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용사답지 않은 용사(1).
* * *
그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이름이 강아진이라서, 당연하다는 듯 강아지라는 별명이 내 인생을 따라왔다.
중학교 이후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별명에 일희일비 할 나이는 지났으니까.
“…애미 시발? 우리 강아지, 말버릇부터 고쳐야겠네.”
애쉬는 내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거칠지 않은 손길은 서로가 애틋한 사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다정했다.
애쉬라면, 내 턱을 붙잡고 뺨을 후려쳐도 이상하지 않은데.
실컷 얻어맞아 얼굴이 시퍼렇게 터져버려도 ‘역시 애쉬, 존나 찰지잖아?’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애쉬가 왜?
나랑 원래부터 아는 사이인가?
그건 아니다.
나는 애쉬를 알고 있지만, 애쉬는 나를 모르는 게 정상이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것은 불과 3일 전.
애쉬와 만나본 적도 없는 상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 걸까.
어떻게 나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안타까울 따름이다.
‘왜….’
하필 우리 노예 후보들을 구해준 용사가 이 년인 걸까…!
“요, 용사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쪽에서 감사인사가 터져 나왔다.
마차 밖으로 나오기 전에, 구해준 용사에게 감사인사를 하자고 말을 맞춰두었다.
그 계획을 힘껏 실행에 옮겼다.
어색한 적막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애미….’
나는 애쉬의 표정을 살폈다.
애쉬는 용사짓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 뿐인 아버지가 같은 인간에게 살해당했기에, 인간을 구하고자 하는 용사들을 극히 혐오한다.
그냥 용사로 선택 받았으니까─클래스가 용사─대충대충 용사처럼 다닐 뿐.
그런 애쉬에게 감사인사라니….
“…시발, 냄새나니까 아가리 닫아. 어디서, 멍청한 짐승 새끼가 말 걸고 지랄이야?”
“…….”
애쉬가 미간을 좁히며, 수인 소녀를 불쾌하다는 듯 흘겼다.
방금 전까지 눈웃음 지으며 반갑게 웃던 여자와 동일인물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당연한 반응.
애쉬라면 이래야지.
“용사님…?”
“용사라고 부르지 마. 그냥 저리 꺼져, 병신들아.”
그래, 이게 애쉬다.
애쉬 그레이필드.
애쉬는 인간혐오, 동물혐오, 그냥 이 세상 자체를 싫어한다.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왜냐?
주인공에게 감화되어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히로인이니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바칠 주인공과 그런 행동을 미련하다고 비웃기만 하는 히로인.
수없이 배신당하던 주인공이 제 풀에 지쳐 흑화하기 직전, 히로인은 주인공을 구원하고자 각성한다.
물론, 애쉬는 탈락한 히로인이다.
지랄 맞고 좆같은 히로인의 구원보다 지극정성 헌신적인 히로인의 구원을 더, 사람들은 좋아했다.
노예 후보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수인 소녀가 힘겹게 나섰다.
“마, 마을까지만 데려다주시면 안 될까요…? 배, 배고프고 지쳐서…. 저희끼리 움직일 수가 없어요….”
“…….”
애쉬가 내뿜는 살기를 겨우 이겨내고 부탁했다.
간절하고 불쌍한 눈빛에는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용사가 아닌 나조차도, 수인 소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지만, 상대는 애쉬.
향후 제국에서 실시된 ‘좆같은 용사’ 설문조사에 당당히 1위로 등극한 애쉬 그레이필드.
“어쩌라고.”
“…네…?”
“뭐, 어쩌라고. 내가 왜? 니들을 도와야 할 이유라도 있나?”
애쉬는 수인 소녀의 말을 일축하며 성검을 겨누었다.
노예 상인에 의해 노예가 될 뻔했던, 피해자인 수인 소녀에게 말이다.
수인 소녀는 애쉬를 바라보며 오들오들 떨었다.
살벌하게 벼려진 검을 눈앞에 두고,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꿀꺽.
잠시나마 자력 탈출을 꿈꿨던 내가 병신처럼 느껴졌다.
작정하고 만들어진 살상용 무기는 현대 사회에서 볼 법한 흉기와 차원이 달랐다.
나는 할아범의 상태를 살폈다.
노인공경, 장유유서, 이럴 때 쓰면 딱 좋은 말이다.
늙은이에겐 이 상황을 중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할아범은 전혀 간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쉬를 보며 못 볼 것을 본 듯 바르르르 떨어재끼고 있었다.
꼴을 보니, 이 상황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애쉬는 나를 좋게 보고 있는 듯하니.
이것을 이용할 수밖에.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라앉히고, 애쉬에게 말을 건넸다.
애쉬의 시선이 곧바로 내게 닿았다.
“…용사님, 하,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자비? 누구한테?”
“…저, 아이들에게요….”
“…….”
확실히, 애쉬는 나긋나긋했다.
수인 소녀에게로 향하던 살기가 나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유를 고민해본다.
그리고 결론 하나를 도출했다.
‘과연, 주인공이란 건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서 머리가 아픈데, 그럼에도 나는 이 상황을 완벽하게 정리해냈다.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소설 속에 떨어졌으니까.
소설 속 인물이 내게 호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지만,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해.’
용사, 애쉬의 조건부 개과천선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지니고 있는 특수한 조건을 버무렸다.
완벽한 해설 답안지다.
애쉬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히죽 웃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흣….”
철저한 갑의 자그마한 움직임에도, 노예 후보들은 바짝 긴장했다.
손찌검이 아니라는 사실에, 움찔하던 노예 후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마을까지 데려가줄게.”
“…감사합니다!”
“대신.”
“엣, 끕….”
애쉬는 노예 후보들의 감사인사를 무시하고 목줄을 잡아당겼다.
내 개목걸이와 연결된 줄, 내 몸이 애쉬에게로 무너지듯 끌려갔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는 거니까, 너도 내 말을 잘 들어야 돼. 알겠어?”
“예, 옙…! 알겠습니다, 용사님.”
“용사님 말고. 애쉬, 애쉬 그레이필드. 그게 내 이름이야. 애쉬라고 불러.”
“……?”
절대 속지 않는다.
애쉬를 반말로 불렀다가 무슨 꼴을 당하게 될 줄 알고.
나는 저 허울뿐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병신이 아니다.
비록 판타지 시골 인심을 믿기는 했지만….
“다 나와.”
“…….”
“밖으로 나와서 치워. 마차 안에 돈 될 만한 물건도 전부 챙기고.”
애쉬가 등을 돌렸다.
목줄을 손에 쥐고서 전투의 흔적으로 난리인 숲길을 둘러봤다.
덕분에 나는 애쉬의 뒤를 졸졸 따르는 꼴이 되었다.
애쉬의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못했다, 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다들 겁에 질린 상태라서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병신들아, 지금 뭐해?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히이익…!”
애쉬가 다시 한 번 경고하고, 노예 후보들이 마차에서 뛰쳐나왔다.
“우욱…!”
“우에에엑!”
“시체도 벗겨. 멀쩡한 물건은 다 챙겨.”
노예 후보들은 속을 게워내면서 움직였다.
시체가 쥐고 있던 무기, 착용하고 있던 장비, 품에 지니고 있던 동전….
마차 안까지 샅샅이 뒤졌다.
찾아낸 것들을 애쉬의 앞에 하나하나 쌓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노예 후보들과 달리, 이쪽은 여유가 가득했다.
애쉬는 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대며 키득키득 웃었다.
“강아지.”
“…네, 용사님.”
“애쉬라고 부르라니까.”
얼굴을 쓰다듬고, 가슴팍을 꾸욱꾸욱 누르고.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추행의 범위였다.
“흡.”
애쉬의 손길은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내 생각보다 노골적으로, 나를 농락하고 있었다.
“거긴….”
“어허, 강아지. 손 떼.”
바지춤을 들추고 들어오는 손을 억지로 막았다.
애쉬의 팔뚝을 붙잡고,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게 했다.
얼떨결에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다.
어떻게든 내려가려 하는 애쉬,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나.
“강아지.”
“…….”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내게는 주도권이란 게 없다.
애쉬가 힘을 쓰면, 나 같은 놈은 반항도 못하고 죽어야 한다.
지금 애쉬는 제 힘을 다 쓰지 않았다.
내 스스로 힘을 빼고 포기하도록 나를 천천히 조여오고 있었다.
“손, 떼.”
“도대체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용사님….”
“…이유가 궁금해?”
애쉬의 손이 서서히 아래로 파고 들어간다.
내 힘으로 막을 수가 없다.
“넌 말해도 몰라. 그냥, 내가 널 가지고 싶어서 이러는 것뿐이야. 넌 나한테만 순응하면 되는 거지.”
“읍…!”
“이거 봐. 우리 강아지, 변태잖아. 이런 상황에서 발기나 하고.”
애쉬가 내 자지를 손으로 쥐었다.
주물럭거리며 귀두를 문질렀다.
‘시발…!’
다른 여자의 손이 내 자지에 닿았다.
할머니가 내 고추 따먹던 것 이후로 처음이다.
야릇한 손놀림에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았다.
아다 새끼에게는 참기 힘든 감각이었다.
“요, 용사님. 이제 더는….”
“쌀 것 같아?”
“…예, 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애쉬님…! 이제…!”
설마 도중에 그만둘까 싶었다.
애쉬에게 애원하고 있었으나 속뜻은 전혀 달랐다.
바지에 쌀 수 없으니 바지라도 내려주십쇼, 그런 의미였다.
안 돼, 안 돼, 안 돼, 돼, 돼, 돼….
애쉬도 나에게 마음이 있어서 이런 진한 스킨십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데.
“그래, 알았어.”
애쉬가 흔쾌히 손을 거둔다.
정말로 싸기 직전에 멈추고 내 바지 속에서 손을 빼냈다.
그리고 내 바지허리끈을 단단히 동여매주었다.
내 자지는 사정하지 못하고 바지 안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당장 싸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다.
바로 앞에 애쉬가 있든 말든,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애미 시발!”
“강아지, 말버릇이 더러워.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들어서 좋기는 한데, 그래도 영 듣기가 그래. 나중에 천천히, 제대로 교육해야겠어….”
“윽…!”
“따라와.”
애쉬는 그리 말하며 잔뜩 쌓인 짐들을 확인했다.
한 손에 쥔 목줄은 절대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노예 후보들은 애쉬를 앞에 두고 긴장한 티를 풀풀 풍겼다.
보통 용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거, 이거, 이거….”
애쉬가 지목한 물건들을 노예 후보들이 챙기기 시작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철썩 같이 알아듣고 움직였다.
아직 짬찌라서 가라 군장을 만들지 못한 이병들 마냥, 노예 후보들은 낑낑거리며 짐들을 등에 멨다.
아무도 애쉬에게 불만을 드러내지 못했다.
“좋아. 나머지는 전부 버리고 움직인다.”
마을을 향해 도보로 이동한다.
애쉬가 말을 다 죽여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게는 짐을 얹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애들에 비해 훨씬 가벼운 몸으로 걸을 수 있었다.
고마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나는 씰룩거리는 애쉬의 엉덩이를 훔쳐보며 뒤를 따랐다.
발기가 가라앉을 생각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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