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85화 (285/325)
  • 285화. 왕이 되겠다 (2)

    “최악의 국정 농단을 일으킨 이창석 대통령은 하야하라!”

    “여당과 야당은 뜻을 모아 반드시 이창석 대통령을 탄핵시켜라!”

    거리로 뛰쳐나온 국민들은 이창석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내가 조작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뉴스를 만들어낸 언론들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이창석 대통령의 비리를 폭로한 사람을 떠오르는 스타로 만들어 단숨에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민들은 모든 뉴스가 정말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점점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참… 벌레 같은 사람들이야. 안 그래?”

    “아, 예. 그렇습니다.”

    내 비서실장으로 일한 지 이제 2주째가 되어가는 류정한은 성일환이 키우던 여러 후보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골라 내게 보낸 인재다.

    그동안 내 일을 전담해서 해줄 비서실장 없이 중구난방으로 일처리를 해오는 것이 아무래도 성일환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내가 왜 저 사람들을 벌레라고 하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회장님.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저렇게 때로 모여서 국민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참 같잖으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 마치 개미처럼 말이야. 개인은 아무짝 힘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대통령마저 압박할 수 있는 굉장한 힘을 가지니까.”

    “그렇습니다, 회장님.”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예?”

    난 자리에서 일어나 류정한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오늘 할 일이 아주 많을 거야. 각오 단단히 해둬.”

    “예, 회장님.”

    그동안 내가 비서실장을 곁에 두지 못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몇 명이 내 비서실장으로 임명받았지만, 대부분 조금만 하다 그만두고 말았다.

    엄청난 페이를 받는데도 그들은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어버렸다.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난 단 한 점의 오점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은밀히 처리할 것을 명령했고, 아마 그들은 지금 심해나, 땅 밑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류정한도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내 일에 환멸을 느끼고 그만둘 것인지는 오늘의 일에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비서실장을 두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 다들 심지가 굳건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지. 하지만 난 충분히 이해해. 그동안 살아온 길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전부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았던 게지. 자네도 아마 그럴 거야. 그러니까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 얘기하도록 해. 자네가 그만둔다고 해서 절대 기분 상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차에 같이 올라탄 류정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예, 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난 이 나라의,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권력이란 항상 손에 피를 묻혀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예, 회장님.”

    “좋아. 그럼, 자네 수업을 위해서라도 출발하지. 이번에 새로 선임된 여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줄 수 있겠나?”

    류정한은 금방 번호를 누른 다음, 내게 핸드폰을 건넸다.

    이윽고 긴장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그 너머에서 들려왔다.

    난 웃으며 상대와의 대화를 틀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요.”

    “아, 예. 회장님. 그동안 별일 없으셨습니까?”

    “별일이야 많았죠. 폭탄 테러에 당하고 정부의 배신도 동시에 당했으니 사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아요.”

    여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새롭게 선출된 이석환 대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하하, 제가 직접 전화까지 했다면 그만큼 사안이 중대한 것이겠지요. 조만간 야당에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할 겁니다. 여당에서도 그걸 지지해 줬으면 좋겠군요.”

    “…여당 대표인 제가 탄핵 소추안을 지지하라고요? 보수 정당의 파멸을 원하시는 겁니까?”

    “야당이 절 건드렸다가 어떻게 끝장이 났는지 직접 보신 분들이, 그것보다 더 심한 일을 벌이지 않으셨나요? 그러니까 똑바로 전달하세요. 이창석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 발의를 지지하지 않으면 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장님, 제가 대표로 선임되기 전의 일이라 솔직히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부디 선처해 주십시오. 저까지 나서서 탄핵을 주장한다면 앞으로 대통령님의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겁니까?”

    “볼 일 없을 겁니다. 감옥에서 평생 썩을 양반인데, 그런 범죄자와 여당 대표라는 분이 운명을 같이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대표님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대표님이 용기 있게 소신을 말하고 모든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지원한다면 국민들은 그런 대표님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사탕발림의 말을 건넸지만, 이석환 대표는 끝내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무래도 이건…….”

    최대한 좋게 말하려 했는데, 결국 그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렇다면 나도 좋은 사람인 척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석환 대표.”

    낮아진 내 목소리에 이석환 대표는 방금 전보다 한층 더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나 본데, 자네 여당 대표를 내가 직접 쏴 죽였어.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여당 대표가 바뀌었는지, 죽었는지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게 참 놀랍지 않나?”

    “회,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신도 똑같이 내가 쏴 죽일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양반인데, 그냥 죽일 순 없지. 자네 대신 귀여운 딸아이가 희생양이 되면 좋을 것 같군. 어떻게 생각하나?”

    “회장님!!”

    “소리치지 마. 감히 내 앞에서 소리를 칠 수 있는 건 내 와이프밖에 없어. 그리고 내 일 처리 방식이 항상 이렇다는 걸 설마 모르고 있었나? 난 내 말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을 약속하지만, 거부하는 이에게는 끔찍한 슬픔을 약속하지. 자네가 끝까지 따르지 않겠다면 난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어. 자네 딸의 목숨이 먼저인지, 아니면 이제 곧 감옥에서 썩을 양반이 우선인지는 자네가 결정하게.”

    난 전화를 끊고 살짝 멍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류정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이제 좀 알겠나?”

    “예, 회장님. 예전부터 성일환 사장님께 배우긴 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이제껏 보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될 거야.”

    류정환에게 아직 가르쳐 줘야 할 게 참 많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허름해 보이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나를 위해 일하는 조직원들이 수십 명이나 깔려 있었다.

    “회, 회장님.”

    내가 등장하기 무섭게 창고에 구금되어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의자에 앉아 공포에 질려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왜 한곳에 모아놨는지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회장님, 부디 제 아들만은 놓아주십시오.”

    포로처럼 잡혀 있는 이들 뒤에는 철장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대학생들부터 어린 아이까지 모여 있었다. 전부 이들이 아끼는 자녀들이다.

    “사실, 나도 이런 결정을 내리긴 싫었어. 이제 막 세상을 배우고 있는 저 아이들이 부모의 그릇된 판단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

    나는 붙잡힌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들이 이창석의 최측근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야. 탄핵 소추안에 힘을 실어줘, 그리고 세상에 보여주는 거야. 이창석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는 걸.”

    “회장님, 저희 대부분이 이창석 대통령 덕에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최측인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저희를 의리 없는 배반자로 여길 겁니다.”

    내가 반론을 제시한 의원의 얼굴을 확인한 뒤, 나는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죽여.”

    “예, 회장님.”

    그러자 조직원 하나가 철장 안으로 긴 창을 쑤셔 넣더니 방금 내게 반론을 제기한 의원의 아들을 그대로 찔러 버렸다.

    “아, 안 돼!!”

    “너무 놀라지들 말아. 단순히 시작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당신 아들 말고도 딸이 하나 더 있다는 걸로 알고 있어. 내가 전화 한 통화만 보내면 조직원들이 알아서 내게 데려다 줄 거야. 혹시 그 딸의 죽음마저 직접 보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게.”

    “이… 이익!”

    뭔가 욕지거리를 하려는 것 같았지만, 의원은 끝까지 목소리를 삼키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 여기서 또 한 번 내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그 딸마저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들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잘 모르나 본데, 난 어설픈 협박 따위 하지 않아. 그리고 블러핑도 하지 않지. 이제 그런 걸 할 레벨은 진작 넘었으니까. 그러니 알아서 잘 판단하길 바라지. 두 번 말하지 않겠어. 이 길로 가서 내 명령에 따르도록 해. 그럼, 저 귀여운 아이들이 무사할 테니까.”

    나는 할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직원들에게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쁘신 분들인데, 얼른 풀어주지. 할 일이 많으니까.”

    “예, 회장님.”

    난 창고에서 나와 그대로 차에 다시 올라탔다.

    이제 류정환의 감평을 들을 차례였다.

    “어땠나? 내 비서실장이 된 걸 후회하진 않지?”

    “그렇습니다, 회장님.”

    “많이 놀랐을 텐데?”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각오한 일입니다.”

    “방금 내 명령으로 20살도 되지 않은 한 남자아이가 잔인하게 찔려 죽었어. 그런데도 각오가 되었다?”

    “예.”

    생각 외로 류정환은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네. 이건 단순히 시작에 불과하거든.”

    “얼마든지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성일환이 사람 보는 눈은 참 기가 막히게 좋은 것 같다.

    * * *

    “그놈이 괜한 짐이 되지는 않던가? 류정환 말이야.”

    “아뇨, 덕분에 요즘 덜 피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 내가 그놈을 추천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거든. 강단도 있고 실력도 있어. 그리고 명령에 항상 복종하는 놈이지. 나름 야망이 있는 놈이라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길 원할 거야.”

    “내부적이 아니라 표면적인 높은 자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성일환은 내게 술잔을 건네면서 눈 한쪽을 찡긋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인재로 키워놓았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슬슬 때가 되었다는 걸 눈치채신 겁니까?”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엊그제 통과되었잖아. 최측근이라고 떵떵거리던 놈들도 전부 이창석에게 등을 돌렸고. 이제 남은 건 탄핵이야. 대법원은 분명 탄핵을 가결시킬 거고.”

    “이미 그쪽은 얘기를 끝낸 상태입니다. 언론을 조금 들끓게 만들었다가 승인하게 될 겁니다.”

    “그래, 그다음은 대선이지. 더 이상 네 앞에 남아 있는 장애물이 없잖아.”

    성일환이 류정환을 내 비서실장으로 넣어준 이유는 단순히 내 뒤치다꺼리를 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의 일까지 감당할 수 있는 비서실장을 내게 보낸 것이었다.

    “건배할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새로운 대통령을 위하여.”

    성일환과 나는 잔을 부딪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

    이제 그 꿈을 실현하는 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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