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피날레 (2)
“오늘은 아주 뜻깊은 날입니다.”
단 하나의 국가도 빠짐없이 세계 정부의 통치 아래로 들어온 날.
나는 이날을 인류의 완전한 자유라고 칭했다.
“서로 반목만 일삼던 인류는 드디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 정부는 모든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인류를 파괴할 각종 무기들을 줄여 나갈 생각입니다. 나아가 완전한 분배와 평준화로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겁니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활로에 서게 되었다.
완전한 발전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인류가 바로 내가 세웠던 목표이지 않던가.
그에 따른 희생은 있었지만, 그들의 희생이 아름다운 미래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인구 감축이요? 10억 명으로 줄이는 것도 모자라 여기서 더 줄인다는 말씀이십니까?”
세계 정부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건 골든 연합 초기 멤버와 총리급 이상의 직급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총리를 맡고 있는 연욱이는 내 의견에 반발을 드러냈다. 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인류 감축을 진행했고, 그로 인해 현재 인구가 10억 명 가까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통제와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는 5억 명까지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그랬다가는 우리가 갖춰놓은 노동력을 잃는 일입니다.”
“노동력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인구를 줄이겠다는 건 지금 당장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작업을 AI,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대처할 수 있을 때 인류 감축이 시작될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공지능과 기계로 우리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날을.”
“그러다 인간은 사라지고 인공지능과 기계만 남게 되면요?”
연욱이의 반박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총리님께서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군요.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기술력까지 발전할 정도면 우리는 완전한 대비 체제를 만들어놓았을 겁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곳은 바로 과학이다.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쓸데없이 노동력이 분산되고 기술력이 다른 곳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가능한 모든 엘리트들을 데리고 과학 기술 발전에 인력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우주 정복이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진화의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힘을 합쳐 앞으로 나간다면 우리 인류는 무궁한 발전을 이룰 겁니다. 그걸 위해서 그 수많은 희생을 치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
연욱이는 더 이상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인류의 번영을 위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제 뜻에 힘을 모아주신다면 우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모두 협력해 주십시오.”
나는 회의를 끝내고 연욱이가 있는 총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오늘 나와 할 이야기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님, 직접 부르시지 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나는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눈짓해 자리를 피하게 했다.
“우리끼리 있을 땐 그렇게 격식 차리지 않아도 돼.”
“알아, 나도.”
연욱이는 능청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며 나와 함께 앉았다.
“한잔 줄까?”
“총리라는 사람이 공무 중에 술이나 퍼 마시고 말이야. 다음 선거 때 떨어지는 거 아니야?”
“뭐, 내 지지율이 우리 위대하신 대통령님 못지않게 좋아서 말이야.”
청령함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연욱이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총리직을 해먹을 수 있을 것이다.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아까 회의 때 날이 서 있던데,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하하. 그게 꼭 불만이 있어야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넌 무려 인구를 10억 명으로 줄였어. 무려 10억 명! 그런데 여기서 더 줄인다고 하니까 웃긴 거지. 또 얼마나 많은 시체를 태워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정당한 발언이었다?”
“그게 불쾌했다면 미안해.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일수록 명이 짧은 법이지.”
연욱이는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은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인 불만이 있긴 했어.”
“그게 뭔데?”
“김민재.”
순간 술잔을 기울이던 내 손이 멈췄다.
연욱이는 이미 내 속내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김민재를 이용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 했던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이제 안 통해.”
나도 방금 전 연욱이의 표정처럼 능청스럽게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 너한테 민재를 보낸 게 나라는 걸.”
“척 하면 척이지. 김민재가 누군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지금까지 네 밑에서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한 놈이야. 그런데 그놈이 신처럼 받들고 있는 널 배신한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연욱이의 말이 맞다.
김민재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고 다닌 놈이다. 그런 놈이 인구를 줄여 나가는 날 보고 역겹다며 반란을 일으킬 리가 없지 않은가. 연욱이는 내가 함정을 팠다는 걸 눈치챈 것이었다.
“너무 수가 약했나? 제대로 걸릴 만한 걸 던졌어야 했는데.”
내가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연욱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못 미덥다는 거 알고 있어. 네 등 뒤에 비수를 꽂으려 했던 놈이니까. 하지만 못 부술 성을 두 번이나 공격할 만큼 무모하진 않아. 그리고 내가 지금 널 갈아엎는다고 해서 바뀔 게 뭔데? 이미 인구는 10억 명밖에 남지 않았고, 네가 아니면 이 세상을 통치할 수도 없어.”
“그렇게 말해주니까, 좀 감동적인데?”
“그러니까 그런 뻘짓할 시간 있으면 네 할 일이나 하라는 거야. 네가 없어지면 불안불안한 이 세상이 언제 또 혼돈으로 빠질지 몰라.”
연욱이의 말이 맞다.
내가 없어지면 간신히 맞춰놓은 세상의 균형이 전부 깨지게 된다.
“사실, 너만 테스트를 한 게 아니야.”
“그럼?”
“너를 비롯해 지금 세계 각국을 맡고 있는 총리들을 전부 시험했어. 대부분 골든 연합 출신들이라 총리직을 맡을 수 있었지.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면 다음 자리를 원하는 게 인간 아니겠어? 그래서 시험해 본 거야. 어떤 놈이 내게 반기를 들려고 하는지.”
“나온 건 있고?”
“아니. 아쉽게도 없더라고. 그래서 이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생각이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욱이도 같이 일어났다.
“다음 스텝?”
“초대 황제가 되면 뭐부터 해야 황권이 바로 서는 줄 알아?”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정리를 해야 돼. 이 제국을 만들기 위해 나와 같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 그들은 내 가장 가까운 아군이었지만, 지금은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이니까.”
“그 말은 설마…….”
“아무튼, 난 이제 간다. 당분간 외국으로 나가 있을 테니까, 여기 잘 보고 있어야 돼.”
난 넋이 나가 있는 연욱이를 놔두고 방 밖을 나왔다.
녀석에게 했던 말대로, 이제 나는 나와 가장 가까웠던 아군을 처리할 때가 되었다.
* * *
“연락도 없이 찾아오셔서 놀랐습니다, 대통령님.”
다니엘 로페즈는 세계 정부에서 이렇다 할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
마피아 조직과 사업 운영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잘 맞기 때문이고, 구태여 세계 정부 안에서 직책을 맡는다고 하여 그의 권력이 커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그는 현재 골든 연합 서열 3위이지 않은가. 세계 정부에서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총리라고 해도 다니엘 로페즈가 부르면 달려가야 할 정도로 그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인구 감축으로 인해 마피아 조직들도 힘이 약해진 터라 예전만큼은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권력은 강하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온 것이다.
가장 가까웠던 아군이자 지금은 나의 자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로페즈와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려고 왔습니다.”
“하하. 마지막이요? 아쉬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러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녹이 슨 것들은 이제 새로운 것으로 교체할 때가 된 것을요.”
내가 건네는 술을 받고 있던 다니엘 로페즈의 표정이 굳었다.
처음에는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차차 험상궂게 일그러진다.
“대통령님. 지금 그 말씀은…….”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작은 장애물이라도 허락할 수 없어요. 이제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싶군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니엘 로페즈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권총을 꺼내기 위함인데, 미안하지만 우리 경호원들이 더 빨랐다.
“이, 이거 놔!”
나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다니엘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편하게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이룰 건 다 이루시지 않았나요? 세상 모든 걸 가졌다가 가는 것이니, 큰 불만은 없을 거라 봅니다.”
“불만? 지금 장난해?! 난 이 자리를 위해 모든 걸 바쳤어. 당신을 그 자리에 올리는 데에 모든 걸 바쳤다고! 그런데 이렇게 버리겠다고?”
“제국을 건설한 황제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을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영광을 위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죽였어요. 그런데 고작 몇 명 죽인다고 해서 제가 눈 하나 깜짝할 거라 보십니까?”
내 말에 다니엘 로페즈는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흐흐. 이 악마 새끼. 널 처음 보자마자 난 알았지. 넌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악마라고. 그리고 내게 엄청난 돈을 가져다 줄 거라는 것도. 차라리 기회가 있었을 때 네놈을 죽였어야 했어.”
“그 기회를 잡지 못해 아쉽군요.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꼭 기회를 잡으세요. 당신도 결국 성공을 위해 날 이용한 게 아닙니까?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도 몰랐습니까?”
“몰랐지. 네놈이 악마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같이 가고 싶었다.”
“글쎄요. 사람이란 건 원래 욕망에 흔들리는 법입니다. 언젠가 당신도 이 자리를 원하게 되겠죠. 전 사람의 욕망을 잘 알아요. 누구도 그 욕망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을 나누는 사이, 경호실장이 들어와서 말했다.
“대통령님. 바깥에 있는 조직원들은 전부 정리해 두었습니다.”
총소리가 나지 않게 전부 맨손으로 제압을 했다는 건데, 역시 세계 대통령의 경호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
“고생했습니다. 이제 그만 이 사람을 데라고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와는 생사를 같이한 사람이니까, 최대한 예우를 갖춰주세요.”
“예, 대통령님.”
입술을 꾹 깨무느라 피를 흘리고 있는 다니엘 로페즈.
“네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아?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네놈도 결국 파멸하고 말 거다! 수십억 명을 죽이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예. 충고는 고맙습니다.”
“이 개새끼!! 내가 이대로 죽을 줄 알아!!”
다니엘은 발버둥을 치며 끌려 나갔다. 온갖 욕설이란 욕설은 다 내뱉으며 말이다.
난 술 한잔을 더 따르며 옆에 있던 류정한에게 물었다.
“로이 루스테의 행방은?”
“CIA가 파악해 두고 있습니다. 현재 가족들과 함께 집에 있다고 합니다.”
“알겠어. 바로 그쪽으로 가지.”
“예, 대통령님.”
나의 오른팔이었던 다니엘 로페즈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희생되었다. 이제 남은 건 나의 친한 친구이자 내 조력자였던 로이 루스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