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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여)용사가 집착함-11화 (11/109)

〈 11화 〉 달리지 못하는 소년(6).

* * *

모험가 파티는 5인1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전위 셋에 후위 둘 혹은 전위 둘에 후위 셋.

성직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며, 마법사나 궁수 중 파티장의 취향에 맞는 클래스가 포함된다.

그에 비해 용사 애쉬의 파티는 어떠한가.

틀딱꼰대 빈센트 할아범, 노예가 될 뻔했던 수인소녀 린, 뒷골목 소매치기 엘리트 소우타.

그리고 레벨1 도둑 강아진, 바로 나.

용사 애쉬에게 빨대 꼽고 있는 사람이 넷, 동료들이 전혀 도움 안 되는 용사 원맨팀이었다.

‘갑자기 존나 미안하네….’

애쉬의 뒤를 따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파티로 마왕을 봉인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마물 앞에서 도망이나 안가면 다행일 것 같다.

“뭐해?”

“아뇨, 아무것도.”

“아니요?”

“아니….”

내 걱정과 달리 애쉬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이제까지 애쉬가 보여준 무위를 떠올려보면, 애쉬의 여유가 얼추 이해된다.

나는 원작 덕분에 현재시점에서의 주요 인물들 레벨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다.

이 시점의 애쉬는 원래 이 정도로 강하지 않다.

아무리 용사라고는 해도 아카데미를 막 졸업한 상태에서 뛰어나게 강할 수는 없다.

‘시스템’에 존재하는 ‘레벨’ 때문이다.

레벨은 절대적인 수치다.

동일한 클래스을 가지고 있다면 레벨이 높은 쪽이 이긴다.

용사라고 해도 레벨을 거스를 순 없다.

물론, 외부조건이나 스킬세팅 등 변수가 있지만 크지는 않다.

‘…하필 도둑 클래스라니.’

말했다시피 클래스는 재능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탤런트.

도둑,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는 클래스.

용사 파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도적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니까.’

손재주 따위의 기술적인 측면에 보정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 뿐, 수많은 면에서 도적보다 모자라다.

특히 단검술 같은 자기보호수단의 부재는 용사의 동료로서 아주 큰 실격사유였다.

“쯥….”

애쉬의 변덕이 끝나는 순간, 내 꼴이 어떻게 될지 의문이다.

날개를 잃은 독수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말겠지.

그 때가 오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소우타에게 최대한 배운다.’

솔직히 말해서, 소우타가 무어라 알려주어도 이해가 안 됐다.

‘소매치기’의 숙련도가 쌓이고 있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었다.

절벽동굴로 가는 길.

꽤 오래 걸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휴식을 가졌다.

애쉬는 빈센트와 상의하며 신속의 룬이 있을 절벽동굴을 파악하느라 애썼다.

리오스 남작에게 들은 정보와 애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취합해 길을 찾고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을 아껴서 사용했다.

애쉬가 내게 붙여둔 교사, 소우타와 함께 소매치기 강습을 받았다.

애쉬에게 뒈지기 싫은 소우타, 누구보다 열심히 나를 가르쳤다.

“결국 상대방의 감각을 속이는 거예요. 은밀하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털렸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훔쳐서 달아나는 거죠.”

“흔해빠진 설명이네. 도둑학개론 느낌으로.”

“…소매치기는 뭔가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기술이 아니니까요.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면 돼요. 이렇게.”

“?”

소우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소우타는 은근슬쩍 내게 접근해 품에 안겨왔다.

내 뒷주머니를 터치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무리 꼬맹이라고 해도, 남자애라서 그런지 존나 불쾌하다.

나는 잽싸게 소우타의 손목을 붙잡았다.

“오른쪽 손, 추잡하네.”

“틀렸어요.”

“어?”

소우타는 왼손에 열쇠 하나를 쥐고 있었다.

느긋하게 흔들면서, 자신의 기술이 나보다 우위에 있음을 자랑했다.

내가 꿍쳐두었던 정조대의 열쇠였다.

“그거 내놔.”

“자요.”

소우타는 태평하게 열쇠를 넘겨주었다.

어디에 쓰는 열쇠인지 모르는 낌새라서 다행이다.

어린애가 알기에는 너무 지나친 심연, 차라리 모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아닌가?’

이미 내 목에는 개목걸이가 채워져 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선 정신적 성숙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편이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애써 내색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매치기는 결국 상대의 눈과 귀를 속이고 품 속에 숨긴 물건을 훔치는 거죠. 어떤 방식이든 훔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게 곧 소매치기가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잔재주로 자잘한 것만 훔치면 잡범이지. 소매치기로 어디까지 훔쳐봤냐?”

“…그냥 뒷골목에서 안 걸리고 먹고 살 만큼이요. 용사님이 어떻게 알고 오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들켰을 리가 없는데.”

소우타는 애쉬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댓 발 튀어나온 주둥이가 썩 보기 좋진 않았다.

아닌 척 해도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굶어죽지 않게 해주는 기술이니까, 자부심을 느껴도 이상할 게없었다.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근본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애쉬는 왜 소우타를 데리고 와, 내게 붙여준 것인가.

내 클래스가 도둑이란 것을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늘 그렇듯 애쉬 때문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슬슬 출발하자.”

방향을 정했다.

애쉬는 절벽동굴의 위치를 확신하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내 목줄을 손에 쥐고 앞장서서 걸었다.

다른 용사 파티들도 이토록 자유분방한 포메이션일까.

내가 읽은 원작에 의하면 이렇게까지 대충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완전히 안전한 지역이 아닌 이상, 긴장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보통의 용사 파티와 달리 아무렇게나 이동하고 있었다.

위험하든 말든, 애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소우타한테 많이 배웠어?”

“예, 아니…. 응.”

“자기보다 더 숙련자에게 배울 때 스킬이 더 빨리 성장해. 그러니까 소우타랑 뭔가 해볼수록 너한테 좋아.”

가까스로 반말을 꺼내서 뱉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존댓말을 경계해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

한 번 봐주겠다는 듯 애쉬가 아무 말 않고 넘어갔다.

흘겨보는 시선에는 확실한 경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쉬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애쉬는 소우타가 도둑 클래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관련 스킬의 레벨이 나보다 높으리란 것도 이미.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애쉬가 직접 말해주기 전까지는 어떤 가설이든 확신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우리는 절벽동굴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라베루스에서 왕복 하루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애쉬는 절벽 낭떠러지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잿빛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바람이라기보다는 폭풍에 가까워, 애쉬가 날아가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세기였다.

“리오스 남작에게 들은 정보랑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다 따져보면…. 신속의 룬이 있는 위치는 바로 여기 아래야. 절벽 아래 동굴.”

애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뒤에서 대기했다.

절벽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강아지? 이리로 와야지.”

“싫어. 안 가.”

“…이럴 때는 단호하게 거절하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어지간 한 심장으론 불가능한 짓이다.

애쉬도 강압적으로 끌고 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동굴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거야. 정확히는 굴이지. 근처에 자리 잡고 천천히 그 입구를 찾는다. 오늘 못 찾으면 야영할 거니까, 열심히 움직여.”

애쉬의 명령에, 빈센트를 비롯한 일행이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그들을 따라 움직이려는 찰나.

애쉬가 나를 붙잡았다.

“강아지, 너는 여기 남아.”

“왜…?”

“나랑 놀아야 하니까.”

용사를 돕기 위해 신속의 룬을 찾으러 다니는 동료들.

그런 동료들을 뒤로 하고 나 홀로 용사의 노리개가 되어야 한다니.

몸은 편할지 몰라도 정신은 불편하고 힘들다.

‘그런데 오히려 좋아.’

짬지 마냥 좆뺑이 까는 것보다 차라리 애쉬에게 괴롭혀지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멍하니 빈센트 일행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리 와.”

애쉬는 커다란 바위 위에 걸터 앉아 나를 제 앞에 앉혔다.

부녀자를 희롱하는 악역처럼 내 몸을 품에 안았다.

말캉말캉한 젖가슴이 등에 닿자마자 찌그러졌다.

애쉬의 손길 탓에 피가 고이고 딱딱해지려 했다.

“읍….”

“정조대 때문에 아파?”

“응….”

애쉬가 내 바지 앞섶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쓰다듬는 손놀림에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애쉬는 내 혁대를 풀며 뒤에서 속삭였다.

“나중에 돈 벌어서 좋은 정조대 사줄게. 발기 감각은 남아 있는데 발기 현상을 막아주는 것도 있을 거야. 그거 쓰면 훨씬 나을 걸?”

“…아예 안 차는 건?”

“안 돼. 절대로. 다른 여자들 보고도 발기하지 않을 때까지…. 나한테만 반응할 때까지 착용하고 있어야 해.”

“?”

애쉬의 입에서 나온 조건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애쉬가 내 아랫도리를 한 손에 담고 조물조물 만지고 있는데도 발기가 멈췄을 정도였다.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내 의견을 어필했다.

사실상 반박의견이었다.

“남자인 이상, 불가능한 일 같은데….”

“충분히 가능해.”

“나, 남자란 생물이 여성을 보면 흥분할 수밖에 없어. 너한테만 반응하는 건 동성애자만 가능한 일이라고.”

“아니야. 교육받으면 다 되더라.”

애쉬는 방긋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루만지는 손길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안 되면 되게 할 거니까. 아, 그렇다고 아프게 할 생각은 없어. 강아지는 겁 안 먹어도 돼. 걱정하지 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서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내 클래스가 또 다시 발목을 붙잡았다.

이딴 클래스를 가지고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판타지 이세카이에 전생했는데 논과 밭을 가꾸며 지내야 하나?

으,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결말이었다.

‘용사 애쉬의 장난감, 겨우 먹고 사는 소작농….’

무엇이 더 나은지 골똘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생활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매우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애쉬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혀 노리개처럼 지내야 하니까.

거기서 더 나아가 애쉬에게만 반응하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끔찍한 교육 과정을 생각해보면, 마냥 이 상황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소작농으로 살아가기는 싫고.

‘레벨을 올려서 다른 용사 파티로 갈아탄다.’

그 파티에서 파릇파릇한 여성 동료를 만나 썸을 타자.

섹스와 발기가 자유로운 여인을 만나는 거야.

“윽…!”

“아. 그만 만질게. 귀여워서 계속 만지고 있었네.”

애쉬는 여전히 내 아래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분산됐던 시선이 돌아오면서 발기하려 했다.

덕분에 고통이 찾아왔고 애쉬가 아래에서 손을 뗐다.

절벽에선 여전히 폭풍이 몰아쳤다.

가까이 갈 엄두도 나질 않았다.

나는 얌전히 애쉬의 품에 안겨 있기로 했다.

“얌전히 있으니까 좋네.”

애쉬는 나를 끌어안으며 등에 고개를 파묻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들 적당히 멀리 갔네. 그럼….”

“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애쉬가 고개를 들었다.

바위가 연두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바짝 긴장하자, 애쉬는 내 긴장을 풀어주었다.

부드럽게 토닥여주는 손길이 왜인지 모르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위험한 거 아니야. 내 옆에 있어. 옳지.”

훤히 뚫린 절벽 앞 바위에서 어둡고 침침한 굴 속으로 이동됐다.

애쉬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뒤에서 들려왔다.

“…….”

[‘감정’에 성공하였습니다.]

[신속의 룬]

성검의 각성에 필요한 룬.

바람의 힘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진다.

▶ ‘용사 클래스 전용.’

동굴 안에는 연둣빛을 품은 ‘룬’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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