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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79화 (279/325)
  • 279화. 기습

    “천량위를 비롯해 그의 추종자들이 지금 칼만 갈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이 칼을 쓸 수 있냐고 계속 저를 압박하는군요, 하하.”

    라우팽은 천연덕스러운 웃음과 함께 운을 뗐다.

    리오차오를 몰아내기 위해 골든 연합에 충성을 맹세한 천량위.

    그는 국가주석이 되도 영원히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폭발하는 베리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까?”

    “이쪽도 영국 때문에 많이 어수선하긴 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테러를 일으킨 원흉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지금 모든 국가가 그 가문을 비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시아 전역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정보에 한창 수사망을 좁히는 중입니다.”

    리오차오가 내게 더는 호의적이지 않아도 할 일은 하고 있었다.

    국익과 관련된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리오차오도 여전하고요?”

    “예. 이제 골든 연합에 속한 사람은 절대 만나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상하이에 있는 골든 연합 소속 회사에도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탱크를 몰고 와서 기습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라우팽은 겉으로 웃고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긴 되는 모양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로 상황이 많이 어지러워요. 라우팽 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차라리 이번 기회에 중국도 뒤집어 버리고 싶나요?”

    그러나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 여론을 분열시켜 리오차오를 몰아내는 것이 회장님의 계획이지 않았습니까? 지금 저희 쪽 사람들이 리오차오에 대한 불신 여론을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조만간 큰 스캔들이 하나 터질 것이고, 그때 천량위를 앞에 내세우면 될 것 같습니다.”

    불안하긴 해도 자신감은 있어 보였다.

    중국에 공들인 시간과 돈을 합쳐보면 절대 꿀릴 일이 없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몰락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만약 골든 연합도 언젠가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영원한 권력은 없다고 했다. 항상 신흥 세력이 나와 구세대 세력을 거둬내지 않았던가.

    지금 로스차일드 가문이 골든 연합에 의해 숙청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어디서 또 다른 골든 연합이 나올지 모르기에.

    그렇기에 나는 영원한 권력을 세우기 위해 베리칩을 만들었고 인구를 극단적으로 낮추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영원한 나의 왕조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천량위 쪽은 라우팽 씨가 잘 다독여 주십시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예, 회장님.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치지직-!

    갑자기 화면이 꺼져 버렸다. 내 쪽에서 끊긴 건 아니고 저쪽에서 끊긴 것이다. 통신에 문제가 있는 건가. 라우팽이 뭔가 말을 하려 했던 거 같은데.

    나는 일단 기다려 보자는 마음으로 시가에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들었다. 그런데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서 그런지, 불길이 양옆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경호하기 위해 사무실 안에 서 있던 경호원 두 명이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회, 회장님. 엎드리십시오!”

    난 내 앞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 방은 바깥 소음이 절대 들리지 않게 제작된 곳이다. 그것 때문인지 헬기가 내 사무실 창문까지 다가온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난 물고 있던 시가를 떨어뜨리고 경호원들이 소리친 대로 책상 뒤로 넘어가 엎드렸다.

    두두두두두-!!

    세계 최고의 방탄유리라고 자부하지만, 저 정도로 무식한 화력을 견딜 수 있는 유리 창문은 없을 터. 경호원 두 명이 그 자리에서 벌집이 되어 사망했고, 깨진 유리조각이 내 온몸을 덮었다. 그나마 총에 맞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하지만 저렇게 기관총을 난사하면 계속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설마, 이런 식으로 내 대업이 끝난단 말인가?

    * * *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다니엘은 워커가 많이 달라진 거 같지 않아?”

    꼭 쉬는 날이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는 로이 루스테 덕분에 다니엘 로페즈는 하루도 심심할 날이 없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로이 앞에 술잔을 내놓았다.

    “여긴 또 왜 왔습니까?”

    “섭섭한데. 네 베스트 프렌드니까 왔지.”

    “끙, 그런가요?”

    말은 저렇게 해도 다니엘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주는 로이가 결코 싫지는 않다.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남자니까.

    “그런데 다니엘 생각은 어때? 워커가 많이 달라진 거 같지 않아?”

    “흠, 달라졌다라-”

    다니엘 로페즈가 보기에도 예전에 비해 김태산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행보를 보면 더욱 거칠고 거침이 없다고 해야 할까.

    “워커가 불도저 같은 행동력이 있긴 해도 지금처럼은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서 베리칩 프로젝트도 그렇고 갑자기 인구를 10억 명으로 줄이겠다고 한 것도 참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 거기다가 이번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은 어떻고? 자기가 저지른 테러를 전부 그쪽에 뒤집어씌운 거잖아.”

    “그래서 싫은 겁니까?”

    “아니, 난 솔직한 사람이야.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말하고 끝을 내버리잖아. 오히려 난 그런 워커가 훨씬 좋아. 예전에는 망설이는 게 보이긴 했거든. 그러다…….”

    다니엘 로페즈가 대신 로이의 말을 이어주었다.

    “미스터 황이 죽으면서부터 달라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로이 루스테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잔에 있던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맞아. 그때부터 달라졌어, 워커는. 매우 거칠고 대담해졌지. 누가 들어도 미친 짓이 분명한데 아무렇지 않게 실행하는 것도 그렇고.”

    로이의 말에 다니엘은 웃으며 날카롭게 물었다.

    “그래서 죽인 겁니까? 미스터 황을.”

    순간 둘 사이에 진한 정적이 흘렀다.

    로이는 매서운 눈길로 다니엘 로페즈를 노려보다 술잔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알았어?”

    “뭐, 갑자기 미스터 황이 미스터 김을 배신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행동에 나선 것이 하필이면 그쪽과 만남을 가진 후라서 말이죠.”

    “이야, 내 뒤를 캐고 있었던 거야?”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모든 사람의 뒤를 캐고 있습니다. 딱 한 사람. 미스터 김을 제외하고 말이죠.”

    “하하, 하긴. 워커 뒤를 잘못 캤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아직 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만.”

    다니엘 로페즈의 끈질긴 추궁에 로이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맞아, 내가 그랬어. 내가 황규혁을 자극하고 나랑 같이 손을 잡자고 설득했지. 워커를 잠시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자고 말이야.”

    자신의 추리가 맞아 떨어지자 다니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신 겁니까?”

    “무슨 생각이긴. 베리칩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황규혁은 조금 흔들리고 있었어. 그렇게 계속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게 할 바에는 차라리 쾅 터뜨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것뿐이야. 생각해 봐. 만약 황규혁이 아직도 살아 있고 여전히 워커의 일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다면? 그게 연합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봤어?”

    거기까지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 잠깐 생각을 해보니, 로이의 판단이 옳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미스터 황은 미스터 김에게 형제와도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을 모함해 죽이다니!”

    “어우, 브라더. 말조심해. 내가 언제 모함했어. 사람 쓴 건 황규혁이야. 내가 부추기긴 했지만, 처음부터 워커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아무리 내가 부추긴다고 해도 넘어가지 말았어야지.”

    이건 마치 악마의 유혹이라고나 할까.

    악마도 죄 없는 사람을 지옥 구덩이에 빠뜨린 다음 저런 대사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 일은 심했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봐. 황규혁을 없애니까, 워커가 더욱 날뛰고 있잖아. 그리고 다니엘이 알고 있는 사실을 워커라고 해서 모를 거 같아?”

    순간 다니엘 로페즈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그 말은 로이가 미스터 황을 자극했다는 걸 미스터 김도 알고 있다는…….”

    “빙고. 다니엘이 알고 있는 걸 워커가 모를 리 없잖아. 그럼에도 날 아직 살려두고 있다는 건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니면 연합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일단은 참고 넘어간 것일 수도 있고요.”

    “흠- 그럴 수도 있겠네. 워낙 워커가 음흉한 구석이 있으니까.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내가 황규혁을 자극해 주길 원한 것일 수도 있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김태산과 함께해 왔지만, 여전히 그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부디 이 일이 계속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군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리고 내가 연합에서 빠지면 다들 심심하지 않겠어?”

    로이 루스테는 골든 연합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다. 그가 빠진다는 건 메데인 카르텔 전체가 빠지는 것을 뜻하며, 골든 연합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김태산이 로이를 일부러 살려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로이의 말처럼 황규혁을 자극해 주길 원했던 걸 수도 있고.

    “아무튼, 이번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만 잘 끝나면…….”

    “큰일 났습니다!”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경호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로이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떤 큰일이기에 저 남자가 저런 미친 짓을 했을까 하는 마음에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 일단 여기서 피하셔야 합니다. 얼른요!”

    경호원 수십 명이 안으로 들어와 로이와 다니엘 주변을 감쌌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설명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 대답을 해준 사람은 바로 김아름이었다.

    “골든 연합이 지금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응? 미스 김, 그게 무슨 소리야? 공격이라니.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일단 이동하시면서 들으시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김아름은 로이와 다니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중국. 그다음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지금은 미국까지. 정체불명의 세력에 의해 골든 연합의 핵심 건물들이 하나씩 공격받고 있습니다. 중국 라우팽 대표가 있는 회사 건물도 미사일에 맞아 현재 연락이 두절되었고 한국에 계신 회장님의 사무실에도…….”

    “뭐, 뭐야?! 워커가 지금 공격을 받았다는 거야?”

    “미스터 김은 괜찮으신 겁니까?”

    김아름은 숙연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모릅니다. 회장님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계시던 사무실이 헬기의 공격을 받아 불에 휩싸였다는 정보 말고는…….”

    순간 로이와 다니엘의 앞이 노랗게 변해 버렸다.

    그 뜻은 골든 연합의 수장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지 않은가.

    “워커가 사무실에 있었던 게 확실해?”

    “예, 라우팽 대표와 연락 중이셨습니다. 그러다 공격을 받으셨고요.”

    “도대체 어떤 새끼들이 감히 워커를!”

    로이는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다니엘 로페즈도 정신이 없긴 했지만,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런데 미국도 공격을 받았다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두 분의 자택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에서는 두 분 모두 자택에 있던 걸로 판단한 듯 보입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사실 둘은 항상 은밀하게 만남을 가지는 터라 외부에서는 쉽게 이 둘을 추적할 수가 없다.

    자택 내부에 마련된 지하 시설을 이용해 바깥을 왔다 갔다 하니까.

    “도대체 누구야? 누가 감히 우릴 건드린 거야?”

    “그건 조사 중입니다. 그들이 또 무슨 공격을 할지 모르니, 지금은 피해 계셔야 합니다.”

    두 사람은 입술을 깨물며 김아름의 인도에 따라 차에 올랐다. 하지만 제일 걱정이 되는 건 생사가 불명한 김태산이었다.

    정말 그 거인이 이대로 쓰러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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