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25화 (외전 완결) (325/325)

외전 5화. 마지막 이야기

[전설의 세계 챔피언 김태혁의 복귀전]

75전 75승 75 KO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며 5체급 챔피언 자리를 은퇴할 때까지 지켜온 김태혁. 그가 은퇴한 데에는 웃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

김태혁이 너무 강한 탓에 아무도 도전을 하지 않아 방어전을 치를 수가 없어 결국 은퇴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은퇴 후 다시 한번 복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마흔 후반에 달하지만, 근성과 패기는 여전히 젊었을 때와 같았다.

김태혁의 복귀전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생중계되는 그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아! 김태혁 선수의 날카로운 콤비네이션! 저 콤비네이션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상대는 키가 무려 2m 20cm에 달하는 무패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김태혁도 나름 체급을 키워오긴 했으나, 거구의 챔피언 앞에서는 왠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태혁 선수의 패배일 거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킹핀 선수 김태혁 선수의 주먹을 샌드백처럼 맞기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반격을 해봐도 김태혁 선수의 카운터가 그대로 적중합니다!”

1라운드 때만 하더라도 킹핀은 김태혁을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 하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1라운드가 끝나고 나서 상대의 펀치 타이밍을 전부 익힌 김태혁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의 주특기는 화려한 카운터!

아무리 거구의 선수라도 김태혁의 카운터를 맞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결국 킹핀은 3라운드에 들어서서 휘청거리기를 반복하다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다운! 다운입니다!!”

전설의 챔피언 김태혁은 영원하다는 걸 보여주듯, 그는 덤덤하게 상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7! 8! 9! 10!!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킹핀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김태혁의 강펀치를 맞고 혼절해 버린 탓이었다.

“우와아아-!!”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을 기뻐했다. 김태혁도 관중들과 기쁨을 나누면서 챔피언 벨트를 높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 *

“형님, 왜 수술을 안 받으시겠다는 겁니까? 마음만 먹으면 형님도 영원히 사실 수 있으세요.”

나는 힘없이 누워 있는 성일환을 설득해 보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야. 살 만큼 살았고, 더는 미련이 없다.”

“형님…….”

왜 성일환이 내 제안을 거부하는 건지 모르겠다.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은 이미 비밀리에 완성을 시켜놓았고, 성일환은 그 기술로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완고했다.

“난 큰 형님 곁에 돌아가련다. 가서 그분이랑 술 한잔해야지. 내가 왜 이렇게 안 오나 싶으실 거야. 외롭지 않으시게 내가 잘 달래고 있을게.”

“…….”

“그리고 윤아야.”

“예, 삼촌.”

성일환은 권윤아의 손을 꼭 붙잡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권용일이 죽고 난 후, 성일환은 권윤아의 아버지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에 둘 사이의 정도 각별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권윤아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 남편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굳세게 옆을 잘 지켜줘라. 네가 내조를 잘해줘야 태산이도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예, 삼촌.”

권윤아도 성일환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렸다.

이제 곧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난 얼른 그런 생각을 지웠다.

“자, 이제들 그만 가봐. 나 같은 늙은이 때문에 세계 대통령이라는 분을 계속 붙잡아둘 순 없지.”

“아닙니다, 형님.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형님 덕택이었습니다.”

“흐흐. 짜식. 은혜를 아는구먼.”

잠시 밝게 웃던 성일환은 이내 표정을 굳히며 내 손을 붙잡았다.

“태산아…….”

“예, 형님.”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예? 형님께서 제게 미안해하실 게 뭐가 있습니까?”

“그러게. 그렇긴 하네.”

성일환은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놓으며 자는 시늉을 했다.

“이제 이 늙은이는 그만 자야겠다. 그만들 돌아가라. 온 세계 국민들이 너희들만 바라보고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축내고 있으면 안 되지.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

성일환이 계속 내쫓는 바람에 결국 우리 둘은 병원 밖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성일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대통령님.”

“그래, 알아봤어?”

“예. 그런데…….”

“왜 그래?”

류정한 비서실장은 우물쭈물 거리며 조심스럽게 서류를 내 앞에 놓았다.

“다소 충격적이실 수도 있습니다.”

저번에 성일환의 병문안을 갔을 때 뭔가 미심쩍은 게 있어 류정한 비서에게 따로 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드디어 내 앞에 온 것이다.

충격적이라…….

과연 무슨 내용이기에?

나는 천천히 서류를 들어 한 장씩 읽어보았다. 그리고 내 눈이 번쩍 뜨이면서 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순식간에 서류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이게 전부… 사실이야?”

“…예, 성일환 사장에게 돈을 받고 의사들이 입을 맞췄다고 합니다.”

권윤아와 성일환이 나누던 눈동자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그리고 그가 내 손을 붙잡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도 제 스스로 버리는 것을 보며 난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비밀이 있었다니.

“어머니에 대한 얘기도… 사실이야?”

“예, 기자들을 모아 대통령님의 비리를 전부 밝히려 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신앙적인 이유 때문인 것 같은데, 그걸 영부인께서 아시게 되었고 결국…….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류정한 비서는 말을 다 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콩가루 집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내게 일어났으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권윤아가 어머니를 죽이고 성일환이 그걸 은폐했다.

상을 강하게 내려치는 바람에 주먹에서 피가 흘렀지만, 이윽고 나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어머니께서 정말 작정하고 기자회견을 여셨다면… 돌이킬 수가 없었겠지.”

“예, 한국 대통령은 못 되셨을 겁니다. 아무리 언론 통제를 한다고 해도 그분이 작정하고 나섰다면 국민들이 알게 됐겠죠.”

그래서 권윤아가 그런 짓을…….

왜 어머니 기일 때마다 눈물을 펑펑 흘리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류 비서.”

“예, 대통령님.”

“이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예,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죽여 버려.”

“예, 알겠습니다.”

그래. 이 일은 영원히 묻어둔다.

마음 같아서는 권윤아를 찾아가 뺨이라도 때리고 싶지만, 그녀도 절박한 심정에 이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어머니를 막지 않았다면 난 세계 대통령이 못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내 어머니의 원수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

난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류 비서.”

“예, 대통령님.”

“내 와이프가 썼다는 그 주사랑 똑같은 걸 하나 구해줘.”

“…예.”

류정한 비서는 내가 뭘 하려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내게 권윤아가 어머니에게 썼던 주사 약물을 가져와 주었다.

“이걸 맞으면 바로 심장마비가 올 만큼 치명적입니다. 가장 자연사로 보이기 쉽고요.”

“그래. 알겠어. 그만 나가봐.”

“…예. 대통령님.”

난 그 주사를 가지고 권윤아가 있는 방으로 찾아갔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었다.

권윤아는 날 보고 깜짝 놀라했다.

“당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오늘 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그랬지. 근데 급한 일이 있어서 왔어. 당신도 어디 나가?”

“네. 오늘 행사에 참석하기로 해서요.”

난 권윤아 뒤에 서서 그녀가 목걸이를 잘 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머니에게 주사를 놓을 때, 이렇게 뒤에서 놨어? 아니면 앞에서?”

“…네?”

내 물음에 권윤아는 몸을 벌벌 떨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떨림을 멈췄다. 마치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듯, 눈물을 흘렸다.

“다 알아냈군요.”

“응…….”

“절 죽일 건가요?”

“…….”

난 말없이 주사기를 권윤아에게 보여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권윤아는 주사기를 집으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저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그리고 그녀 스스로 주사기를 목에 꽂았다.

“당신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나 같은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돼요.”

점점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권윤아는 날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난 이게 편해요. 그러니까 당신은… 꼭 할 일을 다 하고 와요. 어머니와 함께 기다리고 있을 게요.”

마침내 그녀는 속죄의 짐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난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왠지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난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 * *

“기분이 어때, 워커. 드디어 우리가 우주를 정복하고 있네.”

“글쎄요. 생각보다 유쾌하진 않네요.”

2120년.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그대로 젊었을 적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로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인류는 무한한 발전을 이뤄내 마침내 우주로 진출하여 원하는 자원을 가져오고 다른 행성을 정복하는 등, 옛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고 있었다. 하지만 외계인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나는 공허함만 느낄 뿐, 풍족함이나 만족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권윤아가 그렇게 사라진 이후부터 이 공허함이 시작된 것 같다.

“로이, 저는 지금 제 삶에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워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넌 신이라고. 더 이상 보통 인간이 아니야. 사람들은 널 신으로 받들고 있잖아.”

이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모두 나를 신이라고 부른다.

영원히 죽지 않는 신.

하지만 막상 신의 자리에 올라와 보니,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그가 인간을 만들고 이 광활한 우주를 만들어낸 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번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을 발견했어요. 거기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인간을 만들어놓으려고 합니다.”

“뭐?”

“이제 진짜 신 놀음을 해보려고요. 신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가 타락하며 발전을 이루는 것을 보고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난 신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도 내 외로움을 이해할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전부 다 로봇이에요. 누구도 제 말에 반대를 하거나 덤비는 사람이 없죠. 왜냐하면 모두 저를 신으로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새로 창조할 피조물들은 다를 겁니다. 신을 부정하고 신의 법을 어기겠죠. 그리고 전 위에서 그걸 즐겁게 쳐다보고 있을 거고요.”

“워, 워커. 진심이었어?”

“예, 진심입니다. 전 새로운 지구에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낼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는 재미로 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요.”

이미 새로운 지구에 보낼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지구의 환경을 조사해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이란 세이프존에서 생활을 하게 될 터. 난 그렇게 최초 인류가 어떻게 타락을 하는지 곰곰이 지켜볼 예정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류.

이것이 어쩌면 내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 아닐까?

난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변덕스럽게 새로운 세상을 지켜볼 것이다. 또 다른 김태산이 그 세상에 탄생하기까지.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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