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영원한 생명 (2)
1996년부터 최초 복제 동물인 돌리라는 양이 나타나면서 세상이 들썩였다. 결국 그 관심은 당연하게도 인간에게 쏠렸다.
과연 인간은 복제가 가능한가?
그 대답은 Yes다.
인간 복제가 불가능해서 안 하는 줄 아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 복제는 가능하다. 다만,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혀 각 국가에서는 인간 복제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으며 그걸 실험하는 것조차 막아놓았다.
복제 인간을 만들어 장기부터 피부까지 전부 떼어내 오리지널에게 이식시킬 수 있다면, 영원히 살겠다는 인간의 꿈은 더 이상 망상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 절호의 찬스를 윤리라는 허황된 죄의식으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위대한 인간의 진화를 막을 생각이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이오 회사로 부족하다면, 저는 다른 회사들을 만들어 복제 인간 쪽에 투자를 할 겁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회장님들도 저를 따라 투자하시면 됩니다.”
내 말에 다른 회장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이강찬은 조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회장님. 사실, 저도 복제 인간에 대해 알아보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인공 자궁을 만들 수가 없어 산모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DNA가 미세하게 달라 이식이 힘들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강찬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인류는 항상 답을 찾아낸다. 어떤 것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면 말이다.
“이강찬 회장님의 말씀도 옳아요. 당장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시행착오를 넘긴다면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말이죠.”
가능하다면 몇 천 명의 복제 인간을 만들고 죽여서라도 내 뜻을 실현할 생각이다.
생각해 보라. 이 실험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영원히 이 세상을 통치할 수 있게 된다. 그로 인해 들어갈 수백, 수천 조의 돈이 아깝겠는가?
“회장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들도 그 뜻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이룬 인간은 항상 그 끝에 영생을 바라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욕망의 끝이니까.
“나중에 복제 인간에 대한 법안도 제출을 할 겁니다. 윤리적인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세계 정부가 들어서면 무슨 법안을 발의해도 인류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야 할 거예요.”
세계 정부가 들어서고, 내가 세계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 세상은 참 많은 것이 바뀌게 될 것이다.
철폐되었던 신분제가 살아나고 노예와 귀족이 생겨나게 될 것이며, 힘 있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능한 인재들은 영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터.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지옥처럼 변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 * *
인간 복제에 대한 기술도 중요하지만, 40억 인구를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는 바이러스 개발도 아주 중요하다. 나는 여러 덩치 큰 제약 회사들을 인수해 바이러스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적어도 5년은 기다려야 하는 일이니, 나는 급하게 마음을 먹지 않았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건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의 일이니까.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상하이 공항에 도착하자 라우팽을 비롯해 주요 중국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를 맞이했다. 나는 이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다음, 라우팽과 별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리칩 테스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었다는 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 천성 쪽에서 파견한 연구원들이 제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말이죠.”
“그 테스트를 방해한 여성에 대해서는 덜미가 잡혔습니까?”
북한에 침투해 바이러스를 심어놓고 간 그 여성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아뇨, 지금도 아직 여러 첩보국들이 그 여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중국도 그 일에 참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하, 중국 일 처리가 어떤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라우팽은 가벼운 농담을 던진 다음,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회장님, 북한 베리칩 테스트가 끝나면 그다음은 중국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시작은 1천만 명부터 시작해 1억 명까지 베리칩을 삽입한 다음, 통제가 이루어지는지를 보는 것이 다음 실험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가 리오차오에게도 흘러간 모양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예상을 하고 있다는 게 맞겠군요.”
리오차오는 내가 주석으로 내세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다. 하지만 라우팽의 표정을 보니, 중국 내부에 변화가 생긴 듯 보였다.
“그런데요?”
“리오차오는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중국에서 그와 같은 실험을 벌일 수 없다고 말이죠.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해 점점 세력을 넓히는 중입니다.”
역시, 그동안 고삐를 느슨하게 붙잡고 있었더니 리오차오가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하긴, 중국 주석이란 자리에 앉아 왕 노릇을 하다 보면 제 그릇을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나는 그런 우매한 자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노릇을 하고 있지 않던가.
“그래서 라우팽 사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무작정 리오차오를 몰아내는 건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회장님의 손이 아니라 다른 이의 손을 빌린다면 어떨까요?”
“다른 이라면……?”
“천량위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천량위라면 장쩌민의 수하로, 원래대로라면 후진타오가 주석이 되고 천량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개입을 하는 바람에 리오차오가 주석이 되면서 중국의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리오차오가 장쩌민의 권력을 완전히 압살시키기 위해 숙청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천량위도 피해를 입었지요. 재산 몰수도 당하고 말입니다.”
“그래서요?”
“천량위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뭐든지 할 테니, 리오차오에게 복수를 해달라고 말입니다. 이미 천량위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리오차오 반대파들의 모임이라. 그것도 한때 중국 공산당에 주요 자리를 하고 있던 자들의. 나는 일단 이들과의 만남을 미뤘다.
“당장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리오차오에게 분명히 물어봐야겠군요. 과연 그가 누구의 편인지 말입니다.”
“예, 언제든 마음이 정해지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날을 잡아보겠습니다.”
중국에 또 다른 피바람이 불어닥치려 한다. 하지만 그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 리오차오뿐이다. 만약 그가 내 의지에 반하는 뜻을 드러낸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을 작정이다.
* * *
리오차오를 만나러 오면서부터 내 마음이 벌써 정해지려 하고 있다.
나를 30분이나 기다리게 한 리오차오는 굳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제가 중국 주석이라는 걸 잊으신 모양입니다. 최소 일주일 전에 약속을 잡지 그러셨습니까?”
난 물끄러미 리오차오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던 놈이 지금은 감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가지 주석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말씀하시죠.”
“제가 북한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지는 아시겠죠?”
“아, 예. 베리칩 프로젝트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북한에서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중국에 옮겨올 생각입니다. 그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겠군요.”
리오차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정면으로 말했다.
“중국에서 그 프로젝트를 시행한다는 건, 무고한 주민들 몸에 칩을 박아 감시하고 터뜨린다는 겁니까? 아무 이유도 없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이 프로젝트가 뭘 의미하는지 몰라서 묻는 겁니까? 미래의 인류를 위해 반드시 진행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게 왜 굳이 중국이어야 합니까? 다른 나라도 많이 있을 텐데요.”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까요. 그만큼 쓸모 있는 실험체가 많지요.”
리오차오는 격양된 목소리로 상을 내려쳤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나는 그런 리오차오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말씀이 지나치긴. 감히 너 따위가 날 밖에 30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한 게 더 지나친 거겠지.”
“뭐, 뭐야?”
“네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게 누구 덕분인지 모르는 건가? 그리고 세력을 모아서 힘을 키우면 이 중국이 정말 네 거가 되는 줄 알아? 꿈 깨, 이 사람아. 절대 그럴 일은 없으니까.”
나는 기회를 줬고, 리오차오는 그걸 시원하게 차버렸다.
난 이놈과 더는 나눌 말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모두 얻었으니까.
“네 뜻은 잘 알았어. 앞으로 내 모든 계획에 동참하지 않을 거라는 그 의지. 잘 알아들었다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자존심 내세우다가 장쩌민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모르나 봐?”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를 겁니다. 더 이상 당신 손에 놀아날 중국이 아니니까. 그리고 당신이야 말로 조심해. 이 나라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반드시 할 수 있어. 당신이 중국 땅에 있는 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어이쿠, 무서워라.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나는 슬쩍 고개를 까닥인 다음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리고 라우팽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오차오가 우리와 완전히 갈라설 모양입니다. 또 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하는 걸 보니, 벌써 우리 주위에 감시인들을 뿌려놓은 모양새예요.”
“하아, 결국 그 작자가 제 무덤을 파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천량위와 약속을 먼저 잡아놓겠습니다.”
내 말만 잘 들었다면 리오차오는 떵떵거리며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그가 그걸 거부하고 있다. 왜 인간은 허수아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제 주제에도 맞지 않는 자리를 앉았음에도 말이다.
천량위라는 사람은 부디 제 그릇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 *
라우팽의 주선 덕분에 천량위를 비롯해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리오차오에게 극도의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회장님을 이렇게 뵙게 됩니다. 천량위라고 합니다.”
허리가 완전히 접힐 것처럼 자신을 낮추는 천량위였다.
그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때 내 눈에 걸린 것은 익숙한 얼굴의 한 남자였다.
“시진핑이라고 합니다.”
조용히 몸을 사리고 있다가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싸움에 끼어들어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시진핑. 원래대로라면 그가 2013년의 국가 주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리오차오가 집권하면서 그럴 가능성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천량위가 나라를 뒤집는다면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얘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리오차오의 파멸을 원하시는 분들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리오차오의 오장육부를 드러낼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천량위의 의지가 아주 확고하다.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것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라도 말입니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제 모든 걸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저와 손을 잡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피를 그 손에 묻혀야 할 겁니다.”
“회장님, 리오차오는 제 가족을 파탄시킨 놈입니다. 제 아들들이 그놈 손에 잡혀 죽었어요. 이런데도 제가 더 떨어질 나락이 있다고 보십니까?”
여기서 더 말하면 피눈물을 흘릴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리오차오에게 쌓인 것이 많은 천량위였다. 그와 더불어 그를 지지하는 추종자들도 리오차오에 대한 한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
딱 내가 원하는 자들이다.
이 중국을 뒤집어 버릴 만한 인재들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