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왕의 귀환 (1)
“다니엘 로페즈. 당신을 살인, 납치, 횡령, 불법 약물 판매 등등. 각종 흉악 죄로 긴급체포한다.”
FBI가 사무실을 점거해 다니엘 로페즈를 포위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잊으신 겁니까?”
“입 닥쳐. 이제 당신들은 끝났어.”
“하하, 우리 팀장님 많이 녹슬으셨네. 당신이 팀장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다 누구 덕인지 잊어 먹은 건가?”
“뭐야?”
팀장이 손을 번쩍 들자 다니엘 로페즈는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조심하셔야죠. 이거 엄연히 폭행입니다. 여기 CCTV도 다 깔려 있는데, 폭행하다 걸리면 법정 소송까지 갈 수 있다는 거 몰라요?”
팀장은 사방에 깔린 CCTV를 슬쩍 훑어보더니 다니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고소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해. 그런데 그때까지 네가 살아 있을 거 같아?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당신을 잡아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것 같던데 말이야.”
다니엘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조소를 띠었다.
“내 얼굴에 주먹질을 한 대가가 뭔지 나중에 똑똑히 알려주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멍청한 새끼. 뭣들 하고 있어? 이 새끼 데리고 나가!”
다니엘 로페즈는 겉으로 덤덤한 얼굴빛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슬슬 걱정이 되었다.
FBI가 겁 없이 설치고 있는 것을 보면 CIA도 정부에게 넘어갔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정부와 다른 권력 기관들이 전부 한통속이라는 건데…….
“이 정도였나.”
그동안 김태산이 사라져도 골든 연합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것 자체가 큰 오산이었던 것 같다. 그가 없어졌다고 이렇게 연합이 빠르게 침몰할 줄이야.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며 이 혼란에 질서가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기대해 볼 것은 메데인 카르텔을 움직이는 로이 루스테밖에 없다. 또한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리턴 쉐어즈에게도 기댈 수밖에.
억울하지만 지금은 반격의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없다.
* * *
“다니엘 로페즈 사장님이 FBI에 체포되었고 그 외 우리 연합을 지지하는 상원 의원들과 핵심 관계자들이 하나둘씩 잡혀가고 있습니다.”
김아름의 보고를 듣고 있던 로이 루스테는 불안감에 시가를 입에 물었다.
이 정도로 정부가 빠른 대처를 보일 줄은 몰랐다.
이건 마치 이번 기회만 노려왔던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이들은 하루 이틀 준비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로스차일드 가문과 작전을 짰다는 것. 또한 김태산의 실종으로 연합 내부에 배신자들이 속출하면서 정보가 누설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핵심 멤버들만 잡혀갈 리 없지 않은가.
“우리도 쫓고 있겠지?”
“예, 저도 일단 대피를 하긴 했는데, 이미 FBI가 들이쳐서 리턴 쉐어즈를 압수수색하고 있습니다.”
“젠장, 이건 아예 다 박멸을 시키겠다는 거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로이는 피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긴. 골든 연합이 왜 그동안 세력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는지 똑똑히 보여줘야지.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내가 깡그리 뒤집어 버리겠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까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손이 닿으면서 그곳에 있는 멤버들이 계속해서 체포되고 있는 상황.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지휘 체계가 망가져 버린 것도 있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이 기습으로 허를 찌른 것도 있었다. 그러나 골든 연합은 단순히 돈만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온 게 아니었다.
불복종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히트맨들을 움직여 목표를 없애 버리는 것이 이들의 특기이지 않던가. 로이 루스테는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많은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이 움직여 백악관을 뒤집을 수도 있을 터. 물론, 부시가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라서 이미 백악관을 군인들로 하여금 철통 방어를 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 끝나는 싸움이라면 로이는 도망치기보다는 맞설 생각이었다.
우우웅-
비장한 각오로 밖을 나서려 할 때, 로이는 탁상 위에 있는 핸드폰의 진동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저건…….”
“왜 그러십니까?”
“저건 나랑 워커만 아는 라인이야. 우리 둘이 통화할 때만 쓰는 거라고.”
다른 누구에게도 둘만이 아는 번호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전화는 분명히……!
“워커?!”
로이는 잔뜩 흥분한 어린 아이처럼 소리쳤다. 그리고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목소리가 너머로 들려왔다.
“다행히 아직 안 잡히셨나 봅니다, 로이.”
“워커! 지, 진짜 워커야?”
로이의 호들갑에 옆에 있던 김아름도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예, 저 안 죽었으니까, 너무 소리치지 마세요.”
“이럴 수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워커가 고작 그 정도로 죽을 리 없지! 아니,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연락을 준 거야?”
“미안합니다. 여기도 정신이 없었어요. 제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잠시 연락이 늦었습니다.”
“아, 아냐. 아무튼, 무사하니까 다행이야. 도대체 어떻게 거기서 살아남은 거야?”
“운이 좋았어요. 저를 지키는 경호원들을 방패 삼아 간신히 빠져나왔거든요.”
로이는 흥분감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물었다.
“워커, 지금 상황이 굉장히 험악하게 돌아간다는 거, 알고 있지?”
“예, 그래서 속이 좀 쓰립니다. 저 하나 없다고 일이 이런 식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거든요.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이 우리의 뒤통수를 칠 줄도 몰랐고요.”
“그래, 맞아.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 정부도 이미 우리를 배신했어. 다니엘 로페즈도 그놈들에게 잡혀갔고.”
잠시 김태산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설마, 이제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로이는 의심을 거두었다.
지금의 골든 연합을 만든 남자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반드시 그에 맞는 해답을 내놓으리라.
“로이, 제가 조만간 선물을 하나 줄 겁니다. 그리고 로이는 제가 보내는 선물에 맞춰 움직여 주세요.”
“움직이다니?”
“절 배신한 대가가 뭔지,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이와 연락을 끝낸 다음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에도 연락을 넣을 겁니다.”
“정확하게 어떤 걸 하라는 거야?”
“로이가 가장 잘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하세요.”
로이 루스테는 김태산이 지금 무슨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 눈치챘다.
“좋아, 아예 다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거니까, 각오하라고.”
“예, 저도 불구경 안 한 지 좀 오래돼서요. 기대하겠습니다.”
김태산과의 연락을 끊은 로이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비장해진 얼굴로 김아름에게 말했다.
“가자, 보스의 명령에 따라야지?”
* * *
이창석의 지휘에 따라 한국 정부도 골든 연합과 관계된 관련자들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대부 업체를 운영 중이던 조직들까지 모두 이 잡듯 잡아내면서 큰 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창석의 천하는 이제 끝났다.
내가 직접 침묵을 깨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완벽하게 된 거겠죠?”
“예, 이미 기자들을 전부 불러 모았고, 아직 정부의 손에 붙잡히지 않은 연합원들에게 회장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군 장교들에게도 연락을 돌려 모두 뜻을 모은 상태입니다.”
모두가 나를 배신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미 날 배신한 놈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란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한국에 은밀히 키워놓은 사병들까지 움직였다. 웬만하면 이들을 꺼내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 모든 건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나는 이강찬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을 앞에 나섰다. 그들은 내 얼굴을 보고 큰 환호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화진 그룹 회장, 김태산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과 각 정부가 합작한 이 더러운 짓을 청산해 줘야 할 때가 왔다.
* * *
“이번 테러 공격의 목표가 바로 저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정부는 최대한 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습니다. 알카에다 조직은 한국에서 가장 청렴한 기업인들만을 선별해 테러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실행해 옮겼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정부는 군 내부에서 알카에다 조직과 내통하고 있던 것으로 수사 방향을 잡은 상태입니다.”
“회장님! 그럼, 그동안 어디에 숨어 계셨던 겁니까?”
“정부에서 제공하는 세이프 하우스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TV에 멀쩡한 얼굴로 나온 김태산의 얼굴에 이창석 대통령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그는 리모컨을 던져 버렸다.
“이게 도대체 뭐야! 저 새끼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고!”
“대통령님, 고정하십시오. 그래봐야 이미 다 끝난 게임입니다. 저놈이 이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모두 우리 편으로 돌아섰어요. 우리는 그저 보호라는 명목으로 김태산을 붙잡아놓으면 될 일입니다.”
이창석은 김태산이란 인간을 여러 번 봐왔다. 그리고 그를 오래 겪어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절대 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저렇게 당당히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증거다.
미국의 대통령마저 하수인처럼 부리는 놈이지 않은가.
저놈이 아무 준비도 없이 나왔겠는가?
“자네들은 저 양반이 누군지 몰라? 이 나라의 모든 걸 쥐고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모두가 돌아서? 한번 돌아선 놈들이 두 번은 못 돌아설 거 같나? 그리고 저놈을 은밀하게 따르고 있던 놈들이 한꺼번에 움직여 버리면? 그건 또 어떻게 할 건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우리 쪽 준비는 완벽합니다. 이제 그 누구도 감히 대통령님을…….”
“크, 큰일 났습니다!”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경호실장이 급히 안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지, 지금 청와대를 탱크들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특공대로 보이는 군인들까지 전부 안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뭐, 뭐야? 그놈들이 멀쩡히 넘어오게 그냥 지켜만 봤어?”
“갑자기 탱크 몇 대가 넘어오는 걸 어떻게 막습니까?”
경호실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끄러운 헬기 소리도 들려왔다.
“도대체 뭐, 뭐야?”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드, 들어오시면 안… 크악!”
타타탕-!
고막을 흔드는 총성에 모두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이거 분명 총소리였지?”
총성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못 들어오게 막아!”
두두두-!
권총 소리도 아니고 이건 군인들이나 쓸 법한 기관총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군대가 청와대에 침입했다는 것인가?
도대체 어떤 놈이?
지금이 무슨 80년대 군부 시대도 아니고 누가 이런 사단을 만든단 말인가.
그런 의문도 잠시.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쓰레기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군요.”
골든 연합의 수장, 화진 그룹의 회장, 그리고 이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절대자.
왕이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