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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15화 (15/109)

〈 15화 〉 죽음을 거부하는 까마귀(1).

* * *

목욕탕에서 만난 적발의 사내.

흉터로 가득한 근육질의 몸이 기억에 남아있다.

우락부락한 사내들에게 둘러싸였던 그 끔찍한 장면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루기우스는 출발준비를 하다말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동료들이 우르르 그를 뒤따랐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가볍게 보낼 인연은 아닌가보군.”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듯 내게 악수를 건넸다.

뒤쪽에 서있는 용병들의 표정을 보아 하니, 인사보다는 기선제압에 가까워보였다.

손도 잡기 싫다.

이성애자 남자도 아니고, 내가 왜 게이랑 악수를 해야 한단 말인가.

루기우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정쩡하게 방치되어 있는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는 듯 더 깊숙이 내밀었다.

그 손을, 애쉬가 거칠게 쳐냈다.

“우리가 하하호호 할 사이는 아니지 않아? 이 게이새끼야.”

애쉬는 루기우스 앞에서 전혀 쫄지 않고 욕을 내질렀다.

체격 차이가 엄청난데도 기세가 꿀리지 않았다.

용병대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같은 의뢰를 받은 상황, 썩 좋은 흐름은 아니었다.

“뭐? 루기우스 씨한테 뭐라고 말했어? 게이? 하!”

루기우스 뒤에서 이쪽을 째려보던 여자가 치고 나왔다.

마법사로 보이는 원피스 형태의 복장, 커다란 지팡이와 젖가슴, 골반에서부터 종아리까지 훤히 트여있는 치마가 인상적이다.

노골적인 섹스어필이 느껴졌다.

게다가 눈에 확실하게 보일 만큼 격동적인 출렁거림, 거기에서 느껴지는 박력,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야.”

흔들리고 있는 눈빛을, 애쉬에게 들키고 말았다.

애쉬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애쉬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살벌한 표정이 시야에 보였다.

나는 애쉬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정면을 바라봤다.

게이의 손을 잡는 것도 마냥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나를 구원해주는 마법사 여자의 목소리.

“루기우스 씨에게 사과해.”

마법사 여자는 팔짱을 끼며 제 젖가슴을 감쌌다.

풍만한 젖가슴이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애쉬의 눈매가 살벌하게 좁아졌다.

“너, 사형.”

“사과하라고!”

“…닥쳐, 시발아. 곧 뒈질 년이 말이 많아.”

“…이 년이…!”

여전히 적대적인 애쉬의 태도에, 여자가 빼액 소릴 질렀다.

당장에라도 뺨을 후려갈길 듯 손을 치켜들고 길길이 날뛰었다.

애쉬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성검을 빼들었다.

그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그녀의 목에 성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 닫아, 냄새나니까. 이 병신 같은 년아.”

“…….”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데도 움찔거리게 된다.

“개 버러지 새끼들은 꼭 성검을 보여줘야 닥치더라. 쫑알쫑알, 시끄럽게 뭐하는 거야?”

성검의 존재감이 일련의 다툼을 단숨에 종식시켰다.

마법사 여자는 성검을 확인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사가…. 도대체 왜 이딴 여자가….”

“꼽나? 내가 용사인 게 불만이야? 그럼 시발, 네가 용사하든가. 씹걸레창년아.”

“뭐, 뭐…? 창년…?!”

“옷을 그 따위로 입고 다니는데, 창녀 아니야?”

애쉬 본인도 야한 몸매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상대 여자를 욕하기 위해 매도하는 것뿐인 걸까.

애쉬의 속내는 애쉬만 알 것이다.

“용사님.”

루기우스가 마법사 여자 앞으로 끼어들었다.

마법사 여자를 조준하고 있던 성검이 루기우스의 목으로 옮겨졌다.

루기우스는 마법사 여자를 자신의 뒤로 물리고, 애쉬를 향해 싸울 의사가 없었다며 손을 휘저었다.

“베로니카,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용사님, 저희가 용사님을 몰라 뵀습니다. 사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루기우스가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하자, 애쉬도 짖는 것을 포기하고 성검을 집어넣었다.

저쪽에서 우리가 용사 일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저 게이새끼도 나에게 찝쩍거리지 못할 것이다.

“강아진.”

“…….”

“저 마법사년 몸매가 그리 좋아? 눈을 뗄 생각을 못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싶은…. 아!”

“진짜 지랄 마. 내가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왜 거짓말 해?”

“그건, 사고였어! 불가항력의 사고…!”

내 고개가 명령을 무시하고 저절로 돌아갔다.

눈알은 베로니카의 젖가슴에 고정되어버렸다.

내 의지와는 관계가 없었다.

사람 대가리만한 젖가슴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자지 달고 태어난 수컷이라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공명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애쉬는 그런 내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얼굴 표정에서부터 나를 괴롭힐 생각으로 가득했다.

쉽게 풀려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꽈악­.

“읍….”

블루로즈 상단 사람들이나 루기우스 쪽 용병대원들이 있는데도, 애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내 바지 앞섶을 더듬다가, 내 바지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한 손으로 불알을 쥐고 꾸욱꾸욱 쥐어짜댔다.

정조대 아래로 느껴지는 압박감에 하체가 바들바들 떨린다.

발기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가 유지됐다.

정조대를 착용한 이후로 계속 이런 상태였다.

몸이 정조대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강아지.”

“…듣고 있어! 듣고 있으니까, 조금만 살살….”

간절하게 부탁하니 애쉬가 손에서 힘을 빼주었다.

체벌이 아니라 애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약하게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애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게 속삭이고 있는데, 나에게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처음이니까 용서해줄게.”

“…….”

“그런데 다음번에도 이렇게 하면…. 그 때에는 절대 안 봐줄 거야.”

“아, 알았어. 절대, 절대로 안 할게.”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약속과 맹세를 갈겨댔다.

애쉬는 내 불알을 놓고 바지에서 손을 빼냈다.

찐득하게 늘어지는 투명한 액체가 애쉬의 손바닥에 묻어 있었다.

“흫….”

애쉬가 제 손바닥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리고 만족하기라도 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우….’

위기를 극복한 이후, 애매한 탈력감이 내 하반신을 흔들었다.

아직도 애쉬의 손길이 자지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숨만 나온다.

그 때, 블루로즈 상단 측에서 용병대장들을 호출했다.

“블루로즈 상단 호위 의뢰를 수락한 용병대. 용병대장들만 모여라.”

루기우스를 비롯한 세 사람이 블루로즈 상인 앞에 섰다.

루기우스, 애쉬,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

‘로브를 뒤집어쓰고 뭐하는 거야.’

예의 없게.

블루로즈 상인은 임무 브리핑을 실시했다.

“블루로즈 상단은 라베루스에서 유테론까지 이동한다. 날씨가 좋고 습격이 없다면 일주일, 중간에 일이 발생하면 이동기간은 늘어난다. 유테론에 빨리 도착할수록 의뢰 보수를 비싸게 지불할 생각이니까, 중간에 서로 간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라.”

무탈하게 이동하면 일주일이 걸린다.

마차로 일주일, 생각보다 멀었다.

거기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시간이 날아가는데, 상인에게 있어 시간은 금.

땅에서 날린 시간만큼 용병들의 보수는 줄어든다.

‘의미 없는 항목이긴 해.’

사고치지 말고 호위만 잘하면, 용병들은 예정된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 구조다.

‘용병들이 병신도 아니고 말이야.’

자신들이 손해 보는 의뢰를 받을 리가 없다.

큰 변수가 없는 이상 일주일 이내에 도착하는 건 확정인 것이다.

블루로즈 상인이 의뢰서와 용병대 증명패를 확인했다.

“혈풍 용병대? 은급의 용병대로군. 좋아.”

루기우스의 용병대가 통과되었다.

다음은 애쉬의 차례.

블루로즈 상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용사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상인은 의뢰서와 증명패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동급의 용병대인데도, 블루로즈 상단은 우리를 흔쾌히 고용했다.

아까 전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블루로즈 상단 측에서도 애쉬의 성검을 보았다.

아무리 동급의 용병대라 해도 상단 입장에서 굳이 용사를 쫓아낼 이유가 없었다.

‘지리긴 지려.’

늘 느끼는 거지만 용사라는 신분이 깡패였다.

다른 용사를 만나기 전까지 애쉬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 서글픈 현실 때문이었다.

블루로즈 상인이 마지막 남은 남자를 확인한다.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용병대원들 모두가 로브를 썼다.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말이다.

“자네는….”

의뢰서와 용병대 증명패.

남자가 상인에게 증명패를 보여주었다.

“가시 까마귀. 은급의 용병대, 좋아.”

용병 신분패나 용병대 증명패는 확실하게 신분을 보장해준다.

저런 꼴이어도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용병 길드 덕분이다.

확인을 마친 상인이 블루로즈 상단 쪽으로 넘어갔다.

상단주인지 아닌지 모를 남자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얘기를 하던 중,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로즈 상단 사람들이 마차에 올라탔다.

호다닥 뛰어온 상인은 우리를 마차 별로 나누어 태웠다.

“두 칸으로 나눠서 타라. 혈풍이 하나, 용사님과 나머지가 하나.”

지정된 마차에 올라탔다.

구겨서 타면 열둘 정도 태울 수 있을 것 같은 크기다.

“진짜….”

호위 때문에 고용한 용병을 태우기 위해 마련해둔 마차가 좋을 리가 없다.

올라타자마자, 발광석도 아닌 램프가 마차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우리를 반겼다.

아주 미약한 불빛 아래에 딱딱하고 허름한 자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마차에서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혀온다.

마차 내부를 둘러본 린이 초긍정적인 말을 뱉었다.

“그래도 노예 마차보다는 나아요.”

“…….”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로서는 도저히 좋게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마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용사 애쉬 일행이 다섯, 이름 모를 남자의 용병대가 셋.

총 여덟이 마차에서 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음침하네.’

맞은편에 앉은 가시 까마귀 용병대를 보며 느낀 점이다.

그들은 음침하고 기분 나쁜 기운을 풍겨댔다.

불쾌지수가 팍팍 올라갔다.

─ 출발하겠습니다!

히이이이이잉­!

블루로즈 상단이 출발했다.

크게 한 번 들썩거린 마차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용사.”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이 말을 꺼냈다.

애쉬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용병대장을 쳐다봤다.

가시 까마귀 용병대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유테론에 가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유독 짧게 느껴지는 말.

우리 애쉬가 곱게 대해줄 리가 없다.

“싸가지 없네. 시발새끼가.”

그럼 그렇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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