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흑막 (2)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욕망을 따라 움직인다.
배고픔이라는 욕구가 지금의 문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음식에 대한 배고픔, 지식에 대한 배고픔, 그리고 권력에 대한 배고픔.
인간은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며 그 욕망을 기름 삼아 활동한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살포를 시작하겠습니다.”
러시아 최고 권력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관저에서 3㎞가량 떨어진 곳에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의 임무는 간단했다. 그들이 전해 받은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것.
일본 3,000만 인구를 말살시켜 버린 킬러 바이러스가 저들의 손아래 퍼져 러시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3, 2, 1. 살포 시작.”
“모두 빠르게 대피한다!”
총 75㎏에 달하는 바이러스 폭탄이 버튼 한 번에 폭발하면서 살포되었다. 요원들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고, 현장을 지휘하던 강철중도 최종 확인 끝에 완전히 그 자리를 떴다.
“대통령님,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살포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두 다음 작전을 실행하도록 하세요.”
“예.”
러시아에 잠복하고 있던 요원들은 내 명령에 따라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살포했다.
저 바이러스는 바람을 타고 움직이지만, 2시간 내에 숙주를 찾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숙주를 찾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감염이 시작되는 것이다.
호흡과 호흡으로, 마치 감기처럼 바이러스가 옮겨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감염시켜 버린다.
우리 요원들은 이미 백신을 맞은 상태고, 또한 방호복도 철저하게 입고 있어 감염 위험은 없다. 하지만 관저에서 여자를 끼고 놀고 있을 푸틴과 그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오늘 푸틴은 주요 간부들을 불러 모아 국정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30분 안으로 바이러스가 관저 안에 침투하기 시작할 터.
바이러스의 존재를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결국 푸틴과 나의 대결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제 나는 세계 최고의 독재자의 최후를 직접 이 눈으로 보려고 한다.
* * *
“베리칩 상용화가 아주 성공적입니다. 이것으로 러시아 국민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어요. 거기다가 그들의 기술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발전되어 있더군요. 이걸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 좀 쓰릴 뿐입니다.”
자신을 신봉하는 주요 간부들과 회의를 하고 있던 푸틴은 사령관들의 보고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기만 했다. 사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푸틴도 베리칩 상용화를 굉장히 긍정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골든 연합의 수장, 김태산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언젠간 반드시 이 세상을 통치하고야 말 것이다. 바로 그들이 내세운 이 베리칩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들의 힘이 닿지 않는 곳도 있다. 즉, 신이 되는 과정을 맞이하고 있을 뿐. 진짜 신이 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푸틴은 먼저 선수를 쳤다.
이들에게서 베리칩 통제권을 빼앗아 온 것이다.
딱 러시아만 말이다.
푸틴은 알고 있었다. 저번 날 김태산과의 대화에서 깨달았다.
결국 모든 국가가 골든 연합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임을. 혼자 베리칩을 맞지 않는 러시아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 세계적 왕따가 되어 나라가 무너지게 될 것임을.
하여 푸틴은 베리칩을 국민들 몸에 심는 대신, 통제권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핵이라는 비대칭 전략무기로 말이다. 하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세계 정복을 이뤄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태산이다.
그라면 분명히 이렇게 쉽게 넘어갈 리 없다.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을 터.
그게 뭔지 모르기에 푸틴은 불안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꾸미고 있을까?
“다음 안건으로는, 최근 일본에서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조사인데 안타깝게도 일본에 나가 있던 연구원들이 전원 바이러스로 사망하는 바람에 알아낸 것이 거의 없습니다. 방호복을 하고 있어도 감염이 될 만큼 바이러스가 매우 강력하지만, 자연적으로 생긴 바이러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줄곧 듣는 척만 하고 있던 푸틴은 정신을 차리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예, 자연적 발생이라 보기에는 전혀 연관점이 없는 바이러스입니다. 만약 이것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바이러스라면 다른 나라에서도 반드시 발견이 되었어야 하는데, 이런 성질의 바이러스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푸틴은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본 사태가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본 사태가 발발하기 전부터 한국은 갑자기 일본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켜 관광 금지를 비롯해 전면 귀국을 요청하는 등, 강한 제재를 보였다. 또한 골든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기업들도 하나둘 철수를 하며 일본이란 나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런 직후에 바이러스가 발생해 수천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리고 이 바이러스가 시작된 곳은 공교롭게도 도쿄 시내 한복판입니다. 바이러스 감염자가 단번에 수만 명이나 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그리 많은 조사를 하진 못했지만, 과학자들은 이것을 의도적인 살포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이런 위협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었냐는 것이다.
“바이러스 제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 우리 러시아 연구소에서도 위력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순 없습니다. 감염이면 감염, 치사율이면 치사율. 엄청난 살상 능력을 가진 이런 바이러스를 개발한 건 한 국가에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 이 바이러스가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세계의 최고 전문가들이 합심해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미친 짓을 한단 말입니까?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어요.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해도 결코 이런 짓까지 할 수는…….”
“아니.”
푸틴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이들의 말에 신빙성이 있었다.
골든 연합이라면, 김태산이라면 이 미친 짓을 하고도 남는다.
테러라는 무기로 아주 당당하게 베리칩까지 뿌린 놈들이니까.
“골든 연합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우리 쪽 정보에 의하면, 골든 연합은 세계 통치에 강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지. 거기다가 이놈들은 효율성을 지향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즉, 지구에 있는 유한한 자원을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인구 감축을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거지.”
“이, 인구 감축이요?”
“그래,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골든 연합과 김태산이라면 결코 헛소리가 아니야. 이 바이러스도 분명 그놈들이 만든……. 잠깐만.”
말을 이어 하고 있던 푸틴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네 코에서 피가…….”
“예? 대, 대통령님 코에도…….”
“뭐야?”
푸틴은 자신의 코에 흐르는 피를 확인했다. 그런데 푸틴과 국방부 장관만이 아닌, 회의장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푸틴은 한 생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증상이 뭐라고 했지?”
“예?”
“킬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증상이 어떻게 되냐고!”
높아진 푸틴의 목소리에 답한 것은 외교부 장관이었다. 아니, 외교부 장관이 들고 있는 노트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코에 피를 흘리고 엄청난 어지럼증이 찾아옵니다. 그다음에는 몸에 마비가 시작되죠. 그렇게 눈을 뜬 채로 죽어가는 겁니다. 이틀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말이죠. 아! 걱정하진 마세요. 신경 세포를 파괴시키는 바이러스라 잠깐 아프다 나중에는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게 되니까요.”
“너, 너는…….”
노트북에서 나오는 목소리의 말대로 푸틴은 극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이건 단순히 자신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서, 설마…….”
“놀라셨죠? 이게 바로 일본을 무너뜨린 그 바이러스입니다.”
노트북에 나오는 얼굴은 골든 연합의 수장, 김태산이었다.
그는 아주 즐겁다는 눈동자로 푸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독재자의 최후를 감상하고 있는 새로운 독재자의 눈빛이다.
“이 새끼……. 도, 도대체 언제!”
“음, 살포한 지 6시간 정도 지났군요. 슬슬 증상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바, 바이러스를 살포한 거냐?”
“예, 일본에서 열심히 인구 감축 중이긴 한데, 러시아도 워낙 사람이 많아서요. 이쪽도 감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물론, 너무 추운 지역이라 바이러스 활동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지금쯤이면 요원들이 각 지역에서 바이러스를 살포 중일 겁니다.”
푸틴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렇게 어지럽고 피가 줄줄 나고 있는데, 어째서 노트북을 들고 있는 외교부 장관은 멀쩡하단 말인가? 그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김태산이 해답을 주었다.
“당신이 소집한 50명의 간부들 중, 딱 7명이 저희 쪽에 붙었습니다. 이들은 제가 미리 보내준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겁니다. 생각보다 이 바이러스가 단순해서 말이죠. 백신이 있는 항체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요.”
“너 이 새끼……. 가, 감히 날 배신해?”
“전 실리를 따른 것뿐입니다. 당신은 너무 이 나라를 오래 다스렸어. 이제 물러날 때도 됐지.”
외교부 장관의 비웃음 가득한 표정에 푸틴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품 안에 있던 총을 간신히 꺼내 저 웃는 얼굴을 향해 쏴버렸다. 그 덕분에 외교부 장관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고 컴퓨터는 바닥에 떨어졌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화면이 끊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아까운 인재를 죽이셨네요.”
“닥쳐! 내가 고작 이따위 바이러스에게 죽을 줄 알아!”
“하하. 역시, 천하의 푸틴답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쩝니까? 아무리 당신이라도 백신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리고 백신을 맞지 않은 여기 모든 사람들도요. 이제 5분 정도 남았을 겁니다. 5분 후에는 당신은 절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요. 영원히 그 상태로 마비가 되는 거죠.”
“이… 이익-!”
푸틴이 차츰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바라보며 김태산이 최후의 제안을 던졌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내게 영원한 복종을 맹세한다면 당신 목숨을 살려 드릴 수 있습니다. 자, 빌어보세요. 그럼, 살려는 드릴 테니.”
“뭐야……?”
“영원한 복종입니다. 나 김태산에게 영원한 충성을 다 하겠다고 맹세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당신 목숨을 살려 드리겠습니다.”
푸틴의 동공이 흔들렸다.
영원한 복종을 맹세한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이보다 달콤한 제안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푸틴은 애를 쓰며 가운데 손가락을 쭉 뻗었다.
“지옥에나 떨어져.”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린 푸틴의 몸.
특히 저 가운데 손가락이 눈에 띈다.
김태산은 끝까지 자기 스타일대로 가버린 푸틴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