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왕의 귀환 (2)
“기, 김태산?”
“다, 당신이 여기를 어떻게!”
나는 바퀴벌레처럼 오순도순 모여 있는 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음? 뉴스를 못 보신 겁니까? 제가 돌아왔다는 인터뷰를 본 줄 알았는데.”
“그, 그거야…….”
“그 인터뷰를 봤으면 다들 부리나케 도망갔어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나요? 그것도 아니면 내 모든 힘을 빼앗았다고 장담이라도 하신 겁니까?”
이들의 표정을 보니 후자가 맞는 것 같았다.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군을 동원해서 몰려올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지금이 무슨 군부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탱크가 청와대를 포위하는 건 20년 만일 것이다.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입니다, 대통령님.”
나는 경호원들이 만들어준 자리에 앉았다.
대통령은 자신을 경호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모두 내 수족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청와대 경호원들 중 절반은 제 사람들이라는 걸 아셨어야죠. 그리고 대통령님과 여당의 손을 잡은 사람들 중 절반도 당신들에게 가짜로 협조를 한 것뿐입니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더러운 배신자이긴 하지만.”
이강찬처럼 정부의 손을 잡는 척만 하던 사람들이 절반 정도 있었다. 다행인 건 군부 쪽 사람들은 모두 내 편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서 나오는 돈이 정부보다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무너지면 정부의 손에 군부부터 재편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저, 저기 회장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
탕-!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여당 대표의 가슴에 총알을 박았다.
나는 연기가 흘러나오는 총을 앞에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경악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개소리를 했다가는 입에 대고 총을 쏴줄 테니까, 알아서들 해.”
난 어차피 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응징하러 왔을 뿐.
“그리고 이창석.”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더는 말을 높일 필요도 없었다.
“처음 내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뭐라고 했었지? 허수아비가 되어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었나? 평생 개처럼 내게 충성을 다한다는 맹세를 난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거야?”
“은혜라니, 당치도 않은 말을. 난 오로지 내 실력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을 뿐이오.”
“하하, 지랄도 참 때깔 나게 하네. 네 실력으로 거길 올라가? 내가 좀만 손을 썼으면 대선은 꿈도 못 꿀 놈이 말이야. 네 약점들을 지금이라도 다 터뜨리면 넌 그날로 끝이야. 알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바로 하며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 있는 너희들 모두를 깡그리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럼 재미가 없잖아? 내가 어떤 식으로 너희를 추락시키는지 한번 보라고.”
이놈들을 위해 준비한 무대는 따로 있다.
여당 대표가 저렇게 쓰러진 건 좀 아쉽긴 하지만, 내가 만든 무대에 큰 지장은 없을 터.
“조만간 내가 너희들에게 각자 뭘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 알려줄 거야. 그대로만 한다면 너희들의 벌레 같은 목숨과 가족들의 목숨은 살 수 있어. 하지만 조금이라도 핀트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면 그날로 끝이야.”
“…….”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난 언성을 높였다.
“왜 대답이 없지?”
“아, 알겠습니다.”
모두의 대답을 들었으니, 여기서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미국에서 신호가 올 것이다.
왕의 귀환을 알리는 신하들의 축포가 터지면서 말이다.
* * *
“끔찍한 테러가 다시 한번 미국 전역을 뒤엎었습니다.”
“대통령의 보좌관들도 그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워싱턴 한복판에서 일어난 끔찍한 테러로 인해 상원의원 5명이 사망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폭탄 테러에 부시는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의 소식.
골든 연합의 수장, 김태산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 어떤 것보다도 충격적이었다.
왕의 귀환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부시의 말에 넘어왔던 사람들이 다시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이미 여러 장성들도 마음을 바꾸고 있었다. 부시는 그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리 미국이 위대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기회를 이대로 날리시겠다고요? 절대 안 됩니다. 우리 미국이 언제부터 이방인에게 통치를 받았단 말입니까. 이건 조국의 수치입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이미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김태산 회장의 뿌리가 이 나라에 너무 깊이 박혀 있다는 겁니다. 차라리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면 더 일찍 일으키셨어야죠. 이 나라는 더 이상 대통령의 나라가 아닙니다. 김태산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의 나라일 뿐.”
쿠데타라.
부시가 대통령인데, 대통령인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야 하는 웃긴 상황이었다.
“저는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김태산 회장에게 고개를 숙일 겁니다.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나, 제게도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이미 상원의원 10명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장성들 중에서도 3명이 죽었고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배신자들을 전부 숙청해 버리겠다는 김태산 회장의 의지입니다.”
부시는 할 말이 없었다.
연이어 일어나는 테러에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번 테러는 알카에다 소행이 아니다.
골든 연합이 예전부터 미국에 깔아놓은 조직원들을 움직여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에 이 사실을 까발리자니, 언론은 철저하게 골든 연합의 통제를 받고 있지 않던가.
“대통령님, 전화가 왔습니다.”
“누군데?”
“그게… 김태산 회장입니다.”
부시는 숨이 멎을 뻔했지만,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었다.
“대통령님,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는 거 같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아주 많이 바쁘셨다고요?”
비아냥거리는 상대의 말에 부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용서를 빌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나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그러니까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지 않은가.
미국의 권력을 우습게 보지 말라며 김태산을 협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래도 꼴에 미국 대통령이라고 자존심을 세우는 거 같은데, 그럴 필요 없어. 솔직히 백악관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누가 널 진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겠어? 네가 내 허수아비 노릇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들이었지만, 틀린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더욱 부시의 마음을 짓눌렀다.
“어디 한번 그쪽 말대로 끝까지 가보자고. 내가 뉴욕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있는데, 백악관이라고 해서 못 날릴 거 같나?”
그 말에 부시는 눈을 번쩍 떴다.
이젠 하다못해 백악관까지 공격하겠다는 건가.
“그, 그게 지금 무슨…….”
“오히려 난 당신들에게 아주 고마워하고 있어. 베리칩 프로젝트를 언제쯤 시작할지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당신들이 날 도와줬잖아. 지금 내가 어디에 폭탄을 설치해도 누구 하나 날 막지 않아. 당신들이 날 배신했으니까. 만약 백악관이 날아가고 주요 센터들도 함께 폭파된다면, 국민들이 자기 의지에 따라 베리칩을 심으려 하지 않겠어?”
부시는 김태산의 생각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이자는 이번 배신행위를 명분으로 각국 주요 시설에 대대적인 테러를 일으킬 생각이다. 그렇게 국민들을 테러 위험에 빠져들게 하여 베리칩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는 것.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베리칩을 통해 감시체계를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테러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다는 미끼를 던지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백악관이 폭파당하고 각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폭탄 테러에 사라진다. 그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이웃집이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로 불에 휩싸인다면 국민들은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켜 안전 민감증이 생기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베리칩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국민의 안전을 방패삼아 베리칩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면 국민들은 당연히 그 법안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
내 가족의 안전을 챙길 수만 있다면 그깟 칩 하나 맞아서 감시당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니까 제가 갈 때까지 부디 몸조심하고 계십시오, 대통령님.”
통화가 끊긴 수화기를 들고 부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 시작한 일인데, 미국의 영원한 몰락을 자초하고 말았다.
* * *
러시아의 수장 푸틴은 내가 죽던 말던 크게 상관하지 않던 인물이라 그런지, 그쪽은 별도로 문제가 될 만한 게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러시아의 전반적인 경제를 쥐고 있는 건 골든 연합이다. 그들을 탈탈 털어버리면 저번처럼 러시아가 대공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는 일단 상황을 지켜본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중국은 아주 저돌적이었다.
베리칩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시키고 그와 관련된 관련자들을 전부 잡아내는 등, 초강수를 두었다. 또한 라우팽이 죽자마자 상하이에 있는 골든 연합 소속 회사들을 습격하는 등 리오차오는 아주 대담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행보도 이제 거기까지다.
라우팽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런 일을 대비해 항상 후임자를 염두에 두었는데, 다행히 리오차오는 라우팽의 후임자까진 잡아내지 못했다.
반격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고,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소식이 전 세계 퍼지면서 그 불씨가 거대한 화염이 되어버렸다.
나는 천량위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명령을 내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응징의 때가 왔음을 알렸다. 또한 중국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들이 움직이면서 중국에서도 크고 작은 폭탄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도쿄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 수백 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거기다가 주요 관광 시설에서도 테러가 일어나는 등, 일본은 그야말로 불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정식이가 전두 지휘하면서 일본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인데, 이미 그쪽 자위대 출신 장교들도 정식이의 편을 들고 있는 터라 당분간 일본은 정신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죠?”
“아, 예, 그, 그렇습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흑인 남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긴장 푸세요. 당신을 죽이려고 부른 게 아니니까.”
이 남자는 몇 년 전부터 우리 연합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남자다.
“몇 달 후에 있을 선거에 당신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될 겁니다. 흑인으로서는 3번째 당선이 되는 거죠. 어떻습니까?”
상원의원이라는 말에 상대는 다소 흥분한 모습이었다.
“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상원의원이 되고 난 후에는 바로 대선 레이스를 시작해야 하니까, 그 정도로 기뻐하기는 이릅니다.”
“뭐, 뭐라고요?”
남성은 기겁하며 탄성을 터뜨렸다.
난 상대에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그러니까 똑바로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미스터 오바마.”
버락 오바마.
이 사람은 곧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