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94화 (294/325)
  • 294화. 기적 아닌 기적 (3)

    “워커. 화, 화난 거 아니지?”

    “그럴 단계는 이제 지났죠. 처음에는 화가 좀 나긴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로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로이도 분명 황규혁 형님의 행동이 이상해 보이니까 그런 말을 꺼냈겠죠.”

    “그래.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연합에 내가 모르는 배신자가 생겨서는 안 되잖아.”

    나는 말없이 로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짓긴 했으나, 아마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일 것이다.

    “로이, 괜찮습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옛날 일은 옛날 일로 묻어두기로 해요.”

    “워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런데 이거 하나만 알아줬으면 해. 난 항상 워커 편이야. 그리고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난 똑같이 할 거고.”

    로이는 이상하리만큼 나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생각해 보면, 내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도 그는 골든 연합 수장이란 자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점에서는 감사해야 하나?

    하지만 그가 언제든 마음을 바꾼다면 충분히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버락 오바마가 당선이 되고 나서부터 행동에 나설 겁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 흑인 대통령이니, 그를 필두로 베리칩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미국의 힘을 등에 업어서 베리칩 프로젝트를 실행하자?”

    “예, 전 세계가 다시 테러 위협에 빠지고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면 베리칩을 거부할 수가 없을 겁니다.”

    계획은 완벽하다. 이제 오바마가 대통령 자리를 가져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나는 로이와 함께 술을 마시며 밤을 샜다. 그리고 그가 공항으로 떠나기 무섭게 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아니, 이제 대통령님이시군요.”

    “하하, 편할 대로 부르면 됩니다, 강철중 사장님.”

    “절 사장님이라고 다 불러주시고, 왠지 부끄럽습니다.”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된 강철중은 여전한 목소리로 날 반겨주었다.

    “제가 어떤 일로 전화를 드렸는지 아십니까?”

    “…….”

    강철중은 잠시 말이 없다 대답했다.

    “로이 루스테 때문에 연락을 주신 게 아닌가요?”

    “잘 아시네요. 맞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예전에 명령하신 대로, 로이 루스테 주변에 저희 쪽 사람들을 깔아두었습니다. 그중 절반은 이미 로이가 눈치를 채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완전히 자신의 사람이라고 믿는 모양입니다.”

    “다행이네요. 우리 의도대로 돼서.”

    “예, 말씀만 하시면 그들이 로이 루스테를 사고사로 위장해 처리할 겁니다. 언제든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이번에는 내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강철중 사장님.”

    “예, 대통령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이를 이대로 제거하는 게 나을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로이를 제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간단합니다. 그는 제 허락도 없이 멋대로 행동을 했고, 결국 그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황규혁 형님이 그 피해자였고요. 한 번 한 사람이 두 번이 어려울까요?”

    강철중도 로이가 황규혁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역시, 그 일을 잊지 않고 계셨군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와도 같은 사람을 제 손으로 직접 죽였어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더군요.”

    황규혁의 몸을 찔렀을 때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황규혁 때문에 로이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다.

    황규혁의 죽음은 그저 연막일 뿐이다. 혹시라도 로이가 내 손에 죽었다는 걸 연합원들이 알게 될 경우를 대비해 마련한 변명거리라는 것이다.

    그들도 내가 황규혁과 굉장히 가까웠다는 걸 알고 있지 않던가. 그런 감정에 호소하며 로이를 죽였다고 하면 연합원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터.

    내가 로이를 제거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일하게 내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내 편이라고 해도 그런 위협 요소는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옳다.

    “지금 당장 행동에 옮기기를 원하십니까?”

    “아니요,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로이가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해 주세요.”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매의 눈으로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철중 사장님. 그리고 조만간 연락이 갈 겁니다. 새로운 작전을 수행해야 할 과제가 이미 내려졌어요.”

    “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강철중과의 전화를 끊고 소파에 머리를 기대며 술잔을 기울였다.

    황규혁이 내게 선물로 준 술잔. 아직도 이걸 쓰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정신 나간 놈이다.

    * * *

    “우린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미국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버락 오바마가 드디어 당선이 되었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오바마는, 아마 역대 대통령들 중 가장 적은 정치 커리어로 대통령이 된 인물일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로고를 들이밀며 세계평화를 주장했고, 나아가 평화적인 정치를 위해 모든 전쟁을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나라를 공격했던 미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리라. 또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도 그런 오바마의 주장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얼굴 마담에 불과하다.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으로 희망을 심어주면서 인종에 대한 장벽을 허물었다. 그건 오바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여주는 것이며 그의 정책에 국민들이 열렬히 지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야당에 반대가 없다면 말이다.

    “미국 의료서비스는 최악의 수준이나 다름이 없어요.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모든 국민이 저렴한 가격에 의료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은 감기 한번 걸리면 몇 만 달러가 깨지지 않습니까?”

    “대통령님 말씀은 의료 민영화를 없애자는 겁니까?”

    “의료 민영화가 이미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미국인 이상, 그건 어쩔 수가 없죠.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의무적인 국민 보험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오바마는 취임식을 마치고 나서 한국으로 넘어와 한미 정상회담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내 제안에 난색을 표하며 대답했다.

    “대통령님. 아시겠지만 국회에서 그걸 통과시키겠습니까? 모두 로비스트들에게 억대의 돈을 받는 의원들인데요.”

    미국의 웃긴 점이 바로 이것이다.

    로비스트.

    그들은 로비스트를 합법으로 받아들여 법안 통과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만든다. 그로 인해 미국에는 마약 성분이 대량 들어간 진통제가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고, 그건 곧 미국을 마약 천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한 의료 민영화까지 덤터기가 쓰여 아프면 끝장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오바마가 지금 그걸 걱정하는 것이다.

    로비스트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이들의 돈이 의원들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힘보다 날 더 무서워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님, 지금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예?”

    “전 지금 이렇게 해달라고 제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렇게 하라고 명령을 하는 겁니다.”

    “……!”

    낮아진 내 목소리에 오바마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난 뒤에 있던 오바마의 수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당신들한테도 똑같이 말하는 거야. 국가가 나서서 의무적인 의료보험을 만들도록 해. 이건 명령이야.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묻도록 하지. 그리고 이 법안에 반대하는 무리가 있다면 리스트를 내게 보내. 이틀 안으로 해결해 줄 테니까.”

    “예, 대통령님.”

    오바마는 나와 그들의 대화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풀고 다시 그에게 말했다.

    “오바마 케어가 어떻겠습니까?”

    “오바마 케어요?”

    “예,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 국가 보험을 의무화하고 동시에 세금으로 각 병원을 지원해 주는 겁니다. 그럼, 병원비도 싸게 만들 수 있고요.”

    “하지만 간호사들을 비롯한 의사들의 연봉이 굉장합니다. 이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오바마를 노려보았다.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나는 분명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니, 그냥 하면 되는 거다. 오바마도 내 눈빛을 읽고는 금방 말을 얼버무렸다.

    “오바마 케어로 홍보를 해보겠습니다. 반대가 심하겠지만, 그건 대통령님께서 잘 해결해 주십시오.”

    “예, 앞서 말씀드리지만, 반드시 의무화를 시켜야 합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에 들지 않으려 할 거예요. 그럼, 그들을 체포해 법적으로 처리하세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말입니다.”

    “…예, 대통령님.”

    오바마는 뭔가 환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지만, 실상은 허수아비 노릇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의 정치 열정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그래도 오바마 케어라는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얻지 않았는가.

    이 오바마 케어는 국가 의료보험을 의무화하는 법안으로, 이것을 거부하면 그 사람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왜 굳이 미국의 의료 법안을 건드리고 있을까?

    이로 인해 의료 민영화로 먹고 살던 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을 테고 간호사들도 낮아진 연봉으로 전부 일을 그만두려 할 텐데?

    그건 솔직히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내가 이걸 억지로 밀고 나가는 건 베리칩 프로젝트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를 철폐시키고 국가 의료보험을 의무화시킨다면 베리칩 프로젝트의 기초가 다져지는 것이다. 오바마 케어가 통과되고 그 의무로 베리칩 삽입 조항을 넣는다면 미국 시민들은 반드시 베리칩을 몸에 박아야 한다. 이걸 거부할 경우, 그들은 법적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이것을 좀 더 업그레이드시킬 생각이다.

    베리칩이 상용화되고 나면 분명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을 터. 난 더 강한 법적 책임을 만들어 베리칩 삽입을 거부하는 자들을 사형시킬 수 있는 권한을 미 정부에 줄 예정이다. 그럼, 인구도 알아서 줄어들고, 나머지 국민들은 무서워서라도 베리칩을 몸에 박을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겠는가?

    나는 오바마와 그가 만든 의료보험을 앞세워 전 세계에 강요할 것이다. 모든 국민의 몸에 베리칩을 박게 하라고 말이다. 그것이 곧 세계 평화를 위한 일이며 테러 위협에서 안전해지고 나아가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베리칩의 기능은 단순히 감시 목적에서 벗어나 인구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누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도 진단이 가능한 기술력을 만들 것이다. 그럼, 전염병이 터져도 사전에 제어를 할 수가 있으니까.

    앞으로도 베리칩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 기술력은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할 터. 그에 따른 수많은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쓸모없는 인구는 줄여야 하는 게 맞다. 이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이니까.

    그래서 난 손에 피를 묻히는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뜻은 숭고하다.

    그거에 대한 내 생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적이 아닌 기적을 만드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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