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17화 (17/109)
  • 〈 17화 〉 죽음을 거부하는 까마귀(3).

    * * *

    강아진은 마왕에게 패배한 용사 애쉬를 주웠다.

    겨우겨우 세상과 거리를 두었는데, 얼떨결에 각성도 못한 애쉬와 엮이게 되었다.

    ‘시발…. 시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원작의 진행을 뒤틀어버린다.

    소설 속 인물이 아니기에 모든 행동이 나비효과로서 적용된다.

    그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깨달았다.

    몸으로 직접 체감했다.

    죽어선 안 될 인물이 죽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이 세계에 간섭하기를 포기했다.

    혼자 산 속에 처박혔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조용히 살았다.

    누구도 강아진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째서 애쉬를 만나게 된 것일까.

    애쉬를 발견한 순간부터 이후 이야기에 개입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냥 두고 가든 거두어서 살리든, 강아진의 의지가 작용해 만들어낸 결과다.

    강아진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선택을 했다.

    이 선택이 마왕에게 패배하는 최악의 결말로 이어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애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죽을 것 같았다고.’

    혼자 살아남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애쉬는 절대로 죽으면 안 되는 인물이라서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다시 한 번 개입하고 말았다.

    이틀이 지났다.

    “…….”

    “주면 좀 처먹어라, 제발.”

    강아진은 애쉬 앞에 스프 접시를 대령했다.

    없는 살림에 고기까지 썰어넣은 초호화 스프였다.

    한 스푼 떠서 애쉬의 잎 앞에 갖다 주었다.

    애쉬는 입을 꾹 다물고 스프를 거부했다.

    이틀 째 괜한 단식투쟁으로 뻐기고 있었다.

    강아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얼른 몸 회복하고 마왕 잡으러 가야지. 복수할 생각이잖아.”

    “…….”

    “싸구려이기는 한데, 내 형편에는 이게 한계야. 그러니까 처먹고 빨리 나가라고 시발.”

    지혈을 하고 약초를 발라주었다.

    비록 품질이 쓰레기이기는 하나 지극정성인 간호를 곁들이니 효과가 있었다.

    인간을 초월한 용사가 스스로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직 움직일 수는 없어 혼자서 밥도 못 먹는 꼴이지만.

    “애쉬. 입 좀 벌려.”

    “…그냥 꺼져, 시발새끼야.”

    “해볼 게 있으니까 벌려보라고.”

    “안 먹어. 냄새나니까 저리 치워라. 죽여 버리기 전에.”

    애쉬는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움직일 수도 없어 지렁이 마냥 꿈틀거리는 주제에, 당당하게 지랄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디네.”

    ─ 웅.

    강아진은 쥐고 있던 스푼을 옆에서 꿀렁이는 물의 정령에게 건넸다.

    그리고 고개만 퍼뜩 처든 애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애쉬가 발작하며 눈을 부라린다.

    “날 죽이고 싶냐? 죽이고 싶으면 빨리 회복해야지. 네 스스로 일어나서 죽여 봐, 병신년아.”

    “이 씹알…! 우웁…!”

    “옳지, 옳지. 잘 먹네, 우리 애쉬.”

    욕 하려고 입을 벌린 그 찰나의 순간을 물의 정령은 놓치지 않았다.

    냉큼 애쉬의 입 속으로 스푼을 들이밀었다.

    잠깐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스프를 떠먹였다.

    “이게 효과적이군. 계속 부탁해, 디네 쨩.”

    ─ 우웅!

    강아진은 쉬지 않고 애쉬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몸 이곳저곳을 만져대면서, 애쉬가 욕을 참지 못하도록 했다.

    ‘언제 도망치는 게 나을까.’

    그래봤자 손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다리를 주물러줄 뿐인 가벼운 스킨십이었지만.

    애쉬의 성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아진은 망설임 없이 도망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흑마술사.

    마계침식을 앞당겨 이 세계를 악으로 물들이려는 못된 새끼들.

    대륙에 좆같은 일이 터졌다, 그러면 흑마술사들의 짓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놈들을 찾아 죽여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며 용사들을 방해한다.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 번식력(?)이 흑마술사들의 특징 중 하나다.

    어쩌면 바퀴벌레라는 말이 흑마술사들에게는 칭찬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벌써…?’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생각에 어폐가 있음을 깨달았다.

    ‘벌써 시작하는 게 아니지.’

    흑마술사들은 꾸준히 뒤에서 작업을 해왔다.

    용사들이 마왕봉인을 위해 활동하는 것처럼, 흑마술사들도 세계멸망을 위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주인공 용사의 시점으로만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사건해석을 착각했을 뿐.

    할아범은 고블린 사체를 적당히 뒤집어가며 말했다.

    “흑마술사의 마력이 끊겼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고 있는가?”

    “…흑마술사가 일부러 끊었거나 흑마술사가 뒈져서 끊겼거나.”

    “목 위에 달고 있는 게 장식은 아닌가보군. 정답이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눈빛이 좆같았지만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원래 저런 틀딱이었으니까, 상대하는 게 오히려 더 귀찮았다.

    ‘흑마술사가 죽었을 가능성은 낮아.’

    타이밍이 아이러니하다.

    상단 마차를 습격한 타이밍에 다른 습격을 받아서 죽어버렸다?

    그래서 고블린 언데드와의 링크가 끊겼다?

    말도 안 된다.

    흑마술사가 병신이 아닌 이상, 그런 빈틈을 훤히 드러냈을 리가 없다.

    ‘일부러 끊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아.’

    그렇다면 왜 끊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왜, 이유를 추측하기 위해선 흑마술사의 판단에 대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흑마술사가 마력연결을 끊어야 하는 이유가 블루로즈 상단에 있는 것이다.

    ‘…용사.’

    용사 애쉬 그레이필드.

    그 존재가 흑마술사의 계획을 일부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그 외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확실하네.’

    어쩌면 당연한 추론이었다.

    세계멸망을 원하는 흑마술사와 세계구원을 목표로 하는 용사는 대립할 수밖에 없으니까.

    “상황이 꽤 심각하게 흘러가나봄세. 상단주와 용병대장들이 분위기를 잡고 있으이.”

    빈센트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블루로즈 상단주와 혈풍 용병대장 루기우스, 둘이서만 심각했다.

    애쉬는 당연히 시큰둥한 얼굴로 짝다리나 짚었고,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블루로즈 상단주도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았다.

    “앞으로 주의해주시오.”

    블루로즈 상단주가 자리를 파했다.

    루기우스는 자신의 용병대원들에게 달려가 정보를 공유하고 작전을 전파했다.

    “귀찮게 왜 이런 걸 시키고 지랄이야.”

    그에 비해 애쉬는 짜증난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원념을 불러일으킬 만한 도구가 있으면 보고 하라네?”

    “원념이라 하면?”

    “언데드들이 관심가질 물건들이지. 한 번 확인하고 말해달래. 우리는 그런 거 없잖아, 그지?”

    기본적으로 언데드들은 생자를 뒤쫓는 경향이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 외부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자만 졸졸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미약하기는 해도, 언데드들을 이끌어 당기는 물건들이 있다.

    흔히 말해 저주받았다는 평가가 내려지는 장비나 도구들이 바로 그것이다.

    애쉬는 대강 훑어볼 생각도 안하고 끝냈다.

    성실하게 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일련의 소란이 끝나고,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우리는 마차에 올라타 다음 하차 명령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

    ‘존나 너무 불편하다….’

    흙바닥에서 자도 좋으니까 빨리 내리고 싶다.

    노숙이 그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히이이이잉­!

    ─ 전부 내려, 야영 준비를 한다!

    “요시!”

    누구보다 빠르게 마차에서 내렸다.

    상쾌한 풀냄새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든다.

    오르가즘을 느껴 가버릴 것만 같다.

    상단의 마차로 벽을 만들고 용병대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블루로즈 상단은 이미 분주하게 천막을 치고 있었다.

    “우리도 천막 치자.”

    ““네!””

    애쉬가 린과 소우타를 전두지휘해서 천막을 펼쳤다.

    꼼지락거리는 빈센트도 어떻게든 부려먹었다.

    “이건 여기에….”

    나도 열심히 도왔다.

    빨리 치고 다 같이 쉬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지만 저물어 가고 있기 때문에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휴….”

    야영할 때마다 이 지랄해야 된다는 게 좆같았지만, 뭔가 캠핑 느낌이라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군대보다는 좋았다.

    ‘…아닌가?’

    적어도 군대에선 정조대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는 묵직한 기운이 왜인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개목걸이보다 더 참혹하게 현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천막의 크기는 다섯이서 자면 약간 넉넉한 정도로, 다른 쪽에 비하면 확실히 작았다.

    노예상인에게서 빼앗은 천막을 팔고 괜찮은 천막을 새로 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루기우스! 이쪽은 다 했어!”

    “밥은 상단 측에서 준다고 했으니까, 식사 준비는 따로 할 필요 없다.”

    혈풍 용병대는 가장 외곽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인원이 가장 많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위치 선정이었다.

    만약 저 인원이 중심으로 들어온다?

    욕해달라고 돌려 말하는 것이니, 그 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욕을 갈겨주면 된다.

    “…은근히 넓네.”

    천막 안을 살펴봤다.

    3평 조금 안 될 것 같은 공간에 아늑함을 느껴버렸다.

    “린. 이렇게 하면 돼?”

    “네. 기름은 조심히 다뤄야 해요. 이게 다 돈이라서 절대 흘리면 안 돼요.”

    천막 내부에 얇은 천을 깔고 램프에 기름을 채워두는 둥, 이런저런 일을 끝마쳤다.

    ─ 저녁 식사는 상단에서 제공하니, 각 용병대 별로 받아가시오!

    “저거 받으러 가자.”

    딱 휴식하려는 찰나 밖에서 용병대원들을 불렀다.

    상단 측에서 마련한 식사를 확인하러 블루로즈 상단 쪽으로 걸어갔다.

    ‘평범하네.’

    주먹 크기의 곡물블록에 노란 스프.

    스프는 솥으로 부글부글 끓이는 중이다.

    가까이서 보니, 스프가 아니라 물에 가까운 농도였다.

    공짜로 주니까 먹는 그 수준.

    “용사 파티, 다섯 명이요.”

    아까부터 애쉬가 보이질 않아서, 내가 용병대 대표로 저녁 식사를 받았다.

    린, 소우타와 나누어 들고 우리 야영지로 복귀했다.

    “뭐야, 밥이야?”

    “응.”

    애쉬가 와있었다.

    “또 이 블록에 스프. 쯥. 모험은 이래서 싫다니까.”

    메뉴를 확인한 애쉬가 제 몫을 받으며 투덜거렸다.

    반찬투정을 하는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증명되지 않은 용사에게는 최소한의 지원만 주어진다.

    때문에 모든 용사들의 시작은 가난하다.

    아카데미 수료 직후 주어지는 최초지원금을 제외하면 가지고 있는 것이 전무하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사는 사치에 가깝다.

    이 정도는 감지덕지하게 받아먹어야 하는 것이다.

    ‘…얘는 아닌가?’

    애쉬는 리오스 남작에게 지원금이란 명목 하에 돈을 마구 뜯어낸 전적이 있다.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용사는 애쉬 그레이필드가 유일하다.

    남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두꺼운 철판을 얼굴에 깔고 있으니, 이런 보잘 것 없는 식사가 성에 안 차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래도…. 쯧쯧.’

    다 큰 어른이 반찬투정이라니.

    나는 애쉬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괜히 눈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힐끔 거리며 내가 느낀 감정을 해소했다.

    흘겨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자 애쉬가 중얼거린다.

    “……이런 건 정력에 안 좋은데.”

    “……?”

    “유테론에 도착한 것도 아니니까, 어쩔 수 없나…?”

    “…….”

    “강아지, 이리와.”

    애쉬는 천막 밖에 눕혀둔 통나무 토막에 걸터앉으며 나를 불렀다.

    애쉬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앉았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내 바지 속으로 애쉬가 손을 집어넣었다.

    막으려고 했지만 힘으로는 애쉬를 이길 수가 없었다.

    “밥이 맛없으니까. 반찬은 이걸로 해야지.”

    “…읏….”

    “난 강아지 자지 만질 테니까. 강아지가 나 밥 먹여줘.”

    “…….”

    맞은편에 앉아있는 나머지 일행의 시선이 이쪽에 꽂힌다.

    관심 없는 척 하면서 흘기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진짜…. 존나….’

    괴롭히는 행동 그 자체보다 지켜보고 있는 눈빛이 나를 더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애쉬는 일부러 저들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대놓고 나를 만져댔다.

    붉게 타오르는 얼굴, 그럼에도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얌전히 애쉬에게 저녁식사를 먹여주기 시작한다.

    스프를 한 스푼 떠서 내밀었다.

    애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으응, 뜨거워.”

    지랄 났다, 지랄 났어.

    뜨거운 스프를 호호 불어 식혔다.

    내 태도가 퍽 만족스러운 듯 애쉬는 히죽 웃으면서 내 불알을 주물럭거렸다.

    겨우 한 입, 애쉬에게 먹일 수 있었다.

    우물우물, 꿀꺽.

    “맛있네. 강아지 자지 때문인가?”

    “…나도 이제 밥을 좀….”

    “그래, 그래. 강아지도 먹어야지.”

    애쉬가 내 자지를 놓아주었다.

    불쌍한 자지는 발기하지도 못한 채 쿠퍼액만 질질 흘려댔다.

    그 결과, 애쉬의 손가락은 찐득하고 투명한 액으로 가득했다.

    “후우….”

    “강아지, 밥 다 먹고 씻으러 갈까?”

    “…씻다니? 어디서?”

    “저쪽에, 호수 있어. 아까 알아뒀지.”

    물로 몸을 적시면, 그래도 상쾌한 기분으로 잘 수 있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곡물블록을 녹여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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