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92화 (292/325)
  • 292화. 기적 아닌 기적 (1)

    “저희 일본 정부는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분명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한국 땅을 벗어나기 전, 고이즈미는 기자회견을 가지며 독도가 완전한 한국 땅임을 인정했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던 독도 영유권 문제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지을 줄 몰랐는지, 기자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독도가 일본의 소유임을 강하게 주장하셨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고이즈미가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김태산 대통령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귀 기울이다 보니, 그동안의 오해도 풀었고, 또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위안부 문제와 일본 침략 전쟁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가 독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은 한일 관계를 굳건히 하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예, 김태산 대통령님이 이끄는 대한민국이라면 일본이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를 최대한 띄워주면서 고이즈미는 내게 점수를 따 가려고 했다.

    그의 임기가 내 손안에 달려 있으니, 당연히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덕분에 기자들은 쓸 기삿거리가 생겼고, 고이즈미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은 나에 대한 신뢰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의 회견 덕분에 지금 인터넷이 난리입니다.”

    “모두 대통령님의 협상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화력 지원을 해주니, 국민들은 대통령님을 칭찬하기에 바쁩니다.”

    내 예상대로 국민들의 반응은 굉장했다.

    고이즈미와 만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지근했던 그들이, 지금은 입이 마르도록 날 칭찬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국정 지지도가 90%까지 치솟는 등,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고이즈미가 선물을 안겨주고 갔으니, 나도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에서 이리저리 많이 치였을 테니까.

    “미스터 로페즈. 김태산입니다.”

    “하하, 이게 누구십니까. 대통령님이시지 않습니까?”

    다니엘 로페즈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내 전화를 받았다.

    이 사람이 날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조만간 저도 청와대를 한번 구경하는 겁니까?”

    “차라리 제가 살고 있던 집이 나을 정도입니다. 청와대라고 해서 엄청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제 개인적인 공간도 많지가 않고. 이래저래 복잡한 곳입니다. 많이 시끄럽고요.”

    “그런가요? 그래도 한번은 초청해 주시겠죠?”

    “물론입니다. 우리 핵심 연합원들을 언제 한번 초청해야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신변잡기는 여기까지.

    나는 전화를 걸은 이유를 밝혔다.

    “일본과 원만한 타협을 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일본에 걸려 있는 경제 제재를 전부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 주변에서도 일본을 제재하는 바람에 우는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 되겠군요.”

    “예, 그리고 부시는 어떻게 됐습니까?”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하는 중입니다. 상원과 하원 모두 부시를 압박하며 내일이면 연방 정부가 완전히 셧다운될 겁니다.”

    부시의 앞에 깔아놓은 트랩이 정상적으로 활성화가 되었다.

    미국 최악의 부정선거 스캔들과 더불어 그간 부시가 저지른 비리 문제까지 한꺼번에 터지면서 상원과 하원 모두 공조를 하지 않아 결국 연방 정부 셧다운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이 계속 진행된다면 부시를 탄핵하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 터. 하지만 부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퇴를 한다면 대권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다.

    “부시에게 최종 통보를 합니까? 그 자리에 그만 달라붙어 있고, 알아서 내려오라고 말입니다.”

    “음… 미끼를 던지세요. 어차피 지금 이 논란들이 계속 구설수에 오르면 검찰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과연 그 사람이 몇 년을 교도소에 썩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미국 최악의 스캔들을 터뜨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아마 100년은 썩을 겁니다.”

    “예, 그 점을 부각시켜서 부시가 스스로 그만둘 수 있게 유도하는 겁니다. 얼른 그쪽이 정리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해야 할 일이 좀 많습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미끼를 던져보죠.”

    “감사합니다, 미스터 로페즈. 조만간 청와대에서 뵙겠습니다.”

    “예, 대통령님.”

    다니엘 로페즈는 부시에게 최종 통보와 함께 미끼를 던질 것이다.

    그 미끼를 물면 부시는 사퇴를 함과 동시에 그동안 지었던 죄들을 전부 면죄받게 될 터. 그것을 조건으로 미끼를 던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가 거부한다면 지루한 법정 싸움이 시작될 것이고, 나는 반드시 부시가 모든 죗값을 치르도록 할 것이다.

    정말 그가 죗값을 치른다면 고작 몇 년으로 끝나지 않고 100년 이상의 구형을 받아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서 썩어야 한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부시는 어쩔 수 없이 미끼를 물고 옷을 벗게 될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대통령님.”

    고이즈미가 일본으로 떠난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나는 쉬지 않고 다음 행보를 이어갔다.

    “곧 북한과 정상회담을 가질 거라는 소식을 언론에 뿌려.”

    “북한의 김정은과 말입니까?”

    “그래, 아마 국민들이 좋아라 할 거야. 아니지. 아예 내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낫겠어.”

    “예, 알겠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그동안 험악해졌던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며, 통일까지는 무리겠지만 완전한 평화를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단순히 남북의 평화 무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평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남북한의 관계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절대적인 지지를 통해 그동안 쌓여 있던 일본과의 갈등을 모두 해결하고 새로운 외교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로써 억울하게 돌아가신 조상들께서 조금이나마 원통함을 푸시길 바랄 뿐입니다.”

    일본과의 성공적인 외교 성과를 시작으로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북한과의 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려 합니다. 북한 위원장인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개최할 생각이며 남북한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매우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러분께서 지지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북한과의 외교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말에 기자들이 모두 손을 들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님께서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것은 조국 통일입니까?”

    “아닙니다. 통일이라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제가 원하는 건 통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시다시피 이미 남북한이 통일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오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저는 남과 북을 한민족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국과 멕시코처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은 굉장히 위험성을 동반한다. 국민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뜻을 확고하게 했다.

    “미국과 멕시코도 경계를 두고 있지만, 사람들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광도 하고 사업적으로도 교류가 많습니다. 저도 그런 남북의 관계를 원합니다. 모든 휴전선을 철폐하고 우리 국민이 자유롭게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 더 이상 군사적 도발도 없고 서로 협력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는 것. 이것이 제가 원하는 남북한의 관계입니다.”

    지금 남북이 통일을 하려면 군사적인 방법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막상 통일을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시간을 축내느니 차라리 이런 방향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훨씬 낫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금강산을 관광하며 북한 사람들과 만나 친분을 맺는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또한 이산가족들도 남한, 혹은 북한으로 넘어가 더는 헤어지지 않고 산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

    “그동안 국민들은 통일을 염원해 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대통령들이 통일을 목표 삼았고요. 그런데 대통령님께서는 방향을 바꾸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국민들이 대통령님의 결정에 의문을 가질까 걱정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통일을 목표로 삼았다는 대통령들 중, 남북한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한 분이 계셨던 가요? 아쉽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는 망상을 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을 북한에 제시한다면 그쪽에서도 분명 좋은 반응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나의 대답에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했으면 국민들도 반신반의하고 있을 터.

    그들의 유년 시절 때부터 통일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주입당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새롭게 제시한 프레임이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대답이 오고 내가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많이들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 이들은 내게 영원한 신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김정은에게 전문 띄워. 판은 내가 깔아줬으니까, 그쪽도 내 장단에 맞추라고.”

    “예, 대통령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나는 류정한 비서실장을 시켜 김정은에게 전문을 보냈다. 나의 완벽한 커리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놈도 내 기자회견을 봤을 테니, 알아서 반응을 보일 터. 아니나 다를까, 김정은은 북한 언론을 이용해 대답을 보냈다. 그 내용은 곧이곧대로 우리나라 언론을 탔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오늘 낮에 있었던 김태산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 측이 요청한 남북 정상회담을 기대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린 지도자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내 말에 호응하면서 국민들도 기대를 높여가고 있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날짜부터 잡았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김정은과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장소는 판문점이 좋을 것 같은데. 대표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번 날 내게 호되게 당했던 터라 각 당의 대표들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아주 좋은 화젯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북한 지도자가 우리나라 땅으로 발을 들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젯거리가 될 것은 자명합니다.”

    내가 일부러 판문점을 고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1차적으로 판문점에서 회담을 가진 다음, 2차적으로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계획이다. 그럼, 북한 지도자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상징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여러모로 세계적인 이슈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남북한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내 말에 힘이 실리면서 국민들은 날 지지할 수밖에 없을 터.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계속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국가와 국가 간의 교류를 맺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걸 국민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젠가 반드시 북한 체제를 붕괴시켜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는 절대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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