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58화 (258/325)
  • 258화. 정상 (1)

    북한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총 1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에게 베리칩을 이식했고 그중 500명에 대한 폭발 실험을 거행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500명 모두 성공적으로 폭발이 되었으며 100만 명 모두의 행동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흡족한 실험을 마치고 연구진들을 북한에 내버려 둔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연구진들은 거기서 계속 실험을 이어가게 될 것이고, 앞으로 전 세계에 뿌리게 될 완전한 베리칩을 만들어놓을 것이다.

    어떠한 결점도 없는 완벽한 베리칩.

    그것을 완성시키기 전까지 북한에서의 실험은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오랜만이네, 보스.”

    “로이, 여기까지는 어쩐 일입니까?”

    한국에 돌아와서 잠깐 쉬려고 했더니, 그걸 또 어떻게 알고 로이 루스테가 와 있었다.

    그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냥저냥 돌아다니고 있어. 러시아,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등.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아마 골든 연합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건 로이일 것이다.

    맡은 게 많다 보니 매일 지구 반바퀴씩 돌아다녀도 모자랄 터.

    하지만 그가 한국에 방문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뭐, 연합을 대표해서라고나 할까?”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라 연합을 대표한다고?

    나는 레스토랑 하나를 통째로 빌려 로이와 단둘이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으며 신변잡기로만 시간을 끌었다. 구태여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렇게 메인 디쉬가 나가고 디저트가 나올 때쯤.

    로이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워커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뭘 말인가요?”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는 거. 뭐랄까. 마치 거대한 흑막처럼 뒤에서 모두를 조종하는 느낌이랄까?”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모든 걸 움직인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도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크게 잡음도 없고요.”

    “그 말은 피곤해질까 봐 뒤에 있는 다는 거네.”

    난 마시던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로이에게 물었다.

    “로이, 말 돌리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봐요. 도대체 뭘 말하려는 겁니까? 연합을 대표해서 한다는 말이 어떤 거예요?”

    로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술잔을 벌컥 들이켰다.

    “좋아,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이제 워커가 더는 뒤에서 머물지 말고 앞으로 나와줬으면 좋겠어.”

    “로이, 그거는…….”

    “이건 나만의 의견이 아니야. 연합원들도 워커가 밖으로 나와 주기를 원해.”

    어려운 부탁을 하고 있다.

    내가 왜 이제까지 앞으로 나서지 않았는가?

    그건 앞으로 나서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 마치 신처럼 뒤에서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겠다는 거잖아.”

    “신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지 않습니까.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만물을 움직이는, 바로 그런 존재니까요.”

    “그래, 하지만 넌 신이 아니야.”

    갑자기 로이가 왜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적의를 가진 것 같진 않고, 정말 내가 밖으로 나오길 원하는 건가?

    “로이, 이제까지 저는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겠다는 규칙을 고수했고 지금 그걸 갑자기 깰 생각도 없습니다. 대체 제게 갑자기 왜 그런 걸 요구하는 겁니까?”

    “네 말대로 지금까지는 앞으로 나설 상황이 안 됐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미 너는 온 세계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이제는 직접 나설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차피 너나 나나 우리 둘은 인간이야. 신이 될 수 없어. 하지만 신 놀음은 할 수 있지. 그것도 독재를 이어가며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신 놀음.”

    독재를 하면서 사랑을 동시에 받는 신 놀음?

    “네 친구, 장연욱이란 사람을 그렇게 만들려고 했잖아. 모두의 사랑을 받으면서 독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왜 그걸 네가 하면 안 되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다.

    난 연욱이를 살아 있는 신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내가 채우라는 건가?

    “로이, 진심입니까?”

    “그래, 언론도 돈도 다 네 편이잖아. 세상에서 그 두 개만 가지고 있어도 무서울 게 없어. 여론도 너에 대해서 아주 좋게 평가하고 있고. 이 기회를 잘 살려봐. 앞으로 5년 후에 차기 대통령은 바로 네가 되는 거야. 뭐, 당장 되고 싶으면 지금 있는 대통령을 끌어내려도 좋고.”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알아, 하지만 그 복잡한 일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바로 너잖아? 이제 너도 나설 때가 됐어. 베리칩이 상용되고 나면 이제 네 존재를 온 세계가 알게 해야지. 네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이렇다 할 답을 주기 힘든 일이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드럽게 말했다.

    “꼭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항상 그랬듯이 모든 건 네 선택에 달려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만 그림자에 숨어 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계속 어둠 속에 있기보다는 빛 앞으로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해.”

    어둠에서 머물지 않고 빛으로 나온다?

    “어둠에서 정점을 찍었으면 이제 빛에서 정상에 서봐야지 않겠어? 아주 간단한 일이야. 지금부터라도 너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한 기사들을 만들어내서 멍청한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그럼, 네가 대선에 나오면 그 사람들은 싫어도 널 뽑게 될 걸? 그리고 네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온 세계에서 널 칭송하기만 할 거야. 어때, 나쁘지 않지?”

    내가 가진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일단 국내 언론사들을 이용해 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전 세계적으로도 내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놓으면 거리낄 게 없을 터.

    “이왕 하는 건 평화 노벨상도 하나 받아. 북한과 대한민국의 관계 개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뭐, 이런 식으로. 거기다가 불쌍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아낌없이 바친 것도 좋은 구실이 될 거고.”

    이미 국내에 박혀 있는 내 이미지는 대한민국에 몇 없는 선한 기업인으로 잡혀져 있다. 그런데 거기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는다? 굳이 외부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대선에 나가면 대통령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노벨 평화상은 좀 오버 아닌가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그거 하나 받아놓으면 걱정할 게 없을 걸?”

    이왕 할 거면 확실하게 이미지메이킹을 해서 시작하라는 것이다.

    “천천히 생각해 봐, 워커. 난 내일 다시 비행기 타야 되니까, 먼저 일어날게.”

    로이는 내게 따로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건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난 혼자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대통령이라.

    그것도 영원한 독재를 이어갈 수 있는 대통령.

    연욱이가 탈선을 하지만 않았어도 녀석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며 수십 년 동안 독재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하게 된다라.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 * *

    “회장님.”

    여야 대표와 그 외 의원들부터 골든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각 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내가 모두 모이라고 호출한 것도 아닌데, 이들이 알아서 모여서 날 부른 것이었다.

    “이게 다 뭡니까?”

    “모두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부… 탁이요?”

    “예, 회장님.”

    기업인들부터 정치인들까지.

    유명 언론인들도 함께 자리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걸 말입니까?”

    “회장님, 이제는 나설 때가 되시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뒤에 계시지 말고 우리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앞에 나서주십시오.”

    아, 이거 설마…….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회장님이야말로 이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실 분입니다.”

    “회장님을 저희가 끝까지 보필하겠습니다.”

    대충 감이 왔다.

    로이가 벌인 일인가. 아니면 로이를 비롯한 여러 연합원들의 소행인가.

    누구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제대로 불을 질러놓았다.

    “회장님께서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주신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회장님을 위해 새로운 법안을 제출해 놓겠습니다. 장연욱 검사가 우리를 배신하면서 멈췄던 그 법안들 말입니다.”

    연욱이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당선만 되면 대통령을 계속할 수 있는 연임제와 대통령 선출 나이 제한을 없애는 법안 제출을 뒤로 미뤄두었다. 즉, 이들은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그 법안들을 다시 제출할 거라는 소리였다.

    “진정들 하십시오. 제가 대통령이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회장님, 이미 전 세계 지도자들이 회장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사실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죠. 그렇기에 그들은 이 나라를 무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회장님께서 대통령이 되신다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더는 작은 나라, 약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모두 회장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회장님의 뜻을 따를 겁니다. 그럼, 이 나라는 더욱더 부강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이미 뜻을 정한 듯 보였다.

    저들의 말대로 내가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우리나라 정부를 무시할 것이고 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길 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중요한 외교 안건은 정부를 뒤로하고 나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건데, 그건 앞으로의 정권을 계속 죽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단점이 있다고 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는 건 여러모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대통령이 된다라.

    이미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고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 뽑는 중인데 나 스스로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건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이다.

    내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전 세계의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드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림자에 숨어 대리인을 보내 조종하는 건 이제 보기가 싫다는 건가?

    “저희들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더는 뒤에 계시지 말고 앞으로 나오십시오. 저희 모두가 회장님 편입니다.”

    “회장님께서 결심하시면 모두 손발을 맞춰 움직일 겁니다.”

    “회장님은 그저 저희가 마련해 둔 꽃길을 따라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여기서 결정만 내리면 이들은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모든 여론을 전부 내 편으로 만들고 유력한 대선후보가 있다면 미리 제거를 할 것이며 선거를 조작해서라도 반드시 날 정상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이들과 함께라면 이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미디어가 점령하고 있는 세계가 아닌가.

    언론 조작만큼 위험한 게 또 없지만, 그만큼 유용한 게 또 없다.

    “저희는 회장님의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꼭 심사숙고해서 좋은 결정을 내리시길.”

    나는 이들에게 확답을 주지 못했다.

    로이가 한번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이제는 이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이건 정말 잘하는 짓일까.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장막 뒤에 숨어 모든 걸 조종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포기할 만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치가 있을까?

    물론, 이 자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자리다.

    나는 홀로 방에 앉아 시가를 하나 물고 황규혁이 옛날 내게 선물해 준 술잔을 들었다.

    아마 권용일이 내 옆에 있었다면 그는 내 이마를 세게 치면서 호통을 쳤을 것이다.

    왜 그런 꿀 빠는 자리를 잡지 않고 가만히 있냐고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아주 달콤한 유혹이라는 걸 왜 내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원래는 연욱이를 앉히려 했던 자리를 내가 앉는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나는 창밖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술잔을 기울였다.

    과연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온 세계의 정상으로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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