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23화 (323/325)

외전 3화. 정복, 그 이후 (3)

현재 대한민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오늘이 바로 세계 대통령 김태산이 한국을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평화로운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김태산을 위한 축제를 즐겼다. 그는 이들에게 영웅이고, 또 구원자인 까닭이다.

하지만 영웅의 뒤에는 항상 그림자가 깔리는 법.

모든 영웅은 사람들이 모르는 어둠이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알고 있는 자들은 영웅을 제거하려 한다.

“장연욱 총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김태산 대통령이 서울 시내에서 연설을 한다고 합니다. 이미 경호 인력 명단과 동선을 전부 파악해서 자료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래. 알겠어.”

김아현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며 바깥을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세계는 김태산의 손아귀에서 흘러가고 있다. 수십억 명의 희생으로 이뤄낸 평화랄까. 유일하게 한국만큼은 그 난리에 휩쓸리지 않아 이 나라 국민들에게 김태산은 신, 그 이상이었다. 이제 그 신을 김아현이 죽이려 한다.

그는 지갑 속에 있는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았다.

누나인 김아름과 부모님.

이 세 사람 모두 김태산 손에 죽었다. 그리고 김아현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났다. 예전부터 해커로 김아름을 종종 도왔던 김아현은 자신의 죽음을 위장해 지금까지 살아남아 김태산에게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을 모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이다.

“내가 그 새끼, 꼭 죽여줄게. 그러니까 그땐 편히 쉬어.”

김아현은 사진을 꾹 쥐며 다짐을 이어갔다.

내일은 신이 죽는다.

* * *

“친애하는 여러분. 저는 1년 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김태산을 보기 위해 서울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워낙 많은 인파 때문에 시끄러울 것 같았지만, 누구도 감히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지금은 김태산의 연설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고난을 헤쳐왔고, 위대한 진화 앞에 섰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어떤 고난이 와도 우린 이겨낼 겁니다.”

보통과 다를 바 없는 연설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김태산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꾸며온 세뇌 작업이 먹히고 있는 것이리라. 김태산을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는 예전부터 생겼으니까.

“모두 위치로.”

“예.”

김아현은 팀원들을 모두 대기시키며 때를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김태산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고 싶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모든 경호가 허술해지는 틈을 노리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을 장연욱 총리가 만들어주기로 했다.

“신호가 왔습니다.”

연설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장연욱 총리가 보내는 신호가 왔다.

이제 행동에 나설 때였다.

장연욱 총리는 김태산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여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경호원들도 조금 거리를 벌리고 관저실에 두 사람을 내버려 둔다. 바로 그때를 노리는 것이다. 장연욱 총리도 그 틈이야말로 김태산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알려주었다.

이미 장연욱 총리의 경호원으로 위장한 김아현과 그의 팀원들은 김태산과 독대를 하고 있을 장연욱을 찾아 관저실 쪽으로 접근했다.

“잠깐. 여기는 우리가 맡…….”

탕-! 타타탕-!

관저실 바깥을 지키고 있는 소수의 경호원들을 제압한 김아현은 다른 경호원들이 총성을 듣고 달려오기 전에 일을 끝내려 했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관저실 입구를 열었다. 이곳에 김태산 대통령이 있다. 드디어 그를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어서 오세요, 김아현 씨.”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김태산과 장연욱이 여유로운 자세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깨닫는 순간.

“총 내려, 이 새끼야.”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댔다.

김아현은 입술을 꾹 깨물며 상대를 제압하려 했다.

“커억-!”

하지만 상대방의 주먹이 더 빨랐다.

김아현은 총을 빼앗기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아. 우리가 얘기를 나눠야 하니까, 너무 세게 하진 마.”

“…예, 대통령님.”

김태산 대통령의 말에 류정한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아현을 일으켜 자리에 앉혔다.

신을 죽이러 온 자객이 결국 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붙잡힌 것이다.

* * *

“왜 계획이 어그러졌나… 궁금하죠?”

날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는 김아현에게 가벼운 미소를 날렸다. 그러면서 내 손은 잔에 얼음을 채우며 술을 따르고 있었다.

“한잔 들어요. 여기까지 오느라 목이 탔을 텐데.”

“무슨 개수작이야. 그리고 어떻게 내가 오는 걸 알았지?”

“하하, 김아름 씨 동생이라면서 눈치는 더럽게 없네요. 이 계획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뭐?”

김아현의 반응에 연욱이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멍청하긴. 내가 다 불었으니까 아는 거지.”

“뭐, 뭐야? 당신이?!”

“그래. 내가 다 불었어.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기억나지? 그때 내가 이 장치만 있으면 도청을 안 당할 수 있다고 했잖아. 사실 그거 뻥이야.”

김아현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연욱이를 노려보았다.

“이 더러운 새끼. 도대체 왜 너는…….”

“내가 뭐? 미쳤다고 네들 손을 잡게? 아니야. 나도 예전에는 너처럼 발버둥을 치던 시기가 있었지. 그런데 그래 봐야 소용없더라고. 차라리 세상에 순응하며 살면 나도 행복하고 내 주변 사람들도 전부 행복해지는 거야. 내 지지율 알지? 큰 문제만 없으면 난 계속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고, 이런 삶을 평생 이어갈 수 있어. 그런데 고작 너 같은 놈의 복수를 도우려고 내 모든 걸 포기해?”

김아현도 지금쯤이면 깨달았을 것이다. 연욱이는 더 이상 예전의 연욱이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솔직히 연욱이가 이렇게 빨리 바뀔 줄은 몰랐다. 권력이란 달콤한 열매를 먹고 나니, 선악과를 먹고 돌이킬 수가 없어진 아담과 하와처럼 연욱이도 모든 게 바뀌었다.

차라리 세상과 타협해서 편한 인생을 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이다.

“김아름 씨의 죽음은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모님도요.”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우리 가족의 이름을 담지 마!”

내가 슬쩍 김아름 이야기를 꺼내자 김아현의 반응이 꽤 볼만했다.

“김아름 씨가 왜 죽었는지 김아현 씨도 잘 알 텐데요? 그 여자는 개처럼 저를 위해 일하다 갑자기 주인을 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주인은 그 개의 능력이 아까워 가만 놔두고 있었죠. 하지만 제 주제를 모르고 날뛰기 시작한 그 개는 결국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김아름이 날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거예요.”

“입 닥쳐. 이 미친 싸이코 새끼. 우리 누나는 널 막으려 했던 거야. 이 미친 짓을.”

“과연 그럴까요? 김아름이야말로 저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더 욕심이 많았고요. 난 그런 그녀를 존중했어요. 만일 적으로 돌아선다고 하면 김아름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녀가 완전히 나의 적이 되기 전에 죽인 겁니다. 그녀가 날 막으려 했다고요? 전혀. 오히려 그녀는 나보다 더했을 걸요?”

솔직히 말해서 김아름은 나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경계했고, 그녀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의 야망이 나까지 덮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아름이 내게 패한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녀는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나라는 사람을 너무 무시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았죠? 김아름과 함께 김아현 씨도 제거한 줄 알았는데.”

“흐흐. 어떻게 살았냐고? 그날 네들이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서 내 부모님과 나를 죽이려 했을 때. 바로 그때 엉금엉금 기어서 밖으로 나왔지. 하지만 나는 차와 함께 불에 타고 있는 부모님을 구하지 못했어. 그리고 차는 그대로 폭발해 버렸고.”

“그래서 우리 쪽 사람들의 눈을 피한 것이군요. 차가 폭발해 버리면 시신을 찾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래. 네 쪽 사람들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러 오더라고. 그런데 폭발한 차에서 뭘 발견할 수 있겠어? 그냥 다 죽었다고 판단을 한 거지.”

그런 허술한 뒷마무리가 있었군. 이래서 모든 일에는 철저함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지금까지 칼을 갈고 있었던 겁니까?”

“그래. 네놈만 죽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으니까.”

“하하. 그런 분이 폐인이 다 된 다니엘 로페즈를 찾아가고 장연욱에게 접근했습니까? 역시, 김아름 씨보다는 덜 똑똑하시네요.”

나는 손뼉을 쳐서 누군가를 안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상대를 보는 순간, 김아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 당신까지.”

“미안하네. 솔직히 처음에는 마음이 흔들리긴 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인 거 같더라고. 그래서 차라리 널 넘기고 내가 원하는 걸 갖기로 했지.”

김아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섭외한 다니엘 로페즈까지 나와 한패였다는 것을.

김아현의 계획은 처음부터 내게 노출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가만히 놔뒀던 건 그냥 즐기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평생을 공들여 온 작전이 실패한 남자의 얼굴을 보라.

저 망연자실한 얼굴을 볼 때 느껴지는 희열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이제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겠습니까?”

“예, 다니엘 로페즈. 당신은 스스로의 충성심을 증명했습니다.”

나는 빙긋 웃으며 품 안에 있던 총을 꺼내 다니엘에게 쏴버렸다.

“크헉-!”

바닥에 쓰러진 다니엘은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도, 도대체 왜?”

“왜긴요.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려고요. 솔직히 고작 저런 놈 하나 잡았다고 복직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당신은 그날 바로 내게 신고를 하지도 않았고. 그 뜻은 조금이라도 날 밀어낼 생각이 있었다는 거죠. 당신처럼 위험한 사람을 제 곁에 또 두려 하겠습니까?”

“이 비, 비열한 새끼…….”

“압니다. 그 비열함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을 죽이는 저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요.”

망연자실해 있는 김아현과 더욱더 밑바닥으로, 아예 나락으로 떨어진 다니엘 로페즈의 표정. 이 모든 것들이 날 즐겁게 만든다.

“편히 눈을 감으세요, 다니엘. 저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

다니엘 로페즈는 원통함 가득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아현은 낄낄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나와 줘야 널 죽일 맛이 나지. 사람들은 널 신으로 추앙하고 있지만, 난 네가 뭔지 알아. 넌 악마야.”

“그런 얘기는 자주 듣습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그 악마를 잡는 건 바로 내 임무고. 여기서 다 같이 죽자, 이 새끼야.”

김아현은 입고 있던 옷을 찢으며 몸 안에 장착된 폭탄을 작동시키려 했다. 처음부터 날 죽이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탕-!

하지만 그가 작동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류정한이 총을 쏴서 김아현의 머리를 꿰뚫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아니야. 네가 안 했으면 내가 쐈겠지.”

나는 눈을 뜬 채로 사망한 김아현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한, 신을 죽이고자 하는 반역자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터.

김아현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놈이랑 연루된 사람들 전부 잡아. 그리고 빼낼 정보가 있으면 다 빼낸 다음에 죽이라고 해.”

“예, 대통령님.”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그동안 수많은 위협에 시달렸고, 나는 그걸 계속 이겨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날 막을 고난과 재난은 없을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내가 다 정복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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