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구원자 (1)
“오바마 케어가 발표된 지 7일째. 여전히 여론은 시끄럽습니다. 한국을 롤모델 삼아 의료 체계를 혁신시키겠다는 오바마의 뜻을 과연 의원들이 이해해 줄지가 관건입니다.”
“로비스트를 통해 의료 민영화를 실현시킨 많은 기업들이 오바마의 법안을 정면으로 대항하며 이는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으로 법을 어지럽히는 꼴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베리칩 프로젝트를 위한 필수적인 단계인 오바마 케어가 상원과 하원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의료 민영화로 열심히 꿀을 빨고 있던 기업들은 당연히 크게 반대를 하며 로비스트들을 총동원했다. 그로 인해 반대파로 넘어간 의원들도 몇몇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리스트가 작성되어 곧장 내게로 전송되었다.
“명단은 받으셨습니까?”
“예, 방금 받았습니다.”
“어떻게 처리하기를 원하십니까?”
“그건 미스터 로페즈에게 맡기도록 하죠. 전 그저 오바마 케어가 서둘러 통과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사사건건 나한테 보고하지 말고 알아서 처리한 다음에 결과만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다니엘 로페즈는 금방 내 말을 알아들었다.
“이런. 제가 괜한 말씀을. 그렇지 않아도 국정 때문에 바쁘신 분인데 말입니다. 대통령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루 빨리 좋은 소식을 가져다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 통화를 길게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직책이라는 건 일분일초도 낭비할 수가 없으니까.
“현재 일본 여론이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위안부 사죄와 더불어 독도 영유권까지 한국의 소유로 고이즈미가 정식 인정하면서 내부적인 갈등을 겪는 것 같습니다.”
당장 한국에서의 일도 처리할 게 산더미처럼 많은데,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특히 일본은 이번에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로 많은 국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일본이라면 냉담하게 바라보던 러시아도 고이즈미 총리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만큼 지금의 일본은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난 일본이 항상 악당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이미지메이킹이 되는 것은 매우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좋자고 위안부와 독도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입지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극우 성향을 가진 아베 신조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아베 신조.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 참 오래도 총리직을 해먹던 놈이다. 그리고 메이지유신 이래로 최장기 집권을 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최연소로 총리직에 앉는 건 덤이다. 거기다가 이놈은 아베노믹스라는 신드롬으로 무너지던 일본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외교까지 튼튼하게 만든다. 또한 자위군 강화를 바탕으로 군국주의에 한층 더 다가가기에 이른다.
“아베 신조는 극우 성향이 굉장히 높습니다. 위안부와 독도 문제를 분명히 걸고넘어질 겁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고이즈미 총리가 발언한 모든 걸 철회시켜 버릴 여지도 큽니다.”
아베가 그렇게 악역을 맡아준다면 세계적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이고, 아베는 그냥 개새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집권까지 하게 되면 일본 전체가 욕을 들어 먹게 될 것은 자명한 일.
“일본과 미국 정상들과의 성공적인 회담 덕분에 내 지지율이 무려 91%야. 그리고 미국과 FTA 체결이 남아 있는 상태고. 만약 일본에서 그따위로 일이 터지면 내 지지율이 어떻게 될까?”
“대통령님께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조금 떨어질 수는 있으나, 고이즈미가 물러나고 아베 신조가 정권을 잡기 때문에 벌어질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자네 말대로 내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아주 미미할 거야.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가 물러나기 전에 보상금을 지급할 테니, 우리로서는 받을 건 다 받은 거지. 물론, 역사 교정에 대한 부분과 독도 문제는 아베와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아무리 극우 성향의 아베라고 해도 내가 나선다면 찍소리 못 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기간을 무한대로 늘려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일본을 칠 명분을 얻기 위함이다.
“정말로 아베 신조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당분간 일본에게 신경 꺼. 국내에서 할 일도 상당히 많으니까.”
“예, 대통령님. 그럼, 이번 FTA 체결 건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나는 류정한이 건네는 서류를 받아 천천히 읽어보았다.
한미 FTA라.
원래 같으면 2008년에 광우병 논란과 부수적인 많은 반미시위를 촉발하게 한 조약이다.
“괜찮네, 이대로 진행해.”
“예, 대통령님.”
“그리고 미국 대사 좀 불러.”
“아, 예.”
FTA는 그냥 관례에 불과하고 내가 미국에게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대통령님.”
줄리아 로렌스는 흑인 여성으로 미국 대사가 된 인물이다.
그녀는 내 손을 맞잡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죠?”
“이제 3년 됐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계속 대사 자리를 지키시는 것을 보면 능력이 상당하신가 봅니다.”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대사라는 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다. 그리고 보통 1년에서 2년 안에 바뀌기 때문에 3년이면 꽤 오래 한 것이다.
“대사님을 여기까지 부른 건 미국에 전달해 주셔야 할 저의 제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저의 임무죠. 어떤 사안 때문에 그러십니까?”
“간단합니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그걸 회수하고 싶습니다.”
“…예?”
내 말에 줄리아는 살짝 당황한 안색을 보였다.
“대통령님, 전시작전권은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걸 가져가신다는 건 한미동맹을 깨뜨리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웃기는 얘기다.
전시작전권을 가져온다고 해서 동맹이 깨지는 거라면 애초에 맺어져서는 안 되는 동맹이 아닌가?
“우리나라에 미군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북한과의 관계가 날로 좋아지고 있고, 휴전선 철폐에 이은 국경 개방을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도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전 아니라고 보는데요.”
“북한의 화전 양면 전술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언제 손바닥 뒤집듯 뜻을 바꿀지 몰라요. 그리고 휴전선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만약 북한이 적화통일의 뜻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뚫린 휴전선을 타고 남하한다면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전시작전권. 넘겨주십시오. 미국은 우리의 우호국이기는 하나, 우리는 더 이상 군사작전권을 남에게 맡겨야 할 만큼 약하지 않아요.”
“완고하시군요.”
“완고합니다.”
“이로 인해 한미동맹이 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잘 생각하세요.”
지금 이 여자는 내가 작은 나라의 대통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나의 진정한 정체도 모르면서 잘도 우리나라 대사로 있었다니. 그리고 만약 내가 골든 연합의 수장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도 저렇게 우리나라를 무시하듯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예전처럼 약하지가 않다.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약하지만,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면 그 어느 나라보다 무섭다.
이런 전투 민족을 저렇게 무시하다니.
아무래도 이 여자는 오늘로써 대사로서의 직무를 다한 것 같다.
“아쉽지만, 줄리아 로렌스. 오늘부로 당신의 대사직을 해지하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대통령님이 무슨 권한으로요? 오직 미연방 대통령님만이 저를 해임시킬 수 있습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당신 상사에게 전화를 걸 참이었어요.”
난 수화기를 들고 미국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전화를 받는 것은 비서도 아닌, 버락 오바마였다. 난 일부러 스피커 모드를 해놓았다.
“대통령님, 무슨 일이십니까?”
스피커로 들려오는 오바마의 목소리에 줄리아 로렌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바마 대통령님, 지금 제 앞에 누가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줄리아 로렌스 대사입니다. 인사라도 나누시지요.”
“대, 대통령님? 저, 정말 대통령님이십니까?”
“예, 제가 맞습니다.”
양국 정상이 서로 핸드폰 메시지를 보내며 심심할 때마다 휴대폰으로 연락을 걸지 않는다. 두 정상끼리의 통화는 그에 따른 절차가 있으며 시간을 조율해 몇 월 며칠 몇 시에 전화를 걸고 받을 것인지 모두 정한 다음에야 통화를 할 수가 있다. 지금처럼 즉석에서 통화를 한다는 건 줄리아로서는 믿기 힘든 일일 것이다.
“대통령님, 저는 방금 줄리아 로렌스 대사에게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시작전권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 말을 미국에 전달해 달라고 했죠.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일이라 제가 이렇게 아무 때나 전화를 걸 순 없으니까요.”
“아, 예. 그러셨군요.”
“예, 그런데 여기 대사님이 저를 협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전시작전권을 가져가는 건 한미동맹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하는데, 대통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오바마는 깊은 한숨을 내쉰 다음 로렌스에게 물었다.
“대사님,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로렌스가 대답했다.
“예, 그,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협박을 하려는 게 아닌…….”
“됐습니다, 대사님께서 너무 쓸데없는 말씀을 하셨군요. 모든 결정은 정부에서 합니다. 대사님이 아니고요.”
“…죄송합니다.”
오바마의 말에 결국 꼬리를 내리는 로렌스였다.
“그런데 사실입니까? 한미동맹이 고작 전시작전권 때문에 깨지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저도 대통령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했어야 하거든요. 도대체 정부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면 대사 따위가 저런 건방진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솔직히 매우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 지금 무슨 말을!”
로렌스가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려 하자 오바마가 서둘러 막았다.
“대사님! 지금 대통령님과 내가 대화하는 중입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하지만 대통령님!”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난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럴 땐 오바마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전시작전권에 대한 건 회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회의가 좋게 흘러가지 않으면 거절하겠다, 이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대통령님, 전 확실한 대답을 좋아합니다. 돌려주는 겁니까, 아니면 이대로 저와 영원히 갈라서는 겁니까?”
오바마가 수화기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생생히 그려진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답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시작전권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하하, 굳이 그렇게 필승의 각오를 다질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리스트만 보내세요. 알아서 해결해 드릴 테니.”
“…예.”
“아! 그리고 저 건방진 년도 함께 처리를 해주시죠. 아니면 제가 할까요?”
“아닙니다, 조만간 새로운 대사를 파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난 수화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서 있는 로렌스를 쳐다보았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겠지? 미국은 지금 한밤중일 텐데도 내 전화 한 통에 미국 대통령이 달려와. 그런데 대사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여?”
“그, 그건…….”
“내가 당신을 살려주는 건 오바마의 부탁 때문도 있고 나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네 공무원 인생도 여기서 끝이야. 그러니까 썩 꺼져. 다신 내 눈앞에 알짱거리지 마.”
줄리아 로렌스는 도망치듯 집무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도 참 평화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이와 같은 평화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바로 내일부터 시작될 끔찍한 참사에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갈구하게 되리라.
그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