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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19화 (19/109)

〈 19화 〉 죽음을 거부하는 까마귀(5).

* * *

나는 까마귀가 새겨진 흉갑 파편을 주웠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자 앞서 가던 애쉬가 목줄을 잡아당겼다.

“뭐해?”

“…잠깐만.”

나는 이런 것에 ‘감정’을 사용한 적이 없다.

애쉬의 몸을 훑으면서 ‘감정’을 남발하기는 했으나 집중하고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스킬을 갈긴 것뿐이다.

진심으로 ‘감정’을 사용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감정’이 사용됐다.

그것도 한참 동떨어진 파편에 ‘감정’이 적용됐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의문이었다.

‘…일단 운이 좋군.’

‘감정’ 랭크가 올랐다.

F에서 E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D로 상승했다.

D랭크 위로 한참 많은 단계가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2계단 격상은 분명 기뻐해도 될 만한 성과였다.

하지만 꺼림칙하다.

왜인지 모를 불안감.

애쉬가 내게 가까이 왔다.

내가 들고 있는 흉갑 파편을 흘기며 물었다.

“그게 뭐야.”

“나도 잘은….”

“…잠깐 줘봐.”

애쉬는 내게서 흉갑 파편을 빼앗아 자세히 살펴봤다.

두 손으로 흉갑 파편을 들고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구석구석 훑었다.

애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나를 향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어떻게 찾았어?”

“그냥 바닥에 보여서….”

“…아이….”

애쉬가 흉갑 파편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우웅­.

고작 흙을 털어낼 뿐인데 왜 손에 마력을 일으키는 걸까.

그 의문은 금방 해소됐다.

흉갑 파편에서 검은색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확실한 질감이 느껴지는 검은색 가루.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용사의 마력에 반응하는 흑마술의 흔적, 마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애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용사 아카데미에서 다 배우고 왔을 테니 모를 리가 없었다.

“…오늘 낮에 습격한 흑마술사, 아직 안 도망쳤네.”

애쉬가 지니고 있는 클래스 용사는 근본적으로 마기를 내쫓는 성질을 품고 있다.

애쉬는 그런 용사의 마력을 운용해 흉갑 파편에 스며있던 마기를 흩뜨려버렸다.

더욱 선명한 모양새의 흉갑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애쉬가 들고 있는 흉갑 파편에 손을 얹었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사용했다.

[‘감정’에 성공하였습니다.]

미약하게나마 빛이 터지고 흉갑 파편의 수정된 정보가 메시지로 떠올랐다.

[가시 까마귀의 흉갑 파편(D)]

가시 까마귀 용병대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흉갑 파편.

용사에 의해 정화되었다.

녹여서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쉬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감정했어? 어떻게 나와?”

“…가시 까마귀의 흉갑이라고 나오는데.”

“가시 까마귀? 가시 까마귀 용병대?”

애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애쉬는 갑자기 튀어나온 가시 까마귀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 새끼들 흉갑이 왜 여기서 나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 몰래 숨겨놓고 간 것 같지는 않았다.

흘리고 간 것을 뜬금없이 발견해버린 느낌이었다.

“흐음, 흠….”

애쉬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쁜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흉갑 파편의 의미를 알아내려 애썼다.

나도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애쉬는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되짚어갔다.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이 유테론으로 가는 이유를 물었지, 아마?”

“응. 그 놈이 날 압박해서 네가 지켜줬잖아.”

“…….”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은 애쉬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였다.

애쉬는 그 말투나 태도에서 거부감을 느꼈고, 평소에 하던 대로 있는 힘껏 가시를 세웠다.

덕분에, 마차에 함께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그 이유를 왜 물어본 걸까?”

애쉬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발을 달달달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진척이 있지는 않은 듯했다.

나도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의 의중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역지사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의 입장에서 상황을 전개했다.

‘유테론으로 가는 길에 습격을 받았어.’

일주일을 가야 한다.

일주일이란 기간은 물리적으로 생각보다 긴 거리를 뜻했다.

상단 규모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서 모험가 파티나 용병대 단위보다 느린 것을 감안해도 유테론은 확실히 멀었다.

‘그것도 초장에 말이지.’

일주일이나 걸리는 장거리 상행이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흑마술사의 습격을 받았다.

거리상 라베루스 앞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번 흑마술사는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다.

리오스 남작에게 보고가 들어가 라베루스의 기사단이라도 출격하면 어쩌려고 그런단 말인가.

‘달리 말하면, 습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

흑마술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가시 까마귀 용병대의 흉갑 파편.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과 흑마술사가 어떠한 이유로든 엮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애쉬도 금방 눈치 챘다.

약간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용병대장이 좆같게 군 이유가 바로 이거였네. 용사인 나를 보고 찔려서 괜히 지랄을 한 거였어. 시발새끼.”

애쉬가 거칠게 욕지거릴 내뱉었다.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나는 그런 애쉬의 화를 달랬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잖아. 시간 생기면 그 때 대화라도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

애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경험상, 음침하게 구는 새끼들 대부분이 좆같은 일을 꾸미고 있었어.”

“…경험상?”

용사 아카데미에서 졸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경험을 운운하고 있는 걸까.

내가 볼 때 애쉬의 경험이라곤 아카데미에서나 벌어질 법한 애새끼들 파벌 싸움이 전부다.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한테서 구린내가 난단 말이지.”

“…….”

애쉬는 가시 까마귀 용병대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거의 확신하다시피 했다.

아침에 마차 안에서 벌였던 설전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조졌네.’

고집 부리기 시작한 애쉬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힘도 뭣도 없는 나로서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일단 돌아가자.”

나는 애쉬에게 목줄을 쥐어주었다.

“강아지…?”

애쉬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 짜증냈냐는 듯 눈가가 곱게 휘었다.

나에 대한 뒤틀린 소유욕을 다시 한 번 진하게 느꼈다.

‘이유를 모르겠네.’

애쉬가 품고 있는 감정의 출처를 도통 감 잡을 수가 없다.

원작을 읽고 떨어진 독자에 대한 관심이라기엔 뭔가 애매했다.

‘애쉬만 나한테 집착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게 일말의 관심조차 보이질 않았다.

저들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노예 상인에게 잡혀가는 나를 구해서 데리고 다니는 애쉬가 이상한 것이다.

방실방실 웃는 애쉬의 뒤를 졸졸 따랐다.

목을 감싸고 있는 개목걸이도 이미 적응해버린 상태라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요, 용사님!”

우리 천막 앞에서 린과 소우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이쪽으로 뛰어왔다.

애쉬는 시큰둥하게 애들을 흘겼다.

린에게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뭐.”

“용사님! 크, 큰일 났어요! 다들 용사님을 찾다가 급하게 가셨어요. 난리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왜? 말을 똑바로 해.”

“언데드들이 쳐들어왔어요. 결계를 쳐놔서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 때문에 다들 언데드를 막으려고….”

“…아오 씨발. 방금 씻었는데 짜증나게….”

애쉬가 성검을 뽑아들고 기감을 펼쳤다.

애쉬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마나의 파동.

내 실력으로 흐릿하게나마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뿌듯했다.

“너희는 천막 안에 있어.”

애쉬는 꼬맹이들과 나를 천막 안에 넣어두고 언데드를 막으러 갔다.

내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얼떨결에 방치된 나.

상황이 상황이니까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얌전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 상황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린에게 물었다.

“빈센트 할아범은?”

“혈풍 용병대한테 검 하나를 빌려서 싸우러 갔어요. 붉은 늑대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면서….”

“…그 틀딱이 설치면 너희가 말렸어야지.”

“죄송해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린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대답했다.

버리지 말아달라고 비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저 어린 녀석이 매달리고 애원하고 있다는 게 서글펐다.

‘…그만큼 심각한 건가?’

내 생각보다 언데드들의 규모가 클지도 모른다.

나보다는 린이 현재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울먹거리는 것이다.

“어떻게 되는 건지….”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소우타를 흘겼다.

린과 다르게 소우타는 태평한 모습을 보였다.

콧구멍이나 후비면서 린을 바보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상반된 둘의 반응에 머리가 아파온다.

‘린이 조금 여린 편이기는 해.’

아무래도 수인 소녀인 린의 간덩이가 뒷골목에서 살아온 소우타의 것보다 더 작을 수밖에 없다.

가녀리고 귀여운 성정을 가졌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겁에 질리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애들을 보호하는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애쉬가 알아서 해줄 거야.”

해가 중천에 떠있는 낮도 아니고 밤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함께 오들오들 떠는 것 말고는….

천막 안에서 기다렸다.

밖의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정말 얌전히 앉아있었다.

‘이래서 내 힘을 길러둬야 해.’

모든 일을 애쉬에게 맡길 수는 없다.

죄책감이나 이런 문제 때문이 아니다.

다른 용사 파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했다.

용사 파티는 언제 어디서나 1인분 할 수 있는 동료를 원하지, 어깨 위에 추가로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짐짝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전투가 끝난 듯 바깥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 가시 까마귀가 문제라고. 로브로 가리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어. 게이새끼야, 너도 저 놈 몸뚱어리를 봤잖아. 한 마디 거들어.

─ …….

애쉬가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얼핏 들었지만 어떤 상황인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잽싸게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우리 용사가 다치진 않았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뛰쳐나갔다.

내 걱정과 달리 애쉬는 아주 멀쩡했다.

너무 팔팔해서 문제인 느낌이었다.

“용사의 손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 이 앞잡이 새끼야.”

애쉬가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으로 추정되는 이에게 성검을 겨누었다.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

가시 까마귀 용병대원….

그들은 살점이 너덜너덜하고 보기 흉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반쯤 언데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나 또한 대륙 평화를 바라는 인간으로서, 악마의 앞잡이는 아니다. 이런 모습으로 하는 말이니, 용사인 네게 변명으로 들리리란 것은 잘 알지만….”

“근데 혓바닥이 기네?”

“이렇게라도 하면 믿어주겠는가?”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은 아침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며 성검에 목을 갖다 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기 전에 부탁이 있다, 용사.”

“곧 죽을 새끼 유언 들어주는 취미는 없는데.”

용사는 단호하게 성검을 치켜들었다.

단숨에 베어버릴 생각으로 휘둘렀다.

“……!”

순간,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진짜 할 줄은 몰랐다는 눈빛으로 애쉬를 쳐다봤다.

채앵­!

다행히도 애쉬의 성검을 막아선 이가 있었다.

적발의 사내, 혈풍 용병대장, 루기우스였다.

애쉬는 루기우스를 노려보며 조소를 날렸다.

“하, 게이라고 이 새끼 감싸주는 거야?”

“…얘기 좀 들어보자는 거다.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를….”

루기우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애쉬의 성검을 흘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애쉬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애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성검을 거두었다.

“어디 한 번 말해봐. 듣고 나서 죽여줄게.”

“…고맙군.”

얼떨결에 모닥불 앞에 둥글게 모여 앉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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