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84화 (284/325)

284화. 왕이 되겠다 (1)

“저 같은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단 말입니까?”

버락 오바마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예, 처음부터 그럴 계획으로 제가 당신을 여기까지 인도한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상 첫 흑인 대통령. 이게 얼마나 미국에게 큰 충격을 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분열되어 있던 국민들이 다시 한번 당신으로 인해 하나가 될 겁니다.”

“하지만 흑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흑인 대통령 후보가 나오면 백인우월주의 단체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한번 나올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백인우월주의 단체가 협박장을 보내며 암살 계획을 꾸미자, 그 후보는 대선을 포기하고 마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버락 오바마 씨. 혹시 제가 누군지 몰라서 그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예? 아, 아닙니다. 어떻게 제가 회장님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항상 저를 도와주신 분인데요.”

내가 버락 오바마와 그의 가문을 적극 지원하고 있었던 건 모두 지금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내가 어떤 위치에 앉아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지금 나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아요. 내가 죽다 살아났다는 얘기는 들었을 테고, 잘 키워놓은 사냥개들이 단체로 날 물어뜯으려 했습니다. 제가 어떤 기분인지 대충 아시겠죠?”

날이 서 있는 내 목소리에 오바마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회장님.”

“내가 바라는 건 그리 많지 않아요. 상원의원 선거 때 말만 잘하고 다니면 됩니다. 그리고 선거야 내가 알아서 밀어주면 되는 거니까, 안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했으리라 믿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상원의원 다음에는 곧바로 대통령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이지만, 버락 오바마에게는 최대의 강점이 있다. 바로 흑인이라는 점.

백인들에게 억눌려 살고 있는 흑인들은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열광하게 될 터. 물론,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난리를 치긴 하겠지만, 이건 상징적으로도 굉장한 일이기 때문에 당분간 미국은 버락 오바마 체제로 돌아가게 될 터.

그는 혼란스러운 미국을 정리할 수 있는 영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베리칩을 미국에 처음으로 유포시키는 나의 영웅이 될 것이고.

* * *

“우리 캘리포니아주는 대통령의 폭정에 더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 국민의 주권을 지키고 나아가 이 미국의 안정을 위해 주지사의 모든 권한을 움직이겠습니다.”

나의 신호에 따라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였다.

그는 주지사의 권한을 발동시켜 경찰들로 하여금 캘리포니아 내부에서 모여 살고 있는 무슬림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마을을 통제하고 무슬림이 세운 회사와 학교를 전부 압수수색 대상으로 놓는 등, 인권을 짓밟는 초강수의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이번 미국에서 일어난 동시다발적인 테러는 모두 아랍인의 짓이며, 급진주의자들의 활동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급진주의자가 아닌, 일반 무슬림들까지 탄압하는 건 여론의 반발을 사게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멈추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 또한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의 명령에 더는 순종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보이기까지 했다.

터미네이터 영화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가 되어, 지금은 주지사까지 하고 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정확히 내가 내린 지침대로 따랐다. 그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모두 내 권력 때문이니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주지사님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절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난 이것이 우리 미국 국민을 지키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봅니다.”

“주지사님이 통제하고 있는 무슬림 마을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습니다. 또 모두가 급진주의자라고 볼 수도 없고요. 특히, 강제진압으로 인해 16살에 불과한 무슬림 자녀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슬림 탄압을 중지하라는 평화시위에 주지사는 곤봉을 들어 그들을 모두 바닥에 때려눕혀 버렸다. 그러다 16살 어린 남성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희생입니다만, 나는 여전히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중입니다.”

“워싱턴에서 이 상황을 가만두고 보지 않을 텐데요?”

“워싱턴에서는 연방군을 움직여 캘리포니아에 있는 군을 모두 흡수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땐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주지사도 사실 그게 걱정이었다.

백악관에서 여러 차례 그만하라는 전화가 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안전을 주장하며 거부해 왔다. 대통령은 당연히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연방군으로 하여금 캘리포니아에 있는 군을 무력화시키려 할 터.

그렇게 되면 주지사는 꼼짝없이 정부의 손에 붙잡혀 교도소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뒤를 지켜주고 있는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이지 않던가?

“난 두렵지 않습니다. 설사, 정부의 손에 붙잡힌다고 한들 내 뜻을 굽히지 않을 겁니다. 난 캘리포니아의 주민들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 * *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 사람이 연기는 참 잘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할리우드 배우이니까요. 사실 속으로는 오만 생각이 다 들고 있을 겁니다.”

나는 다니엘 로페즈가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목을 축였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내 뜻대로 아주 착실히 움직여 주고 있었다.

굳이 캘리포니아를 첫 타석으로 내놓은 이유는 연기자인 만큼 내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다음은 어디입니까?”

“미시간입니다. 그 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각 주지사들이 들고 일어나게 될 겁니다.”

갖은 테러와 그걸 대처하고 있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로 인해 주지사들이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두 번 다시 없을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 지고 있다는 뜻이다.

“백악관에서는 어떻게 행동을 한다고 합니까?”

“뭐, 미스터 김이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군을 연방군에 흡수시켜 통제권을 가져올 생각인데, 캘리포니아주의 군을 맡고 있는 리치몬드 소장이 대통령의 뜻을 거부할 겁니다. 군부 쪽은 거의 우리 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캘리포니아주는 단순히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미국에 있는 모든 주가 백악관의 뜻을 정면으로 부정하게 될 것이다.

“속보를 알려 드립니다. 방금 전 와이오밍주의 주지사가 캘리포니아의 뜻을 지지한다면서 와이오밍주도 백악관의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뉴스 속보로 나온 것은 캘리포니아의 뜻을 지지한다는 와이오밍 주지사의 발표였다.

앞으로 몇 달간은 온 뉴스가 백악관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서는 주지사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나는 미국에 오래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귀환을 했으니, 내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예, 부디 한국에서 뜻하신 바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래야죠. 이제 진짜 왕이 되어보렵니다.”

나는 다니엘 로페즈와 가벼운 악수를 나눈 다음, 전용기 안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의 일은 다니엘 로페즈와 김아름이 알아서 처리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신경을 써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바로 내 조국, 대한민국이다.

“이창석 대통령의 측근들이 국정 농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이창석 대통령이 평소 신임하던 점쟁이가 실질적으로 국정을 움직이고 있다는 폭로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이 주지사들의 반란으로 떠들썩할 동안, 한국은 대통령의 비리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창석의 최측근이었다가 최근에 해고를 당한 김한석 전 비서실장의 폭로가 그 시작이었다.

“이 나라의 모든 건 단 세 명이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서열 4위에 불과하며 1위는 장순영입니다. 그 여자가 사실상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들 앞에서 이 나라의 크나큰 문제점을 밝힌 김한석 전 비서실장은 모든 언론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대통령 최측근들을 하나씩 나열하며 지금 대통령은 그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물론, 김한석이 말하는 것들 중 50~60%는 거짓말이다.

이창석 그 양반이 얼마나 권력욕이 강한데, 측근에게 그 힘을 나눠주겠는가?

그 어떤 대통령이라도 측근에게 모든 힘을 넘겨주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 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기자들이 휘갈겨 내놓는 기사를 믿기 때문이다.

“오늘 저는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김한석 전 비서실장이 주장한 내용을 토대로 우리 방송국에서는 장순영 씨의 행적을 쫓았고, 장순영 씨가 소유하고 있는 여러 건물들을 탐방하던 중 아주 중요한 정보들이 들어 있는 컴퓨터 2대를 발견했습니다.”

장순영이란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당이었다.

예전부터 미신을 믿고 있던 이창석이 가끔 장순영을 불러 조언을 구하기는 했는데, 나는 그것을 빌미로 일을 벌인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가 과연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2017년, 내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천성 그룹의 계획하에 이루어진 대통령 탄핵 작전을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조미료를 첨가해서.

“취재가 시작되자, 장순영 씨의 사무실들은 전부 자리를 비운 상태였으나 컴퓨터 두 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청와대에서 다뤄야 할 문건들이 대량 저장되어 있었으며 일반인이 알아서는 안 될 국가 기밀들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방송국을 필두로 이창석에 대한 폭로와 더불어 장순영이 놔두고 간 컴퓨터에 발견된 자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저 컴퓨터는 장순영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장순영은 처음부터 그 사무실을 쓴 적도 없다. 저건 모두 내가 조작해서 내놓은 컴퓨터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저게 장순영의 것이며,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했던 국정 농단 사태가 점점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크나큰 분노를 보이고 있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전 국정 농단을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언론의 거짓된 선동에 부디 국민 여러분께서는 넘어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전 결백합니다.”

여론이 너무 심각하게 치닫고 있으니, 이창석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론은 식을 줄 모르고 더욱 이창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창석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또한 야당에서는 국정 농단 책임을 물어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지금 청와대는 초긴장 상태입니다. 그리고 장순영 씨가 현재 외국으로 피난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화진 그룹 본사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순영 게이트까지 터져 버려 청와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여유롭게 축배를 들며 식물정권으로 변해가고 있는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국민들이 알아서 이창석을 끌어내려 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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