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세계 정부 수립 (2)
“나 김태산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2010년 1월 1일.
세계 정부가 창설되고 드디어 초대 세계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된 나는 세계 정부가 정해놓은 법을 따르고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열심을 다할 것을 맹세했다.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부디 이 세계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법원장님.”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참여한 초대 세계 정부.
나는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그 기념으로 대한민국 대법원장이 선서 진행을 맡았다.
그는 나와 악수를 나누며 경외와 자랑스러움이 담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강대국들이 모여 만든 세계 정부다. 거기다가 내가 세계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친애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세계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생방송으로 세계 전역에 송출되게 하고 있는 순간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포부를 밝히고 앞으로 세계 정부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위협에 직면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인종과 문화, 언어를 뛰어넘어 세계 정부를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권을 하나로 모아 이념으로 인한 갈등이 없는 새로운 체제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테러로부터 안전해지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앞장설 겁니다.”
세계 정부가 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이제 나는 각국이 이곳에 반드시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댈 것이다.
“60억 명에 달했던 세계 인구를 20억 명까지 떨어뜨린 최악의 바이러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세계 정부에서는 대량으로 백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백신을 접종받으면 킬러 바이러스에 면역이 생겨 감염될 위험이 없습니다. 만일 백신을 희망하는 국가가 있다면 먼저 세계 정부에 들어와 주십시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정부의 일원이 된다면 더욱 빠르게 백신을 보급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은 좋게 포장했지만, 우리 정부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백신을 절대 보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바이러스 때문에 자국민이 다 죽게 생겼는데,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제안을 마다하겠는가?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 정부가 무너져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차라리 우리 정부에서 자발적으로 군을 파견해 백신을 보급하고 그쪽 사람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다.
우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인구가 10억 아래로 떨어지기를 말이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수백 명이 모인 세계 정부 의사당에는 임시로 뽑힌 위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골든 연합 멤버들로 실상은 내 충성스러운 신하들이었다.
말이 세계 정부지, 사실은 골든 연합의 제국이나 다름이 없다.
* * *
“오늘 낮 초대 세계 대통령으로 추대된 김태산 대통령은 세계 정부의 이념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세계 정부의 공식 이름은 골든 유니온으로 연합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 대통령이란 명예로운 자리에 앉은 김태산 대통령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만화나 영화에서만 등장할 것 같은 세계 정부가 드디어 출범했다. 그리고 초대 세계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한국인 대통령인 내가 가져가면서 국민들은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치 국민의 응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선수가 금메달을 딴 기분이랄까.
나를 반대하고 있던 정치가들도 이번만큼은 나를 인정하며 내 공로를 높이 샀다.
세계 정부와 세계 평화군으로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희망감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테러리스트들이 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없다.
테러 활동을 하던 조직들은 모두 해체되어 세계 정부군에 편입되었고, 가장 테러리스트로 전락하기 쉬운 이슬람 민족들은 대부분이 말살당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테러리스트가 나온다면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씨앗을 말라 버리게 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온 세계가 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눈을 번뜩이고 있는 한, 그 어떤 곳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굶어 죽는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또한 모든 병을 정복하고 모든 과학을 정복할 것이다.
이 지구를 정복했으니, 이제 우주를 향해 우리의 위대한 지성을 뻗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저 수많은 별들 중 어딘가에는 우리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자원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들을 활용해 우리는 더욱더 뛰어난 발전을 할 수 있을 테고, 스타워즈에 나오던 장면들이 더 이상 영화에서만 나오는 게 아닐 터.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 힘이 있고 지혜가 있다. 그 어떤 난관도 우리를 막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반군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세계 정부가 창설되고 나서 정보국도 하나로 합쳐졌다. 러시아, 중국, 미국의 정보국이 하나로 합치니, 정말 무서울 게 없을 정도로 막대한 정보량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제일 충격적인 소식은 바로 현재 유럽의 상태였다.
“독일 베를린을 기점으로 바이러스 생존자들이 모여 들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 자체에서 개발한 백신을 쓰면 바이러스가 몸에 퍼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인간은 생존 위협에 놓여 있으면 한계치가 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바이러스의 활동을 최대한 늦추는 약까지 개발하다니.
“이놈들은 시시각각 우리가 송출하고 있는 방송을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웃긴 건, 우리에게 손을 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서 기술을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CIA 국장은 혀를 차면서 브리핑을 계속해 나갔다.
“현재 베를린에 모인 반군의 숫자는 총 50만. 이중에서 군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숫자는 20만으로 그중에는 퇴역한 군인들과 현역이었던 군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 정부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 이들은 군용 무기들을 대량 탈취해 쓰고 있기까지 합니다.”
몇 명을 살려둔다는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냥 아예 다 죽여 버릴 걸 그랬나.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일까.
나는 현재 늘어나고 있는 반군 규모를 보며 상심에 잠겨 있었다. 그래도 절반에 가까운 인구를 남겨두고 무너진 문명을 다시 복구시키려 했던 것이 정녕 내 착각이었단 말인가.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을 넘겨준다고 하면 알아서 세계 정부에 편입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다. 아마 반군 지도자 놈은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기가 싫어 차라리 우리에게서 백신을 빼앗자는 생각을 하고 있을 터.
난 다시금 진지하게 고려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 있는 반군 지도자 요하네스 킬리안은 유럽 전역에 라디오 방송을 보내며 미국이 주장하는 세계 정부는 온 세계를 통치하려는 단체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도 그들이 퍼뜨린 것이란 음모론으로…….”
“그만. 그 정도 들었으면 될 것 같군요.”
음모론이라.
하지만 어느 정도 맞는 음모론이라 웃음이 나온다.
요하네스라는 놈이 정말 골든 연합의 실체를 알고 음모론을 지껄이고 있겠는가?
저놈은 그저 반군에서의 자리를 확립하기 위해 음모론을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즘으로 국민들을 세뇌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안 되겠군요. 결단을 내릴 때가 왔습니다. 반군을 계속 지켜만 볼지, 아니면 그들이 정말 전투기를 이끌고 와서 우리의 백신을 탈취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쓸지.”
내 말에 회의장은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여러분께서는 부디 이 내용을 진중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뒤에 다시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예, 대통령님.”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반군을 가만 놔둘 순 없지 않은가. 이미 그들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섰다. 지금 나는 다른 걸 고민하고 있다.
* * *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아닙니다, 총리님. 앞으로 대한민국을 더욱 멋있는 나라로 만들어주십시오. 이제 이 나라의 통제권은 총리님께 있으니 말입니다.”
세계 정부로 모든 정권이 합쳐지면서 기존에 정부를 책임지던 대통령이 사라지고 총리가 모든 전권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해서 총독이 된 것이다.
세계 정부에 속해 있는 국가를 다스리기 위한 총독. 그것이 바로 총리가 할 일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총리는 연욱이가 되었다.
우리 둘 다 웃고 있었지만, 서로 진심이 담긴 미소가 아니었다.
연욱이는 알고 있다.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앉았는지 말이다.
총리를 선임할 수 있는 건 오직 국민이다. 이번 한 번만 연욱이가 투표 없이 총리로 선정되었을 뿐, 다음부터는 무조건 선거를 통해 총리가 임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총리는 연임제라 선거에서 승리만 한다면 얼마든지 임기를 이어갈 수 있다.
“드디어 원하는 걸 전부 손에 얻었네. 축하해.”
카메라 세례가 끝난 뒤, 우리는 별도로 자리를 마련했다.
이곳 청와대는 더 이상 대통령을 위한 곳이 아닌, 장연욱 한국 총리를 위한 장소가 되었다.
“고맙다. 그런데 아직 다 얻은 건 아니야. 다른 나라까지 전부 굴복시키려면 할 일이 많아.”
“그래. 얘기는 들었어. 유럽이 좀 까다롭다며?”
“뭐, 고지식한 놈들이니까. 바이러스로 자국민 70%가 죽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뭔가 더 큰 한방이 필요해.”
“큰 한 방?”
즐겨 마시던 로얄 샬루트를 내려놓으며 연욱이가 되물었다.
그래. 말 그대로 큰 한 방이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힘으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독일을 중심으로 반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그놈들은 남아도는 전투기들을 이용해 세계 정부 관할 지역을 타격해서 백신을 탈취해 갈 생각인 거 같아.”
“그거 큰일 아니야?”
“큰일이지. 세계 정부가 만들어진 건 어떠한 테러 위협에서도 안전하고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니까. 그래서 고민 중이야.”
“어떤 걸? 반군이라면 당연히 우리가 먼저 선제 타격을 해야지. 그놈들이 선공을 하기 전에.”
연욱이도 이쪽 물이 조금씩 들고 있기는 한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감옥 생활을 해왔으니 느낀 바도 많고 인간성이 달라진 것도 있을 것이다.
“아니, 반군을 몰아내자는 게 아니야. 이번에 반군을 없애면 다른 반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그럼?”
연욱이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아예 유럽 전역에 있는 인구를 전부 청소해 버리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