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신세계의 신 (4)
“켜봐.”
“예, 대통령님.”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상황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화면에 1억 명이 넘는 사람들 데이터가 온라인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다.
베리칩을 이식받은 미국과 한국 국민들의 정보가 낱낱이 화면에 올라갔다. 내가 원하는 사람의 위치를 얼마든지 볼 수가 있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또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감시가 가능하다.
그뿐인가?
베리칩을 강제로 빼내려는 행동이 감지되면 바로 경보가 울려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베리칩을 폭파시키는 기능까지 있다.
“모두가 맞은 건 아니겠지?”
“예, 베리칩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센서를 동원했습니다. 만약 베리칩을 맞지 않은 사람이 센서 곁으로 지나갈 경우, 바로 경보가 울리게 됩니다.”
베리칩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이다. 그렇기에 베리칩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한 센서도 만들어두었다. 즉, 누가 베리칩을 맞았고 맞지 않았는지 곧바로 구분할 수 있는 센서가 미국과 한국 땅 전역에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 뜻에 따른 자와, 따르지 않은 자를 철저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따르는 사람에게는 안전한 세상이 주어질 것이며,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신의 심판이 있을 터.
그리고 신의 심판을 위한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베리칩 이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로 간주해 사형을 선고한다고요??”
“극단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미국이 평화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죠. 물론, 무작정 사형을 시키진 않을 겁니다. 수용소에 가두어두고 베리칩을 이식받으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먼저 거칠게 될 거예요.”
“설득입니까, 아니면 고문을 통한 협박입니까?”
“그건… 수용소에서 알아서 잘 처리할 겁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오바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대통령이 된 힐러리.
그녀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화상통화 화면으로 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하다.
이 세상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그 열정. 난 그녀의 열정을 높이 산다.
뒤에서 어물거리다 백악관과 함께 날아가 버린 오바마보다는 훨씬 낫다.
“저는 항상 말씀드리지만, 언제나 김태산 대통령님을 지지합니다. 우리 연합… 아니, 우리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니엘 로페즈의 말대로 그녀는 광신도다. 골든 연합을 따르는 광신도. 그리고 나를 숭배하는 광신도. 그녀의 사상은 모두 골든 연합으로부터 물들었으며, 나를 신격화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만큼 그녀는 나의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평화를 유지한다는 미국의 대통령이 나의 광팬이라.
기분이 묘하면서도 나쁘지는 않다.
“저도 힐러리 대통령님과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군요. 부디 인류의 영원한 밝은 미래를 위해 뛰어주십시오.”
“얼마든지요.”
베리칩을 거부하는 자들은 모두 수용소에 들어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아마 그중 90%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베리칩을 맞게 될 것이고, 나머지 10%는 끝까지 소신을 지키다 사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한 관까지 전부 준비를 해둔 상태. 또한 그들을 한곳에 몰아넣어 고문할 수용소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차차 수용소는 각 나라에 생겨나며 베리칩을 거부하는 국민들을 돼지처럼 잡아넣을 것이다.
수용소는 가축을 묶어두는 외양간이고, 베리칩을 거부하는 자들은 돼지와 소 같은 취급을 받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베리칩 법안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베리칩 법안이 발의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베리칩을 이식받고 문제가 되었다고 보고된 상황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베리칩을 거부한 사람들 중 추가 테러를 계획 중이던 조직원들이 잡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베리칩 이식 의무행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여론은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
베리칩 이식이 의무적으로 시작되고 베리칩 센서가 전국구를 돌면서 이식을 거부하는 이들을 대거 잡아들일 수 있었다. 그중에서는 골든 연합에서 심어놓은 테러리스트들이 붙잡혀 베리칩이 실제로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증명했다.
그뿐인가?
살인사건을 비롯해 흔한 절도사건도 현저하게 줄어들어 더 이상 미국에서는 밤중에 들리는 총소리 때문에 불안을 떨 필요가 없어졌다. 만약 누군가가 총을 쏴서 살인을 했다면 베리칩을 통해 금방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범죄율 제로.
이것이 현재 미국이 바라보고 있는 목표다. 그리고 베리칩이 있으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항상 누군가에게 감시 받고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범죄자가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핸드폰을 보라.
조만간 스티브 잡스라는 큰손이 나와 아이폰을 발표할 것이며, 세상은 스마트폰 세계가 된다. 즉 모두가,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핸드폰을 손에 놓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베리칩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항상 핸드폰을 들고 다니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국가가 국민들의 핸드폰을 도청한다는 건 이쪽 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것이 곧 국가의 안보와 관련되어 있으니까.
베리칩도 똑같다. 오히려 이것은 더욱 편리한 삶을 국민에게 제공해 준다.
현금과 신용카드 없이 신체 인식으로, 그것도 해킹당할 리가 없는 자신만의 생체인식으로 결제를 하고 범죄로부터 자유를 느낀다.
미국은 밤에 돌아다니면 범죄의 표적이 되지만, 베리칩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 말은 모두 옛말이 되게 될 터.
내가 이들에게 선사한 건 통제된 자유다.
인간은 결국 누군가에게 통제를 받아야 하는 동물이다.
국가란 그것을 표방하는 것이고, 인간은 통제를 받아야 살 수 있는 동물임을 국가와 정부로 증명했다. 그리고 난 더욱 확실한 통제로 이들에게 안전과 평화를 선물했다.
이제 범죄 때문에 가족을 잃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계좌가 해킹되어 순식간에 돈이 털려 나가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나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베리칩이 그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테니,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일도 없어진다.
베리칩은 위대한 발견이요, 인류의 진화다.
이것으로 인류는 더욱 완전해질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공적인 베리칩 법안 발의를 축하해 주었다. 이들 모두 골든 연합 소속이니, 베리칩 프로젝트가 우리 연합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몸에 베리칩을 심었습니다. 이건 굉장한 성공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실 건 아니겠죠?”
오랜만에 만난 이강찬은 한층 더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내가 정계에 진출하면서 천성 그룹은 오롯이 이강찬의 것이 되었다. 내가 가진 지분을 이강찬에게 전부 넘겨준 덕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 베리칩이 심겨 있는 이상, 그는 절대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이곳 연회에 참석한 모든 기업인들 몸에 베리칩이 심겨져 있다. 베리칩을 박지 않은 건 나 혼자뿐이다.
“이제 진짜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미국과 한국이 베리칩을 상용화시켰으니, 다른 나라들도 그걸 보고 느끼는 바가 있겠죠. 만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강제로라도 느끼게 해주면 됩니다.”
이강찬은 내게 다음 계획을 물었고, 이것이 나의 다음 계획이다.
미국과 한국이 베리칩을 상용화시켰다. 이제 다른 나라도 우리를 따라 베리칩을 상용화시켜야 할 것이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그쪽 주석이 우리 편이니,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베리칩을 상용화시킬 겁니다. 문제는 일본이겠죠.”
“일본이요? 그쪽도 대통령님의 편이 아니었습니까?”
“고이즈미 총리는 확실히 우리 편입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져 있고, 후임을 이으려 하는 아베 총리는 아직 우리와 줄이 닿지 않아요. 물론, 원한다면 제가 언제든지 아베 총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순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강찬은 내 생각을 알아차렸다는 듯,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거, 우리 천성 그룹이 일본에서 빨리 철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역시, 눈치가 빠른 양반이다.
“가능하면 빨리 하십시오. 일본을 향한 제 인내심이 슬슬 떨어지고 있으니까요.”
“일본을 아예 박살 내버릴 생각이십니까?”
“예. 일본은 전 세계를 향한 아주 좋은 표본이 될 겁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얼마나 무섭고 잔안한지를 보여줄 것이며, 제 말을 거부했다가는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항하는 국가는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것 또한 일러주겠죠.”
아베 총리가 정권을 잡는 즉시, 나는 일본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에 따라 아베는 내 말을 철저히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불상사는 나의 탓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일본이 테러 공격에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각 국가의 국민들은 베리칩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될 터.
베리칩이 상용화되면서 미국은 범죄율 제로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지금 같은 시대에 베리칩은 뛰어난 매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빨리 그곳에서 철수를 해야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말씀대로라면 일본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맞다. 일본 국민들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대통령님.”
그때 류정한 비서실장이 내게 조심스레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다니엘 로페즈로부터의 전화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연락을 달라고 언질 준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미스터 로페즈.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알아보라고 했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어제 확인을 끝낸 참입니다. 정식 명칭도 정해졌더군요.”
“정식 명칭이요?”
“예. 올마이티 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답니다. 뭐, 적절한 이름이죠. 날씨와 자연재해를 조작할 수 있는 무기니까요.”
전지전능한 무기라는 것인가.
그 이름대로 이 무기는 신의 권능과 다름이 없다.
지진과 해일을 일으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완성을 되었답니까?”
“예. 드디어 완성이 되었고, 크게 한 방 터뜨릴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근질거리는 몸을 풀어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동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라고 하세요. 그리고 그걸로 일본에 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지 꼭 확인해 보시고요.”
“예, 대통령님. 그런데… 오늘 연락을 드린 건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다니엘 로페즈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럼……?”
“러시아 문제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러시아요?”
“예.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아무래도 우리 계획에 큰 차질을 줄 것 같아서요.”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
그와 나는 항상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 경제권을 내가 쥐고 흔드는 덕분에 푸틴이 그동안 고분고분했던 것이지만, 그는 언제든지 내게 마음을 돌릴 수가 있다.
“푸틴은 베리칩이 우리 연합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알고 베리칩 상용화를 전면 금지시킬 것 같아요. 거기다가 군부 간부들을 재편성해서 골든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간부들을 하나둘 쳐내고 있고요. 어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완전히 우리 손을 벗어나게 될 겁니다.”
다니엘 로페즈의 말대로 여기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굉장히 큰 차질이 생긴다.
러시아의 힘은 가히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푸틴을 제거하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