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전쟁 (1)
정치라는 것은 결국 여론과 명분에 좌지우지되는 싸움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소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막강한 권력을 얻는다. 바로 천량위처럼.
“이게… 뭡니까?”
“골든 연합에 영원히 종속되겠다는 계약입니다.”
천량위를 비롯해 그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주사기를 바라보았다.
“이걸 몸 안에 넣는 겁니까?”
잔뜩 경계 어린 목소리로 시진핑이 말했다. 이들은 주사기 안에 들어있는 베리칩을 보고 겁을 먹은 듯 보였다.
“맞습니다. 이게 바로 베리칩이라는 겁니다. 당신의 위치를 우리가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칩이지요. 그리고 누군가가 저를 배신했을 때 곧바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고요.”
“호, 혹시 리오차오에게도 이 칩이 있는 겁니까?”
“아니요. 최근에 도입된 시스템입니다. 조만간 골든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모든 연합원들이 이 칩을 맞게 될 겁니다.”
아직 연합원들에게 베리칩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조만간 베리칩을 뿌려 연합원 모두에게 이식을 시킬 것이다. 그래야 배신행위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
“맞기 싫으면 거부해도 좋습니다. 대신, 내 도움을 영원히 받을 수 없을 겁니다.”
천량위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받겠습니다.”
그의 결정에 따라 뒤에 있던 사람들도 팔을 걷었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베리칩을 이식받고 있는 천량위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리오차오를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최소 몇 달간은 기다리세요. 중국을 외부적으로 압박해 리오차오의 명예를 실추시킨 다음, 군을 움직여 그를 몰아낼 겁니다. 그때 당신은 중국의 영웅처럼 나타나 새로운 지도자가 되는 것이고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천량위는 굳게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저 얼굴. 딱 내가 원하는 얼굴이다. 그리고 그는 베리칩을 맞는 순간부터 내 노예가 되었다. 즉, 내가 어떤 명령을 내리든,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 *
중국을 망가뜨리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고, 그 진행이 매우 빨랐다.
나는 미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에 명령을 내려 중국을 압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러시아의 푸틴이 조금 엇박자를 보이긴 했지만, 그는 결국 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경제 제재를 시작해 버리면 한창 경제 성장 중인 러시아가 크게 휘청이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 군사 쪽 간부들도 이미 골든 연합에 가입을 하는 바람에 푸틴은 더 이상 그 옛날의 푸틴이 아니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세를 500%까지 올려 압박을 가했고,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은 중국 제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 버렸다.
이로 인해 중국 제품이 의존하며 시스템을 유지하던 기업들은 차례차례 문을 닫아야만 했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대기업들도 비상이 걸렸지만, 리오차오가 추락하는 즉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내 언질을 받고 안심했다.
앞으로 몇 달간은 중국에 대한 압박이 매우 거세질 것이다.
“찾았다고요?”
“예, 찾았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던 소식이 당도했다.
“어디서 말입니까?”
“맞춰보십시오, 미스터 김. 어디일 것 같습니까?”
감이 안 잡혔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다니엘 로페즈가 웃으며 답을 알려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말에 나는 그제야 감이 잡혔다.
“설마…….”
“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우리가 지휘하고 있는 테러 조직 안에 침투하는 걸 CIA에서 꼬리를 잡았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그 여성의 행동반경이 넓다.
베리칩에 이어 테러 조직까지 침투하려 했다는 건 우리의 계획을 전부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붙잡아놓았습니까?”
“예, 쥐새끼들이 득실거리는 창고에 고이 모셔놓았습니다.”
“심문은요?”
“슬슬 할 참이었습니다. 참관을 원하신다면 미국으로 넘어오세요. 물어볼 것도 많으신 것 같던데.”
다니엘 로페즈의 말이 맞다.
그 여자에게 궁금한 것이 아주 많으니까.
누구의 사주를 받았으며 또 어디서 파견이 되었는지. 그리고 김정은이 이번 일에 가담을 했는지까지. 물어볼 게 참으로 많다.
“오늘 밤 비행기로 바로 날아가도록 하죠.”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부리나케 전용기를 준비시켜 미국으로 넘어갔다. 다행히 다니엘 로페즈는 그 여자에 대한 심문을 하지 않은 채 나를 기다려 주었다. 나는 조직원들을 따라 다니엘 로페즈가 말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금발의 여성 하나가 묶인 채로 앉아 있었는데, CCTV로 봤던 그 여자가 맞았다.
“입을 막은 겁니까?”
“예, 자살 시도를 하기에 입도 묶어놓았습니다.”
“입을 막아놓으면 실토를 못 할 텐데요?”
그 여성은 날 보자마자 갑자기 몸부림을 치며 입에 묶은 걸 풀어달라는 몸짓을 보였다.
나는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눈짓해 여성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눈을 보니까, 날 알아보는 거 같은데.”
줄곧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던 여성이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
장미에 돋아 있는 가시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운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살벌했다.
“이 살인마.”
“살인마라고요? 내가? 살인마는 내가 아니라 당신일 텐데. 당신이 북한에서 그 짓거리를 하는 바람에 죄 없는 수천 명의 사람이 희생되었어요.”
“어차피 그 사람들은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었어. 당신이 그 칩을 박아버리는 순간부터.”
굉장한 증오심이 느껴진다. 그것도 나를 향한.
“그렇습니까? 나는 오히려 그게 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북한은 죽음의 땅이에요. 굶어 죽을 바에는 칩 한 방 맞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그들에게 훨씬 더 좋은 일이 아닌가요?”
“웃기지 마. 갖은 테러와 음모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아?”
“하하, 그래서 그 음모를 막기 위해 친히 나섰다는 것이군요. 그럼, 묻겠습니다. 누가 보낸 겁니까?”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떠들던 여성은 내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이 없죠? 누가 보냈는지 말해주세요. 그들도 당신과 똑같은 생각인지 매우 궁금하니까.”
“그런 거 없어. 내가 독단적으로 한 일이니까.”
“그래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내가 계획 중인 베리칩 프로젝트와 더불어 테러 조직까지 침투했다는 건 상당히 우리에 대해 많이 아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죠. 결코 개인의 힘으로 알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번에도 여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무래도 우리 레이디께서 이분들의 거친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은데……. 원하는 대로 해드리죠.”
나는 다시 조직원들에게 눈짓해 여성이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다니엘 로페즈가 특별히 초청한 남성들이 앞으로 나왔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전부 실토하게 만드세요. 그게 당신들의 임무입니다.”
“예, 회장님.”
저들은 CIA에서 나온 요원들로 상대를 고문하는 데에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한다. 물론, 저 여성도 상당한 훈련을 받아 쉽게 실토를 하진 않을 터. 그러나 시간은 많지 않은가.
나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 * *
“쉬지 않고 한 겁니까?”
“예, 이렇게 독한 여자는 처음 봅니다. 그래도 원하는 대답을 얻었습니다.”
72시간 동안 이 사람들이 쉬지 않고 이 여성을 고문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고문을 한 결과인데, 몰골이 참 처참해 보였다.
“어떤 식으로 고문한 겁니까?”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으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육체를 망가뜨린 다음, 정신을 망가뜨려 놓는 겁니다. 성적으로도 육체를 공격하고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 정신까지 무너뜨리는 겁니다.”
나름 이쪽 방면에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절해 있는데,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어떻게 듣죠?”
“아, 영상을 녹화해 두었습니다. 한번 보시죠.”
요원들이 틀어주는 영상에는 빨리 감기로 여자가 어떤 식으로 고문을 당했는지 적나라하게 나왔다. 이윽고 그녀가 약에 취해 질문에 응답하는 장면이 화면에 나타났다.
“무슨 목적으로 침투했지?”
“…테러 조직들이 뭘 하려는지 알기 위해.”
눈이 반쯤 풀려 있는 여성은 묻는 말에 고분고분 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왔나? MI6?”
MI6라는 물음에 여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MI6가 영국 수상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 건가? 우리를 알아보라고?”
그 물음에는 여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국 수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럼, 누구지? 누가 MI6를 움직이는 거야?”
“…가문.”
“뭐?”
“로스… 차일드.”
나는 화면을 보다 옆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영국 수상에 의해 MI6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로스차일드가 움직였다는 건가?
예전에 그들이 유럽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영향력이 아직도 영국에 남아 있었던가?
“로스차일드에서 널 파견했다고?”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이 그쪽과 결탁을 했었나?”
“…….”
“묻는 말에 대답해!”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고개를 왔다 갔다 하던 여자는 갑자기 번뜩 정신을 차렸는지 혀를 깨물고 자결을 하려 했다.
“모, 못 하게 막아!”
당황한 요원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간신히 목숨은 건질 수가 있었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영상이 끝이 났다. 요원들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차기까지 했다.
“진짜 독한 년입니다. 저 약 한 방이면 아무도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이들의 감상평을 듣고자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고문하세요. 김정은에 관한 건 꼭 답을 받아놓아야 합니다.”
“회, 회장님. 저 여자, 이제 한계입니다. 좀만 더 하면 금방 죽어버릴 겁니다.”
난 당황해하는 요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시체 하나 치우는 게 그리 힘든가요? 전 분명히 말했습니다. 죽어서라도 그 대답, 꼭 받아놓으세요.”
“…예, 회장님.”
나는 요원들을 남겨두고 다니엘 로페즈와 함께 창고 밖을 나섰다.
난 입술을 깨물며 그 여성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분명히 들으셨죠? 로스차일드 가문이라고.”
“예, 미스터 김.”
“미스터 로페즈의 말대로 그들이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영국에 남아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난 그간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드디어 행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계획대로 가겠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그 외 국가에 퍼져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전부 찾아내세요. 그들을 하나씩 파괴해 가며 로스차일드 가문에 단단히 경고를 할 겁니다.”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가문이 감히 내게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내 일에 직접적으로 방해까지 하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의 영향력이 영국에 남아 있다고 하나, 나는 세계 절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유물에 불과한 놈들이 겁도 없이 골든 연합에, 그것도 내게 정면으로 도전했다.
“중동 국가에 있는 테러 조직들을 규합해 주세요. 아무래도 영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아야겠습니다.”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미스터 김의 명령이 내려지면 다들 신이 나서 폭탄을 챙기기에 바쁠 겁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가 영국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들이 시작한 전쟁이니, 나도 진지하게 상대해 줄 생각이다.
그들을 철저히 짓밟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