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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18화 (18/109)

〈 18화 〉 죽음을 거부하는 까마귀(4).

* * *

“…….”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 뉘엿뉘엿 저물고 있던 해가 모습을 감추었다.

새까맣게 물든 숲속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이미 야영지 주위에 함정을 깔아뒀다.

짐승들이 기피하는 가루도 뿌렸고, 기척을 최대한 줄여주는 결계도 쳤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불침번을 세운다.

이 지랄을 일주일 동안 해야 하니, 호위 의뢰의 보수가 클 수밖에 없다.

나름 규모가 큰 상단들이 일단 호위대부터 갖추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강아지, 씻으러 갈까?”

“…….”

애쉬가 내 목줄을 꼭 쥔 채 물었다.

내 의사를 물어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갈 거니까 따라와, 애쉬는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실제로 내 목줄을 당기면서 나를 잡아끌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애쉬를 불렀다.

혈풍 용병대장 루기우스였다.

“용사. 불침번에 대해 상의하고 싶은데.”

“…뭐.”

루기우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불침번이라는 아주 중요한 안건을 입에 담았다.

“…블루로즈 상단주와는 이미 대화를 나눴다. 블루로즈 상단 소속 상인들 중 상단주의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불침번 명단에 넣어도 된다고 하더군.”

“그래서?”

애쉬는 인상을 찡그린 채 루기우스의 말을 경청했다.

불침번에 대한 것은 각 용병대끼리 따로 조율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서, 애쉬도 막무가내로 나가지 못했다.

불침번에 배정된 인원이 내 생각보다 많았다.

네 명씩 붙여서 두 시간씩 돌리면 될 것 같다.

루기우스가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숫자를 써가며 총 인원을 셌다.

따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아 암산이 불가능한 듯했다.

“블루로즈의 상인과 짐꾼이 열, 혈풍이 열, 너희가 다섯, 그리고 까마귀가 셋. 총 스물여덟이다. 넷 씩 쪼개서 조를 일곱 개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흠….”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루기우스는 내가 생각한대로 불침번을 짰다.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엔트리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실행에 옮길 수만 있다면, 한 사람당 한 번씩만 불침번을 서게 된다.

루기우스가 이리저리 네모와 화살표를 그린다.

각 네모에는 숫자를 써넣고, 날짜별로 한 칸씩 뒤로 밀었다.

“어차피 최소 일주일은 노숙을 해야 하니까. 하루에 한 칸씩 옮기면 시간대에 대한 공평성도 굳이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 따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상적인 토의였다.

진취적인 루기우스가 의견을 제시하고 애쉬는 그저 얌전히 듣기만 하는.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토의.

‘여기서 애쉬가 얌전히 받아들인다면…. 이라는 조건이 깔려 있다는 게 문제지만.’

가만히 넘어갈 것 같지가 않다.

“나랑 강아지는 불침번에서 빼.”

“…….”

역시, 애쉬는 불침번을 설 생각이 없다.

원작에서도 불침번 서는 꼴을 못 봤다.

주인공 용사 루크의 파티와 잠깐 합류했을 때도, 루크는 애쉬를 보며 ‘표독한 눈빛으로 거칠게 거부했다.’ 따위의 묘사를 했다.

풋내기 시절이라고 그 성깔이 어디 갈 리가 없는 것이다.

루기우스가 진심이냐며 눈으로 물었다.

애쉬는 그 시선을 가뿐하게 무시했다.

‘대단하네, 우리 용사.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더 대단해.’

솔직히 말해서 불침번 명단에 인원이 많다.

둘 빠진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양심의 문제였다.

블루로즈 상단주와 그의 아들은 고용주니까 열외가 당연하다고 해도, 애쉬나 나는 아니었다.

혈풍 용병대와 똑같은 입장에서 고용된 용병일 뿐이다.

‘용사라는 자리가 오히려 발목을 잡지.’

수많은 용사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선한 성격을 가졌다.

솔선수범하는 이타적인 모습들 덕분에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애쉬는 보통 용사와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루기우스 입장에선 어제오늘 실소만 흘리게 되는 것이다.

애쉬는 얼빠진 표정을 한 루기우스를 흘기고는 말했다.

이 상황이 짜증난다는 듯 화가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내일 언데드 나오면? 혹시라도 흑마술사 나타나면? 네가 앞장서서 잡을래?”

“…….”

수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 뜻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 용사, 너 용병, 괜히 좆같게 굴지 마라.

루기우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들 다 서는 불침번을 당당하게 거부하는 애쉬의 태도에 넋을 놓은 듯했다.

“이제 꺼져.”

애쉬는 루기우스에게 턱을 까딱거리며 그를 쫓아냈다.

그리고 동시에 개목걸이의 목줄을 당겨 나를 끌고 호수로 향했다.

“…….”

루기우스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모르는 척 했다.

여기서 양심 챙겨봐야 아무런 이익도 없다.

부족한 수면시간 때문에 만들어진 고된 아침만이 나를 기다릴 뿐이다.

용사 애쉬가 악인을 자처했으니까.

나는 애쉬의 등에 업혀 달콤한 꿀을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된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싸버릴 것만 같다.

“조금 무서운 데.”

모닥불들의 불빛이 등 뒤로 멀어지고, 숲속의 어두컴컴한 배경이 시야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애쉬의 곁에 꼭 붙어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금방 도착해. 호수 근처에 달빛이 모여서 말이야. 의외로 잘 보이니까 겁먹을 필요 없어.”

애쉬는 나를 데리고 호수를 향해 움직였다.

어둠 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듯 발걸음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오….”

애쉬의 말대로 금방 호수에 도착했다.

수풀을 걷어내고 한 발짝 내디뎠다.

순간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훅 밀려왔다.

호수가 나를 반기는 느낌이었다.

넓은 호수는 그 빛깔을 잃고 새까맣게 물들어 있다.

검은색 수면 위로 부딪친 달빛이 반사되어 하얗게 반짝였다.

생각보다 밝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간단하게 씻고 돌아갈까?”

애쉬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큰 처자가 외간 남자에게 나신을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없는 걸까.

‘목욕탕에서도 그렇고….’

애쉬는 내게 몸을 내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아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주는 태도에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강아지 뭐해? 옷 벗어, 얼른.”

다 벗은 애쉬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슬쩍 고개를 원상복구 해서 애쉬를 스캔.

여신과도 같은 환상적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뽀얀 살결, 묵직한 젖가슴, 커다란 엉덩이.

은은한 달빛을 조명 삼아 서있는 애쉬의 모습에 자지가 발기할 것만 같다.

“……!”

아랫도리로 피가 쏠리게 만드는 애쉬의 몸매에서 시선이 떨어졌다.

내 눈은 애쉬의 몸이 아닌 손으로 향했다.

애쉬가 쥐고 있는 열쇠에 닿았다.

잠깐이나마 정조대를 풀어주려는 걸까?

그런 희망을 떠올리며 냉큼 옷을 벗었다.

셔츠와 바지를 벗는데 12초면 충분했다.

나는 쇠에 갇힌 자지를 손으로 가리고 애쉬의 앞에 섰다.

애쉬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히죽 웃었다.

“흐…. 알았어, 잠깐 풀어줄 테니까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애쉬의 손이 정조대를 감싸 쥔다.

아주 작은 자물쇠에 열쇠를 맞추고 돌린다.

철컥­.

자물쇠가 풀리고 자지는 정조대에서 해방된다.

가볍다.

아래가 가볍다!

“흐윽….”

곧바로 발기해버렸다.

자지가 자유를 마음껏 만끽했다.

애쉬의 굴곡진 몸이 눈앞에서 살랑거리고 있는데 남자로서 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아지, 여기 앉아.”

애쉬가 커다란 바위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는 얌전히 애쉬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바위 위에 걸터앉고 가랑이를 벌렸다.

“흐흫.”

내가 순종적인 태도를 보일 때마다 애쉬의 입술이 마구 들썩였다.

입 꼬리가 격하게 요동쳤다.

애쉬가 나를 비웃으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후으….”

애쉬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지 앞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불알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정조대 없이 발기하고 있어서 그런가, 적당한 세기로 꼼지락거리는 손길이 너무 기분 좋았다.

“기분 좋아?”

“읏, 응….”

애쉬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하늘빛 눈동자에는 환희가 가득 차있었다.

“흐읍….”

애쉬의 손은 쉬지 않고 계속 불알을 주물럭거렸다.

가끔은 세게 꽈악 쥐고 가끔은 약하게 굴려대며, 내 몸을 가지고 놀았다.

“하아….”

강약을 오고가며 줄을 타는 솜씨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자지도 만져줬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차마 부탁하지는 못했다.

‘일주일…. 그래, 일주일만 참자.’

싸고 싶지만 싸지 않는다.

약속의 일주일이 지나면 시원하게 한 발 빼줄 것이라고 믿는다.

호수 앞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십분 가량 진행된 마사지를 끝마치고 호수로 다가갔다.

잔뜩 성난 자지가 애처롭게 덜렁거렸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쉬와 같은 호수에 다리를 담그고 몸에 물을 끼얹으며 씻었다.

씻는다는 표현보다는 닦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으으, 추워….”

“강아지 자지, 애기 고추 됐네.”

“…….”

애쉬가 내 자지를 가리키며 키득키득 웃었다.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니지.’

내가 보여준 만큼 나도 보면 된다.

내 자지를 봤으니까 나도 애쉬의 보지를 보겠다.

등가교환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감정…!’

애쉬의 몸을 향해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물론 ‘감정’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기분만 낸 것이다.

덕분에 자지가 다시 발기하려고 했다.

“후우….”

잘 봤다.

얇고 힘없는 잿빛의 보지털.

그 아래에서 반짝이던 뽀얀 보지둔덕.

속살은 아마 분홍색이리라.

나는 애쉬에게서 눈을 뗐다.

챙겨온 마른 천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강아지. 이거 다시 차야지.”

애쉬는 정조대를 들고 다가왔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나한테는 애쉬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얌전히 자지를 내어줄 뿐이었다.

철컥­.

차가운 쇠의 감촉이 자지를 감쌌다.

묵직한 무게감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정조대를 착용한 후에 옷을 추슬러 입었다.

물만 묻혔을 뿐인데도 몸이 개운했다.

정말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였다.

[‘감정’에 성공하였습니다.]

[현재 수준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습니다.]

[‘감정’의 랭크가 대폭 상승합니다!]

“……?”

용사의 몸을 ‘감정’ 해내다니.

대단한 업적으로 칭송해주려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감정’ 결과를 확인했다.

애쉬의 발아래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서진 흉갑 파편(D)]

까마귀 그림이 그려져 있는 흉갑 파편.

녹여서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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