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24화 (324/325)

외전 4화. 권윤아의 이야기

세계 대통령 김태산의 아내, 권윤아.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김태산의 뒤를 따라다니며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국민들에게 그녀는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으며 평소 행실도 점잖아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 지상 최대의 악마인 것처럼, 그녀도 그에 걸맞는 남모를 비밀이 하나 있었다.

때는 2005년. 김태산이 이제 대권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서서히 아들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아가.”

“예, 어머니.”

“너는 네 남편이 평소에 뭘 하고 다니는지 아니?”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호출에 권윤아는 선물을 잔뜩 들고 갔지만, 시어머니는 전혀 기쁜 기색이 없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나는 예전부터 의심을 하고 있었단다. 내 자랑스러운 아들 태산이가 사실은 나 모르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어머니. 태산 씨는 대기업 회장이잖아요. 그리고 이제 대통령이 되려고 하고요. 국민들은 그이를 매우 존경하고 있어요.”

태산의 어머니, 진윤희는 며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참 예쁘고 성격도 밝은 아이지만, 그 안에 남모를 어둠이 있다는 걸 연륜이라는 것이 알려주었다.

“이 시어미도 보는 눈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가게를 크게 하면서부터 돈이 많아지니 듣는 귀도 자연스럽게 많아졌고. 난 네 아버님과 네 집안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태산이가 너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까지 대충 알고 있단다.”

그 말에 권윤아는 덜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과연 어머니가 알고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래서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단다. 태산이는 정말 국민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깨끗한 사람이니?”

권윤아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그이만큼 정직하고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없어요.”

진윤희는 그런 권윤아를 말없이 바라보다 말했다.

“그래. 알겠다.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예.”

이제까지 자신이 방문을 한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맞이해 주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오늘은 마치 남남인 것처럼 한없이 차갑기만 했다. 권윤아는 밖으로 나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자의 촉이 이건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경고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예, 사모님.”

“안녕하세요, 실장님. 한 가지 조사를 좀 해주셔야 할 게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제 시어머니를 좀 조사해 주세요. 최근에 누구와 접촉을 했는지 전부 다요.”

전화를 받은 상대는 매우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시어머니라고 하시면 회장님의…….”

“예. 맞아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저와 실장님, 둘만의 비밀이에요. 만약 이번 일이 그이 귀에 들어간다면 실장님이 어떤 일을 당할지 잘 아시잖아요?”

이인규 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그럼,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부탁 좀 드릴게요.”

권윤아는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웬일로 남편이 일찍 집에 와 있었다.

“어머. 오늘 무슨 날이에요?”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그래서 일찍 왔지.”

“이거 감동이네? 오늘 그럼 오랜만에 외식이라도 할까요?”

“좋지. 선물도 사고.”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처음 김태산을 만났을 때, 권윤아는 직감했다. 자신이 찾고 있는 남자가 바로 이 남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그에게 빠져들어 갔다.

아버지보다 더 큰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행동력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아직 그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어떤 일이라도 권윤아는 열심히 지지해 줄 것이다.

누구도 그의 앞을 막지 못하게 하리라. 그것이 비록 혈육이라도.

“오늘 어머니 만나고 왔다면서?”

“응? 아, 맞아요. 요즘 잘 못 찾아뵈었잖아요. 외국을 돌아다니느라. 당신도 조만간 한번 뵈러 가세요.”

“그래야지. 가까운 시일 내로 시간 한번 내야겠어.”

아직 둘 사이의 자식은 없었다.

권윤아는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남편인 김태산은 아이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권윤아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이가 없어도 둘의 사이는 매우 돈독하니까.

그냥 이렇게 평생 둘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모님.”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흘 뒤에 이인규 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성일환이 권윤아에게 별도로 붙여준 사람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써먹으라고 했다. 권용일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니, 허튼 마음을 먹고 배신할 사람은 아니다.

전화상으로 얘기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둘은 은밀하게 만남을 가졌다.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최근에 진윤희 여사님께서 영등포에 활동 중인 여러 흥신소를 찾으셨고, 억대의 돈을 들여 회장님의 뒷조사를 한 것 같습니다.”

“그이는 이 내용에 대해 알까요?”

“아마 모르실 겁니다. 흥신소에서 그렇게 깊이 파고들진 못하니까요. 그리고 회장님의 뒷조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요.”

“그건 그렇네요.”

“그런데 문제는 여사님께서 화진 그룹 안을 돌아다니시며 회장님과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전부 조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화진 그룹에서 은밀하게 운영 중인 조폭들도 별도로 조사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꽤 오래전부터 조사를 하신 모양입니다. 이 정도로 폭넓게 하셨다는 건 적어도 5년 정도 돈을 들여 착실하게 조사를 했다고밖에는…….”

5년이라…….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남편의 포커페이스는 어쩌면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남편과 며느리 뒷조사를 5년 동안 하면서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니.

“저번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분은 남편의 과거를 전부 아는 것처럼 말씀하셨어요.”

“5년 동안 파고들었으니 아마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자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기자요?”

“예. 여사님이 만나봤던 기자들을 전부 잡아서 족쳐 보니, 폭로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점점 더 상황이 황당하게 흘러가고 있다.

뒷조사에 이어 이번에는 폭로전이라고?

“설마, 남편의 과거를…….”

“예. 아시다시피 여사님이 교회 권사님이시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회장님이 지금까지 하신 일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몇몇 기자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죄책감이라.

권윤아는 웃음이 다 나왔다.

“그 기자들은 어떻게 하셨어요?”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누구도 회장님에 대해 폭로 기사를 쓰지 않을 겁니다. 설사 쓴다고 해도 공론화가 되지 않을 거고요.”

이미 정치와 언론은 전부 장악한 김태산이다.

아무리 폭로전을 계획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이에 대해 뉴스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붙어 있던 기자들도 결국 돈을 노리고 그랬을 터.

“알겠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실장님.”

“예, 사모님.”

실장과 헤어지고 나서 권윤아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잠시 생각을 이어 가다 시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갑자기 또 무슨 일로 온 게냐?”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진윤희는 갑자기 찾아온 며느리를 박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저번에 어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남편에 대해…….”

“그래. 그랬지.”

권윤아는 손에 힘을 꾹 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 사실 제 남편은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동안 사람들이 모르는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저희 집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을 세우긴 했지만, 원래는 깡패 집안이었고요.”

“…….”

진윤희는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역시, 시어머니는 예전부터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계셨군요.”

“그래.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나도 너희들의 정체를 알고 나서 정말 많이 놀랐단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니다, 아가.”

진윤희는 권윤아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게 느껴졌지만, 그녀의 말은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이제라도 바로 잡으면 되잖니.”

“…바로 잡아요?”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용서 구하고 태산이는 국민들에게 사죄하면 돼. 두 번 다시 정계에는 발을 못 붙이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니?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는데.”

“하지만 어머니. 태산 씨가 지금 여기서 모든 걸 포기해 버리면 그이는 감옥에 영원히 갇혀야 돼요.”

“아니야. 변호사를 쓰면 어떻게든 감형은 받을 거란다. 그리고 설사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도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을 수 있잖니. 우린 어차피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어. 지금이라도 우린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한단다.”

권윤아는 순간 시어머니를 이런 식으로 세뇌시켜 버린 교회 목사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내를 발휘하며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그 생각 변치 않으시는 거죠?”

“그래. 이미 기자들도 준비해 놓았단다. 태산이가 결정만 내린다면 우리 모두 죄사함을 받을 수 있어.”

“…알겠습니다, 어머니.”

“네가 힘들다면 내가 태산이를 불러서 설득해 보마.”

아니,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남편이라면 어머니의 말에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

아주 끔찍한 효자가 아니던가?

“아뇨. 그이한테는 제가 말을 해볼게요. 오늘 얘기를 하고 내일 같이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아가.”

진윤희는 권윤아를 껴안아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권윤아는 그런 진윤희의 귀에 속삭였다.

“어머니.”

“응?”

“죄송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온 주삿바늘을 진윤희의 목에 꽂아버렸다.

“윽-!”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가…….”

진윤희는 권윤아의 뺨을 쓰다듬으며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녀를 원망하진 않았다.

“괜찮다……. 난 괜찮아…….”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눈을 감으면서 권윤아는 눈물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한 다음,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구나, 윤아야.”

“삼촌……. 도와주세요.”

전화를 받은 상대는 다름 아닌 성일환이었다. 그는 훌쩍이는 권윤아의 목소리에 크게 당황해했다.

“무, 무슨 일이냐?”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

성일환은 잠깐 대답이 없다 조용히 물었다.

“지금 어디 있니?”

“태산 씨 본가요.”

“뭐……? 너 설마…….”

“자세한 건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남편한테는 비밀이에요.”

“그, 그래. 알겠다.”

전화를 건 지 20분 만에 성일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진윤희와 옆에서 울먹이고 있는 권윤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게 도대체……. 아니, 일단은 수습부터 하자.”

“…예.”

성일환은 일단 전화를 돌려 이번 사태를 수습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권윤아는 김태산에게 전화를 걸어 진윤희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태산이가 오면 넌 모른 척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마.”

“…예. 죄송해요, 삼촌.”

“아니다. 대신, 어떻게 된 일인지 꼭 나한테 설명을 해다오. 네가 생각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테니까.”

“네…….”

중요한 스케줄을 전부 내팽개치고 달려온 김태산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이제 고인이 된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회장님, 급성 심정지입니다. 송구합니다.”

이미 성일환에게 연락을 받고 투입된 의료진들은 진윤희의 사망 원인이 심장마비라고 밝혔다. 실제로도 진윤희는 심장마비에 걸려 죽었다. 만약 약물 검사를 하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죽인 게 판명 나지만, 의사들이 입을 모아 자연사라고 하니 김태산도 구태여 어머니의 시체에 난도질을 하고 싶진 않았다.

“많이…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태산은 한동안 어머니의 시체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권윤아는 그런 태산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녀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여기서 저 남자의 야망이 멈춰서는 안 되니까.

“윤아야…….”

“삼촌.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겠다.”

성일환도 권윤아를 추궁하지 않고 물러났다.

권윤아는 조용히 태산 옆으로 가 그를 껴안아주었다.

마치 진윤희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꼭 껴안아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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