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새로운 대한민국 (1)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중국. 그것이 내가 원하는 중국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마침내 리오차오를 밀어내고 중국 주석이 된 천량위.
그는 취임식에서 연설을 하며 새로운 중국의 탄생을 기원했다.
천량위가 주석이 되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골든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군 간부들이 군사를 이끌고 베이징으로 몰려들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30만 명이 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리오차오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규합하려 했지만, 천량위 쪽이 너무 빨랐다. 그리고 당장 리오차오가 운영하는 사령실에도 골든 연합 소속원이 있어서 승기는 완전히 천량위에게 넘어갔다.
결국, 리오차오는 제대로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붙잡혔으며, 그를 따라 중국의 절대 권력을 탐했던 수뇌부도 전부 체포되었다.
리오차오의 통 큰 쿠데타가 싱겁게 끝나 버린 것이다.
“회장님께서 중국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리오차오에 대한 처분을 미루겠다고 합니다.”
비서실장 류정환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지금 한국에서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중국으로 못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천량위는 그런 나를 배려해 리오차오와 그의 수뇌부에 대한 처분을 미루어두었다.
내가 직접 심판을 내리도록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중국이라…….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 중국은 완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천량위는 베리칩을 맞아 내게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그 어떤 명령이라도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은 진정으로 나의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창석 대통령이 정식으로 하야를 발표하면서 이제 새로운 대권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여야에서는 경선 준비에 한창이며…….”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대선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대권 후보에 누가 선출될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온 세상이 들썩일 만한 소식이 들어갔다.
“이번에 무소속으로 김태산 화진 그룹 회장이 출마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조만간 기자회견을 통해 출마 의지를 밝히겠다고 하는데요. 벌써부터 여론이 뜨겁습니다.”
“예, 국민적 영웅으로 불리는 김태산 회장이 출마를 하게 되면 국민의 지지가 굉장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김태산 회장의 기자회견이 있을 텐데,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이미 회사로 모여든 각 방송국의 기자들은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까?”
“예, 회장님.”
기자회견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로 향하자 이미 스포트라이트가 내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관심을 기울였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대선에 출마 발표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정당이 없었던 만큼,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이 나라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부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어 이 김태산을 지지해 주십시오. 제가 이 나라에 가득한 혼란을 잠재우겠습니다.”
간단한 출마 발표가 끝나자, 사방에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언제 출마를 결심하신 겁니까?”
“예전부터 마음이 있으셨던 겁니까?”
나는 그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었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 또한 언론을 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출마 제의는 예전부터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창석 대통령 사건을 보고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 몸 바쳐서라도 이 나라의 악순환을 꼭 끊어버리고 싶었거든요.”
“국민들의 지지도가 굉장히 높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점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청렴함을 원칙으로 살아온 만큼, 이제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마음이 국민들에게 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멘트를 전부 날린 다음,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아무쪼록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에도 배우는 자세로, 겸손한 자세로 대선에 나서겠습니다.”
이것으로 나의 출마가 확실시되었다.
대선으로 향한 꽃길이 열린 것이다.
* * *
“방송은 잘 봤냐?”
어두컴컴하고 좁은 방이지만, 그래도 TV 하나 놓여 있는 것이 상대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예전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팍삭 늙어버린 연욱이는 호랑이 검사 타이틀이 다 옛말 같았다.
“카메라빨 잘 받네.”
“그렇지? 내가 그래도 인물은 좋으니까.”
나는 연욱이가 좋아하는 시가와 술을 앞에 내놓았다.
녀석은 반쯤 풀린 눈으로 나와 술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창석을 그렇게 날려 버릴 줄은 몰랐다. 2017년에 일어나야 할 일을 똑같이 카피하다니.”
“뭐, 세상사가 다 그런 거지. 미래에도 먹힐 일이라면 지금도 먹힌다는 얘기니까. 나 같은 재벌이 대통령 하나 날려 버리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지. 어차피 사람들은 언론에서 떠드는 얘기만 들으니까.”
“…무슨 일로 온 거냐? 사람 염장 지르려고 왔어?”
“그냥 물어보려고. 아직도 후회하지 않냐고.”
연욱이는 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회? 너 같은 새끼를 내 친구로 두었다는 게 내 평생 한이야. 그러니까 알겠으면 이제 꺼져.”
“지금이라도 사죄를 한다면 여기서 꺼내줄 수 있어.”
“뭐?”
“대신 내게 영원히 복종하겠다는 맹세가 필요해. 알다시피 이번에 이창석이 날 보기 좋게 배신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을 잃었거든. 그러니까 나한테 살려달라고 빌어. 그럼, 다시 명예도 회복시켜 주고 그 이상의 것을 줄 테니까.”
나는 연욱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감옥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겠는가.
그렇기에 내 제안은 굉장히 달콤하게 들릴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하지만 내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잊고 널 이 나라의 검찰총장으로 세워줄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연욱이에게 약속했던 대통령 자리는 이미 물 건너갔다. 대신, 검찰총장이라면 어울리는 직함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내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더 이상 친구와 친구의 사이가 아닌, 주인과 종의 위치로 말이다.
난 연욱이 앞에 베리칩이 들어 있는 캡슐 하나를 놓았다.
“마음을 정하면 말해.”
나는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몸에 베리칩을 박는 순간이 내 신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 * *
“김태산! 대통령! 김태산! 대통령!”
내가 대선에 출마한다는 뉴스가 나가자마자 인터넷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모두 김태산을 지지한다는 글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거리에 뛰어 나와 내 이름을 외쳤다.
난 이들의 열정에 힘입어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돌아다니며 연설을 하고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내가 연설을 할 때면 저 먼 곳에서부터 찾아와 내 이야기를 듣는 시민들 수가 수만 명이 넘을 만큼 나도 내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회장님의 지지율이 무려 85%입니다. 가히 압도적이에요.”
“여야에서는 어떻게 나오고 있지?”
“다들 포기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지지율이 너무 강력하다는 걸 알고 포기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구색은 맞춰야 하니, 아무나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것 같습니다.”
당에서 아무런 후보도 내놓지 않으면 싱겁게 게임을 끝나 버리니, 나름 구색이라도 맞추자는 심산으로 각 당에서는 후보를 내놓았다.
“대선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다들 힘내도록 해.”
“예, 회장님.”
나는 직원들을 다독인 다음 성일환과 따로 만남을 가졌다.
“이제 회장직을 물러나야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젠장, 이 나이에 회장을 하라고? 제정신이냐?”
“하하, 그런데 형님 말고는 화진 그룹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요.”
“차라리 전문 경영인을 써라.”
“그건 CEO지 회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하시는 일보다 차라리 회장 일이 더 적을 겁니다.”
“쯧,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옛날부터 성일환은 항상 저랬다.
분명 자신에게 좋은 일인데도 높은 직급에 올라간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은 건 싫기 때문이다.
“형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오냐, 어쩌겠냐. 까라면 까야지.”
그래도 성일환만큼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슬슬 너도 준비해야지.”
“어떤 걸요?”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후계자 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말씀은…….”
“얼른 애부터 낳으라고!”
이제 내 나이가 37살.
하지만 아직 아이를 갖진 못했다.
37살이면 한창인 나이기도 하지만, 성일환은 벌써부터 후계자를 걱정한다.
“자고로 왕국은 왕자가 있어야 돼. 그래야 안정이 되는 법이야. 지금이라도 낳아야 늦지 않지. 얼마나 더 늦게 낳으려고? 너 혼자 다 해먹고 그 아까운 자리를 남에게 물려줄 생각이냐? 아들한테 안 주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영원히 해먹을 생각인데요?”
“응?”
“바이오산업에 적극 투자하는 중입니다. 인간 복제 실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고요. 성공만 한다면 수명을 대폭 늘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성일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인간 복제는 전 세계적으로 금지하는 거잖아. 근데 그게 진짜 가능해?”
“우리가 언제 불법과 합법을 따졌나요. 그리고 인간 복제를 금지한 이유는 그게 정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일이니까 무서워서 금지를 시킨 거죠.”
“음……. 나도 나중에 가능하냐?”
“하하, 10년만 기다리세요.”
“젠장. 10년이라고? 너무 긴데.”
곧 있으면 환갑을 넘는 양반이다.
10년이면 확실히 그에게는 너무 긴 시간.
“형님이 건강하다는 건 만인이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괜찮을 겁니다. 앞으로도 쭉 화진 그룹 회장으로 남으셔야죠.”
“흐흐. 말만 들어도 좋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치고 영원히 산다는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돈도 많고 권력도 많으면 항상 마지막은 영생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선 출마하면 앞으로 쭉 대통령만 할 거냐?”
“한국 대통령은 시작점이죠. 세계 대통령으로 거듭날 때까지 열심히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아직 젊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죠. 그리고 대선만 끝나면 미국부터 손을 볼 생각입니다.”
“음, 얘기는 들었어. 그쪽 대통령을 갈아치운다며?”
“예, 미국 쪽은 이미 작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이런 사태를 대비해 부시의 구린 점들을 낱낱이 조사하고 있었거든요. 그게 한꺼번에 터지면 아마 정신을 못 차릴 겁니다.”
“부시도 우리나라처럼 알아서 내려오는 건가?”
“뭐, 그런 셈이죠. 연방정부 셧다운부터 시킨 다음, 알아서 내려오게 하거나 아니면 탄핵을 시키면 됩니다. 그쪽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모두 골든 연합 편이니까요.”
한국에서의 일이 끝나면 이제 화살은 미국으로 향하게 될 터.
새로운 청와대의 주인과 새로운 백악관의 주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한민국과 미국은 동맹관계가 아닌, 영원한 주종 관계로 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