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기적 아닌 기적 (2)
[김태산은 세상에서 제일 썩은 정치인이다.]
[그는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다!]
[그의 재산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이미 그는 수백 톤이 넘는 금덩이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돈을 해외에 전부 숨겨두었다.]
항상 그랬듯이, 할 일 없는 쓰레기들의 음모론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 나갔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들이 떠들고 다니는 내용들 중 어떤 건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다.
고장 난 시계도 두 번은 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리고 이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도 나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들 중 누군가는 나의 진실을 알고 있는 어떤 세력에게 사주를 받아 소문을 퍼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일일이 상대하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자극제로 국민들의 시선을 모으면 된다.
“사상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김태산 대통령이 내놓은 성명문에 따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외신들은 만약 이번 회담이 성사되면 역사에 길이 남을 회담이 될 것이라며 관심을 높였습니다. 북한 지도자가 대한민국 영토에 들어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전 세계의 눈이 현재 한반도로 향하는 중입니다.”
김정은과의 남북 정상회담이 결성되려하자 국내 언론을 비롯해 외신들까지 속보를 다루며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 퍼져 있던 음모론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고, 누군가의 망상으로 쓰인 소설로 치부되며 모두 관심을 꺼버렸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회담을 성사시켰다.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김정은 위원장이 김태산 대통령과 판문점 경계선을 두고 마주 섰습니다. 두 사람이 지금 화기애애하게 악수를 나누고 있는데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김정은 위원장이 김태산 대통령의 손을 잡고 경계선을 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김정은과 나의 만남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던 뉴스 언론사 기자들은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마 이 장면을 TV로 지켜보고 있을 국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대한민국 땅을 밟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김정은이 나와 함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판문점에 별도로 마련된 회담 장소로 이동하고 있지 않은가.
“불편하게 손잡고 있느라 고생했네.”
카메라가 모두 사라지고 나서 나는 김정은의 손을 뿌리쳤다.
이놈 손을 잡고 있느라 그렇지 않아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요즘 핵개발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김정은이 아니라 뒤에 있던 리영호가 대답했다.
“대통령님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개발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몇 달 전에 실험을 한다는 명분으로 태평양에 미사일을 쏴버린 것이 바로 북한이다.
“이번 회담이 끝나면, 내가 북한으로 넘어갈 거예요. 그 후에는…….”
“비핵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하지만 정말 비핵화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외부적으로는 비핵화가 된 것으로 알려지겠지만, 북한은 꼭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말이죠.”
“잘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김정은은 내 앞에서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결국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북한 실무진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선군정치라서, 군 간부가 국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제, 군사, 외교 할 것 없이 모두 군부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북한이라는 나라다.
“다음에 북한으로 제가 넘어가서 정확한 로드맵을 드리긴 하겠지만, 지금 대강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휴전선을 모두 철폐시키고 도로를 뚫어 양국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물론,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게 철저한 이미그레이션도 필수겠죠.”
“저희 북한이 딱 원하는 평화입니다. 대통령님이 저번에 성명문을 발표하신 것처럼, 통일을 강조하기보다는 한민족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국가들처럼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남한, 북한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 모두 이곳저곳을 관광할 수 있겠죠.”
더 이상 휴전 국가가 아닌, 종전을 하여 서로 왕래가 가능한 나라.
우리나라 국민이 자유롭게 북한으로 넘어가 여행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만나 친분을 쌓을 수 있는 나라. 내가 꿈꾸는 남북한의 관계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산가족 같은 경우에는 양측에 선택권을 주도록 합시다. 만일 북한으로 가고 싶은 이산가족이 있다면 북한으로 보내주고, 남쪽으로 오고 싶어 하는 가족이 있다면 남쪽으로 오게 하고요. 어떻습니까?”
“대통령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리영호 차수는 내 명령에 절대적 복종을 하고 있다. 김정은의 뒤치다꺼리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를 등에 업고 북한에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오늘 밤에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한 측도 긍정적인 검토를 하는 중이다… 뭐, 이렇게 발표를 해줬으면 좋겠군요.”
“예, 대통령님.”
“아! 그리고 베리칩 프로젝트 말입니다.”
베리칩 프로젝트라는 말에 리영호는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군부 전체의 목이 날아갈 뻔하지 않았던가?
“조만간 베리칩 프로젝트는 전면 일본으로 이전시킬 겁니다.”
“일본이요?”
“예, 상용화에 앞서, 일본에 먼저 베리칩을 유포시킬 예정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내용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뇨, 이제 알게 만들어야죠. 그리고 조만간 전 세계가 들썩이게 될 겁니다. 다시 시작된 테러의 공포와 자연재해로 인해서 말이죠. 아마 사람들은 종말이 왔다고 떠들어댈 것이고, 우리는 그에 맞춰 베리칩 상용화를 준비하면 되는 겁니다.”
“정확히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은 대통령님을 지지합니다.”
“감사합니다, 차수님.”
리영호에게 원하는 답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김정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꽤 지루한 여행이 되겠습니다. 혼자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실무 회의는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따로 쉬고 싶으면 말씀하세요. 물론, 여자를 데리고 올 순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가 신성한 판문점이라서 말이죠.”
“…….”
김정은은 얼굴이 붉게 변했지만, 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수치심을 분노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모두 식사를 하러 가볼까요? 최고의 요리사들만 준비를 시켜놓았으니,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 * *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부시 대통령의 사퇴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다니엘 로페즈에게 최종 통보를 받은 부시 대통령은 면죄부를 받는 대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물론, 부정선거를 비롯한 여러 비리 문제에 대한 건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이미 약속을 한 상태이니까.
정치에서의 약속은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한쪽이 약속을 어긴다면 그 누구도 나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정치에서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전격 사임을 하면서 우리나라와 같이 미국에서도 이른 대권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공화당은 비리 문제를 비롯해 여러 이슈들로 지지층을 잃어버렸고, 민주당이 기회를 잡아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를 앞세웠습니다. 현재 버락 오바마에 대한 지지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좀 무리수이긴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사퇴하자마자 민주당은 이제 갓 상원의원을 달은 오바마를 대권 레이스에 참여시켰다. 다행히 법적으로 걸리는 것은 없어 오바마가 대선에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아 민주당은 아예 오바마에게 올인한 상태다.
“이야, 워커. 진짜 출세했네.”
“글쎄요. 딱히 출세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속박된 기분이랄까요?”
“하하,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잖아. 이거야말로 출세한 거지.”
로이 루스테는 한국으로 날아와 청와대를 찾았다. 물론, 공식적인 만남이 아니라서 기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를 둘러보며 감탄만 터뜨렸다.
“백악관보다 훨씬 좋은 거 같아.”
“그만하세요. 로이가 살고 있는 곳보다 시설이 좋지 않다는 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로이가 살고 있는 곳은 청와대에 세 배나 큰 곳이다. 그리고 시설들은 말할 것도 없이 넓고 화려하다. 자신의 욕망을 전부 채워줄 수 있는 시설들만 채워 넣었다는 것이 좀 흠이긴 하지만.
“그런데 여기까지 무슨 일로 부른 거야?”
“로이를 시작으로 우리 골든 연합의 주요 멤버들을 하나씩 초청할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상의를 해야 할 게 참 많으니까요.”
“흐흐, 어떤 일인지 벌써부터 궁금한데?”
나는 싱긋 웃으며 로이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베리칩 프로젝트를 상용화시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일본에 실험실을 세워 그곳에서 실험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일본 붕괴? 이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미국에서 개발하고 있는 무기들을 이용해 일본에 대지진을 일으키고 폭탄 테러를 연쇄적으로 일으켜 아예 폭삭 망하도록 만들어 버릴 겁니다.”
“그런 다음 베리칩을 뿌려서 일본에 상용화를 시키자?”
“예, 일본이 미국에게 원폭을 맞고 몸을 바짝 엎드린 것처럼, 역사가 되풀이되는 겁니다.”
로이는 아주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일이 뭐야?”
“일이 터지기 전에, 일본에 있는 사업부를 대거 철수시켜야 합니다. 거기 있는 우리 연합원들이 개죽음을 당하게 할 순 없으니까요.”
“일본이 뭔가 눈치를 챌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사업을 철수시키면서 훈련된 조직원들을 투입시켜 폭발물을 설치할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도쿄 타워가 무너지는 거예요. 그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음, 그렇겠네. 그런데 그러다가 한국 관광객들이 다치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생각하려고요. 그렇다고 지금 일본 관광을 막을 순 없으니까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건 제국을 이끄는 황제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들의 희생은 매우 안타깝겠지만, 난 일본 관광을 제재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다. 그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아, 워커의 말대로 나도 준비를 하고 있을게.”
“예, 그래주면 고맙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최정식과 잘 협조해서 하세요. 황규혁 형님처럼 괜히 시끄럽게 일을 만들지 말고요.”
내 말에 한참 웃고 있던 로이의 얼굴이 싹 굳어버렸다.
내가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황규혁의 일을 입으로 꺼냈기 때문이다.
로이는 크게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로이. 제가 설마 그런 일로 로이를 죽이기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