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30화 (30/109)
  • 〈 30화 〉 죽음을 거부하는 까마귀(16).

    * * *

    “용사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애쉬가 붕대를 감고 있는 강아진에게 물었다.

    그녀로서는 아등바등 따라오는 강아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른손이 없어 왼손으로만 싸워야 해 불편한데도 말이다.

    강아진은 애쉬를 흘겨봤다.

    모든 용사를 통틀어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용사.

    누구보다 나쁘고 못된 성격에 좆같은 성질을 지녔지만.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없으면 안 될 꼭 필요한 여자.

    아직 각성하지 못한 애쉬를 각성 시켜야 한다.

    그 역할을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못 하는 건 이해를 해. 근데 할 수 있으면서도 안 하는 건 좀…. 쓰레기라고 생각해서.”

    “?”

    애쉬가 이해 안 된다는 눈빛으로 강아진을 바라본다.

    “너 쓰레기 맞잖아.”

    “…….”

    당연하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애쉬를 보며 강아진은 할 말을 잃었다.

    애쉬의 시선을 무시하고 묵묵히 상처에 성수를 바를 뿐이었다.

    치덕치덕.

    ‘할 수 있으면 해야지.’

    그게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면 판돈이 자기 목숨이라 해도.

    “아!애미 시발!”

    “갑자기 왜 그래? 아파?”

    애쉬가 걱정어린 눈빛으로 강아진을 흘겼다.

    강아진은 고통 때문에 소리친 게 아니었다.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소시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황이 벌어지니까 되도 않은 짓을 하려는 게 우스워서.”

    “……?”

    애쉬는 강아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왕 바알의 손에 꿰뚫린 강아진을 보기 전까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뒤따라온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 * *

    애쉬의 계획이 틀어졌다.

    흑마술사 쪽에서 벌써 제물소환 술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아, 이 새끼들이 갑자기 왜?”

    회귀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큼지막한 사건사고에 대해 사소한 디테일 부분에서 빈틈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타이밍은 지나치게 빨랐다.

    애쉬는 바리아에서 벌어진 벨리알 소환의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잊을 수가 없었다.

    운 좋게 얻은 첫 번째 룬 ‘관통의 룬’을 흡수하던 중 동료들에게 뒤통수 맞은 날이었으니까.

    ‘보름이나 남았어. 나 때문에 억지로 날짜를 앞당겼다고 해도, 제물소환에 필요한 마기를 모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본인이 이레귤러인 상황에서 사건 전개에 대해 물고 늘어져 봐야 이로울 게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을 치우는 것.

    “루기우스.”

    “…왜 부르지?”

    루기우스는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숨겼다.

    애쉬가 이름으로 불러줄 줄은 몰랐다.

    애쉬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힘에 자신 있나?”

    “…적어도 은급 용병 중에선 어느 정도 자신 있다만, 용사인 네 앞에선 약간 애매한 감이 있군.”

    은급에 오르기까지 많은 의뢰들을 처리해 왔다.

    루기우스 스스로 나름 강한 축에 든다고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용사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풋내기 아니었나?’

    사람들은 성검 레벨을 통해 용사의 수준을 가늠한다.

    레벨2, 이제 겨우 룬 하나를 얻었을 뿐인 용사라는 의미다.

    그런 병아리 용사에게 체력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게 의문이었다.

    “그래?”

    애쉬가 멈춰 섰다.

    덕분에 루기우스가 거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애쉬는 헐떡이는 루기우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자세 잡아.”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러는 거지? 말로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자잘하게 설명하기 귀찮아, 그냥 적당히 맞춰. 넌 그냥 마력만 터트리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써먹을 거니까.”

    애쉬가 루기우스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전신에 은빛 마력을 두른 후 그를 향해 성검을 겨누었다.

    루기우스는 애쉬의 의도를 곧바로 파악했다.

    “무모하다. 이론상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런 식으로 마력을 낭비한 다음 흑마술사를 상대하는 건….”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넌 그냥 용사에게 숟가락 얹은 사실, 그거 하나만 가져가면 되는 거잖아.”

    “…….”

    그런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부터 혈풍 용병대를 돌려 보내고 혼자 남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용병대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곳에 남았다.

    ─ 용사님이 말은 험하게 하시더라도, ‘은근히’ 상냥하신 분이예요. 용사님 아니었다면 어딘가 노예로 팔려갔을 텐데….

    동성애자라고 멸시를 받지만 사내로서 거세당한 것은 아니었다.

    흑마술사와의 결전을 앞두고 혈기가 들끓었다.

    “일단 나 먼저 가서 놈들을 막을 거야. 나를 보내고 그 뒤에, 돕던 말든 알아서 해.”

    더 이상 떠들 시간이 없다.

    용사는 늘 그런 전투만 치르게 되지만, 애쉬는 굳이 떠들지 않았다.

    지금은 1분1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루기우스도 검을 꺼내 들었다.

    푸른 마력이 칼날에 덧씌워지고 일렁거렸다.

    “끄읍…!”

    지친 몸뚱어리로 최대한의 마력을 운용했다.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검기를 불태웠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애쉬를 향해 휘둘렀다.

    애쉬는 망설임 없이 그 검을 받아 냈다.

    콰앙­!

    충돌과 동시에 터져 나가고, 애쉬가 날아오른다.

    “커흑!”

    루기우스가 피를 토했다.

    과격한 마력운용 탓에 내장이 상한 것이다.

    ‘내, 내 검은 왜…!’

    루기우스는 자기 빈손을 흘기며 걸음을 옮겼다.

    애쉬가 날아간 방향으로 천천히.

    애쉬는 그런 루기우스를 버려 두고 하늘 위로 쏘아졌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이 아래에 놓이고, 이질적인 검은 장막이 저 멀리 보인다.

    츠즛­. 쾅­!

    발끝에 모아둔 마력을 분사하듯 터트려 공중에서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아무런 마법도 없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순식간에 흑마술사들의 결계에 가까워진다.

    애쉬는 곧바로 일격을 준비했다.

    성검에 마력광이 맺히고 터져 나온다.

    거리가 잡히고 애쉬가 찬란한 은빛 소드 오러를 단숨에 휘둘렀다.

    촤악­!

    콰아아아앙­!

    결계에서 파동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한 번으론 깨지지 않는다.

    강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검에 마력을 밀어 넣었다.

    다시 한 번 오러를 뽑아내 결계를 베어 냈다.

    콰아아아앙­!

    쩌적, 쩌저저저적­!

    검은 장막에 생긴 균열이 점차 커져가고,

    천장에서부터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흑마술사는 당연히 없겠지.’

    애쉬는 제물소환 술식 마법진 중심을 향해 낙하했다.

    떨어지면서 제물소환 술식의 간섭을 느꼈다.

    당장은 자신 때문에 멈춘 상태지만,

    흑마술사를 직접 처리하지 않는 이상 금방 다시 작동될 것이다.

    그러나 용사는 제물소환 술식을 해제할 수 있다.

    흑마술사, 마족, 악마, 마왕의 힘을 무력화하고 무로 되돌릴 수 있다.

    은빛 마력이 제물소환 술식을 역으로 장악해간다.

    새빨갛게 불길한 기운을 뿜어 내던 마법진이 옅어지고 사라진다.

    “아, 아아….”

    바리아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애쉬를 바라보았다.

    살을 찢고 뼈를 깎는 고통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를 잊고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용사’가 누구인지 기억 속에 똑똑히 각인했다.

    “용사다…!”

    “용사님!”

    넘실거리는 은빛의 마력을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용사님!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흐아아앙, 엄마아아!”

    바리아 사람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그들의 환호는 벌써 승리라도 한 듯 열광적이었다.

    애쉬는 그런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시끄러워. 다 닥쳐, 시발새끼들아!”

    “…….”

    바리아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애쉬의 고함에 마력이 스며있어서 거스를 수가 없었다.

    조용해진 바리아의 중심에서 애쉬는 마력을 거두지 않았다.

    은빛의 마나가 활활 타올랐다.

    파훼된 결계 안으로 흑마술사가 걸어오는 것이 기감에 느껴졌다.

    ‘둘…?’

    잘 됐다.

    둘이나 잡을 수 있다면 이후 행보가 훨씬 수월해지리라.

    그 생각을 흑마술사들도 하고 있었다.

    “허.”

    흑마술사, 그레이프는 애쉬의 성검을 확인하곤 실소를 흘렸다.

    고작 2레벨 성검의 용사가 자신의 결계를 깨부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히려 잘 된 일인가.’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용사일 것이다.

    여기서 잘라두면 용사 측의 전력을 확실히 줄일 수 있다.

    그레이프가 씨익 웃었다.

    비열한 미소는 애쉬를 향한 웃음이 아니었다.

    “악마소환은 막혔지만 마족 정도는 너 정도로도 가능할 거야.”

    “…예?”

    그레이프는 팔을 뻗어 흑마술사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벨리알 소환 계획의 장본인인 흑마술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레이프를 쳐다봤다.

    “그레이프 님…?”

    “네 희생을 기억할게.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해지는 순간, 신세계의 인간은 너의 이름을 연호하게 될 거야.”

    “그 세상에 제가 살아 있지 않다면 의미가….”

    “그 의미를 내가 만들어 주겠다는 거지.”

    그레이프의 표정을 확인한 흑마술사의 안색이 시퍼렇게 죽어 갔다.

    흑마술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용사를 잡으러 가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그의 손길을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그레이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흑마술사라고 해서 육체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급의 흑마술사들은 제물 의식 등을 통해 육신을 한계치까지 강화한 상태다.

    그레이프 또한 마찬가지.

    “끄윽, 아아악…!”

    그레이프는 흑마술사의 마기를 생으로 뽑아냈다.

    생명력과 마기를 한 번에 흡수당하면서 흑마술사가 미라로 변해 갔다.

    “좋아, 좋아. 역시 우리 동료들 마기가 최고라니까.”

    생명력이 뒤섞여 있는 마기라서 원하는 마족이 많을 것이다.

    흑마술사의 것을 소환 제물로 삼아 악마가 아닌 마족을 소환할 속셈이었다.

    그레이프가 낄낄낄 웃어댔다.

    용사를 앞에 두고도 여유로 가득했다.

    “용사님,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한두 번 만나는 것이 아니다.

    애쉬가 아닌 다른 용사들을 숫하게 만나왔다.

    그때마다 무사히 도망쳤다.

    일만 벌리고 도주하는 것, 흑마술사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레이프는 이 상황이 즐거웠다.

    계획이 뒤엉킨 이 순간조차도 하나의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용사들의 발버둥은 항상 그레이프의 마모된 감정신경에 쾌락을 주입해주었으니까.

    이번 용사도 그렇게 해주리라 믿고 입맛을 다셨다.

    “지켜야 할 게 많네, 용사님은….”

    “꺄아아악! 언데드! 언데드가 왔어요!”

    구울들이 바리아 마을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용사님! 나는 마족 하나를 소환할 테니까, 용사님은 얼른 저 사람들을 구해 주세요!”

    그레이프가 애쉬를 약 올렸다.

    애쉬는 그레이프의 말대로 움직였다.

    바리아 마을 사람들을 우선해서 구하기 시작했다.

    당장 위험한 사람들부터 구울에게서 살렸다.

    “…지랄을 하네.”

    “입이 좀 험한 용사님이잖아? 근데 그것도 좋아. 기가 세면 셀수록 망가졌을 때가 봐줄 만해서 말이야.”

    “음.”

    애쉬가 구울들을 정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히, 힘내세요!”

    “흐아아앙…! 엄마가 집에 쓰러져서, 안 일어나요…!”

    애쉬는 애원하는 아이를 무시했다.

    누가 죽든 말든 관심 없었다.

    애쉬가 사람들을 구하는 동안, 그레이프는 마족 하나를 소환했다.

    보랏빛 마법진이 펼쳐지고 소환 술식이 발동됐다.

    그레이프의 부름을 받은 마족 하나가 흑색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오십시오, 당신을 위한 제물이 있으니까요.”

    ─ 크흐흐흐, 그레이프. 또 나를 부르는 것이냐.

    아스모데우스.

    정확히는 아스모데우스 가문의 흔한 마족 중 하나.

    그레이프와 코드가 잘 맞는 마족이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마기 그리고 여자가 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많은 인간 중 손에 꼽을 만한 인물이죠.”

    ─ 우리 기준에선 벌레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런 벌레에 박는 취향이 있어서 말이지. 흐, 다른 녀석들은 왜 이 재미를 몰라주는 건지 모르겠다.

    “하하하, 이해합니다.”

    애쉬는 태연하게 자세를 잡았다.

    “좋아, 기다리고 있었어.”

    ─ 예쁘장한 년이로군. 그 가치가 보통 인간 수준이 아니다. 내 육변기로 박제하고 싶을 정도야.

    아스모데우스는 애쉬를 향해 탐욕을 드러냈다.

    잔뜩 발기한 좆을 덜렁거리며 마기를 방출했다.

    애쉬는 루기우스에게 빼앗아온 검을 성검과 겹쳐 손에 쥐었다.

    불안정한 그립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둘, 잡았다.’

    성검에 찬란한 강기가 생성됐다.

    파괴되지 않는 성검의 특성은 강기를 거부하고 깨부순다.

    애쉬는 그 대가를 루기우스의 검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단 한 번을 위해서 루기우스의 검을 빼앗아왔다.

    서걱­.

    애쉬의 검격이 아스모데우스와 그레이프의 몸을 양단했다.

    역할을 다한 루기우스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파편이 흩날려 뿌려졌다.

    “천사…?”

    은빛의 날개가 애쉬의 등 뒤로 펼쳐진 듯했다.

    방금 막 엄마의 품에서 깨어난 루이스는….

    애쉬의 등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