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뒤집어씌우다
런던에서의 테러로 인해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했다.
UN 또한 추가적으로 평화군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걸 이행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일어난 테러는 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것을 빌미로 제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또 파병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국민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렇기에 파병을 꺼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미국이 나섰다.
미국은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특공대를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 지역에 보내 이번 테러를 조직한 단체들을 전부 소탕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 미국에 대해 사람들은 의구심을 나타냈지만, 그래도 미국이라는 후광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또한 아주 의외인 경우로 러시아가 미국의 손을 들어주며 자신들도 특공대를 파견해 테러 조직을 전부 쓸어버리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든 것이 차근차근 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사태를 책임져야 할 희생양이다.
“전혀 몰랐어. 내가 쓰는 이 사무실 옆에 너희 같은 잡종들이 살고 있을 줄이야.”
다니엘 로페즈가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화진 그룹 본사 바로 옆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한국 지부가 있었다. 이들은 듀어쉘이라는 이름을 쓰는 금융 회사를 운영 중이었다.
자세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들은 한국에서 에너지 산업과 철강. 그리고 금융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한국에서 사업 확장을 노리다 결국 우리의 레이더에 걸려들었고, 나는 곧바로 조직원들을 보내 빌딩 안을 헤집어놓았다.
큰 소란으로 인해 경찰들이 몰려들기까지 했으나, 경찰총장에게 전화 한 통화 걸으니 모두 금방 철수했다. 또한 언론부터 철저히 통제해서 이 빌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경찰이 오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조직원들 손에 피떡이 되어버린 상대는 한국인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일원이 아닌 사람에게는 절대로 직책을 내리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비밀주의라서 누가 가문의 일원인지 외부인은 절대 알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비밀이라는 건 없다. 그것도 몸통이 큰 곳일수록, 숨길 게 많을수록 더 숨기기 어려운 것이다.
“이름이… 스티브 리?”
영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는 어떤 경로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한국 지부를 맡고 있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이게 무슨 야만적인 짓입니까?”
이름은 영어지만, 한국어를 아주 능숙하게 할 줄 안다.
“야만적이라니. 절대 그렇지 않아. 오히려 내 땅에 감히 침범하고 잘도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너희들이 야만적인 거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비즈니스맨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 여의도 전체를 폭파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전혀. 네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왔다는 게 문제인 거야.”
스티브 리는 떨리는 눈동자로 날 쳐다보았다. 표정은 심히 흔들리고 있는데, 혀는 거짓을 말한다.
“잘못 보셨습니다. 전 그냥…….”
“로스차일드 가문이 한국에 본사를 둔 지 한 50년 정도 되었다며? 그동안 호텔 사업부터 시작해서 에너지 사업도 가져가고 말이야. 금융권에서도 꽤 이름을 날리고 있고. 그런데 내가 여길 접수하는 순간,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나갔어야지. 왜 버티고 있어서 이런 꼴을 당하는지 모르겠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금 회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컥-!”
스티브 리는 조직원들이 날리는 발길질에 신음을 터뜨렸다.
난 시가에 불을 붙이면서 조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 아직 덜 맞았구먼.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거 보니까.”
나는 시가를 다섯 모금 정도 피운 뒤,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내 스티브 리를 일으켰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한 치라도 거짓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세상 제일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을 고문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묻는 말에 잘만 대답하면 넌 살 수 있어. 알겠지?”
난 스티브 리의 피 묻은 양복을 잘 털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당신한테 해줄 말은 없어.”
“오,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데. 하지만 잘 생각해야 돼. 조만간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거야. 그때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말이 우습게 들렸는지 스티브 리는 조소를 터뜨렸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거 같아? 17세기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가문이야.”
“이제야 네가 가문의 일원이라는 걸 인정하네. 그런데 오래되었다고 해서 다 소나무처럼 버티는 줄 알아? 내가 불 한번 지르면 순식간에 활활 타버리는 게 바로 너희 가문이야.”
“어디 잘해보시지.”
스티브 리는 아예 내 말을 무시해 버렸다.
난 그런 그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친구가 안 믿네. 좋아. 내가 널 어느 방에 가둬 버릴 거야. 그리고 뉴스만 볼 수 있게 할 거고. 그때 잘 봐. 로스차일드 가문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네가 그렇게 믿고 있는 대가문이 전 세계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게 될 테니까.”
스티브 리는 여전히 내 말을 헛소리로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보게 될 뉴스는 로스차일드의 추락을 생생히 보여주게 될 터. 그땐 말하고 싶지 않아도 모든 걸 내게 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 *
골든 연합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김태산에게서 견제가 들어올 수 있을 거라는 경고를 미리 받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깡패들을 몰고와서 빌딩을 뒤집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기다가 출동한 경찰들은 5분 만에 모두 철수해 버리고 빌딩 안은 순식간에 김태산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다.
역시, 아시아부터 미국까지 김태산이 다스리고 있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를 은밀히 암살하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미국 대통령보다 더 엄중한 경호를 받고 있는 김태산을 죽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거액을 들여 몇 번이나 시도를 했었으나, 번번이 막히고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된 각국의 특공대가 테러 조직들을 무차별적으로 소탕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낸 영국은 핵이라도 발사해서 중동 국가 전체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언론까지 나와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영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오사마 빈 라덴이 이 모든 걸 주도했다고 뉴스가 나왔지만, MI6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동 국가에 있는 테러 조직들은 모두 김태산의 명령을 듣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이 모든 끔찍한 테러를 김태산이 일으켰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로스차일드 가문을 무너뜨릴 순 없지.”
스티브 리는 소파에 앉은 채로 뉴스만 각 세계 뉴스를 시청했다. 김태산이 허름한 호텔방에 가둬 뉴스만 보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무너질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사흘 동안 스티브 리는 호텔방에 갇혀 다 식은 군만두만 먹으며 버텼다.
“미국에서 파견한 CIA 요원들이 오사마 빈 라덴의 거처를 습격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원흉을 잡아넣을 순 없었지만, 알카에다 조직이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모두 알아냈다고 합니다. 미국은 입수한 정보를 모두 영국에 보내 알카에다에서 계획 중인 폭탄 테러를 막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모든 테러 조직은 김태산의 소유가 아닌가. 그리고 CIA도 그의 하수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CIA가 알카에다를 급습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영국에 전달했다. 그리고 그 정보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미국에서 넘겨준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실시한 영국군은 런던에서 대대적인 폭탄 테러를 준비하던 알카에다 조직을 급습해 20명을 사살하고 30명을 붙잡았습니다. 런던 부지에 마련된 이들의 거처에는 최신식 폭탄과 무기가 가득했으며…….”
자신이 공들여 키운 조직과 계획을 제 손으로 망쳐 버리다니. 도대체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 스티브 리는 사방에서 들어오는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뉴스를 보면서 차츰 이 모든 게 김태산의 큰 그림이라는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우리 미국은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테러를 자행하는 오사마 빈 라덴부터 그를 따르는 테러 조직들이 어떤 단체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그들에게 막대한 돈과 무기를 지원받고 있다는 것 또한 밝혀냈습니다.”
CIA국장이 침통한 얼굴로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음모론을 암시하는 말로 스타트를 끊었다.
“우리는 그동안 알카에다가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지휘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알카에다의 본진을 공격하고 그들이 가진 정보를 모두 압수해 보니, 이 일에 배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가 테러 조직을 일부러 키워줬다는 겁니까?”
“예, 9.11 사건부터 런던 버킹엄 궁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 모두 그 세력이 테러 조직들을 후원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세력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기자들은 신이 나서 타자를 두드리고 플래쉬를 터뜨렸다.
CIA 국장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폭풍 작전에서 우리 CIA는 알카에다 본진을 급습. 그곳에 있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하여 모두 영국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들 중에서는 누군가가 테러 조직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죠. 그들의 이름은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현재 유럽 시장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곳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테러 조직의 후원자라는 걸 CIA 국장이 밝히기 무섭게 스티브 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의 외침이 티브이 속에 있는 저 사람에게 닿을 리 없었다.
“듀어쉘이라는 이름으로 테러 조직을 지원하고 있던 회사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소유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온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밀어 넣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나아가 테러라는 무기로 각 국가를 협박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테러가 로스차일드 가문이 의도한 것이라는 겁니까?”
“예, 9.11 테러도 그렇고 런던에서 일어난 끔찍한 테러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짓입니다.”
기자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시점부터 많은 음모론이 탄생하지 않았던가.
어떤 배후에 의해 9.11 테러가 일어난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음모론이 절반 정도는 맞았다는 걸 CIA가 입증해 주었다.
“앞으로 미 정부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아주 잠깐이지만, CIA 국장은 힐끗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스티브 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미국은 영국에 정식으로 수사 요청을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영국이 이를 거부할 시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정부를 쥐고 흔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여 군사적 행동을 해서라도 반드시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9.11 테러로 인한 분노는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 중동 국가가 미국의 미사일에 신음하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제 그 불화살이 영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티브 리는 김태산이 그토록 자신하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죄를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것인가.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뉴스 화면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