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달리지 못하는 소년(1).
* * *
수인 소녀와 할아범이 용사 파티에 합류했다.
수인 소녀까지는 정석적인 조합이라 생각해서 이해한다고 쳐도, 다 늙은 할아범은 왜?
자동으로 의문문이 튀어나왔다.
“할아버지, 탈출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음?”
“…운명이 허락하는 한,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거지. 천운이 노예가 될 운명에서 나를 구해줬으니, 자연스럽게 흐름에 몸을 맡긴다고 할까. 노련한 경험으로 용사에게 힘을 보태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함세.”
“노련한 경험?”
허언으로 가득한 경험담, 정신병에 가까운 망상증, 그런 것도 경험으로 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할아범은 누구보다 뛰어난 모험가이고 용병이다.
애쉬의 표정을 살폈다.
의도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얼굴 면면을 구석구석 바라봤다.
결국에는 탈락하긴 했지만, 예쁘기는 존나게 예쁘다.
히로인 감투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꼴에 용사라는 건지, 입만 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라도 호감을 살 만한 외모였다.
빛이 난다.
‘이유를 모르겠네.’
할아범의 합류에 대해 사전합의가 이루어진 듯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
애초에, 내가 꼭 알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자연스럽게 고개가 저어졌다.
이 파티의 주인은 애쉬 그레이필드다.
그녀가 동료를 데리고 오면, 나는 그냥 얌전히 받아들이면 된다.
할아범도 매한가지, 철저히 을의 입장이다.
할아범은 애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흘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눈칫밥 좀 먹어본 듯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데, 지금을 기회 삼아 통성명이라도 하지. 나는 빈센트라고 하네. 성은…. 뭐, 더 친해지면 말해주도록 하겠네.”
“안 궁금합니다. 안 알려줘도 돼요.”
“그런가? 자네 이름은?”
“강아진 입니다.”
“…특이한 이름이군. 그래서 강아지라 부르는 건가?”
할아범이 턱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놀란 눈을 하고서 나와 애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수인 소녀에게로 눈길이 향했다.
“그쪽 친구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린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린은 꾸벅 허리까지 숙여가며 감사를 표현했다.
크고 과한 동작에, 애쉬가 미간을 찡그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사님! 그리고 남자친구 분까지…!”
“…남자친구?”
끝에 매달리듯 따라온 단어에, 애쉬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린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순간이나마 알 수 없는 관심이 엿보였다.
“네! 강아진 님, 용사님의 남자친구분이잖아요? 그렇죠?”
린이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도와달라는 신호가 담겨 있었다.
‘나보고 뭐, 어쩌라고.’
애쉬가 내게 품은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다.
왜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진지 일주일도 채 안 됐고, 불과 어제 애쉬와 만났다.
린과 똑같은 시점에 애쉬를 마주했다는 소리다.
정이 쌓이거나 할 시간도 없었다.
진한 스킨십 때문에 마음이 끌리기는 한데, 사귀는 사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얘도 모를 리가 없다.’
내가 잡혀왔을 때, 린은 마차 안에 이미 잡혀있었다.
굳이 서열을 나누자면 노예 후보 선배, 선임이라고 볼 수 있다.
애쉬와 접점이 없으리란 건 간단하게 파악했을 텐데.
그런데도 굳이 저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미.
애쉬의 표정이 요상하게 풀어졌다.
이걸 노렸구나.
애쉬가 나를 슬쩍 흘겨본다.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애정이 섞여 있었다.
애정이 애증도 아니고, 빌어먹을 정조대 따위로 승화되지만 않는다면 참 좋을 텐데.
아랫도리에 싸늘한 쇠의 감촉, 묵직한 무게감은 분명 불알의 무게만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남자친구, 는 아니지. 아직은. 그런데 그렇게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아. 꼬맹이가 의외로 보는 눈이 있네?”
“용사님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요. 용사님과 동행하면서 열심히 배울게요. 감사합니다.”
애쉬의 입 꼬리가 마구 들썩거렸다.
웃음을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애쉬가 원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툭 던져서, 애널썩킹을 야무지게 해낼 줄이야.
어리게 생겼다고 마냥 만만하게 볼 애는 아닌 듯했다.
“크흠, 큼…. 다 따라와. 숙소 잡아야 하니까.”
“넵!”
애쉬는 잽싸게 등을 돌리고 앞장서서 걸었다.
목줄을 꼬옥 쥐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미션을 성공한 린이 당차게 대답하며 애쉬의 뒤를 따랐다.
내 옆에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할아범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애쉬도 딱히….
‘진짜 왜 데리고 가는 거지?’
노인공경을 열심히 실천하는 성격도 아니면서.
애쉬는 걸으면서 입을 열었다.
목소리 톤으로 미루어 보아,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라베루스에 머물 생각이야. 이곳에 ‘룬’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거든.”
“신속의 룬 말인가?”
할아범이 끼어들었다.
애쉬는 그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쾌한 듯 눈살을 찡그렸다.
말투가 순식간에 가라앉고 날이 섰다.
“무슨 룬인지는 나도 잘 모르는데. 넌 신속의 룬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옛날에 라베루스에 들렀을 때, 신속의 룬을 찾아서 가져와달라는 의뢰를 받았던 기억이 있소. 아마 리오스 남작이 아들에게 쥐어주기 위해 의뢰를 한 거겠지.”
“찾아냈나?”
“아니. 못 찾아냈소. 실제로 있는지도 모르겠고.”
“자세한 위치는?”
“확실하게는 잘….”
기어가기라도 하는 듯 말끝을 흐리던 할아범은 금방 힘을 되찾고, 자신의 경험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신속의 룬을 정확하게 거론한 것을 보면, 용병 시절에 실제로 겪은 일이 분명한데….
“기억할 여력이 없었어. 아니 글쎄 들어보게.”
할아범이 하는 얘기를 한귀로 듣고 흘렸다.
그나마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린, 수인 소녀 하나뿐이었다.
“할아버지도 대단하셨네요.”
린은 할아범을 상대로 맞장구도 쳐주고 하면서 결말을 이끌어냈다.
어리게만 보이는 린에겐 어울리지 않는 역겨운 마무리였지만.
“…대장을 따먹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실패하고 말았지.”
“…그딴 더러운 얘기, 내 앞에서 꺼내지 마. 다시는 얘기하지 못하도록 입을 찢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허업….”
애쉬는 성검이라도 뽑을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살기 어린 경고에, 할아범이 스스로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는 라베루스의 한 여관에 도착했다.
오래된 삼층 석조 건물.
허름한 나무 간판에는 ‘도둑의 쉼터’ 라고 허접한 글씨체로 새겨져 있다.
“어서 오십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관주인이 우리를 반겼다.
조용한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라베루스에서 인기 있는 여관은 아닌 듯했다.
“1인실 방 둘.”
“며칠 묵으실 생각이십니까?”
“일주일. 식사는 따로 계산하지.”
애쉬는 자연스럽게 방 두 개를 빌렸다.
돈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지라, 1인실로만 빌렸다.
‘적당히 비좁게 둘이서 잘 수 있겠네.’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겠지만, 노숙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나는 애쉬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쇠를 받아서 할아범과 올라갈 생각이었다.
“응? 왜?”
“열쇠를 주셔야 올라가죠.”
“아니, 그건 알겠는데. 네가 열쇠를 왜 받아?”
애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방 열쇠 모두 본인이 가지고 있을 생각인 건가.
내 예상과 달리, 방 열쇠는 빈센트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고 당연하리라 생각할 만한 내용의 말이 이어졌다.
“빈센트. 린 데리고 올라가서 짐 풀고 쉬어. 오늘 당장은 움직일 생각 없으니까, 이걸로 애 맛있는 것 좀 사서 먹이고.”
“…괜히 듣고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로군?”
“앞으로 이렇게 사족 붙이면서 대답하면, 혓바닥 뽑아서 찢어버릴 줄 알아.”
“…알겠소.”
고작 하루를 함께 했을 뿐이다.
그러나, 애쉬의 결단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강아지는 나랑 자야지. 왜? 따로 지내고 싶어?”
“…아뇨….”
“진짜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을 거야. 그치?”
만나자마자 동침했다.
애쉬 혼자 가지고 있는 감정이지만, 분명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이제 와서 각방을 쓴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애쉬를 따랐다.
목줄에 끌려가는 이 감각에 의외로 익숙해지고 있었다.
2층에 위치한 방 두 개.
할아범과 린이 우리 옆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저 아련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강아지, 뭐해?”
애쉬가 방 안에서 나를 불렀다.
안 들어오고 뭐하냐며 재촉했다.
“옙.”
나는 호다닥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둘러봤다.
책상과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꽉 찬 느낌, 엄청나게 좁아 터졌다.
‘한 명은 바닥에서 자야겠는데.’
이 침대에서 두 명이 자는 건, 절대 무리에 가까워보였다.
서로 완전히 밀착해야 겨우 잘 수 있을 것 같다.
애쉬는 성검을 벽에 세워두고 벨트를 풀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군용탄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벨트에는 주먹 크기의 가방이 두어 개 달려 있었는데, 자잘한 것들을 담아둘 수가 있어 편리해 보였다.
내 정조대 열쇠도 저기에 넣어두는 것을 봤다.
‘내가 가지고 있지만.’
운 좋게 주울 수 있었다.
가벼워진 차림의 애쉬가 나를 침대에 끌어 앉혔다.
나는 마냥 푹신하지만은 않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바지 벗어.”
“?”
“불알 마사지 할 거야. 얼른 바지 내려.”
“…뭐, 뭐요? 불알 마사지?”
“응.”
용사님이 또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정조대도 채운 상태인데, 뭔들 못 하겠냐마는.
불알 마사지라니.
보통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나?
애쉬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얼른 벗으라며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남자 자지 아래에 달린 불알이 아기씨 주머니래. 꾸준하게 주물러줘야지, 건강한 아기씨를 만들고 그런다네?”
“…그렇기는 한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아기씨…. 정자가 건강하든 말든…. 저는 애를 가질 생각이 없는데요?”
“의미야 만들기 나름이지.”
애쉬는 내 바지 허리끈에 손을 얹었다.
내가 스스로 벗지 않고 있으니, 직접 나서서 내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애쉬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다.
정조대가 채워졌을 때처럼 천천히 바지와 속옷이 벗겨졌다.
“…그리고 아기 낳는 건 나야. 그러니까 너는, 아기 만들기에 대해 의견 주장할 권리가 없어.”
“예…. 그걸 막을 생각은 없는데요. 왜 저한테….”
“아, 내가 말을 안 해줬나?”
애쉬가 내 바지와 속옷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나는 은색 정조대를 애처롭게 손으로 가렸다.
애쉬는 그런 나를 흘기며 피식, 입 꼬리를 올렸다.
일어나서 책상에 올려둔 작은 가방들을 확인한다.
‘잠깐만.’
불알 마사지라 함은, 어찌됐든 정조대를 풀게 된다는 소리다.
지금 열쇠가 나한테 있는데.
“으음?”
애쉬가 가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도, 정조대 열쇠가 나오지 않았다.
“이게 어디로 갔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서 걸리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이씨….”
정조대 열쇠를 찾지 못한 애쉬는 인상을 찡그리며 내게 다가왔다.
“어쩔 수 없네. 마사지 하는 동안에는 잠깐 풀어주려고 했는데.”
“예?”
“그냥 정조대 착용한 상태로 해야겠어. 열쇠는 나중에 찾고….”
“아뇨, 아뇨. 잠깐만요. 이 상태로 불알을 마사지 하겠다, 라는 말씀…?”
“응.”
자지 터진다.
시발, 안 그래도 여자 손길에 민감해서 닿자마자 발기할 정도인데.
동정한테는 너무 가혹한 고문 아니냐고.
“제가 ‘해제’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강아지 클래스가 도둑이었지? 정조대 가능하려나?”
“맡겨만 주시면,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제 자지잖아요.”
“…벌써 줄 생각은 없었는데. 일단 급하니까. 쓰고 나서 돌려줘?”
애쉬가 가방에서 손바닥 크기의 작은 도구함 하나를 꺼내 넘겨주었다.
조잡하지만 필요한 건 얼추 갖추고 있는.
“예…. 돌려드릴게요.”
[락픽 세트(D)]
자물쇠를 해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이것만 있으면 못 여는 게 없을 것 같다.
▶ ‘도둑’ 클래스 전용.
‘감정’을 통해 읽은 결과, 이 락픽 세트는 진짜다.
무려 D랭크의 보조 아이템.
‘이거라면….’
정조대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냅다 락픽을 쥐고 가랑이 사이로 조준, 겨냥했다.
작은 열쇠 구멍에 대고 꼼지락거리며 ‘해제’를 사용.
[‘해제’에 성공하였습니다.]
철컥!
“됐어요!”
정조대가 입을 쩍 벌려댔다.
자지를 잡아먹고 있는 듯한, 끔찍한 모양새였다.
애쉬 앞이라 그런지, 발기되려고 한다.
잽싸게 정조대를 벗어 던졌다.
그 순간, 애쉬의 손이 내 가랑이 사이를 파고 들어왔다.
뱀처럼 허벅지를 타고 넘어온 손가락이 불알에 닿았다.
꽈악.
“읍….”
“아기씨 주머니, 마사지 해줄게.”
자지가 자유를 맛보기도 전에, 정조대가 아닌 애쉬의 손이 내 불알을 잡았다.
애쉬는 양손으로 고환을 한 알 한 알 나눠쥐고서, 천천히 꾸욱꾸욱 주무르기 시작했다.
“자아, 자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