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세계 정부 (2)
“준비는 다 됐어?”
“…응.”
의기소침해 보이는 연욱이의 어깨에 나는 손을 올렸다.
“표정 풀어. 감옥에서 나온 게 어디야. 그리고 명예 회복도 해줬잖아. 사실 모든 건 정부의 표적 수사로 억울하게 네가 감옥에 갇힌 거라고. 국민들은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있어.”
나는 연욱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죄목을 청산해 주었다.
연욱이의 인기를 깎아내리려고 한 전 정부의 비리이며, 사실 연욱이는 아무 비리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언론에 공표하자 사람들은 영웅이 돌아왔다며 기뻐했다.
지금 세상은 참 단순하게 돌아가고 있다.
언론에서 떠드는 말은, 나 김태산이 떠드는 말은 전부 사실인 양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추악한 진실을 알고 있는 연욱이만큼은 맘 놓고 웃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제대로 하고 와. 저것만 잘하면 이제 넌 정식으로 검찰총장이니까.”
연욱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기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회견장으로 나갔다.
난 그런 연욱이의 뒤에 대고 말했다.
“혹시라도 오바마처럼 이상한 얘기 하려고 하는 거면 포기하는 게 좋아. 저 기자들, 내가 쓰라고 한 것만 쓰게 되어 있거든. 어차피 생방송도 아니고.”
연욱이도 바보는 아니다.
당장 미국 대통령이 입을 잘못 놀렸다가 백악관이 폭파되었다. 그만큼 골든 연합의 비밀 유지는 굉장히 철저하다. 즉, 연욱이가 아무리 카메라 앞에서 우리에 대해 까발린다고 해도 단 한 글자도 기사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연욱이는 그 말을 남기고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부드럽게 회견장을 장악해 나갔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장연욱은 대통령님 덕분에 그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있던 죄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정의롭다는 이유로, 부정부패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이 나라에 한번 버림을 받았지만,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고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알기에 믿고 기다렸습니다.”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고 정의는 승리한다라.
어떤 놈이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영원히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정의가 승리한다? 그 정의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었냐에 따라서 그 뜻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나는 정의롭다. 또한 나의 정의는 승리했다.
“저는 이제 국가의 부름을 받아 검찰총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베리칩 상용화로 범죄율이 낮아지긴 했으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부정부패가 득실댑니다. 이것을 모두 근절하기 위해 저는 공격적으로 수사할 예정입니다.”
검찰총장으로 임명을 받은 연욱이는 나름의 포부를 밝혔다.
베리칩 상용화로 흉악 범죄가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녀석 말대로 공금 횡령 등을 비롯한 여러 비리는 근절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걸 잡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욱이는 마음대로 수사할 권한이 없다. 내 편에 선 사람을 검찰 손에 넘길 순 없지 않은가? 특히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감옥살이를 해도 할 말이 없을 터.
“앞으로 국민 여러분의 뜻대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검찰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성명서가 언론에 나가면 아마 다들 청렴한 정부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모든 언론이 그렇게 떠들어댈 것이기 때문에.
내 사람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약한 자의 고혈을 빨아먹고 살긴 하지만, 그들의 고삐를 누군가는 잡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연욱이가 바로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힐러리 대통령은 나를 성대하게 맞이해 주며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으며 포토존에 섰다.
오늘 내가 여기 백악관을 찾은 것은 이 아줌마와 가만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힐러리도 포함이 되긴 하겠지만, 나는 미국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골든 연합의 본부를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내 명령을 잘 수행하며 훌륭한 업적을 세워주었다. 오랜 숙원이었던 베리칩 상용화부터 그 외 경제적인 지배와 군사적 지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을 해주지 않았던가? 황제가 된 자로서,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을 치하하는 것은 의무이자 덕이다.
“모두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의장에는 힐러리를 포함한 12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골든 연합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멤버들로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원들이다.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우리의 위치가 마냥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서요. 먼저 안건들을 해결하고 난 뒤에 만찬을 즐기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도 같은 의견입니다. 일이 쌓여 있는데 술이 넘어가겠습니까? 하하하.”
멤버들의 의견을 모아 우리는 만찬을 뒤로하고 회의부터 시작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나 저 사람들이나 모두 워크홀릭이다. 하지만 그 안건이 세계정세를 좌지우지하는 거라면 누구라도 열정을 가지고 나설 수밖에 없다.
“저번에 대통령님께서 주문하신 리스트입니다. 한번 확인해 주십시오.”
김아름이 건넨 목록에는 어느 국가에 가장 먼저 전염병을 퍼뜨려 인구를 감소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나라가 왜 우선순위로 선정되었는지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랍 국가와 중국이 최우선 순위군요.”
“예. 아랍 국가가 우선순위로 포함된 이유는, 아무래도 종교 문제가 크기 때문입니다. 가장 과격한 종교 사상을 가진 이슬람이라,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김아름의 말대로 이슬람이란 종교는 굉장히 위험한 사상을 갖고 있다.
알라를 믿지 않으면 모두 죽이라는 교리를 받아들이고 실제로 그 일을 행하고 있으니, 앞으로 내가 만들 세상에는 필요하지 않은 종교다.
“지금 기회가 있어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 세계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종교 자체를 없앨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종교 하나쯤은 남겨둘 것인지 결정해 놓아야 합니다. 만약 남긴다고 하면 어떤 종교를 남겨야 하는지도요.”
“음- 과격하다고 알려진 이슬람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고, 그나마 가장 통제하기가 쉬운 기독교가 낫지 않겠습니까? 천주교도 있긴 하지만, 거긴 교황청이라는 음흉한 집단이 있어서 말이죠. 교황이란 자를 너무 사람들이 따르는 것도 세계 정부에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다니엘 로페즈의 말이 맞다.
우린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종교가 있는 것이 낫다.
천주교는 그런 의미에서 위험하다.
일단 교황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고, 기독교를 홀로 남겨둔다고 해서 그들에게 발언권을 줄 생각은 일체 없다.
만약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항을 하고자 하는 종교라면 그 자리에서 없애 버리고 차라리 나를 신격화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건 농담이지만, 차라리 종교를 전부 없애 버리고 김태산 대통령님을 신격화하면 어떻습니까?”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힐러리 대통령이 말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내가 신이라도 된 모양이다.
“뭐, 나쁘지 않은 의견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검토를 하기로 하고……. 강철중 사장님?”
“예, 대통령님.”
“이번에 영국과 독일이 자발적으로 베리칩을 상용화하겠다고 나섰어요. 그런데 프랑스를 비롯한 그 외 나라들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군요. 그들은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아직 낮은가 봅니다.”
외적인 공세를 취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국민들의 지지를 먼저 얻어야 한다.
정치인들을 무작정 포섭해서 베리칩을 추진하는 것보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직접 베리칩을 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과 독일은 이미 그 수준까지 왔다. 이미 전 국민의 80%가 베리칩 상용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두 나라의 정치인들은 베리칩 상용화를 전면 통과시켰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베리칩 상용화에 대한 움직임이 없다.
“테러의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제대로 보여주겠습니다.”
“예. 강철중 사장님의 전문이니,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하루 빨리 좋은 소식이 왔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조만간 유럽 전역에 다시 한번 불바다로 변하는 걸 볼 것 같다.
“그런데 전염병 연구에 대한 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겁니까? 미국 쪽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 박사들을 보내긴 했습니다만…….”
힐러리가 운을 떼면서 다시 주제는 전염병으로 돌아갔다.
“70% 정도 완료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은 그걸 말씀드리기 위해 제가 직접 미국으로 온 겁니다. 나머지 30%를 채우기 위해서요.”
“나머지 30%?”
“예, 이 바이러스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겠습니다.”
“그 말씀은 실험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군요.”
70% 정도 되었다는 말은 프로토타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게 시달렸던 김석환 박사는 드디어 연구 진척을 이뤄냈으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냈다. 이제 이것을 실험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인체 실험은 이미 통과를 했습니다. 치사율 99%에 이르는 강력한 바이러스입니다. 보통 감염되면 반나절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고 이틀 안에 해독제를 맞지 못하면 사망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지요.”
내 설명에 여러 사람들이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이 바이러스를 개발한 곳에서는 이것을 킬러 바이러스라고 부른답니다. 아직 정식 명칭은 없지만, 아무튼 이 바이러스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확실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체 실험은 끝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사람에게 주입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만족스러웠죠. 그러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바이러스를 살포할 땅과 인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인체 실험은 끝났다. 그러나 그건 겨우 수백 명을 상대로 벌인 실험에 불과하다.
이제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 바이러스를 뿌릴 단계가 되었다. 과연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빠르고 치명적인 살상력을 보여주는지 통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 바이러스는 프로토타입에 불과합니다. 만약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새로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 바이러스의 실험 대상으로 일본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내 말에 다들 동감하는 눈치였다.
“일본은 섬나라이고 육로로는 절대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없으니, 바이러스가 시작되는 순간 차단이 가능하겠군요.”
“치밀한 역학조사를 벌이면서 경로를 차단한다면 다른 나라에 피해 없이 바이러스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면이 바다로 덮여 있고, 육로로는 다른 나라에 접근할 수가 없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이런 곳에 바이러스를 뿌린다면 어떻게 될까?
바이러스 발견 즉시, 나는 입국 거부와 출국 거부 성명을 낼 수 있으며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혼자 바이러스에 고통받아 발버둥 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모두 의견이 정해졌군요.”
인류 감축을 위한 그 첫 단계가 일본에서부터 시작되려 한다.
이로 인해 희생될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인류는 무궁한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