데?”
우왕좌왕하는 에르윈을 꼬드겼다.
애쉬는 에르윈에게 헛바람을 솔솔 불어넣었다.
마력이 스며든 목소리라서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에르윈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드레이크의 시체에서 정기를 뽑아낼 수 있다.
최강의 용사니까 가지고 있던 장비도 분명 수준급일 것이다.
그 가치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근데 잠깐만.’
에르윈은 무난한 흐름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저 미친년이 최강의 용사를 죽여 버렸어? 어떻게…?’
에르윈의 머리가 다시금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확실한 조건 하나가 반짝거렸다.
‘애쉬 저 년이, 천하의 드레이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한 건가?’
오늘 이곳에서 최강의 용사가 죽었다.
같은 용사에 의해 강제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당연히 다음 최강의 용사는 애쉬 그레이필드.
드레이크 드라코니안을 죽여 버린 용사였다.
에르윈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하아.”
에르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애쉬와 함께 드레이크의 목과 몸을 정리하며 장비를 털었다.
애쉬는 드레이크의 장비 대부분을 에르윈에게 넘겨주었다.
애쉬가 물었다.
“생각 해봤어?”
“…뭐를요?”
“나랑 동행하는 거.”
애쉬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에르윈을 바라봤다.
에르윈의 힘이 무조건 필요해서 영입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애쉬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 때문이었다.
에르윈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손익을 열심히 따지기 시작했다.
용사 애쉬의 제안을 거부할 때 손해가 너무 컸다.
“…제가 파티에서 해야 되는 일이 뭐라고 했죠?”
애쉬가 당당하게 말했다.
“나한테 섹스스킬 좀 알려달라고.”
“…그런 건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느는 건데요.”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를 만족시키고 말겠다는 목표의식이 존재해야만 섹스스킬을 발전시킬 수 있다.
에르윈은 애쉬의 속셈을 모르지 않았다.
경험도 없는 숫처녀가 강아지처럼 데리고 다니는 남자에게 우위를 잡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에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함께 할게요.”
“잘 생각했어. 한두 달 바짝 알려주면, 그 대가로 많이 챙겨줄게. 네가 챙긴 것들은 전부 선수금이라고 생각해.”
“각인이랑 슬라임 값 아니었어요?”
“뭐?”
“…아무 것도 아니에요.”
* * *
드레이크가 애쉬에게 패배해 죽었다.
회귀자는 최강의 용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그것은 곧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쉬가 용사 랭킹1위란 말이잖아.’
애쉬가 느긋한 신선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바람의 룬 얻으러 가자. 쟤네는 알아서 찾으라 하고.”
자신이 죽였음에도 애쉬는 태연하게 행동했다.
자신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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