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신세계의 신 (3)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다니엘 로페즈의 말을 시작으로 회의가 진지하게 흘러갔다.
“바로 연막입니다. 베리칩을 무작정 추진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연막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연막이요?”
“예, 최근에 최정식 사장을 시켜 일본에 폭탄 테러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나라 국민들도 테러 위협을 느끼며 베리칩 이식에 거부감을 덜 테니까요.”
애초에 계획은 일본을 먼저 박살 낸 다음, 우리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베리칩을 맞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니엘 로페즈는 이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아름도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님. 일본을 공격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계속 빈 라덴을 이용하는 건 그리 좋은 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오사마 빈 라덴을 처리할 때가 온 겁니다. 알카에다 조직을 공중분해시켰다고 언론에 알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다? 거기다가 공들여 키운 알카에다 조직까지?
“물론, 알카에다 조직을 진짜 해체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름만 슬쩍 바꾸는 것이죠.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을 그 자리에서 처형시킨 다음, 새로운 조직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겁니다.”
“새로운 조직이요?”
“예, 새로운 테러 조직. 사람들은 잠시 동안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에 기뻐하며 이제 테러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죠.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는 한, 영원히 테러는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이제야 이들의 계획이 뭔지 알아챘다.
이들은 테러의 상징이 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죽어도 결코 테러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리칩을 반대하던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칩 이식을 허용할 테니까.
실로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일본을 공격하는 건 좀 뒤로 미뤄야겠군요.”
“예, 최정식 사장이 좀 아쉽게 생각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이 의견에 아주 찬성합니다. 어차피 아예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잠깐 미루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정식이의 허락도 떨어졌다.
그렇다면 남은 건 강철중과 미 백악관의 합동 행동이다.
* * *
“또 테러할 곳이 남았습니까?”
테러리스트로써 이룰 건 다 이뤘다고 봐야 한다.
미국 백악관을 통째로 날려 버렸으니, 빈 라덴이란 사람은 여러 테러 조직에서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빈 라덴의 모습은 허수아비 그 자체였다.
하라는 대로만 하며 가끔 비디오에 나와주는 대본을 읽는 비참한 신세.
이것을 위해 자신이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래도 나름 신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마지막 임무다.”
마지막 임무라는 말에 빈 라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지막이요?”
“그래, 이것만 하면 이제 넌 자유야.”
강철중의 말에 빈 라덴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유라니? 정말로?
“오늘 너랑 네 부대는 여기서 하루 동안 있으면 돼. 자세한 사항은 내일 알려주지. 내일 전달되는 임무만 잘 실행하면 우리도 더는 너한테 관심 갖지 않을 거야. 네 알아서 살아.”
강철중은 무심하게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뒤따라 나서는 김민재에게 빈 라덴이 소리쳤다.
“저, 정말 내일 일만 끝내면 자유입니까?”
김민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완전한 자유지.”
빈 라덴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놈들과 작별이구나.
언제나 이 날만을 기다리며 알라에게 매일같이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기도를 들어주시려는 것인가?
강철중이 탄 헬기가 상공에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릴 때쯤.
갑자기 부대원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저거!”
“모두 대피해!”
빈 라덴은 천천히 천막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강철중이 말한 자유라는 것이 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미사일들이 알카에다의 본거지 위를 수놓았고 시끄러운 전투기 소리가 귀를 울린다. 이것은 명백한 공습이다. 그리고 강철중이 말한 자유는 바로 이것이다.
골든 연합이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
빈 라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도 최후의 순간만큼은 눈물로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콰콰쾅-!!
아주 잠깐 귀를 터뜨리는 폭음이 들리다 모든 것이 끊겨 버렸다.
그의 시야도, 청각도. 쿵쿵대던 심장도.
* * *
“오늘 저는 이 기쁜 소식을 여러분께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어제 새벽 5시경, 미 공군이 알카에다 조직의 본거지를 타격, 그곳에 있던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사살했으며 오사마 빈 라덴도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힐러리는 아주 해맑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는 알카에다 조직에 완전 분해와 그들을 이끌던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렸다.
“이로써 테러 조직은 더 이상 고개를 들 수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죽었고, 미국은 정의를 실현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에 국민들은 반신반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빈 라덴의 장례식 소식에 국민들도 그제야 빈 라덴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영원하리라!”
시민들은 밖으로 쏟아져 나와 미국 국기를 흔들어댔다.
빈 라덴이 죽음으로써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영웅적인 죽음은 형제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과 손을 잡고 우리를 압박하는 세력들에게 신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자, IS라는 테러 집단이 등장해 그의 영웅적인 죽음을 추모했다. 또한 이전에 없던 끔찍한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며 협박했고 그 타깃으로 미국 동맹국들을 삼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으로 알카에다 조직이 와해되었지만, 그의 죽음을 빌미로 세력을 키운 새로운 테러 조직이 나타나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IS라고 불리는 이 조직은 알카에다를 따르던 하위 조직들을 전부 흡수해 거대 세력을 만들어냈으며,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레바논까지 세력을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테러 조직의 탄생. 하지만 사람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으니, 더 이상의 테러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강하게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이곳은 도쿄입니다! 아직까지도 불길이 잡히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데요, 현재 집계된 사망자만 해도 2,000명이 넘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오사카 시내가 불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관광객들을 비롯해 총 1,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애초 계획대로 일본 폭탄 테러가 거행되었다.
IS가 선포했던 대로 미국 우방 국가가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을 관광 중이던 우리나라 관광객 350명이 사망하는 등, 상황은 굉장히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알카에다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뉴스 기사들은 하나같이 IS 테러 조직에 관한 내용이었고, 알카에다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미국의 발바닥을 핥던 일본은 신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미국과 혈맹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한민국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계신다.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는 한국도 일본과 같이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너희들은 절대 그분의 응징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IS조직에서 나온 비디오가 결정타였다.
일본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IS가 새로운 목표로 우리나라를 삼은 것이다. 이런 영상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면서 국민들의 불안은 상당히 커져갔고, 폭발물 의심 신고가 수십 배로 늘어났다. 또한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딱 내가 원하는 대로였다.
이제 내가 다시 목소리를 높일 명분이 생겼다. 난 급히 성명문을 발표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일본이 잔악무도한 테러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관광 중에 봉변을 당했으며,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테러 조직은 다음 타깃을 우리나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절대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현 시간부로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반드시 테러 공격을 막겠습니다.”
말을 장황하게 늘어났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비상사태였다.
비상사태를 선포한다는 것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해도 불만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무엇보다 테러 공격에서부터 안전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극적인 연출을 위해 난 몇 가지 수를 썼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 이틀째. 우리 군은 63빌딩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대량의 폭탄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일본에서 사용된 폭탄과 동일한 소재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양이면 충분히 63빌딩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안전할 거라고 믿던 몇몇 국민들도 뉴스를 보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63빌딩에 대량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소식에 모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것이다. 그러자 자연스레 우리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베리칩 이식을 실행하라!”
“불안해서 못살겠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라!”
미 정부처럼 우리나라 정부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조치를 취하라는 데모가 연이어 일어났다. 누군들 안전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당연한 결과이며 당연한 본능이다.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베리칩 이식을 시키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베리칩 이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를 폭군이라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베리칩을 원하는 건 바로 국민들이니까.
이미 미국은 베리칩 이식을 시작했으며, 이미 국민 절반이 베리칩 이식을 받았다. 또한 베리칩 이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전부 잡아들여 그중에 섞여 있는 테러 조직원들을 색출해 내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이런 뉴스들이 매일 들려오자 사람들은 베리칩이 정말 국가의 안전을 지킨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사생활 침해와 더불어 그 칩 하나로 우리 모든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는 괴담이 돌았지만, 지금은 그런 괴담이 쏙 들어가고 베리칩이 꼭 필요하다는 내용만 인터넷에 가득 하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강력하게 베리칩을 거부하고 있지만 어차피 인간은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따르지 않는다는 건 죽음을 뜻하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로써 베리칩 이식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키겠습니다.”
국회 의장이 망치로 법안 통과를 외치면서 각 당의 의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댔다. 또한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국민들도 박수를 치면서 드디어 이 나라도 안전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나도 소파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동안 망상처럼 여기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과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 나의 소유물이 되었다.
드디어 내가 신세계의 신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