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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40화 (40/109)

〈 40화 〉 최강의 용사(5).

* * *

드레이크는 시종일관 애쉬만을 바라봤다.

저녁을 먹는 중에도 계속해서 애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 눈빛이 사냥감을 노리는 수컷의 것과도 같았다.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꼴을 보고 있으니 슬슬 놈의 면상이 불쾌해졌다.

예쁘장한 여자들로 하렘 파티를 꾸려놨으면서.

여자가 모자라다는 듯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발, 좆같은 새끼.’

용사는 선하고 착하다.

그 명제는 분명 참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용사의 행동 원리를 보증해주진 않는다.

드레이크만 봐도 그렇다.

이 여자 저 여자 다 박고 다니는 저 새끼가 어떻게 착한 놈이란 말인가.

마를 멸하고 악을 봉한다.

그 여정을 떠돌아다니면서 여자 좀 따먹고 다닐 수 있다.

강제로 범하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서로 윈­윈 관계를 마음껏 즐겨도 된다.

그것이 죄는 아니니까.

그러나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다.

내 눈앞에서 대놓고 과시하듯이 찝쩍거리고 있다.

같은 수컷의 입장에서 놈을 좋게 볼 수가 없다.

모든 악마를 이 세계에서 지운다.

용사들은 그 대의를 위해 살아간다.

드레이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명에 대한 의무와 책임에 대해선 존경한다.

절대적인 결과만 놓고 본다면 용사들은 선하고 착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악당을 죽인다.

악마를 죽인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고 해도 살생이라는 단어가 품은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칼에 피를 묻혔다.

과연 용사는 착한 것인가?

누군가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드레이크는 쓰레기다.

적어도 내 자지와 불알은 놈을 쓰레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약한 게 죄지, 죄야.’

이런저런 잡념 속에서 나 혼자 드레이크를 물어뜯고 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했다.

“입맛이 없으십니까…?”

촌장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용사 동료도 용사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다.

촌장과 촌장 아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뇨, 아닙니다. 맛있어요.”

나는 애써 웃으며 스푼을 들었다.

한 스푼 가득 퍼서 쑤셔 넣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입에 머금고도 도저히 삼킬 수가 없다.

턱 끝까지 차오른 한 마디가 목구멍을 막고 음식을 격하게 밀어내는 듯했다.

이대로 꾸역꾸역 집어넣다간 체할 것만 같았다.

꿀꺽­.

그래도 천천히 삼켜본다.

열심히 차려준 음식을 안 먹고 버릴 순 없으니까.

내 몫의 분량을 최대한 먹어치웠다.

“병아리 용사님, 이름이 뭐야?”

“…애쉬.”

“내 이름은 알아? 드레이크, 드레이크 드래고니안.”

드레이크가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애쉬는 그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바람의 룬 얻은 다음에 어디로 갈 생각이야?”

“네가 알아서 뭐하게?”

“…3개월 뒤에 테라에서 대회 열리는 거 알아? 용사 아카데미에서 막 졸업한 애들은 와봤자 별 의미 없는데, 애쉬 너라면 와도 괜찮을 것 같아.”

“어쩌라고.”

드레이크는 포기하지 않고 애쉬에게 말을 걸었다.

애쉬도 그런 드레이크를 밀어내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아무리 애쉬가 회귀자라고 해도 현 시점의 드레이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원작 중반부라면 모를까.

‘…애쉬는 정확히 어디쯤에서 회귀를 한 거지?’

순수한 의문이었다.

마왕 바알을 봉인하는데 실패하고 회귀한다.

회귀자 애쉬가 눈을 뜬 시점은 과연 어디쯤인가.

아카데미 졸업 직후부터 원작이 시작된다.

그 시점은 아닐 것이다.

그 시기에서 깨어났다고 가정하면 현재 애쉬의 무력을 설명할 수가 없다.

더 일찍 깨어나서 수련을 했고 강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설명이 됐다.

‘쯥….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1, 2년 단련한 것으론 드레이크를 이길 수 없다.

성검의 레벨을 고려해서 최소 10년은 필요했다.

나는 스푼을 내려두었다.

“잘 먹었습니다.”

“더 드시고 가십쇼. 아직 많이 있습니다.”

“배가 불러서요. 일찍 들어가서 쉬고 싶네요. 마차를 너무 오래 탔거든요.”

“아….”

촌장 아내의 권유를 공손히 거부했다.

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안내해주었다.

“이리로 따라오시죠. 제가 용사님의 파티원분들을 위해 방을 드리겠습니다.”

식탁에 앉아있는 애쉬를 기다리지 않고 촌장의 뒤를 따랐다.

애쉬도 나를 멍하니 바라만 볼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

일어나면서 마주한 드레이크의 표정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음침한 웃음과 동시에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적시는데 죽여 버리고 싶었다.

‘시발.’

인간은 탱크를 이기지 못한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다.

나는 드레이크를 이길 수 없다.

인간과 탱크 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 방을 쓰시면 됩니다.”

촌장은 넓은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

침대가 두 개인 것으로 보아 이 방은 2인실.

두 명이서 함께 쓰게 될 것 같았다.

‘…잠깐만.’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될 사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사람 밖에 없다.

애쉬의 파티와 드레이크의 파티.

두 파티의 인원을 합치면 총 일곱.

남자가 둘.

여자가 다섯.

촌장 입장에서는 남자 둘을 한 방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중에 서로 옮겨 다닌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그것이 옳은 방 배정이었다.

‘애미 시발.’

속이 더부룩해졌다.

아까 억지로 먹은 것 때문에 체한 것 같았다.

내 가설대로 드레이크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 방 안에 토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침대에 앉아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이 좆같은 불안감.

노예 상인에게 팔렸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똑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끼익­.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당당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드레이크였다.

드레이크는 방 안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곤 방긋 웃었다.

그 미소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오, 애쉬의 파트너?”

“…안녕하세요.”

예의범절은 약자가 챙겨야 하는 것이다.

강자에겐 그런 도덕적 규칙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드레이크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저녁을 조금 급하게 먹는 것 같던데. 속은 괜찮아?”

“괜찮습니다.”

드레이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방금 1층에서 마주했던 시선이 눈앞에 생생하다.

놈은 지금 가식을 떨고 있었다.

“촌장이 목욕물을 준비해준다고 하네? 여자들이 먼저 씻고 우리가 나중에 씻기로 했어. 상관없지?”

“예, 뭐….”

드레이크는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었다.

셔츠에 펑퍼짐한 반바지 차림으로 복장이 한결 가벼워졌다.

격식을 갖춘 도련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애쉬를 대하던 모습과 사뭇 다른 느낌.

부드러운 인상 속에 날카로운 기세가 숨겨져 있었다.

“…맛있겠다. 기대가 돼.”

“…….”

드레이크가 나를 흘기며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쉬가 그럴 리 없으니까.’

원작에서 애쉬는 자신에게 찝쩍거리는 이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다 죽여 버리고 다녔다.

그게 악당이든 용사든 상관하지 않았다.

드레이크에게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이야기다.

죽일 수 없어서 살려두었을 뿐.

죽일 수 있다면 진즉에 죽였을 것이다.

애쉬 성격에 살려둘 리가 없었다.

“…….”

시간은 흘렀다.

어째서인지 애쉬가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 괜히 불안해지는 기분이다.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애쉬를 찾아가는 것이 나을까.

애쉬를 믿고 얌전히 있는 게 나을까.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거지?’

애쉬와 나는 대체 무슨 사이인가.

애쉬 스스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애쉬에 대한 감정을 정확히 정의내릴 수 없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랑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나는 목욕물에서 몸을 뺐다.

드레이크가 올 것 같아서 도망치는 것이다.

욕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저택 복도에서 애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

“…….”

“대답.”

왜인지 모르게 어색했다.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애쉬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

애쉬의 눈에 그려진 하늘을 마주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을 좀먹어가던 감정의 응어리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왜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머릿속이 말끔해졌다.

애쉬가 팔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 이제 좀 괜찮아?”

“이게 뭐여…. 시바, 갑자기 말똥말똥해졌는데?”

“용족의 힘이야. 여자들은 매료하고 남자들은 열등감을 자극해. 스스로 무너지도록 만들지.”

“…….”

원작에서 나오지 않는 정보다.

애쉬에게 자지의 사정권한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드레이크에겐 내 감정과 사고회로를 간섭 당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매몰되었다.

깨어나고 나니까 소름끼치고 불쾌했다.

이가 갈린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조금씩 내려온다.

애쉬는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강아지, 불안해할 필요 없어. 왜 불안해하고 그래?”

“…내가 언제.”

“혼자 낑낑거려놓고 아닌 척 하기는.”

할 말이 없었다.

변명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 때, 애쉬가 내 턱을 잡아당겼다.

쪼옥­.

피할 틈도 없이 내게 입술을 부딪쳤다.

애쉬의 입술이 아주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잘 자, 강아지.”

애쉬는 잽싸게 등을 돌려 복도에서 도망쳤다.

애쉬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날 밤.

겨우 잠에 들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옆자리 드레이크가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크흐, 용사든 뭐든 조금만 흘려주면 바로 반응이 온다니까.”

드레이크는 낄낄거리며 내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격하게 들려왔다.

‘애미 시발.’

입 밖으로 욕을 내지를 뻔했다.

나는 힘겹게 자는 척을 이어갔다.

내가 깨어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레이크는 혼자서 말을 이었다.

“강아진, 이라고 했던가?”

“…….”

“애쉬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던데. 뭐, 물고 빨고 따먹고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예쁜 년은 웬만해선 보기 힘드니까.”

“…….”

“그런데 어쩌나. 네 주인님, 나한테 제발 한 번만 따먹어 달라고 엉덩이를 흔들어재끼던데.”

애쉬 덕분에 용혈의 힘을 떨쳐내서 그런가.

드레이크의 말에 별 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애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드레이크를 유인하려는 이유가 뭘까.

‘진짜 죽이려는 건 아닐 테고….’

불가능하다.

드레이크는 현 시점 최강자.

누구도 드레이크를 잡을 수 없다.

마계 서열20위쯤 되는 악마 정도는 되어야 드레이크를 죽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인다.

‘대체 왜?’

드레이크는 내 머리맡에 앉아 주절주절 떠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깨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긴.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는 척을 유지했다.

“그럼. 네 주인님 맛있게 먹고 올게.”

“…….”

“애쉬도 내 강아지가 될 테니까…. 너는 내 강아지의 강아지? 결국 강아지가 둘이나 생기네. 크흐흐.”

끼익­.

드레이크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드레이크님 어디 가셨어? 아침에 안 보이시는데?”

“어젯밤에 드레이크님이랑 같이 안 잤어, 다들?”

“혼자 어디로 가신 거야, 대체….”

드레이크의 동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드레이크가 보이지 않는단다.

“…….”

나는 애쉬를 흘겨봤다.

애쉬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애쉬 옆에 서있는 에르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어째서인지 애쉬와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에이, 설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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