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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81화 (281/325)

281화. 혼란 (2)

“안보 문제 때문에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찾아오시다니요.”

여유로워 보이는 이강찬의 모습에 여당 대표 한영구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어찌 보면 현재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이강찬이 아니겠는가.

그가 전동련을 한곳에 모아 정부에 반항을 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큰일이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언론을 움직일 힘이 있으니까.

만약 이들이 모든 안보 문제를 여당의 탓으로 돌리는 언론 플레이를 하며 야당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된다면 상황이 꼬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식물 정권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건 모두 여당 쪽 의원들이니까.

“회장님께서는 제가 여기 왜 왔는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전동련 회원들을 잘 수습하라는 대통령님의 뜻 때문에 오신 거 아닙니까?”

한 마디로 심부름꾼 역할로 오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구태여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 한영구였다.

“예, 대통령님께서는 지금의 혼란을 하루 빨리 끝내고 싶어 하십니다.”

“하하. 그러시겠죠. 눈치 볼 상사가 사라졌으니, 이 기회에 얼른 모든 걸 다 갖고 싶은 거겠죠. 이참에 독재 정권도 만들어볼 생각이겠고요.”

“회, 회장님.”

한영구는 당황해하며 혹시라도 누가 들었을까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강찬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안심하십시오. 누구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하라고 이미 말해두었습니다.”

“흠흠, 그러셨습니까?”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보자는 겁니다. 그래야 저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겠죠.”

이강찬은 뼛속부터가 장사꾼이다. 한영구는 그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될 만한 옵션을 선택할 터. 그에게 약을 팔아야 하는 건 한영구 자신이고, 그건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정치인이야말로 최고의 약장수가 아니던가?

“천성 그룹이 정부와 협력한다면 나머지 기업들도 알아서 그 뒤를 따를 겁니다. 그에 따라 정부는 화진 그룹에 대한 투자를 모두 접고 천성에 올인하겠습니다.”

“김태산 회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다른 나라에도 퍼졌을 겁니다.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그 양반, 영향력이 장난 아니었어요.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강찬의 물음에 한영구는 드디어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하하, 아직 모르셨군요.”

“뭘 말입니까?”

“김태산이 대낮에 폭탄 테러를 당해서 죽었어요. 그게 누구의 작품인 것 같습니까?”

한영구의 자만한 어투에 이강찬은 살짝 얼굴을 굳혔다.

“정부가 개입했다는 겁니까?”

“예, 알카에다가 우리나라를 침범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그만큼 보안 쪽에서는 철저하니까요. 즉, 우리 정부가 이 일을 꾸몄다는 겁니다. 헬기를 동원한 것도 대통령님의 지시였습니다.”

이강찬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제껏 김태산을 건드리지 못한 건, 그 배경에 깔린 수많은 권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 대책 없이 그를 건드렸다는 건가?

“미국이나 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정부 손에 김태산 회장이 당했다는 걸 알면, 그쪽에서 어떤 대처를 할지 모릅니다. 김태산 회장이 만든 골든 연합은 아시아부터 북미까지 전부 장악하고 있단 말입니다. 러시아의 푸틴도 핵 보복이 두려워 김태산을 못 건드렸다는 걸 정말 모르신단 말입니까?”

“하하. 우리 회장님, 너무 겁이 많으시네. 우리 정부가 설마 생각 없이 움직였겠습니까? 이미 북한과 중국 등이 우리 쪽에 먼저 협력을 구했어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동안 김태산의 권력에 굴복하고 있던 강대국들이 반란을 꾀했다는 것이죠. 솔직히 세계정세가 너무 이상했어요. 고작 한 사람 앞에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들이 엎드려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고작 한 사람이라.

한영구 대표는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

김태산 혼자 골든 연합을 이끌어간 거였으면 진작 연합은 깨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무조건으로 지지하는 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중국과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를 도왔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그 의문점을 한영구 대표가 말끔히 씻겨주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김태산 회장에게 두드려 맞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다 그들이 반격의 틈새를 발견한 거죠. 북한과 중국 정부가 김태산 회장에게 불만이 많다는 걸 알고 접근한 모양입니다.”

“그게 한국까지 번진 거다?”

“예, 그렇습니다.”

“그럼, 미국은요?”

“미국도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은연중에 오고 간 계약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미국이 잠잠한 게 수상하긴 했다.

이강찬은 자초지종을 다 들었으니, 중요한 거래 조항을 말할 때가 되었다.

“좋습니다. 정부에서 절 위해 뭘 준비했는지 들어볼까요?”

한영구도 좋은 사인으로 여기며 대답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앞으로 정부는 천성 그룹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겁니다. 또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지나 회사 인수권은 모두 천성 그룹이 가져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비밀이 산더미처럼 쌓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회사를 갖는다라.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저번에 정부한테 좀 걸린 게 많아서 말이죠.”

저번에 걸린 탈세 의혹과 비자금에 관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하. 그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이번에 노조를 해체시켜 버릴까 고민 중인데…….”

“노조야 오히려 나라의 발전을 막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회장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정부는 그에 보조를 맞출 겁니다.”

원하는 것을 다 얻은 이강찬이 웃으며 한영구 대표에게 손을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한영구 대표님의 어깨에 달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군요. 그 짐을 덜어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해드리겠습니다.”

“하하. 역시, 절 생각해 주는 것은 회장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치의 미래를 결정시킬 거래가 성립된 것이었다.

* * *

“그럼, 안녕히.”

“예, 살펴 들어가십시오.”

한영구 대표가 물러가자 이강찬은 개인 사무실에 숨겨져 있는 비밀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스피커폰으로 모든 걸 듣고 있던 내게 물었다.

“다 들으셨습니까?”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찬 회장님이 제게 원하는 건 그게 전부입니까?”

“예. 비자금, 탈세, 노조 해체. 그리고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이게 전부입니다. 너무 소소했나요?”

“예, 제 목숨을 살려주시는 대가치고는 너무 싸게 먹히는 것 같아 제 자존심이 다 상하는데요?”

“하하, 그 이상 했다가 화진 그룹을 뭉개뜨려 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강찬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부의 움직임을 보니까 아예 화진 그룹을 도려내려 하는 것 같은데……. 이창석 그 양반의 행동력이라면 화진 그룹과 연결되어 있는 조직들도 전부 솎아내려 할 겁니다.”

이강찬의 말이 맞다.

이창석은 이 일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을 터.

그는 내가 만들어놓은 지하 조직들까지 전부 파내어 없애 버릴 작정일 것이다.

만약 그날 내가 정말 죽고 없어졌다면 이강찬도 어쩔 수 없이 이창석의 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이 사람도 결국은 장사꾼이니까. 그런 그가 날 숨겨주고 있는 건 내게 뜯어갈 이익이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창석은 고작 한 나라를.

나는 전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슬슬 때를 봐서 나가야겠죠. 골든 연합에서도 제가 죽은 줄 알고 아마 많이 놀랐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차라리 이번 기회에 봐두고 싶군요.”

“뭘 말입니까?”

“누가 진짜 나의 편인지 말입니다. 극단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날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과 가짜로 따랐던 사람을 가려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죠. 결과적으로 연합 내부의 분열로 인해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게 아닙니까?”

완전히 궁지에 몰았다고 생각한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렇게 내 뒤통수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선조들이 궁지에 몰린 쥐가 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조심성이 없던 내 잘못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하나의 기회다.

앞으로 골든 연합은 세계 정부를 만들어 이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썩은 뿌리를 건져내서 태워 버리는 게 먼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 터. 그래서 나는 일단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골든 연합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날 배신한 배신자들이 언제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 * *

“김태산 그 사람은 죽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뭘 더 두려워해야 하는 겁니까?”

부시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수뇌부를 모아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서로를 의심하고, 아니, 서로 협력하지 않고 허수아비처럼 살았다는 건 모두 인정합시다. 또 돈에 눈이 멀어 국익을 보지 못하고 개인의 욕망만 채워왔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부시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이들도 김태산이란 이름과 골든 연합이라는 이름 앞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김태산이 죽은 지금, 골든 연합은 예전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를 잇는 다니엘 로페즈가 있지만 당장 그 사람도 혼란에 빠진 이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틈이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들 하십니까? 이대로 미국이 그 미친 사이비 조직에 붙들려 있어야 합니까? 우리 미국은 강대합니다. 위대하단 말입니다. 그런 미친놈들이 이 나라를 뒤흔들 게 놔둘 순 없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부시의 강경한 모습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마음을 모았다.

여당과 야당을 나누지 않고 먼저 이 나라를 골든 연합에게서부터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이었다.

“차근차근 시작하면 됩니다. 골든 연합과 관련된 사람들부터 먼저 잡아들이고 관련 조직들도 깡그리 없애 버리면 됩니다.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긴 하나, 하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어요. 그리고 언론에는 그들이 사실 로스차일드였다고 꾸미면 완벽하지 않겠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구태여 골든 연합이라는 이름을 알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골든 연합을 로스차일드 가문의 소속으로 속여 그들을 강제로 지워 버릴 수 있는 명분을 얻는 것이다.

지금 온 세계가 로스차일드 가문에 분노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미국 정부도 물타기를 해서 골든 연합을 무너뜨리면 된다.

“일단 골든 연합의 핵심 멤버 중 하나인 다니엘 로페즈를 먼저 체포해야 합니다. 그놈을 잡아 죽인다면 아직도 골든 연합의 눈치를 보고 있는 여러 정치인들과 재계 사람들이 정부의 뜻에 복종하게 될 거예요.”

그간 쌓인 게 많긴 많은가 본지, 부시의 계획은 꽤 구체적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전 세계에 로이 루스테,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를 공개 수배해서 붙잡는다면 골든 연합은 그걸로 끝이에요.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나서서 골든 연합을 동시에 공격한다면 누가 그들을 옹호하겠습니까?”

부시의 말대로 다니엘 로페즈와 로이 루스테가 붙잡히면 골든 연합은 지휘 체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럼, 골든 연합은 사실상 지휘 체계가 무너진 오합지졸로 돌변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누가 골든 연합을 따르겠는가?

모두 정부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시는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그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번 기회에 강대한 미국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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